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냉소적인 성격

아이루다 2016. 2. 19. 08:53

 

꽤나 예전에 '굿 윌 헌팅' 이란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었다. 지금은 유명 배우가 된, 멧 데이먼이 주연으로 나왔고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암스가 조연으로 나왔었다.

 

이 영화는 불우하게 태어난 수학 천재의 자기 성장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 속 멧 데이먼은 타고난 천재였지만, 자란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서 엄청 삐뚤어진 존재가 된 채, 대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수학과 사무실에 붙어 있는 난해한 문제 하나를 재미로 풀어낸다.

 

이 일 후에 그는 수학 교수의 눈에 띄지만, 멧 데이먼의 제멋대로의 성격을 감당하지 못한 교수는, 그에게 심리 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을 것을 약속 받는다.

 

그래서 멧 데이먼은 상담을 받긴 하지만,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해서 끝없이 빈정댄다. 오랜 시간 동안 받은 상처와 타고난 똑똑한 머리로 인해서 도대체 상담 자체가 되질 않는 것이다. 상담사보다 훨씬 뛰어난 머리로, 말 그대로 상담가 머리 꼭대기에서 놀면서 상담 중 진행되는 절차를 모두 무시해 버린다.

 

그러자 모든 상담가가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고 떠나 버리고, 멧 데이먼의 상담을 해줄 사람은 남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으로 아내를 잃은 후 오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로빈 윌리암스가 선택된다.

 

둘은 끝없이 싸우고 빈정대고를 반복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너의 잘못이 아니야' 라는 로빈 윌리암스의 말로 최종 결론이 난다.

 

그 순간부터 그렇게 부정하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멧 데이먼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외부에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멈추고 시선을 내부로 돌린 것이다. 즉,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떠난다.

 

이 영화는 꽤나 감동적인 영화였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멧 데이먼과 같은 사람들이 꽤나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냉소적이다, 비관적이다, 시니컬 하다 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들이 멧 데이먼처럼 모두 천재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지적으로 우수하다. 그리고 따져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사실 멧 데이먼은 냉소적면서 비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삐뚤어진 사람이다. 단지 머리가 좋기 때문에 그것이 냉소적으로 보이는 것 뿐이다. 원래 삐뚤어진 사람은 원래 그 지적 능력에 따라 크게 두 형태로 나뉜다.


하나는 머리가 나빠서 찌질해 보이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머리가 좋아서 냉소적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기본적으로 냉소적이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원래 냉소적이거나 비판적 이려면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해서 뭔가 끝없이 지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정치, 사회, 역사, 과학, 인간까지 다양한 분야에 지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머리가 나쁜 사람은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뭔가 이성적으로 합당한 내용을 통해서 상대방을 비웃든가, 지적하던가 해야지 아는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세상을 욕하고, 상대를 지적하다가는 세상으로부터 왕따 당하기 쉽다. 그래서 이들은 현실에서도 도피하게 된다. 이런 이들은 예전엔 집에만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온라인 악플러가 되어 자주 눈에 띈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능력이 되질 않기 때문에, 어디선가 주어들은 의견을 복사하고는 마치 자신의 것인 냥 여기면서, 스스로를 비판적인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금세 들통이 나고, 뭔가 주장을 하기 위해서 참고한 자료 조차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믿고 싶은 데로만 믿어서, 엉뚱한 곳에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져 오는 경우가 흔하다. 즉,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판단해 낼 능력도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온라인 상에서 어떤 논쟁이라도 붙으면 금세 태도를 바꿔서 상대를 비웃는 태도만 보이다가 결국 '내가 이겼다' 라고 말하고는, 말 그대로 정신 승리를 하고 사라진다.

 

이런 상황이니 삐뚤어진 사람이 똑똑하지 못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으면, 현실 속에서 그냥 찌질한 존재이거나 현실 부적응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온라인 악플러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매우 평범하고 소심하고 멀쩡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능력이 안되니, 온라인 상에서 그런 행동을 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은 상처로 인해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일단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오늘 주제에서는 빼기로 한다. 왜냐하면 해석할 것도, 해결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이들은 그냥 평생 그렇게 찌질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뭔가 바꾸고 싶다면 가진 것을 버려야 하는데, 채워진 것이 없기 때문에 버릴 것도 없다.

