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우리가 행복하기 힘든 이유

아이루다 2015. 7. 31. 06:52

 
앞에 몇 개의 글에서, 행복에 대한 정의와 그 한계점 그리고 행복에 대한 조금 다른 접근인, 불행하지 않게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사실 이런 설명들이 정확히 맞냐 틀리냐를 가늠할 길은 없다. 단지 조금 설득적이고, 그럴 듯 한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서로 많이 생각이 다르기에, 누군가는 어이없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 글은 지난 행복에 대해 쓴 글에 대한 마지막이자 최종 정리가 될 것이다.
 
행복을 정의하면, 욕망을 느끼고, 그것을 실현할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자신이 가진 시간과 노력, 돈 등의 다양한 자원을 투자하여, 이득을 얻고, 그것을 자신만의 계산법으로 평가하여 최종으로 얻는 만족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욕망을 느끼는 것 까지는 비슷하지만,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자원에 대한 가치가 다르고, 그것으로부터 얻은 이득에 대한 계산법으로 인해서, 똑같은 욕망, 똑같은 자원, 똑같은 이득을 얻어도 결국 그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불행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욕망은 느끼지만, 그것을 실현할 시간, 능력, 돈이 부족해서 결국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욕망을 이루고 난 후 불행하든, 이루지 못해서 불행하든 상관없이 결국엔 불행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해지기 쉽기 때문에, 조금 다른 접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것을 해야 할 때, 그것을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것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쉽다. 예를 들면, 여유 돈이 있을 때, 은행에 돈을 넣어 두고서 이자를 얻는 것과 암이나 생명 보험 등을 들어서 돈을 쓰는 방법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서 은행에 돈을 넣고 이자를 받는 것은 이득을 얻는 것이므로 행복이라고 칭할 수 있다. 그리고 보험을 들어 놓는 것은 미래에 닥칠 불행함을 방지하는 것이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원칙적으로 은행에 넣은 돈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득인, 이자도 보장된다. 하지만 보험을 들어 놓고 넣어둔 돈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보장 기간이 지나면 그냥 사라지고 만다.
 
이것은 또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즉,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이고, 불행하지 않는 것은 해야 할 일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 된다. 반대로 사람들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아하는 공부를 하는 것은 지금의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지 않아서 불행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나눠질까? 사실 사람마다 같은 대상이 다르게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는 공부를 재미있고 행복해서 하지만,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해야 한다.
 
사실 많은 것들이 그렇다. 똑같은 일인데도 누구는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누구는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수 있다. 그것은 직장생활, 집안일, 육아, 글쓰기, 운동, 여행, 영화보기, 차 마시기, 수다 떨기 등등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
 
이것은 선호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분명히 자신만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을 구분하고 있다. 물론 중간에 낀 애매한 것들도 있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일단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지금 현재가 행복하다면, 그 행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거나 새로운 행복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고 싶은 일들이다.
 
반대로 지금이 불행하다면,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불행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물론 많은 불행 요소들은 좀처럼 없애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우리를 늘 어렵게 하는 돈 문제, 건강 문제 등은 바로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그래서 해결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 받아들이기도 너무 힘드니, 그냥 포기해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든, 포기하든 상관없이 마음을 어느 정도 비우고 나면, 비로소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것들은 해야 할 일들이다. 포기조차도 해야 하는 것이다.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일도 그것을 해결 했을 때 안도감과 만족감을 줄 수 있지만, 한계는 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러니 둘 중 하나의 입장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행복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이 정리를 기준으로, 그러면 어떤 경우에 안 좋은 조합이 나타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행복 하려고 하는 일인데, 해야 할 일이 될 경우가 된다. 또한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인데, 전혀 해 낼 수 없는 일이면서도 포기도 못하고 내려 놓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이다.
 
물론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행복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경우도 흔하다.
 
그럼에도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정말로 행복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조차도, 해야 할 일로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반반씩 섞인다. 하고도 싶은데, 해야 한다고도 느끼는 경우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이 오면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여름 휴가 여행은 생각보다 그리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디를 가도 너무 많은 사람들, 복잡한 도로, 바가지 요금, 심한 경쟁 등이 바로 그것을 유발하는 원인들이다.
 
그럼에도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물론 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지만, 사실 해야 할 일이라고 느끼는 경우도 흔하다.
 
사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한 개인별 차이점은 꽤나 커서 이것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것은 그 자신이 정밀하게 그리고 집중해서 판단해야 한다. 누군가는 텃밭을 가꾸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겠지만, 누군가는 텃밭 일을 하는 것이 참 귀찮은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지게 될까?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이 누군가는 해야 할 일로 바뀔까?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왜 누군가는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누군가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할까?
 
