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의 정의

아이루다 2015. 7. 20. 08:46

 
우리 인간은 행복이란 상태에 놓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동안 그 모든 것을 투자한다. 사실 인간이 행복이 아닌 것에 투자하는 것은 단 한 순간도 없다. 그럼에도 혹시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사람의 행복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자신의 기준으로 바라봄으로써, 상대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착각은 참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들이 느끼는 행복에 대해 무조건적인 부정을 하고 자신의 행복함을 상대방에게 무조건 강요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행복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자신은 행복한데, 다른 이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자꾸 이야기 하니, 스스로 확신이 무너진다. 그리고 행복은 스스로 확실한 믿음이 있을수록 더욱 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비판적 판단을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자신이 그리 행복하지 않는 일을 하고 살아도, 다른 이들이 자꾸 부러워하고 제대로 행복할 것 같다고 판단해주면, 실제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에도 확신이 점점 높아져서 결국 어느 정도 행복해진다. 사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그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바로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쪼그라들거나 부풀려진 행복은 결국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날려먹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한 후, 그것에 대해 충분히 행복해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또한 우리는 평생에 걸쳐 자신을 진짜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찾아 다닐 자유가 있다. 하지만 수 많은 행복 편견들이 그것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에 대해 강하게 대항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납득할만한 상황 파악이 필요하다. 즉, 행복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제, 그것을 시작해보자.
 
일단 가장 먼저 행복이란 단어의 정의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
 
이 정의는 구글에서 행복의 정의로 검색을 한 후, 처음으로 표시되는 행복에 대한 설명이다. 그 후로 여러 가지 다른 표현들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 이 정도의 간단한 표현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해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이런 설명 없어도, 이미 각자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의 개념이다.
 
물론 만약 행복의 정의를, 그것을 얻는 방법을 기준으로 접근하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행복의 정의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는 것이 행복이고, 누군가는 먹는 것이 행복이 될 것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행복의 정의는, 행복한 상태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튼 행복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어려서부터 모두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단지 문제는 행복을 어떻게 얻어야 할지에 대한 방법론이다. 사실 무엇을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큰 숙제이기도 하다.
 
이젠 이 행복의 정의를 좀 더 구체화 시켜서, 좀 더 본질적인 사고를 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이때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것은 바로 위에서 정의한 행복의 정의 중에서 '만족' 이란 단어이다.
 
그래서 이제 만족이란 단어를 바라보도록 하자.
 
우리 인간은 누구나 만족한 상태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아마도 기대치에 흡족한 상태이거나, 자신의 욕구를 충분히 채운 상태 등이 될 때가 바로 만족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원리로 무엇에 대해서 만족을 할까? 만약 이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해답을 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모든 원리가 복잡하지 않게 설명 가능할 것이다.
 
만족이란 말은 말 그대로 주어진 결과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만족은 원인이 아닌, 결과적으로 작동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당연히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자신이 가진 자원의 투자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가장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은 '시간' 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각종 노동력이 될 것이다. 이 노동력에는 육체적 능력이나 지적 능력이 모두 포함 된다. 하지만 어린 아이이거나 혹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상처를 입은 사람일 경우 이 능력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무튼 우리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투자함으로써 무엇인가를 얻으며, 그것을 판단함으로써 만족감을 얻는다. 이것이 사실 만족을 얻는 모든 과정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만족은 이렇게 단순하게만 결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 개개인은 바로 만족을 얻기 위해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투자엔 그 투자가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결정하는 계산법이 있다.

 

그래서 이제 투자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투자는 자신이 가긴 각종 한정된 자원을 무엇인를 얻기 위해 쓰는 것이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시간, 돈, 육체적 능력, 지적 능력 등의 크게 분류된 자원을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사용하게 된다. 물론 이때 그 자원이 얼마나 고급이냐에 따라 그 기대치와 결과물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는 왜 투자를 할까? 이 이유도 단순하다. 우리는 투자를 통해서 이득을 얻으려 한다. 즉, 투자의 최종 목표는 바로 이득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득이란 단어를 생각해야 한다.
 
이득은 투자를 통해서 얻은 내용물이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이어진다. 우리는 이득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각종 자원을 투자를 하고 그 투자의 결과를 판단해서 만족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득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자원을 투자하는 과정까지는 모든 이들에게 동등한 상황이지만, 그 결과를 판단하는 영역은 모두 개인적 고유영역이란 점일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학생은 어떤 가게에서 한 시간을 일하고 얻은 만 원이란 돈에 매우 만족스러워 하겠지만, 한 달에 수천 만원을 버는 누군가에겐 너무도 불만족스러운 돈이 된다. 즉, 투자와 이득은 동일하지만, 만족은 다르다.
 