 

두 번째로 삐뚤어졌지만 머리가 좋은 사람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된다. 그래서 똑똑하면 똑똑할수록 더욱 더 그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쉽다. 말 그대로 그 정점이 바로 수학 천재 멧 데이먼이 되는 것이다.

 

이들이 하는 말은 사실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면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은 그렇게 그들 말처럼 이성적으로만 판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쉽게 표현해서, 이들은 사실은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은 보려고 하지 않고 그저 비판만 해댄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비판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비난을 한다. 내용은 이성적이지만, 어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나름대로 맞긴 하지만, 받아들이기에 매우 거북하다.

 

누군가가 남을 도왔다는 훈훈한 기사를 봐도, 그래 봐야 나중에 뒤통수 맞을 것이 뻔하다고 비난한다. 어떤 돈 많은 사람이 자신의 돈을 사회에 모두 기부했다는 기사를 봐도, 결국 그 돈은 어떤 나쁜 놈들이 챙겨 먹을 것이 뻔하다고 말한다.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를 잃은 부모를 보고는, 그런 아이는 커도 제 역할을 못할 테니까 부모를 위해서라도 빨리 죽는 것이 나았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이성적 판단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말이 마냥 거짓말이 아니란 점이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만이 아니기에, 듣는 사람은 이런 표현에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그냥 입을 닫고 만다. 얘기를 꺼내봐야, 우리나라 사회 문제, 정치 문제, 국민성 문제 등등 줄줄이 튀어나올 이야기가 한가득임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는 것도 많아서 도대체 논쟁에서 이기기도 힘들다.

 

이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인, 아내나 남편이나 아이가 여행을 가서 사고를 당해도,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냥 왜 쓸데없이 여행 같은 것을 가서 그런 사고나 당했냐고 비난부터 한다. 자신이 반대한 일이면 더욱 더 심하다. 

 

하지만 이들도 행복하기 원한다. 그리고 이들의 믿음과 달리, 행복은 결코 이성적 능력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그 자체가 감정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이성의 노예가 된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닥치고 만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불행이다. 아무리 세상을 비난해도 그 자신은 결코 행복해지지가 않는다.


사실 우리가 이성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행복하다고 해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몸이 상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돈이 더 생기고 몸도 건강해진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 그 답은 행복은 오직 감정의 영역이라서 그렇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그럴까?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도대체 왜 그렇게 남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비판적이려고 할까? 왜 스스로도 화가 나고, 상대도 화가 나게 만들까? 그것이 결코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텐데 말이다. 그 똑똑함과 지식을 왜 긍정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부정적인 용도로만 사용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흔한 이유는 바로 어린 시절에 '부모의 사랑' 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로 되고 싶은 자신과 현실의 자신의 갭으로 인해 그렇다.

 

첫 번째 이유인 부모의 사랑 결핍에서,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것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있어서 매우 큰 문제가 되는데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큰 아이는 애정 결핍이나 혹은 자기 존재감 증명에 있어서 제대로 충족이 되질 못한다.

 

원래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다. 그런데 그 부모가 자신을 사랑해주거나 인정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그 상처를 평생 동안 가지게 살게 된다. 뭔가 불만족스럽고,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린 나이엔 그저 반항적인 태도로 나타나고 말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머리가 좋으면,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자기 증명을 확인 받으려고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밑 빠진 독이다. 특정한 어떤 시기에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자기 증명 욕구는 평생 동안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상처가 아이를 삐뚤어지게 만든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게 만든다. 자신이 갖지 못한 가치를 가진 사람을 보니 심통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질투가 나는 것이다.

 

별 생각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그저 즐기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알기 때문에 스스로가 생각하는 다양한 비판적인 의견이 정당한 근거도 있다.