이것은 욕망의 크기로 인해서 변한다. 단순히 표현해서, 정말로 하고 싶을수록 하고 싶은 일에서 해야 할 일로 변해간다. 물론 여기엔 중요한 단서 조항이 붙는다. 그것은 바로 최초에 그것을 왜 하고 싶어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원인이다. 이때 그것을 자신이 하고 싶어하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남들이 행복하다고 하니, 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통로를 통해서 욕망을 갖게 된다. 그 중에서 먹고, 자고, 싸는 것들은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난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또한 그 욕구는 스스로 만들어 진다. 누가 똥을 싸는 것이 행복하다고 해서 똥을 싸는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보통 행복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느끼는 많은 욕망들, 즉 좋은 집을 갖거나, 여행, 맛난 음식, 영화 보기 등등의 것들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광고나 사람들의 소개를 통해 자극되는 경우가 많다. 즉, 우리들에게 주어진 최초의 자극은 주로 다른 존재들의 추천인 셈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행복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그런 말을 할 때,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행복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딱 맞는 옷이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옷이 편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과 같다.
 
사실 이런 형태의 기성품으로 나온 옷과 같은 행복은 참 많다. 하지만 충분히 멋지고, 잘 만들어졌고, 크기 별로 잘 나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대충 맞는다 싶으면 입어야 한다. 옷은 꼭 입어야 하니 딱히 다른 가게가 없으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행복까지 그래야 할까?
 
행복도 똑같다. 다른 사람들이 말한 행복을 따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딱 맞는 것은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하고 나면 대충 즐겁고 행복한 느낌은 든다. 온전히 차오르는 만족감은 없어도, 어느 정도만 즐겁고 좋다면 자신의 행복 요소로써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행복 기준점을 갖게 된다. 문제는 그것들이 보통 대부분은 돈이 꽤나 많이 든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 번 후보로 올라온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말 그대로 해야 할일로 변해간다. 이 부분을 잘 생각해야 한다. 왜 우리는 처음부터 그 행복을 꼭 이뤄야 한다고 믿게 되었는지 말이다. 왜 우리는 여름엔 어디 유명한 곳으로 피서를 떠나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하지 못하면, 뭔가 여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느낌이 들고, 피같은 여름 휴가를 망친 느낌이 들게 될까? 도대체 우리는 왜 그런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마치 어떤 브랜드에서 파는 옷을 사서 입지 못하면 옷이 입은 것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마음과 비슷하다. 사실 다른 많은 종류의 옷이 있지만, 우리는 자신이 꽂힌 옷을 사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것이 돈이 많이 들거나 혹은 자신의 체형과 잘 맞지 않아서 그다지 어울리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브랜드의 옷이 좋다고 칭찬하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하고 싶었던 욕망은 해야 할 일로 변하게 되고, 하지 못하면 그냥 그래야 하는데, 이젠 본격적으로 불행해진 상태가 된다. 즉, 그것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에서,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 하지 못하면 불행해지고 만다.
 
여기까지도 난감한 상황인데, 이제 바야흐로 본격적인 문제들이 들러 붙는다. 그것의 이름은 바로 권리와 누구나 얻기 쉽고 흔한 것들에 대한 지겨움이다.
 
일단 권리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음에 대한 당위성이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주어졌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는 한 번이라도 자신이 어떤 것을 누릴만한 충분한 사람이라고 믿는 순간부터 자신이 누릴 것들은 당연한 것이 되면, 누리면 잠시 행복하지만, 누리지 못하면 불행해지고 만다.
 
그런데 그 근거는 고등학교 동창, 회사 동료, 옆집 이웃, 먼 친척이란 점이 문제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끔 접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래서 친구가 큰 집을 사서 들어가면, 자신도 들어가야 한다고 믿게 된다.
 
사실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우연이 자신의 주변을 채운 사람들로 인해서 결정될 뿐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큰 차를 사면 자신도 사고, 친구가 해외 여행을 가면 자신도 가고, 친구가 명품 가방을 사면 자신도 사야 한다고 느낀다. 이것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자기 정도면 누려야 할 권리이며 심지어는 소중한 자신에 대한 의무라고 까지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권리화 된 욕망은 하지 못할 경우 본격적으로 불행함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서 행복의 숨겨진 본질에 대한 중요한 한 가지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그것을 하면 행복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뭐, 물론 약간 아쉬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끝난다.
 
하지만 그냥 주입된 욕망은, 그것을 하면 잠시 만족스럽다. 하지만 하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진 듯한 불행함이 찾아오게 된다. 즉, 이것은 마치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처럼 변하고 만 것이다. 사실 둘은 똑같다.
 
왜 우리는 명품 가방을 사지 못하면 불행할까? 왜 맛난 음식을 먹지 못하면 불행할까? 왜 큰 차를 사지 못하면 불행할까? 왜 큰 집을 사지 못하면 불행할까? 도대체 왜 그런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면 불행할까?
 
