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진실한 행복

아이루다 2016. 3. 11. 09:42


"진실한 행복"

 

이 말은 얼마나 가슴 따뜻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목표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평생 행복을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찾은 행복이 진실하다면,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행복이 진실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 일단 진실한 행복이 되기 위한 조건을 살펴보자.

 

아마도 진실한 행복이란 평가를 받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하나는 바로 '안정성'일 것이다. 어떤 행복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단발성으로 끝나거나 당분간 존재하더라도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면, 그것을 평생 동안 추구하기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조건은 '가치성'일 것이다. 만약 어떤 행복이 평생 동안 안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 행복을 가치 있어 하지 않는다면, 진실하다는 평가를 받기 힘들어 보인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한심하게 여기거나 혐오스러운 수준으로 여길 행복이라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가치성은 안정성보다도 더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 단지 이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너무 편차가 커서 딱히 고정시켜 정의할 수 없다는 잠재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두 가지 조건, 즉 안정성과 가치성만 갖춘 행복이라면 사실 진실한 행복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이 반대가 되는 것들을 살펴보자. 원래 어떤 개념을 이해할 때, 그 개념 자체를 통해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그 반대의 개념을 살펴봄으로써 좀 더 본질적 이해를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일단 안정성의 반대의 조건은 바로 불안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치성의 반대는 비가치성 혹은 한심하고 무의미한 행복 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불안전한 행복의 가장 흔한 예는 바로 마약, 도박, 음주 등과 같이 중독의 속성을 가지는 것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종류의 행복들은, 하는 동안은 매우 큰 쾌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 그 자체는 맞지만, 몸이나 마음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공통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종류 말고도 게임, 쇼핑, SNS, TV, 일, 여행, 운동,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 등등 무엇이든 간에 중독이 되면 마찬가지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없이,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얻는 행복에 크게 종속 되면, 현실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큰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이제 두 번째로 한심하고 무의미한 행복을 살펴보자. 이런 종류의 행복에는 여자 속옷 모으기, 몰카 찍기, SNS 상에서 다른 사람인 척 하기 그리고 각종 변태 행위 등등이 그 후보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어떤 것들은 사실상 범죄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불안전한 행복 쪽으로도 포함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그래서 사실 이 경계가 좀 애매하긴 하다.

 

아무튼 불안정하고 한심한 행복의 예를 통해서 보면, 왜 안정적이고 가치 있는 행복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답인 나온다. 우리는 결국 어떤 종류의 행복이든지 지속 가능하지 않을 때를 경계하게 된다. 설령 그것이 몸에 좋은 운동이라고 해도 운동 중독이 되어서 현실의 삶에 크게 문제가 될 경우, 결국 우리는 그것을 그만 둘 수 밖에 없다.


또한 남에게 말하기 힘든 한심한 행복 역시도 들킬까봐 늘 마음 졸이면서 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남들에게 알려져서 크게 망신을 당하고 그만 둘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어떤 종류의 한심함이냐에 따라서 직장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평생 동안 안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으며, 남들에게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 받는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진실한 행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의 가치성에 대한 부분인데, 우리는 생각보다 그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힘들다. 즉, 사람마다 무엇이 한심하고, 어떤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정의하는 것을 모두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잠재적 문제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을 그렇게 생각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지 모르겠다고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쇼핑을 하는 것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SNS 하는 것을 그렇게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다니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각종 돈이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을 한심하다고 여긴다.


사실 이런 행위들은 일상 생활에 큰 지장 없이 즐길 수도 있다는 면에서 안정적인 조건을 갖췄지만, 사람의 판단 기준에 따라 한심하다는 평가로 인해서 진실한 행복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게임을 하고, 쇼핑을 하고, TV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동물을 키우고, 남을 돕고, 자동차를 튜닝하고, 맛 집을 찾아 다니고, SNS를 통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산을 오르는 것을 가치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반대로 또 사람에 따라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서로 관계를 맺고, 캠핑을 하고, 좋은 오디오를 구입하여 음악을 듣고, 일을 하고, 텃밭을 가꾸고, 만나서 대화를 하고, 술 한잔 하면서 인생을 얘기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삶을 한심하고 무의미한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런 증명된 행복들이 한심하거나 무의미한거야 라고 반문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것에 동의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심지어 본능적 행복인, 먹고, 자고, 섹스를 하는 것을 무의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여기까지 진실한 행복의 조건과 그 반대편에 있는 진실하지 못한 행복들을 살펴봄으로써 진실한 행복을 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실한 행복이 가지고 있는 단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과연 진실한 행복은 어떤 잠재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안정적' 이란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안정적이란 말은 고정되었다는 의미로도 확대가 되며, 고정적이란 말이 가진 의미는 기본적으로 딱딱하고 견고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보통 자연계에서 딱딱한 것은 죽은 것들이다.

 

사실 그런 면이 있다. 인간은 원래 열정적일 때 최고로 행복할 수 있다. 더해서 뭔가를 이뤄낼 수도 있다. 젊음이 좋은 이유도 그것이다. 그런데 열정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함을 깔고 있다. 물은 심하게 끓을 때 가장 불안해진다. 결국 끓는 물은 그릇을 넘어서서 바닥으로 튄게 된다.

