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불행하지 않는 삶

아이루다 2015. 7. 27. 09:48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말해서 우리가 행복을 원하는 이유가 바로 현재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현재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원할 필요가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 불행한 사람만이 행복하길 원한다.
 
즉, 우리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뜻이 가진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행복함보다는 불행함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표현해서 8시간을 일하고, 8시간을 자고, 4시간 정도를 그냥 그런 시간에 쓰고, 겨우 하루 4시간 정도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다. 즉, 하루 24시간 중에서 운이 좋아야 4시간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그것이 조금 더 늘어난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큰 차이가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 많은 시간은 큰 부담이 된다. 사실 인간이 노후를 보낼 때,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돈과 시간이다. 돈은 부족하고, 시간은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과거의 행복에 대한 추억, 미래의 행복에 대한 기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라보면서 가능해진다. 즉, 우리는 현재 행복한 것보다 행복했던 과거와 행복할 미래 그리고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의 불행함을 보면서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다독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과거에 딱히 행복했던 기억이 없거나, 미래의 행복을 기대하기 힘들거나,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행복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끼기 쉽다. 그것은 지금 당장 자신의 행복과 불행과 큰 연관이 없다.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냐 불행한 사람이냐를 판단하는 것은 현재가 아닐 때가 많다.
 
아무튼 사람들은 누구나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면, 행복 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물론 행복의 조건이나 상태는 사람마다 많이 차이가 나서 과연 무엇이 행복한가에 대한 이야기는 수 많은 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행복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현재 자신에게 불행한 일을 없애는 것이 나은가에 대한 것이다.
 
쉬운 질문 같지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내기가 힘들다. 단지 흔히 우리는 보통 행복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자신이 행복할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지 말고 자신의 불행함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사고의 전환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물론 이 둘은 차이가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 잘 되면 행복해진다. 하지만 불행한 것을 제거하는 일들을 잘 해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불행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행복한 것과 불행하지 않는 것은 원론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봐도 행복한 것이 불행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불행하지만 않아도 살만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삶을 바라보는 시점을 바꿔서 이제 행복한 삶이 아닌, 불행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론을 생각해보자. 과연 불행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불행하지 않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불행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다. 일단 원인을 찾아야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해결 불가능한 것들도 많다.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
 
사람이 느끼는 대부분의 불행은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욕망은 기본적으로 필수적인 것과 선택적인 것으로 나뉜다.
 
필수적인 욕망의 가장 첫 번째는 바로 건강이 될 것이다. 건강은 사실 욕망이라고 칭하기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기초 중의 기초적인 욕망이다. 건강의 반대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강을 잃게 되면 삶을 잃는다. 비록 의학의 힘이나 혹은 다양한 보조 장치에 기대어 살 수는 있지만, 사실 삶의 질은 급격히 추락하고 만다.
 
특히 말기 암에 걸렸거나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그것에 대해서 깊이 느낄 것이다.
 
두 번째는 돈이 될 것이다. 우리는 돈에 매몰된 삶을 곧잘 비난하기도 하지만, 사실 돈은 생존의 수단으로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돈이 없으면 굶어 죽고, 비 오는 날 비를 피할 집도 없다.
 
이것이 연장되면 직장으로 이어진다. 즉,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속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최소한의 돈벌이는 해야 한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 너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 가끔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서 자살을 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은 그리 쉽게 넘길 조건은 아니다.
 
세 번째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실 사람은 선택적 욕망일수도 있지만, 우리는 사람 없이 행복하기가 무척 힘들다. 특별한 어떤 사람들은 오직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은 사실 돈도 별 필요 없다. 그들은 그저 전혀 다른 해답을 찾고 있는 특별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에는 가족이 포함된다. 즉, 친구나 지인은 없더라도 적어도 가족은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단 한 명이라도 신뢰하고 믿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말한, 건강, 돈, 가족이 있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일단 죽음이 가까워질 정도로 아프지만 않고, 매끼 먹을 수 있는 돈이 있으며, 가끔이라도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가장 불행한 사람들 꼽는다면,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 돈이 없어서 먹을 밥도 편히 잘 집도 없는 사람, 이 세상에 기댈 수 있는 단 한 명의 가족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픈데 병원에 갈 돈도 없고, 병원에 가서도 간병해 줄 사람 하나 없는 사람은 정말로 최악의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이 세 조건은 이미 말했듯 필수적 조건들이다. 물론 이 세 조건 중에서도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면 건강 이외의 나머지 두 개는 선택할 수도 있다. 돈과 사람이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세 조건을 다 갖췄다고 해도 우리는 불행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바로 이 필수적 욕망이 이뤄진 후엔 즉시 선택적 욕망들이 무한대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그 욕망으로 인해 우리가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없이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욕망도 끝없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욕망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행복 하려고 하는 마음의 문제로 인해서 생겨나는 문제다.
 
그래서 사실 가끔 욕망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욕망을 줄인다는 의미는 우리가 이해하는 그대로가 아니다. 이 말을 정확히 다시 해석하면 욕망을 줄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설명이 더 옳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적 욕망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다르게 해볼 수 있다. 우리가 선택적 욕망을 갖는 이유는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이고, 만약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포기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낸다.
 
