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의 속성

아이루다 2015. 9. 29. 18:31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지금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 몇 년 전, 지구에 큰 재난이 닥쳐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소수의 산 사람들도 하루 하루 살아가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 혼돈의 와중에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하루 하루 먹고 살기조차 힘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언제나 배가 고팠다. 그래서 매일 그가 느끼는 가장 큰 욕구는 일단 먹을 것을 구해서 배를 채우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하면서 떠돌던 그가 어느 날 누군가 빼곡하게 저장해 둔, 비상식량 창고를 발견할 수 있었던 행운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혼자서만 먹는다면 족히 10년은 충분히 먹을 양이다.
 
그래서 그는 일단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비록 10년이라는 한시적인 시간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그는 무척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게 된 것일까? 당연하지만, 답은 '아니다' 이다.
 
물론 이 다음에 무엇을 원할지는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다. 그래서 그냥 평범한 수준에서 예측을 하면 아마도 안전한 장소가 일 것이다. 그가 자거나 쉬고 있는 동안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또한 그가 찾은 귀한 식량을 도둑맞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안전한 장소를 원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문명이 무너진 지구라고 해도 가장 무서운 적은 동물원에서 도망친 사자나 호랑이 일리가 없다. 그것은 살아남은 다른 인간들일 것이다. 특히나 10년치 식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공격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젠 운 좋게도 안전한 쉼터까지 찾았다고 가정하자. 그는 이제 먹을 것도 충분하고, 안전하기까지 하다. 그는 이제 정말로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 끝일까? 사실 원하는 것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무엇을 원하게 될지는 정말로 사람마다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믿고 신뢰한 친구가 필요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사람은 끝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길 바랄지도 모르고, 매일 먹어서 금새 지겨워 진 통조림 말고 신선한 채소나 고기를 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좀 더 구체적으로 섹스를 할 이성을 찾거나,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거나, 각종 병에 대비해서 약품을 찾길 바랄 수도 있다. 안전하지만 그래도 불안함이 남은 사람은 자신을 지킬 권총과 같은 무기를 찾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고, 심심해진 사람은 오래 전 꺼져버린 스마트 폰을 충전시켜 줄 전기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록 와이파이나 다른 이와 전화통화는 안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운 좋게도 이런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뤄졌다고 치자. 마치 문명이 무너지기 전 상태처럼 모든 것이 풍족하고 원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이뤄졌다고 가정 해보자.
 
그렇다면 이 사람이나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을까? 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그 사람 입장이라면 어떨까? 이제 충분하니까 평화롭게 만족하면서 살아가게 될까?
 
이 역시 답은 '아니다' 이다. 슬프지만, 우리는 원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너무 안전해져서 너무도 지루해진 삶을 자극시키기 위해서 어떤 시도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극도의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게 될 지도 모른다. 또는 호화롭고 거대한 요트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할지도 모른다. 그 배 안에는 아주 맛있는 와인과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미녀나 미남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래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욕망은 끝이 난 것일까?
 
사실 이 상황 이후에 우리가 무엇을 원할지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 인류의 상태가 아직 그 단계까지는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껏해야 호화 요트를 욕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바로 어떤 식으로든 영생을 얻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란 점이다. 중국을 통일해서 모든 것을 이룬 후 불로초를 찾아 헤맨 진시황제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마도 미래에 어느 날이 되면, 우리는 우리의 몸을 모두 기계 부속품으로 바꾸고, 뇌에 있는 정보를 어디엔가 저장한 후,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는 삶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삶을 끔찍하게 여기게 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시대가 열리면 사람들의 생각은 금새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가정이 아니다. 정말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인류는 마지막으로 남은 영생이라는 최종의 욕망을 이룬 후, 어떻게 될까?


사실 이것은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영원한 삶은 꽤나 지루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로봇의 시중을 받으면서 끝없이 마약을 투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시대라면, 마약과 같은 불편한 수단이 없이도, 언제라도 뇌를 자극해서 자신이 원하는 환각 상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배가 너무 고파서 하루 먹을 것을 찾는 것과, 영생을 얻은 후 끝없이 환각 상태에 빠져서 사는 것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다. 하나는 죽기 직전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이며 지극히 행복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후자가 명백하게 더 행복한 것일까?
 
