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인공지능과 인간

아이루다 2016. 3. 14. 07:59


 

최근 구글에서 개발한 알파고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시스템과 이세돌이란 이름을 가진 바둑기사가 가히 세기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 3승 1패, 알파고의 승리는 확정되었고, 이제 승률만이 남아 있는 셈이다. 초기 세 판을 연달아 진 이세돌은 4번째 판에서 한 차례 승리를 해냄으로써, 극적으로 말하면 인류에게 희망을 준 셈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바둑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해당 대결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바둑이란 경기가 워낙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기에 장기, 체스에 비해서 좀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누구나처럼 인간 이세돌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원래 좀 그런 경향도 있지만, 언론이나 사람들의 반응은 좀 극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아마 요즘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알파고가 스카이넷이란 농담일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에서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핵전쟁을 일으킨 인공지능의 이름이 바로 스카이넷이었다. 그래서 스카이넷은 절대로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발명품이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 터미네이터2 에서는 미래에서 온 로봇과 사라 코너 그리고 나중에 저항 군의 대장이 된 존 코너, 이 세 명이 스카이넷 발명자를 설득해서 모든 자료를 폭파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즉, 과거를 바꿈으로써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물론 상상 속 이야기지만, 당시 영화가 너무도 강렬한 충격을 준 탓인지, 아무튼 요즘도 인류에 대항하는 인공지능의 대표적 주자로 거론되곤 한다. 비슷하게는 영화 '매트릭스' 에 나오는 정체 모를 기계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존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될까?

 

인류는 지금까지 지구의 주인으로써 그 권리를 톡톡히 누려왔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지구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것에는 바로 약육강식이라는 생태계 원리가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어서이다. 즉, 우리는 강했기에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강한 것이 나타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결론은 단순하다. 우리보다 더 강한 존재가 나타나면 우리는 그들에게 지배당할 것이다. 사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이미 충분히 나타난 현상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존재는, 그 누구도 아닌 인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출현을 몹시 두려워하게 된다. 그것이 외계인이든, 인공지능이든, 갑자기 똑똑해진 원숭이든 상관없다. 그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존재라면 모두 그런 대상이 된다.

 

아무튼 이런 생각도 든다. 이번에 이세돌의 승리가 바둑에 관한 한, 인류의 마지막 승리일 것이란 생각 말이다. 1997년 체스 대회에서 세계 랭킹 1위를 꺾은 IBM의 '딥 블루' 이후, 체스에 관한 한 컴퓨터를 이긴 인간은 없다. 아마도 바둑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들은 어떨까? 물론 계산기 분야에서 기계는 이미 인간을 훨씬 추월했다. 기계는 이미 인간보다 밥도 잘하고, 빨래도 잘한다. 그래도 아직 인간이 잘하는 분야는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창의력과 상상력은 현재까지는 인간의 무조건적인 우위가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원칙을 생각하면, 정말로 '빅 데이터' 를 기반으로 한, 자기 학습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구글과 같은 검색 시스템의 발전은 언제라도 인간의 그것을 추월할 수 있을지 모른다.

 

특히나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 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스카이넷은 아닐지라도,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인공지능이 판단해 준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파고를 대신해서 바둑을 두고 있던 그 기사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인류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두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하나는 우연이 읽은 어떤 사람의 글이다. 글 내용은 단순하다. 자신이 친구와 컴퓨터 게임을 계속 했는데, 자신이 언제나 이겨서 친구가 너무 속상해 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날 일부로 져줬다는 것이다. 그러자 친구가 너무도 행복해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좋았다는 결론이었다.

 

이것은 결코 기계가 판단할 수 없는 의사 결정이다. 인간은 져줄 수 있기에 인간인 것이다.

 

또 하나의 예는 인공지능과 대결을 벌인 포커 게임에서 일어난 일이다. 원래 포커 게임이라면 확률 계산에 의해서 승률이 결정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인공지능에게 많이 유리한 게임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간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바로 '블러핑', 우리 말로 '뻥카'를 인공지능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즉, 명백하지 않은 상태에서 컴퓨터는 자신의 승률을 기반으로 레이스를 했을 테지만, 인간은 숨긴 패를 이용해서 마치 자신이 더 나은 패를 가지고 있는 듯 행동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에서 보면,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명확하다. 인공지능은 제대로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뭔가 감정이 섞이거나 숨기는 것이 있을 경우에는 그것을 간파해내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인간과 같은 수준의 존재가 되기 힘들어 지는 것이다.

 

즉, 인공지능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바꿔서 말하면, 인간은 거짓말을 할 수 있기에 인공지능과는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거짓말이 우리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컴퓨터 게임에서 친구를 이길 수 있는데 져주는 것을 좋게 말하면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포커 게임에서 블러핑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사실 인공지능이 거짓말을 이해하려면 매우 힘들 것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어떤 이득을 기대하기 때문인데, 이 이득은 너무도 먼 미래를 겨냥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주변 사람들에게 본심을 숨긴다. 마음에 들든 아니든 간에 상관없이 그렇게 한다. 가기 싫은 자리도 마치 오고 싶었다는 듯 참석하고, 속으로는 돈이 아깝다고 툴툴대면서도 앞에서는 웃으면서 기분 좋게 돈을 건낸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일을 매일 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의 투자가 미래에 어떤 이득이 되어 돌아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음씀씀이도 이득이라고 여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이득이란 것은 개인적으로 모두 다르게 정의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의 행위가 이득을 목표로 한다는 점은 정확히 동일하다. 친구에게 게임을 져주는 것도 그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목적은 친구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확장되면,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신의 자녀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수 십 년 후의 정확하게 일어날 이득도 아닌 것에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죽는 날을 위해서 투자를 해 놓기도 하고, 죽음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엔 영원한 이득을 위해 투자를 하기도 한다. 오랜 예전에 만들어진 왕이 무덤이 그런 예가 된다. 죽음 후에도 영원히 존재하고자 했던 욕망이 만들어 낸 투자인 셈이다.