그런 것들이 정말로 건강처럼 중요한 것들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리고 두 번째 요소인 흔한 것들에 대한 지겨움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사실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지만, 특별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나머지 음식들은 각자 고유의 맛이 있다. 정말로 맛난 음식은 뛰어난 요리사가 한 음식이지, 특정 재료나 음식의 종류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좀 더 비싼 재료를 쓴 음식을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비싼 것이니까 그렇다. 하지만 잘 익은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나, 잘 구운 삼겹살이나, 솜씨 좋게 무쳐낸 봄나물이나, 한 밤중에 촐촐할 때 먹는 라면이나, 기차 안에서 먹는 찐 달걀이나, 한참 목이 마를 때 마시든 청량 음료는 사실 뭐든 맛있다.
 
무엇이 더 맛있는지를 비교할 수는 없다. 시장이 반찬이듯, 배고프면 더 맛있고, 배부르면 사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그리 땅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 머리 속은 점점 더 비싼 음식을 선호하는 쪽으로 변한다. 이것은 정말로 그것을 좋아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단지 비싸서 자주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그 음식을 다른 음식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고 스스로 믿기도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근처 산에 가는 것이나, 먼 유럽을 가는 것 역시도 사실은 그리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도대체 그 공간과 시간 안에서 얼마나 편히 쉬면서 스스로를 충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과연 이 둘을 같은 수준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흔한 것들은 싸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고, 또한 우리들 자신도 늘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63빌딩이나 남산에 오르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 놀려 와서 경복궁에 가고 남산에 오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서울 사람들은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자주 방문하는 오래된 궁이나 남산, 63빌딩을 가지 않을까? 심지어 오랫동안 서울에 살면서도 그런 곳에 단 한번도 안 간 사람도 꽤나 된다.
 
지방 사람들은 지방 사람들대로 의아하다. 도대체 자신이 아는 그 장소는 정말로 별로이거나 혹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너무 자주 소풍을 가서, 돈 주고 가라고 해도 귀찮은데, 먼 지역 사람들이 그곳을 가려고 오래 운전을 하고 오는 것이다. 그것은 짬뽕을 먹거나 빵을 먹기 위해서 그러기도 한다.
 
왜 우리는 주변의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잃게 되었을까? 정말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조건 그것이 경험해보기 힘든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일까?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단풍을 보러 떠나지만, 사실 서울만 해도 도심지 단풍을 즐길만한 곳이 많다는 점을 간과한다. 왜 그렇게 멀리 힘들게 가서 유명한 곳을 보고 싶어하게 될까? 물론 가면 더 좋긴 할 것이다. 더 한적하고 더 화려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거기까지 이동하는 수고로움, 차 막힘, 쓴 돈, 시간 등의 자신의 자원을 투자한 결과만큼 훌륭한 것일 수 있을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잘못된 착각일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알아내기도 인정하기도 힘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보는 눈이다. 단 한 그루의 단풍나무만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있다면 수 천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는 장관에 비해서 전혀 떨어짐이 없다. 우리는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한 훌륭하고 멋진 배경이 되어주는 장소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마지막 정리를 하자.
 
행복하게 살려면, 쉽게 흔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쉽게 이루면서 사는 것이 최고다. 행복을 얻고 싶다면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것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사람들의 행복 추천이나 혹은 사회적으로 이미 정의된 기성 행복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무척 조심을 해야 한다.
 
욕망은 생각보다 어리석게 커지기 때문에, 잘못하면 우리는 무턱대고 그것이 자신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욕망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사실 필수적 욕망은 몇 개없다. 그것은 건강하고 먹고 살만한 돈과 적당한 인간관계 정도만 되면 충분히 만족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누구도 그 어떤 것이든 타고난 권리란 없다. 우리가 남들에게 맞지 않고 다닐 권리조차도 문명이 있기 때문에나 가능한 권리이다. 원래 우리에게는 그 어떤 권리는 전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충실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권리가 아니다. 그 사람이 해준다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반대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권리를 버리고 나면, 감사함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행복할 수 있음에 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로 흔한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남들이 잘 아는 것이나, 많이 유명한 곳만이 행복한 장소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행복해지는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 속에서만 이뤄지는 과정이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들 육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는 있지만, 똑같이 느끼진 못한다. 행복 역시도 마찬가지다. 공감은 하지만 똑같이 행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남들이 끝없이 행복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모두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행복이 아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조건들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이미 한번 날뛰기 시작한 욕망은 좀처럼 줄어들지 못한다. 또한 이미 한번 자신의 권리라고 느낀 것들을 내려 놓기는 힘들다. 그리고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몹시 섬세한 감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우린 모두 일부러 그것을 버렸다.
 
감성적 섬세함은 많은 것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스스로를 감정 없는 나무토막으로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결코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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