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어느날 갑자기

아이루다 2015. 10. 26. 09:26

 
멀쩡히 매일 매일 바쁘게 회사를 다니고, 가정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결코 그 끝이 없는 듯, 죽음이란 남의 일이며 자신에겐 너무도 멀어서 도대체 상상조차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며칠을 머리의 두통이 심해서 동네 병원을 갔더니,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조언을 듣는다.
 
그래서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두통에 관련된 정보를 검색해보니, 관련된 병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검색이 된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마음은 더욱 더 무겁게 느껴지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 훨씬 더 강하다.
 
그래도 걱정은 되니, 오랜만에 휴가를 내어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며칠 동안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애쓰지만, 머리 속엔 오만 가지 상상이 가득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죽게 되면, 남겨질 것들에 대한 걱정에 부모님 생각도 나고, 자신이 떠난 후 혼자서 고생할 아내 생각과, 아빠도 없이 커 갈 아이들 생각도 난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지만, 어느새 검사 결과를 확인 할 날이 다가온다. 그리고 면담 시간에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뇌까지 암이 퍼졌고, 말기이며, 길어야 6개월이라고 한다. 머리가 띵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죽음은 그리 실감나질 않는다.
 
이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가끔 이런 순간을 상상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안경 너머로 우리 생각으로는 다소 무뚝뚝하거나 너무도 평범한 어투로 남은 생이 기껏해야 한 달, 6개월, 1년이란 선고를 해주는 광경이다.
 
그리고 그 설명을 멍하게 듣고 나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우리는 또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자신의 삶이 앞으로 한 달 남았다면, 과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계획이다.
 
여행을 할지, 어딘가 멀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갈지, 좋아했지만 망설였던 상대에게 고백을 할지, 가진 것을 모두 돈으로 바꿔서 인생의 마지막을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지, 책을 읽으면서 보낼지, 용기가 없어서 망설였던 것들에 용기를 내어 도전을 해볼지, 다이어트 때문에 참았던 먹고 싶은 것을 원 없이 먹을지, 아니면 그전까지 반복했던 평범한 삶을 계속 유지할지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남은 삶이 얼마 안 남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우리 머리 속은 남은 삶을 무엇을 할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치료 방법이 없을지, 혹시 자연 치유가 가능한지, 자신의 병원비가 얼마나 나오게 될지,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숨을 막히게 하듯 침습된다.
 
이와 비슷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런데 이건 매우 좋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복권에 당첨되어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되는 상상이다.
 
우리는 이때도 수많은 계획을 생각한다. 호화 요트를 사서 세계 여행을 다니거나, 최고급 스포츠 카를 사서 타고 다니거나, 평소 돈이 아까워서 못하던 수 많은 것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 술값을 하룻밤에 몇 천 만원을 쓰거나, 부모 형제들에게 몇 억을 선뜻 건내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로 갑자기 돈이 생기면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재미있는 것은 갑자기 찾아 온 죽음이란 큰 불운과 복권이란 큰 행운은 묘하게 겹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제약된 어떤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 둘의 경우 모두 우리는 더 이상 공부를 하거나, 직장을 다닐 필요가 없게 해준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까?
 
아마도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기 전까지 상상했던 것처럼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로 죽음이 닥치면, 자신이 평소에 못했던 것을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로 복권에 당첨이 되면, 모든 나라를 여행하고, 멋진 보트를 사서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하고 싶었으나, 현실에 늘 발목이 잡힌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작은 공간에 창살 속에서 갇혀, 그 창살을 쥐고 먼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 쥐와 같은 모습일 수 있다. 우리는 늘 자유의 공간을 향해 시선을 보내지만, 사실 실제로 그 우리를 열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면, 머뭇거리면서 그 안에서 맴돌지도 모른다.
 