 

즉, 자신이 취하는 비판적 태도가 나름대로 합리적이란 점을 스스로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리 안 좋아해도 쉼 없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비난하고, 이죽거리고, 속이 꼬여 있다.

 

두 번째 이유인 스스로 만든 열등감 역시도 외부의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깔아뭉개야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련을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은 끝없이 그 가치를 높여가려고 하기 때문에 보이기에 어처구니 없는 태도를 보인다.

 

이 두 가지 이유는 모두 각각 다른 이유로 외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게 만들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는 이유로 작용한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이 아닌, 비슷한 환경에서 어떤 상처로 인해 생성된 후천적 성격이기 때문에 꽤나 유사한 특징이 나타난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적어 보겠다.

 

첫째, 일단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이 별로 남아나지도 않지만, 스스로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먼저 끊어 버린다.

 

둘째,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 즉, 따뜻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선호한다. 이것이 이들이 가진 가장 큰 아이러니 함이다.

 

셋째,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고, 지적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주로 하는 드라마를 보는 일이나, 연예인의 사생활 등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있어도 스캔들과 같은 나쁜 쪽으로만 관심을 갖는다.

 

넷째, 사람을 거의 못 믿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색안경을 쓰고 본다. 그래서 사기를 당하지 않는 좋은 점도 있긴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너무 못 믿으면, 자신도 꽤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다섯째, 자신도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알고는 있다. 자신이 그런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러면 결국 자신은 홀로 남게 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멈추질 못한다.

 

여섯째, 스스로 행복하지 못함도 알고 있다. 하지만 행복하고 싶은 욕구도 많다. 그래서 배우자 선택 시에 따뜻한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과 같은 비판적인 사람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왜 그러는지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싫어한다.

 

일곱째, 그냥 원래 자신은 그렇게 태어났다고 믿는다. 똑똑하고 이성적이어서 회사에서도 나름대로 인정을 받으니, 자신은 원래 그런 역할이라고 믿는다.

 

여덟째, 세상 모든 것을 이득과 손해로만 판단하려고 한다. 사람의 감정은 무시하고 모든 것을 이성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지만, 사실 그렇다고 해서 돈만을 위해서 살지도 않는다.


아홉째, 생각보다 착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상처입게 하면, 어쩔줄을 몰라하기도 한다. 그래서 버텨낸다.


열번째, 보통 능력을 인정받는 편이다. 일을 할 때는 비판적이고 이성적인 능력이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일은 잘하지만 재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열한번째, 세상 모든 일을 단점만을 바라보고 얘기한다. 여행을 가자고 하면, 여행을 가면 돈들고 고생한다는 말만 한다. 등산을 가자고 하면 내려올 것을 왜 올라가냐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내일 아침에 일어날 거면 왜 자냐고 물으면 화를 낸다. 미래에 죽을거면 왜 사냐고 물어도 화를 낸다.


더 있겠지만, 대략 이 정도만 적어본다.

 

어떤 사람이 평생 연구에 매달려서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면, 그것은 위대한 인간의 능력으로 칭송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의지, 노력, 지적 능력 등등 모든 것이 대단함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그가 그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어린 시절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가 지나가면서 던진 한마디 말 '너는 그것도 제대로 못하냐?' 라는 말로 시작되었다면 어떨까?

 

그 말을 반박하기 위해서 그것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50년 만에 그 성과를 이뤄냈다면 말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어린 시절에 받은 어떤 상처로 인해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평생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기에는 우리들 자신은 현재 너무도 다들 잘났다.