좀 더 직접적으로 비교하자면, 며칠 동안 배를 쫄쫄 굶은 사람이 얻은 비스켓 한 조각과, 영생을 살게 된 사람이 먹는 최고급 와인과 소고기 스테이크가 과연 다른 맛일까?
 
이것은 매우 흔한 비교지만, 사실 이것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기가 가진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는 그런 흔한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둘이 진짜로 다를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질문이다. 즉, 우리의 혀는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각각 판단할 것인가?
 
우리가 많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조언에 대한 이해이다. 사실 우리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슬프게도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아주 많은 상태에서, 돈이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가진 돈을 모두 기부하고 떠나서 거지처럼 사는 사람과, 원래 돈이 없어서 거지처럼 사는 사람은, 같은 모습이지만 그 본질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그 조언을 다시 정확하게 설명하면, '당신이 가진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 최대한 만족하고 살아라' 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던진 질문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며칠 쫄쫄 굶은 사람이 먹는 비스켓의 맛과, 매일 배부르게 먹는 사람이 먹는 최고급 와인과 소고기 스테이크의 맛이 정말로 차이가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대답을 알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배고플 때 먹는 것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말 그대로 시장이 반찬이다. 목마를 때 먹는 물은 그 어떤 비싸고 맛있는 음료수보다 맛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행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에 대해 일깨워준다. 그것은 바로 무엇인가가 없는 '부족함'이다.
 
그런데 원래 부족함이란 말은 결코 좋은 단어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부족한 상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부족함이 발생하면 그것을 채우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서는 힘든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사고 방향을 조금 바꿔보자.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매일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 삶과 영생의 삶까지 보장 받은 삶은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정말로 다를까를 생각해보자.


사실 이것은 마치 막대자석과 같다. 막대자석은 어느 구간에서 잘라도 N극과 S극이 만들어 진다. 물리학적으로 자기홀극에 대한 이론은 있지만, 우리가 아는 모든 자석은 그렇다. 아무리 조밀하게 잘라도 그 자석은 늘 두 극을 갖는다.


매일 배가 고픈 삶에서는 먹을 것만 발견해도 행복이 된다. 영생을 살게 된 삶에서는 마약과 같은 환각 물질을 주입 받아야 그만큼의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매일 배가 고픈 사람의 시점으로 보면 절대로 이해가 되질 않은 상황이지만, 정말로 그렇게 된다. 행복은 이런 식으로 끝없이 연결이 된다.


삶의 다양한 형태 중 어느 지점을 잘라도 마치 막대자석처럼 그 안에 행복과 불행은 늘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하고, 힘들었고, 먹을 것도 부족했던 과거 우리 조상의 시대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이제 명절날 먹는 음식이 부담스러워졌다. 과거엔 그날이 일년 중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것이 행복의 속성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행복의 속성이 하나 더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굶주려서 매일 매일 하루 먹고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매일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는 세상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이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세상에서, 지금 현재 몹시 배가 고픈 사람이 각각의 세상에서 배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빵을 얻었을 때, 어떤 행복감을 느낄까?
 
기본적으로 어떤 세상에 속해 있든지 상관없이, 배고픔으로 인해 느끼는 불행함은 절대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니 당연히 그 빵은 맛있어야 옳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세상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난다.
 
아마도 모두가 굶주린 세상이라면, 그 빵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되고, 그 빵을 얻은 자신의 행운에 대해서 크게 만족하면서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풍족한 세상이라면, 비록 그 빵으로 배는 채울 수 있겠지만, 먹으면서 그런 먹을 것 밖에 구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참함으로 인해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만약 이때 각각의 세상에 속해 있는 굶주린 사람에게,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모두가 굶주린 세상에 사는 사람은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고, 반대로 모두가 풍족한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어처구니 없다는 눈을 하고 주변에 있는 돌을 들어서 던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했던 두 가지 사실, 하나는 부족함으로 인해 발생되는 행복감,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속한 세상과 상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 이것들이 우리가 느끼는 행복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즉, 우리는 부족함이란 불행함을 기반으로 해서 행복을 느끼고, 그리고 자신의 주변 상황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행복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다.
 