이 이득과 만족의 관계는 우리가 느끼는 행복 다양성에 대한 힌트를 준다. 그리고 이 개념을 좀 더 확장하면, 모든 종류의 이득 자체가 개인별 만족에 따라 다르게 대우 받는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젠 이득이란 개념을 확장시켜 보자. 우리는 흔히 이득이란 것을 매우 실제적인 것들을 상상한다. 즉, 돈을 벌거나, 어떤 물건을 얻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등의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 이득은 만족과 결합하면서 그 자체가 무한하게 확장이 된다.

 

왜냐하면 만족과 결합된 이득은 단순히 물질적인 부분에서만으로 끝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로 이득이 거의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할때도 충분히 만족스러워 한다. 하지만 그렇게 거의 이득이 없어보이는 상황조차도 실제로는 이득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단지 그것들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서 여행을 떠난 사람은 딱히 얻는 이득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여행을 통해서 만족함을 느끼고 행복해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정신적인 평안함을 얻은 이득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여행이 들어간 경비에 비해서 얻어낸 마음의 평화가 너무 적어서 돈이 무척 아까울 수 있다. 특히나 정신적인 만족감은 사람에 따라 무척 그 편차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 이젠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근거로 이득과 만족을 결정할까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득 계산법 혹은 평가라는 개념을 행복의 정의에 끼워 넣어야 할 이유이다.

 

평가는 사실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바로 자신이 투자한 자원에 대한 가치성을 판단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득을 얻은 결과를 판별하는 기준점으로써 사용된다.

 

즉,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이 너무도 중요해서, 상대가 조금이라도 시간에 늦은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시간에 대한 가치성이 매우 높아서 그렇다. 돈에 대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육체적 능력이나 지적 능력도 마찬가지다.

 

또한 동일한 이득이 주어졌을 때도 최초의 자신이 투자한 자원이 가진 가치에 대한 판단 차이로 인해서, 전혀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 이것을 단순화 시켜서 생각하면, 누군가가 백만 원을 투자해서 백만 원을 벌었다면 두 배를 얻은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가 1억을 투자해서 백만 원을 번 것은 겨우 1%의 이득을 본 것이 된다. 

 

이때 투자된 돈은 명확해서 별 혼란스러움이 없지만, 그것이 시간이나 노력 등일 경우엔 사람마다 그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너무 달라서 전혀 다른 결론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대상에 투자할 생각이 들까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말은 욕구나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행복이란 최종 목표 상태에 다다르기 위해서 가장 최초의 사건은 바로 욕망의 생성이다. 우리는 욕망이 생기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각종 자원을 투자한다. 그러면 그 욕망의 목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것을 각자의 계산법에 의해서 판단한다. 그래서 만족스러우면 행복을 불만족스러우면 불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욕망 -> 투자 -> 이득 -> 평가 -> 만족 -> 행복, 이것이 행복을 얻는 전체 과정이다.
 
이 전체 과정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내용은, 바로 욕망의 생성 대상과 그것을 판단해내는 계산법이다. 사실 이 두 가지 요소로 인해서 우리는 그렇게도 다양한 종류의 행복관을 갖게 된다.
 
욕망의 대상은 타고 났거나 혹은 주변에 영향을 받았거나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구성이 된다. 뛰어난 육체적 능력을 가진 사람은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데 있어서 욕망을 느낄 것이고, 친구가 여행을 좋아해서 어떨 결에 같이 다니다가 여행에 대한 욕망을 느낄 것이며, 도자기를 만드는 것을 오랫동안 열심히 했더니 그것에 대해서 욕망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것은 사람마다 무척 다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욕망의 대상들은 있다. 돈, 음식, 집, 여행, 가족 등등이 그런 것의 예가 된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그것에 대해 욕망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일 뿐이다.
 
만족감을 계산하는 것은 더욱 더 심하게 편차가 난다. 누구나 자신이 투자한 자원을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이며 또한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고 평가를 위한 관점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10만원이란 표 값을 들여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게임을 본 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 이 사람의 계산법으로는 돈 십 만원과 네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경기장을 가 있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돈과 시간을 들인 사람으로써 자신이 응원한 팀이 졌다는 이유로 인해서 돈과 시간이 아까운 사람도 있다. 즉, 욕망과 투자는 동일하지만, 결과를 바라보는 기대치와 시선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 아예 어떤 결과에 상관없이 그 시간과 돈이 아까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 시간과 돈을 주기적으로 어딘가에 기부를 하면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이 10만원이란 돈과 네 시간의 시간을 쓰는 것은 정말로 다양한 형태가 나올 수 있다. 누군가는 인형을 살 것이고, 누군가는 자녀를 위해 쓸 것이고, 누군가는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살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밥을 먹거나 은행에 예금을 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부모님께 용돈으로 드리거나 놀이 공원의 입장료로 쓸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행동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행복을 얻는 과정이다.
 