즉, 필수적 욕망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선택적 욕망은 그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포기하면 행복할 가능성은 줄지만, 적어도 불행해지지는 않게 된다.
 
누군가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을 한번 꼭 가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을 때, 이 욕망은 분명히 선택적이다. 인간이 해외여행을 못 갔다고 해서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도 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가지 못하는 것은 불행함이 되고 만다. 즉, 욕망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 욕망은 선택적인 것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바뀌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그 자신에게만 필수적인 욕망은 결국 이뤄내지 못하면 불행함의 씨앗이 된다. 이것은 단지 예를 든 해외여행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욕망을 품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결코 쉽게 이뤄내지 못하는 그 모든 종류의 욕망에 대해서 동일하다.
 
그것은 좋은 직장, 많은 돈, 주변 사람들의 인정, 존재감 확인, 뛰어난 능력,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길 바라는 마음, 자신의 삶이 늘 운 좋길 바라는 마음, 삶에서 불운이 없길 바라는 마음 등이 모두 그런 것들의 예가 된다.
 
이런 선택적 욕망에 대한 것들은 이미 말했듯, 필수적 욕망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냉정히 말하면, 건강하고 먹고 자는데 문제 없고, 같이 삶을 보낼 사람만 있으면 충분히 불행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버티기엔 이 세상은 너무나 서로에게 욕망을 부추긴다. 사실 이 욕망을 부추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광고는 그것의 가장 좋은 예이다.
 
흔히 광고는 기업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개개인도 끝없이 광고를 한다. 기업은 주로 자기 회사의 제품을 사거나 쓰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광고하는 반면, 개개인들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광고한다. 그래서 이런 개인 광고를 위한 기업의 제품이 크게 인기를 끈다. SNS는 이것에 최적화 되어 있다.
 
그리고 기업의 광고와 개인의 광고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끝없이 자극한다. TV나 각종 미디어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런 매체들에 의해서 방송되는 내용들 역시도 모두 교묘하게 그 목적을 숨긴 자극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가 인간 세상에서 미디어를 접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접한다면 행복함을 위해 해야 한다고 자극되는 그 모든 종류의 광고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른 이들의 광고에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점점 선택적 욕망이 필수적 욕망으로 변한다. 예전에 소위 말해서 상류층 사람들이나 갔던 해외여행은, 이젠 그것을 한번쯤 가지 못하면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닌 시대로 바뀌었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하면 행복해서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하지 못하면 불행할까 봐 하는 경우로 바뀌는 경향도 있다.
 
원래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욕망은 모두 선택적 욕망이기에 그것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점점 더 필수적 욕망으로 변했고, 그 때문에 이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닌, 하지 못해서 불행한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필수적 욕망이 늘어난 사람일수록 이젠 그것을 하지 못하면 불행하기 때문에 점점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한번 욕망을 줄어야 한다는 말의 뜻을 해석하면,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필수적 욕망으로 느끼는 것들을 원래대로 선택적 욕망으로 되돌려 놔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불행하지 않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엄청나게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건강, 먹고 살만한 돈, 믿고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욕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채워져 있다.
 
오늘 병원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건강해지기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돈을 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건강해진 사람은 가진 돈을 모두 써서 배가 고프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았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식이다. 우리는 하나의 욕망을 채우면, 늘 그 이상을 원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행복이 중독성을 가졌으며 또한 그래서 결국엔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말 그대로 내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내성이 생긴 행복은 더 큰 욕망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좀처럼 만족되기 힘들다.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다시 같은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다. 그는 이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야 한다. 그리고 설령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해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그만큼의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그 사람은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딴 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평생 다시는 그런 행복을 맛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 메달을 잘 모셔두고는 가끔 자신의 대회가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서 보고는 그때의 행복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서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우리는 지금 왜 자신에게 그것이 필수화 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욕망에 빠져 있음을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말했듯이 그것이 원래대로 다시 선택적 욕망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좀 덜 불행할 수 있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필수적 욕망으로 변질되었다고 해도, 그 욕망의 대상이 우리의 필수적 욕망인 건강, 돈,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건강을 해치는 욕망이나 돈을 많이 써야 하는 욕망, 사람을 실망시키고 떠나게 만드는 욕망은 정말로 최대한 없애야 하는 욕망이 된다. 과도하게 맛있는 먹거리에 대한 집착이나 오직 재미있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도 그런 욕망 중 하나이다.
 
아마도 불행하지 않는 삶을 살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행복한 삶을 원하면 결국 언젠가는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참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기회가 되고 운이 좋다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더 좋다. 그것이 우리를 좀 더 적극적이고 활기차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를 잘 들여다 봐야 한다. 그래서 지금 현재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상황인지, 불행하지 않는 삶을 지켜야 할 상황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불행하지 않는 삶을 추구해야 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게 되면, 늘 우울하거나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암에 걸려서 곧 죽을 사람이 좋아하는 축구를 하지 못하게 되어서 슬퍼하는 꼴이 된다. 축구를 하는 것은 건강해진 후에 가져야 할 욕망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제 삼자의 눈으로 보면 아주 쉽게 파악이 가능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질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마치 천년, 만년 살 것처럼 굴다가 겨우 백 년 살고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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