 

지금의 삶의 모습이 단지 그런 우연한 사건들로 인해서 고정되었다면, 좀 현재에 이뤄놓은 것들의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무엇인가를 평생 연구한 학자는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연구를 했어야 한다. 그것이 어린 시절 찌질하게 느낀 열등감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진실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그래서 냉소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냉소적인 것이 그것이 필요하고,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이성적이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관점을 볼 수 있는 능력이기에 마치 자신이 그 길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것은 현재의 바꿀 수 없는 부정적인 자신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과는 달리, 그들의 그런 성격은 단순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타고난 능력이 되고 싶은 능력에 비해 부족해서 열등감이 가득 차서 그런 성격이 된 것뿐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데, 홀로 행복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자신도 행복하고 싶기에,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고른다. 이런 태도가 그 사람의 모든 문제점을 다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가 있음을 제대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문제가 있음은 본능적으로 안다. 왜냐하면 그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이성적으로 말했어도, 자신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었다는 후회가 자주 든다. 단지 그런 후회를 한다는 말을 안 할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이성적으로 합당했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 잘못을 남들 앞에서 인정하는 것도 무척 힘들다.

 

그렇지만 남을 향해서 뻗는 가시의 반대편 역시도 날카롭다. 그래서 그 가시들은 남을 찌르면서도 자신을 찌른다. 그래서 남을 공격하면 공격할수록 더욱 더 자신이 상처 받는다. 결국 이것이 제대로 감당되지 못하면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더 못된 사람이 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끊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이런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

 

해결책은 단순하다. 처음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인정 받지 못해서 생긴 성격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해주면 된다.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면 상처는 점점 치료된다. 문제는 주변 사람이 그것을 하면서 버텨낼 수 있는 가이다. 사실 많이 힘들기 때문이다.

 

끝없이 빈정대고, 비난하는데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는가? 말도 함부로 하고, 행동도 그렇다. 주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해결책은 스스로 자시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당사자가 죽기보다도 힘든 일이다. 자신의 그런 냉소적인 태도가 단지 어린 시절에 부모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혹은 자신의 열등감으로 인해 나타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어떻게 해도 결국 불행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끝없이 방법을 찾는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우연이 어떤 계기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일말의 실마리라도 잡게 되면, 특유의 지적 호기심으로 파고 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러다가 자신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는 고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가능성은 무척 낮다.

 

마지막 해결책은 로빈 윌리암스 같은 상담가를 만나는 행운이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다. 사람에 대해 지적으로 또한 인간적으로 모두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냉소적인 사람은 똑똑한 편이기에, 자신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내는 의견은 쉽게 무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적어도 자신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 조금이라도 씨가 먹힌다.

 

그런데 그런 지적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겸비한 상담가가 무척 드물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 해결책 중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인 주변 사람이나 상담가의 끈기와 관심에 의한 방법은 주로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해서 상처 받은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이고, 두 번째인 스스로 자각하는 방법은 열등감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문제가 뭐냐에 따라 접근을 다르게 해야 한다.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어린 시절에 입은 상처가 회복될 수 있다면, 비난은 비판으로, 냉소적 태도는 신중한 태도로 바뀔 수 있다. 이것은 잘만 이용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꽤나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말하는 대로 사는 것도 문제이고, 뭐든 다 믿어서 사기를 당하는 것도 문제이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기에, 꽤나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와 신중한 태도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냉소적인 사람들은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고, 신중한 것이 아닌 무조건 거부를 한다. 그래서 스스로도 불행해지고 만다. 도둑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문을 잠궜으나, 자신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 자신의 배우자에게 이런 문제가 있어서 힘든 분이 있다면, 가능하면 많은 심리학 서적을 읽는 것을 권한다. 특히 심리 치료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면, 사람이 어떻게 상처를 받고 삐뚤어지는가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척 힘들다. 이해는 가기 때문에 불쌍하기 하지만, 말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금세 그런 관대함은 사라지고 만다. 불쾌하고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상처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아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낸 꾸준한 이해는, 상대의 냉소적인 태도를 좀 더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꽤나 멋진 상대로 변해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힘든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에 자신감도 충만하고 그 덕분에 사람들에게 많이 관대해질 수 있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럴만한 배우자를 만난 행운이 없거나, 평생 동안 자신을 직시할 기회나 용기가 없었던 냉소적인 사람은 그저 평생 동안 점점 더 심해질 뿐이다. 그리고 점점 더 불행해지고 말 것이다. 슬프지만 이것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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