 

더해서 우리는 명확하지 않는 대상을 '믿음' 에 근거해서 투자하기도 한다. 사는 동안 종교를 믿고 그 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믿는 사람에게는 확실한 투자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돈 낭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장기나 체스는 더욱 심하고, 바둑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하루 정도면 결론이 나오는 게임이다. 즉, 지금의 인공지능이 계산 가능한 이득은 규칙이 단순하고 하루 정도의 시간을 두고 이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수 십 년의 미래를 계산하고 투자한다.

 

물론 그 투자가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또한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나질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망설임 없이 투자를 한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결코 해내기 힘든 미래 예측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거짓말은 들킬 경우 아주 큰 손해를 야기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진 행위이다. 더군다나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거짓말이 추가될 경우가 있다. 즉, 한번 한 거짓말을 계속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내게 되고 결국은 들킨다.

 

이것은 꽤나 복합적 사고이다. 먼 미래의 이득을 계산하는 것이나, 거짓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많은 상황을 조작하는 것 자체가 힘든 행위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제대로 거짓말을 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거짓말 이외에 인간이 인공지능에 비해서 가지고 있는 장점은 여러 개가 더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망각' 능력이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매우 용감해질 수 있다. 실수나 잘못된 선택을 해서 큰 손해를 입더라도 미래의 어느 날엔 그 결과 자체가 희미해진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용감한 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망각을 할 수 없다. 한번 저지른 실수는 영원히 기억된다. 그러니 인공지능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또 하나의 장점은 성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도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목적에 상관없이 수단의 도덕적 판단을 통해서 결정을 하기도 한다. 즉, 도덕적으로만 충분하다면 그 결과가 99%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기계적 판단의 반대가 된다. 이것을 우리는 인간적인 판단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인간의 장점은 바로 '농담' 능력이다. 말 그대로 인공지능이 유머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인간은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잘못을 잊을 수 있으며, 이뤄질 가능성이 낮은 목표를 추구하고, 재미있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에 비해 확실히 우위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은 불안전하고 감정적 존재란 점에서 인공지능이 감히 넘보지 못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단점이라고 해석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런 능력으로 인해서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면 결코 판단해내지 못할 것들을 판단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것을 인간의 장점으로 정의하면 좀 기분이 그렇긴 하다. 그래서 인류의 미래는 불투명할까?

 

그 답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그 무엇보다도 안심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는 바로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도 이뤄지겠지만, 인간의 로봇화 역시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란 점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팔다리를 기계로 바꾸기 시작해서, 장기도 바꾸고 나중에는 머리까지도 기계로 대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즉, 그때가 되면 우리와 인공지능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스스로 몸을 개조함으로써 기존의 자연적 진화와는 상대도 되지 않게 거대한 변화를 이룩해낼 것이다. 인류 스스로 로봇이 되어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도 더 이상 자손을 남기는 일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한 500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 세상에는 단순한 생산적 일을 하는 로봇만 보일지도 모른다. 일단 누군가는 에너지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우리는 태양 주변에 대형 에너지 수집장치를 만든 후, 지구나 기차 주변 행성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을 갖춘 채,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가상 세계에 접속하여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형태의 가상 세계가 존재하고, 우리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가서 마음껏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기만 필요하기 때문에,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만 전송 받으면 더 이상이 필요가 없다.

 

먹을 필요도, 섹스를 할 필요도, 잠을 잘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물리적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이 지금으로써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화성에 가고 싶다고 해도, 그냥 자신의 의식을 화성에 있는 시스템에 복사하는 것으로 끝낼지도 모른다.

 

불완전하고 금세 고장날 수 있는 생체 시스템을 모두 버렸기에, 우주선을 타고 아무런 장애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우주 여행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대형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를 벗어나는 여행을 떠날지도 모른다.

 

이런 예상들은 이제 더 이상 그냥 상상이 아니다. 사실 알파고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우리의 미래에 스카이넷은 나올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충분히 사전 위험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이 망했다면 이미 수 없이 망했을 것이다. 지금 인류가 가진 핵무기는 그것을 수 십 번 해낼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잘 버티고 있다. 즉, 우리가 가진 집단적 생존 본능은 생각보다 강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이세돌을 응원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물론 운이 좋지 않다면, 실수로 핵전쟁이 날 것이고, 우주에서 대형 운석이 떨어져서 공룡처럼 멸망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고 예측 범위 밖이다. 아무튼 운이 좋다면, 우리는 미래의 어느 날 태양계 너머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 죽음이 다가 올 무렵쯤에는 영생에 대한 약간의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무엇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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