나의 이야기

반복의 슬픔

아이루다 2016. 7. 10. 08:34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원칙 중, 참 슬픈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반복되는 것들은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고, 권태로워진다는 점이다.

 

지난 과거를 떠올려보면, 과거 10년 동안 그렇게 재미있었던 수 많은 TV 프로그램들 중에서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누구 하나 다름없이, 어떤 프로에 나왔던 출연진들은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매 순간 많은 노력을 했지만, 언젠가는 마지막 인사를 했어야 했다.

 

그나마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프로그램은 바로 뉴스일 것이다. 뉴스는 비록 그 형식은 반복이지만, 내용 자체가 언제나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TV 프로그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일상도 그렇다. 오늘 즐겁게 즐긴 것이 내일도 즐거울지는 아무도 모른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고 난 후, 너무도 즐겁게 몇 년을 즐겼지만, 점점 흥미는 떨어져 갈 수 있다. 하긴 하지만, 재미가 아닌 운동으로써 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 죽고 못사는 연인들도 몇 년만 지나면 시들해진다. 그래서 깨지거나 결혼을 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이 가진 가장 불쌍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비슷한 수준의 반복된 자극을 견뎌내지 못한다. 우리는 하루가 더해질수록 조금씩 더 자극적이어야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어제 했던 것을 오늘 반복하는 것은 지겨움이 되고 만다. 그러니 내일은 오늘과 또 달라야 한다.

 

만약 인간에게 이런 특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지루하지 않고, 권태롭지도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행복하긴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단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 어떤 식으로도 진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은 분명히 행복의 조건이지만,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방해가 된다. 우리는 무엇인가 부족할 때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특징은 장점과 단점, 그것도 아주 큰 장점과 아주 큰 단점을 모두 가진다.

 

이 특징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가장 큰 원동력도 되지만, 이제 나이도 먹고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갈 때, 이젠 그만 나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때 조차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지루해지고 만다.

 

오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운 운동 선수는 다음 경기엔 더 나은 기록을 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선수는 서서히 잊혀져 간다.

 

오늘 멋진 마술을 보인 마술사는 다음 공연 때는 이번과 또 다른 차원의 환상적인 마술을 보여줘야 한다. 대중은 반복되는 마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음반을 낸 가수는 다음 음반을 낼 때, 더 나은 음악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가수에게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계속 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고수하다간 언제 대중으로부터 '뻔한 가수'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원래 분위기 있는 음색으로 발라드에 어울리는 가수가 락을 하다가 망한다.

 

예술가들에게 변화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대중은 그들의 변화를 원한다.

 

배우들도 반복되는 스타일의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실 몇 차례만 비슷해도, 그 배우의 한계는 금세 명확해진다. 얼굴 생김새, 목소리 톤, 말투나 연기 스타일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기에, 그 배우에 잘 맞는 배역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언제나 새로운 연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배우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연기 한계를 깨고 전혀 다른 모습의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외면한다. 배우는 결국 그렇게 좌절감을 맛본다. 그래서 자신이 잘하던 연기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것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가진 깊은 두려움이다. 반복됨에 따른 지루함, 그리고 잊혀짐. 이것은 생각보다 깊은 두려움이다. 사실 이런 두려움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운 연예인들은 그나마 토크 쇼를 통해 먹고 사는, 즉 말로 먹고 사는 연예인들일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말 재주가 있으면, 다들 그런 쇼 프로에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그들의 노래나 연기의 변화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어진다. 그렇게 잊혀진다.

 

우리는 반복을 싫어하기에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모든 변화는 긍정적 방향을 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록 경기에 나서는 스포츠 선수는 기존 기록을 깨는 쪽으로 변화해야 한다. 과거 자신의 기록보다 비슷하거나 떨어지는 것은 모두 변화가 아닌 퇴화로 평가된다.

 

가수나 연기자나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각자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집을 바꾼다면, 더 크고 더 넓은 집으로 가야 한다. 변화는 긍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장 내에서 직위나 직급이 바뀐다면, 승진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좌천이라고 한다.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지루함과 권태는 해결 방법이 없다. 그리고 변화는 늘 긍정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대항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래서 현실의 삶에서 경험하는 이런 종류의 것들은 그나마 인정하고 살만하다.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다. 진짜 문제는 이런 우리들의 삶의 특징과 개인의 관심 병이 겹쳤을 때 치명적 결과를 낳게 된다.

 

즉,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SNS에서 바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블로그나 페이스 북, 트위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등등 각종 SNS의 주인장들은 어제 자신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오늘 또 다시 방문하고, 내일도 오게 하기 위해서 변화를 해야 한다.

 

오늘 운 좋게 많은 사람들의 조회를 기록했다고 해서, 내일 그것이 반복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내일은 또 다른 소재의 소식이 있어야 한다.

 

오늘 국내 여행을 갔다면, 내일은 해외 여행을 떠나야 방문자 수가 비슷하게 유지가 된다. 오늘 국내 여행을 갔는데, 내일도 국내 여행을 가면 방문자 수는 점점 줄어든다. 자극은 금세 익숙해지고 지루해진다.

 

그래서 매일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늘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는 긍정적이라기 보다는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즉, 변화는 늘 더 자극적이어야 한다.

 

그러니 인터넷 세상이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자신들이 섹스를 하는 장면을 녹화해서 보여준다든지, 살인을 하는 장면을 찍어서 올린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법적 문제가 없다면, 이미 넘쳐나고 있을 장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다음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집단 섹스와 연쇄 살인을 보여줘야 할까?