아마도 틈만 나면 도망치려고 했던 어떤 쥐는 문을 열자마자 열심히 도망치겠지만, 그냥 그 안에서 익숙해진 대다수의 쥐들은 자유의 소중함은 알지만, 그 안의 안전함과 밖의 두려움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만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쥐들은 왜 문이 열려서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불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것이 가득했던 어떤 사람이 현실의 벽 앞에서 번번히 좌절해야 할 경우, 그에게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떠날 것이다. 그것이 불운인 죽음이나, 행운인 복권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평소에도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사람은 갑자기 죽음이 선고되거나, 복권에 당첨되어 돈이 생겨나도 역시나 딱히 할 일이 없다. 물론 죽음과 달리 복권에 당첨되면 집을 사거나, 차를 바꾸거나, 최고급 해외 여행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원래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돈이 있으니 한 것뿐이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환호성을 통해서 기분은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금새 익숙해지고 지루해질 수 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자신이 꿈꾸던 것이 아니었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돈을 쫓지만, 생각보다 좋은 집과 좋은 차와 호화로운 여행을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그냥 행복의 조건일 뿐, 행복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한 돈을 바란다. 크게 돈 걱정 없이 사는 삶을 꿈꾼다.
 
우리는 그냥 마음에 맞는 어떤 사람들과 모여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누군가를 뒷담화 하면서 몇 시간이고 떠들다가 집에 가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 그런데 그건 것에는 죽음이나 복권 당첨의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럴 수 있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시간은 채 1초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다가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 자신의 소원을 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음 먹고 하늘을 보고 있어도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의 반응속도는 그리 빠르지 못하다. 더군다나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을 때면 훨씬 더 느리게 반응이 된다.
 
별똥별이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 단 하나의 소원을 말해준다면 들어 준다고 하면, 무엇을 말하겠는가?
 
이 소원을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그것을 바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그것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죽음이나 복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건 불운과 행운이 찾아왔을 때, 갑자기 하고 싶은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 전부터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었던 사람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 계속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물론 현재가 충분히 행복해서 일상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축복받은 삶은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행운이 없다. 우리는 대부분 불만족스럽지만, 현실 앞에서 참고 버텨낸다. 그렇지만 그 현실을 걷어내어도 우리는 입구가 열린 우리에 갇힌 쥐처럼 좀처럼 밖에 나갈 수 없다.
 
평소 자유를 꿈 꾼 쥐만이 도망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서로에게 묻는다. 한 달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복권에 당첨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하나의 소원만 빌 수 있다면 무엇을 빌 것인가?
 
이 질문들은 모두 상상만 가득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암 선고를 받았다면,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가진 돈을 쓰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하나의 소원만 빌 수 있다면, 무슨 소원을 빌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를 걱정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열린 문은 그냥 혼란스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에 갇힌 쥐들은 자신들이 자유를 꿈꾼다고 믿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그 우리 안에 갇혀서 사는 자신의 삶이 때론 비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필사적으로 탈출을 해서 밖에서 자유롭게 잘 사고 있는 쥐들의 소식이 전해질 때면 더욱 더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쥐들도 안다. 그 성공한 쥐들 밑에서 실패하고 잊혀진 훨씬 더 많은 쥐들이 있음을 말이다. 그래서 쥐들은 꿈만 꿀 뿐, 결코 실천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문이 열리면, 쥐들은 당황하게 된다. 안에서 평소에 늘 이곳을 탈출하기가 어렵지만 않다면 언제든 떠날 텐데 라고, 서로 치즈를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문을 열어주면 평소에 자신이 한 말과, 앞으로 자신이 경험하게 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하나 둘씩 아픈 쥐들이 생겨나고, 그 아픈 쥐들은 두려움이 아닌, 병 때문에 그곳을 떠나지 못한 쥐들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플 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문은 그들이 주어진 삶을 다 살 때까지 굳게 닫혀 있을 것이다.
 
우리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죽음이 그리 쉽게 다가오질 않는다. 복권에 당첨될 일도 거의 없다. 또한 소원을 빌어도 그것을 들어 줄 사람은 더욱 더 없다. 그러니 아무 소원이나 빌어도 된다.
 
그러니 평소에 그냥 서로 이야기 하고 상상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 이뤄지지 않을 일이니 어떤 상상을 하든 상관이 없다. 그래서 언제라도 현실의 벽을 넘을 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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