 

또한 인간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하려면 집중과 몰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집중과 몰입은 사실 중독과 크게 다르지 않는 상태이다. 단지 그것을 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단어를 써서 완화시킨 것 뿐이다.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평생 동안 연구실에서만 살면, 사실 이것은 집중과 몰입이라고 하지만, 중독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결국 우리가 최고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단지 안정적인 행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면서 뭔가 하나쯤을 이뤄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이 안정적 행복만을 추구하면 인간을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우리는 누구나 젊은 시절이 있기에,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안정적 행복이 가진 두 번째 문제는 바로 행복의 공식화 현상이다. 그 덕분에 때가 되면 취직을 하고,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때가 되면 아이를 낳고, 때가 되면 죽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확실하게 진실한 행복인지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실한 행복이란 말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사실 '행복'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단지 '진실한' 이란 단어에 촛점을 맞췄기 때문에 아예 행복이란 말 자체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행복'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안정적이고 가치 있지만 그 자신은 행복하지 않는 경우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 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있게 되면, 도대체 그것을 구분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삶을 살기 때문에 도대체 다른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지금의 행복이 자신에게 최고의 행복이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만 보면 왠지 불안함을 느낀다. 그러니까 자신과 다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들에게 그것말고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진실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조언을 한다. 즉, 자기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말하는 형식은 분명히 조언이지만, 그 내용은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을 주입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해 온 행복을 다른 이들도 모두 같이 추구해 줄 때, 그나마 덜 불안하기 때문에 그렇다.

 

많은 젊은이들이 명절 때마다 친척들에게 들어야 하는 말 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사실 그런 말을 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행복에 대해 확신이 없다. 비록 그들이 말하는 취업, 결혼, 육아 등이 보통 진실한 행복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로 행복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고, 지금의 삶이 행복하냐 않느냐에 상관없이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다른 것을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세 번째 문제이다. 진실한 행복 속에서 너무도 안정적으로 평생을 살게 되면 마치 온실 속 화초처럼 더 없이 겁쟁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 불안정함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 흘러가는 세상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위기의식이 없는 존재는 결국 나약하고 도태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끝없이 자신의 삶을 강요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엔 충분히 이해할만한 이유도 있다.


이들이 그런 삶을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에는, 그렇게 안정적으로 사는 삶을 살면서 이미 수 많은 불안한 삶을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가 있다.

 

사람들이 진짜로 행복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말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심한 경우 다른 사람과 만날 이유도 없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남녀는 가족도 잊고, 친구도 잊으면서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듯 살아간다.


그런 그들이 언제 다른 사람과 말을 할까? 그것은 바로 지루해졌거나 헤어졌을 때이다. 그때 그들은 그 불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좀 덜 힘들고자 한다. 그리고 이때 듣는 사람들은 단지 그들을 위로해주는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 왜 힘들게 다른 사람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있겠는가?

 

그들이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진짜 이유는 바로 다른 사람의 불행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추구하는 안정적 행복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의 소식을 들으면, 여행을 가지 않고 사는 자신의 삶이 좀 더 나아지는 효과가 있다. 결혼을 했다가 이혼한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자신의 삶이 더 괜찮아 보인다. 아이를 낳아 키웠는데, 아이가 심하게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사람의 이야기는 잘 퍼지지 않는다.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잘 키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소문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원래 불행한 사건만 소문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소식은 사실 심하게 편중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세상을 판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도 평가한다. 이것이 문제이다.

 

안정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매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다른 안정적인 사람들과의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조건인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많이 맺어 놓을 수록 더욱 더 안정적으로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런 관계 속에서 어느날 어떤 불행으로 인해서 불안정한 상태가 된 사람들은 그 동안 유지해왔던 관계를 계속 지속하기가 힘들어 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안정적 행복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불안한 상태를 숨기려고 애쓴다. 즉, 쇼윈도 부부가 되어서라도 안정적으로 보여서 남들과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


불안하더라도 진짜로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 때만 와서 이야기를 하고, 안정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일단 겉으로 언제나 행복해 보인다. 그러니 어떤 행복이 더 나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도 뻔하다. 안정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이 진실한 행복이란 결론이 나오게 된다.

 

여기까지 진실한 행복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살펴봤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빠졌다. 글 중간에 간단히 언급되었지만, 이제 결론을 내면서 그것을 생각해보자.

 

원래 안정적인 행복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쉽게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인정을 받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보통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더해서 그 방향이 옳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행복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행복과 같은 방향일지에 대한 의문이다.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이 부모의 뜻이나 주변의 조언에 의해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거나 혹은 시험에 합격해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살아갈 때, 분명히 결혼, 육아와 같은 보편적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졌다. 또한 그 자신도 그것을 통해 나름대로 행복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즉, 흔히 말하는 진실한 행복을 타인들의 평가를 통해 정의하게 되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행복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제 진실한 행복이란 말은 다르게 정의 되어야 한다. 기존에 했던 정의는 모두 잊고 단 한가지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진실한 행복은 안정적일 필요도 없고 한심하거나 무의미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실한 행복은 오직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느냐 만을 따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안정적이고 가치 있는 행복이냐를 판단해야 한다.

 

처음부터 행복한 것도 아닌데 남들이 안정적이고 가치가 있다는 평가해주기에 그것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은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쉽지 않는 삶이다. 자신만의 진실한 행복을 찾는 일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동안 행복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여기더라도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끝없이 의문을 가져야 한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인생은 짧으면서 길다. 그래서 오늘 99%의 만족을 했다면, 매일 1%의 불만족이 쌓여서 결국 일년에 365%의 불만족이 생긴 것이다. 100년을 살면 36,500%만큼의 불만족이 있는 것이다.

 

죽는 그날까지 행복에 대한 끝없는 성찰, 이것이 삶이라고 불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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