행복은 좋은 것이다. 행복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이다. 하지만 행복의 속성은 생각보다 무척 기괴하다. 그것은 불행함의 원인인 부족함과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 진다.
 
인간에게 그리 중요한 가치인 행복이, 불행함인 부족함과 늘 상대적 평가가 될 수 밖에 없는 비교를 통해 만들어 진다는 사실은, 행복을 이해하는데 무척 중요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행복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무시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늘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얻는 행복에 대해서도 그다지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더해서 거부감을 느끼더라도 그것을 그만 둘 방법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이런 행복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이 다 이뤄진 완벽한 세상이 오더라도 정말로 행복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은 미지수가 된다. 우리가 천국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문제점을 안다고 해서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행복의 속성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 생각보다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란 점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행복은 우리가 믿는 것만큼 좋은 것이 아니다. 행복은 부족함과 비교를 통해 어떤 면에서 잔인하게 만들어 지고 있다.
 
부족해서 고통을 경험하든지 아니면 다른 이들과 순위 경쟁에서 이겨서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행복에서 절대성을 제거할 수 있다면, 삶에서 그렇게나 중요한 행복조차도 선택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선택이다. 원래 우리는 결코 행복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럼에도 행복에 대한 거의 무한대의 욕망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즉, 모든 욕망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행복에 대한 욕망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조금만 가능해져도 좋은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불행함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단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함으로 해석이 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걷잡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부족함이 발생했기 때문에, 무조건 채워야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을 수도 있었다.
 
어떤 숲들은 그냥 평화로울 수도 있었다. 볼 것도 없고, 자극적인 것도 없고, 남들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여 줄만한 것도 없는 그런 평범한 숲은,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냥 고즈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하고 싶다면 뭔가 더해져야 한다. 깜짝 놀랄 광경이 있어야 하고, 생전 처음 본 광경이 있어야 했다.
 
평범한 숲은 도처에 널려져 있다. 하지만 특별한 숲은 아주 멀리 떠나야 한다. 심하면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한다.
 
어떤 것들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불행함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 당연한 것이 아닐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해외 여행을 가는 것은 행복하지만, 가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렇지 못한다. 물론 사람마다 그 대상이 해외 여행이 아닐 수는 있다. 누군가는 밤에 TV를 보지 못하면 불행해지고, 누군가는 스마트 폰을 게임을 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또 다른 누군가는 책을 읽지 못하거나 자전거를 타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하는 것은 행복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조심이 다뤄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복의 세 번째 속성이 하나 더 있음은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준다. 그것은 바로, 부족함이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그냥 스스로 만들어지는 행복이다. 


이 행복은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면서도 만들어지고, 쓸쓸한 겨울 바다를 보면서도 만들어 진다. 그것은 지인들과 정말로 따듯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서도 만들어지고, 마음을 온통 적시는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만들어진다.


그것은 자신의 불우한 삶을 극복하고 세상의 편견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만들어지고, 열심히 새끼를 키우는 어떤 새의 부지런함을 보면서도 만들어진다.


이 행복은 원래 그것을 얻는 데에 있어서 부족함이나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이 존재야 한다는 필수조건 자체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 행복을 느낄 수 있으려면 스스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는 타고난 천성이 있긴 하다. 하지만 부족함과 비교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금새 잊어버리고 만다.


현대 사회에서 부족함과 비교를 통해 행복을 얻는 능력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유지되거나 점점 더 커지겠지만, 스스로 만들어 내는 이 행복은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사라져서 마치 원래부터 갖지 못한 듯 살게 된다.


이 행복을 딱히 표현하자면, 감성의 행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행복은 부족함, 비교, 감성, 이 세 가지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셋 중에서 가장 단단하고 안정적인 행복은 오직 감성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 내기 때문에, 유일하게 다른 조건들에 의해 종속되지 않은 채 만들어지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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