여기까지 해서 우리 인간 개개인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행복을 얻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를 했다. 우리는 행복의 시작인 욕망부터 행복을 결정하는 만족감을 얻는 계산법까지 너무도 다르다. 그것은 성격, 외모, 지적 능력, 살아온 환경, 주변 인물, 가족의 성향,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어느 시대에 태어났느냐, 어릴 때 겪은 우연한 사건 등등 수 많은 요소들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렇게나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자신의 만족도 계산법으로 바라보고 평가하고 있다.
 
즉, 우리는 누군가 자신이 전혀 쓸데 없는 일에 돈과 시간을 쓴다고 느낄 때, 그 사람을 비난한다. 사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겉으로 잘 표현을 안 할 뿐이지, 우리는 누구나 이런 일을 한다.
 
누군가는 여행을 가기 위해서 천만 원을 쓰고, 누군가는 카메라나 명품가방을 사기 위해서 쓴다. 누군가는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그 돈을 쓰고, 누군가는 하룻밤 술값으로 쓴다.
 
누군가는 산을 오르기 위해서 한 달의 시간을 투자하고, 누군가는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그 시간을 쓴다. 누군가는 고아원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는데 그 시간을 쓰고, 누군가는 수영을 배우는데 쓴다. 누군가는 남을 비난하는데 쓰고, 게임을 하는데 쓰기도 한다.
 
사실 여기에서 도대체 누가 무엇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린 돈을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하는 사고 방식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즉, 그 행동이 돈이 되느냐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더해서 건강도 그렇다.
 
물론 돈과 건강은 삶의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면에서 행복이 가진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행복함을 추구했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이제 그 단계를 넘어섰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 변화는 사실 매우 극적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기에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진정으로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바로 이것으로부터 차이가 난다. 동물은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오직 정신적인 만족으로만 발현되기 때문이다.
 
원래 생존은 육체적, 즉 물리적 만족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여기에서 정신적 만족을 크게 발전시키면서 아예 물질적 만족을 뛰어 넘기도 했다. 즉, 우리는 스스로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무슨 일이든 한다.
 
이것은 가치에 대한 욕구이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가 될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실 이 역시도 물질적 만족과 크게 다름은 없다. 단지 정신적 만족은 물질적 만족에 비해서 훨씬 더 개인적인 계산법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이 다르다.
 
정신적 만족을 위한 행동은 그 이득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아서 훨씬 더 복잡하게 보이는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해서 월급을 받는 행동은 계산이 쉽다. 하지만 어딘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행동은 결코 계산이 쉽게 되질 않는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이득을 얻은 것일까? 하지만 생각보다 답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어떤 이득이 없이도 충분한 만족이 일어나고 있다는 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매우 극적인 변화의 실체이다. 그래서 이제 행복을 얻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급변한다. 그것은 바로 욕망 -> 투자 -> 만족 -> 행복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 새로운 흐름에는 중간에 이득과 평가가 사라지고 오직 투자와 만족만이 존재한다. 더욱 심하게 압축이 되면, 투자가 거의 없어도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것이 그런 것들의 일종이다. 물론 도심에 사는 사람은 이동이라는 투자가 필요하지만, 인적이 뜸한 시골에 사는 사람은 그런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이것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행복이다. 이 경우엔 이득을 얻고 평가하여 만족을 얻을 필요가 없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

 

쉬운 예로 남을 도왔다면, 그 행동 자체로 끝내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준 돈이 얼마나 잘 쓰이고 있는지 계산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신의 행위 자체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사실 많은 문제가 해결이 된다. 물론 덤으로 결과적 행복도 얻을 수 있다. 사과 나무를 심는 행복을 추구했다면, 가을에 사과를 따 먹을 수 있는 행복도 온다. 행복에 행복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만약 행복에 대한 최종 목적지가 있다면 바로 과정의 행복을 즐기는 것이 최종 후보가 될 것이다.

 

이제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지금까지 몇가지 단순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풀어왔다. 하지만 이 전체 글의 결론은 무척 단순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얻어졌느지를 알게 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우리는자신의 행복을 다른 이들의 평가에 종속되는 것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다른 이들의 행복을 자신의 기준점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들 모두는 과거에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단지 다른 이들의 그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봐서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인해서 그것을 비난하거나 조언을 가장해서 비판하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가장한 비판에 휘둘리지 않는 중심점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살아가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행복도 있긴 하다. 시간 낭비, 돈 낭비, 각종 능력 낭비와 같아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사실 우리가 다른 이들이 추구하는 모든 행복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또한 다른 이들의 참견을 무조건 거부하기도 힘든 현실이란 문제도 존재한다.

 

중요한 점은 그 행복이 딱히 다른 이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지 않을 때는 그것에 대해 어떤 것을 느끼더라도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언젠가 스스로 남들에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행복을 추구할 때, 다른 이들의 참견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진리는 아니지만, 그냥 삶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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