 

이런 특징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참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SNS는 사실 필수적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행복하기 위해서 그것을 한다.

 

이것은 봄철 개편에서 살아 남으려고 노력하는 TV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것은 육상 선수의 기록 단축을 위한 노력이 아니다. 이것은 배우로써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노력이 아니다. 이것은 좀 색다른 음악을 해보고 싶은 가수의 노력이 아니다. 이것은 결코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결코 자신에 대한 도전이나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안을 지배하는 원칙은 완전히 동일하다. 반복은 지루하고 변화는 더 자극적이어야 한다.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변화를 위해서 힘든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도 오직 다른 것도 아닌,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다.

 

매일 요리를 소개하는 블로그는 언젠가는 그 소재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매일 남녀의 애정에 대한 훈수를 두던 블로그 역시도 언젠가는 괜찮은 이야기 거리가 다 없어지기 마련이다. 여행도, 맛 집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나마 뉴스처럼 새로 나온 제품을 소개하는 블로그들이나 유지가 될 것이다.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변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개되는 제품들은 모두 긍정적 변화를 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더 자극적이고 더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다른 블로그에 언제 방문객을 다 뺏길지 모른다.

 

이런 식으로 대다수는 반복되고 결국 지루해지고 만다. 그러니 무리수를 두게 된다. 거짓말을 하고, 가짜로 뭔가를 꾸민다.

 

그러니 그것이 무엇이든 적당히 하지 못하면, 각자 당사자들은 삶 자체가 피폐해질 수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각종 SNS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 어떤 의미가 없다. 우리들 자신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우리는 오늘 아무리 흥미로웠어도 내일은 잊고 만다.

 

오늘은 그저 오늘로써 끝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기억할 필요성도 없고, 기억 할 수도 없다.

 

인터넷에는 매일 너무도 많은 지식과 정보가 유통된다. 이것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니다. 우리는 구글과 같은 검색 사이트가 없으면,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너무 힘들다. 왜냐하면 너무도 많은 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모두 일일이 찾으려 다니다간, 사실 아무것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인터넷의 특징은 휘발성이다. 금세 날라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우리가 이런 우리들의 타고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삶은 반복되는데, 그것은 지루해지고, 그래서 변화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것의 답은 없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지루함이라고 한 철학자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답을 찾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변화할 수 없는 시기에 놓이게 된다. 젊은 시절은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자연스럽게 긍정적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후에는 모든 변화는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변하지 않길 바란다.

 

젊은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해오는 소식을 기다리지만, 늙으면 소식이 없길 바란다는 말도 있다. 젊은 시절에 오는 소식들은 결혼식이나 파티와 같이 즐겁고 흥겨운 것들이지만, 늙어서 오는 소식들은 장례식과 같이 우울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몸도 점점 변해간다. 나쁜 쪽으로 말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더 병에 걸린다. 우리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유지되지도 못하고 쪼그라든다. 그리고 이 시점은 평등하게 누구에게나 온다.

 

이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첫 번째는, 바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한 행복에서 조금이라도 덜 종속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SNS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집착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그것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방문자의 숫자는 점점 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그 어떤 노력을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점점 익숙해지고 반복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반드시 한계가 있다.

 

두 번째는 소중한 것들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우리를 진짜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은 변화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바로 소중한 가치들로부터 나온다. 비록 그것이 변화도 거의 없고, 자극적이지도 못해서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전혀 변함이 없다.

 

그러니 너무 익숙해서 지루하기까지 하더라도 가족의 소중함과 오래된 친구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른 각도의 바라봄이 필요하다. 그들이 지루한 것은 사실 우리 머리 속이 너무 자극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도 모르게 자극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인간의 뇌는 너무 많은 자극이 들어오면, 각각의 자극에 대해 일일이 반응하는 것을 멈춘다.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정신이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자극적 요소를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소중한 가치에 대한 새로움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변화이다. 특히나 사계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1년 동안 여름의 뜨거움과 겨울의 차가움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가을엔 낙엽이 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키우는 것도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은 늘 한결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일 변한다. 단지 그 변화가 아주 느리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이것을 배워야 한다고 표현한 것은, 정말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잊어버린 능력이다. 그래서 하고 싶다고 해서 당장 할 수 없다. 연습이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그것을 잊어버린 것이지 결코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그래서 다시 배우면 금세 익숙해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든지 상관없이 꽃을 보면 예쁘고, 다람쥐를 보면 귀엽다.

 

네 번째는 자신에게 특별한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것은 소중한 사람에 대한 내용과 조금 겹치지만, 조금 더 긍정적인 노력이다.

 

우리는 매일 같은 사람을 보면, 언젠가는 지루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힘들게 이 지루함을 넘어서면 매일 같이 있어도 편하고 좋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될 수 있다. 물론 힘들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이런 사람을 한 명쯤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평생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행운이다. 단지 이런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행복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조절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변화된 것들 원하고 자극에 노출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바로 심각한 수준의 행복 욕망이다. 매일 행복하지 못하면 삶을 잘못 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반복되고 지루하면 우울해지게 된다. 이것은 심심한 것은 맞지만, 결코 우울해져야 할 것은 아니다.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렇지 않기는 힘들다. 단지 너무 과도하게 그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살아가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 심심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자신의 행복에 대해 너무 과도한 기대치를 가졌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나, 우리가 행복해야 할 아무런 당위성이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결정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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