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감각 맹증

아이루다 2014. 3. 2. 07:24


인간에겐 알려진 바로는 총 다섯 개의 감각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아직까지 그 정체가 명확하기 밝혀지지 않은 여섯 번째 감각으로 알려진, 하지만 아직도 이름이 제대로 붙지 못해서 육감으로 통칭되는 감각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뭐 이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은 다섯 개의 감각,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느낄 수 있는 각 기관을 가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중에서 후각이 가장 중요도에서 떨어지고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시각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외부 상황에 대한 정보가 주로 보는 것을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후각의 경우엔, 동물들에겐 숲으로 가려져서 시각에 제약이 생겼을 때 이를 보완해 주는 두 개의 감각, 즉 듣는 것과 냄새 맡는 것 중 하나를 담당해 매우 중요한 감각으로써 필수적이다. 하지만 문명화 된 사회 속에서 안정적인 공간과 직접 먹이를 사냥을 해야 할 처지가 아닌 우리 인간에게는 그리 많이 중요한 기관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사람들에 따라서 이 감각기관들이 특별히 예민하거나 반대로 아예 동작을 하지 않거나 많이 둔하게 태어난 존재들이 있는데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특별히 미각을 주로 다룰 생각이다.

 

미각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맛있는 것을 느끼는 능력으로써 먹는 행복을 즐기는 사람에겐 정말로 대단히 중요한 감각 중 하나이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먹을 것을 통한 행복을 얻는 이들이 남자들에 비해서 좀 더 많은 편인데, 그것은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행복 추구 방식이 바로 소비 형이라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냥 소비 형이라고 하면 쉽게 뭔가 낭비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방금 사용한 그 단어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여기에서 말한 소비 형 행복이란 의미는 보통 돈을 지불하고 큰 노력을 할 필요 없이 단순하게 얻는 형태의 행복을 말한다. 산을 오르는 것도 행복이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행복이라면 후자가 좀 더 소비 형 행복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아무튼 미각은 먹거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절대적 필요성을 가진 감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미각에 대해서 맹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꽤나 오래 전에 '대장금' 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이영애씨가 주연했던 사극인데 음식을 하다가 의녀가 되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였고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 드라마로 알고 있는데 역시나 음식 이야기라서 더 잘 통한 듯 하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장금이는 극중에서 미각을 일시적으로 잃는 위기를 맞이한다. 음식을 하는 이가 미각을 잃었다는 것은 뭐 말 다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봉침인가를 맞고 다시 회복된다. 아무튼 이때 장금이는 요리사로서 최고의 위기 순간을 극복한 것이다. 물론 소설이니 그런가 보다 하자.

 

세상 사람들 중에서 시력을 잃은 사람, 청력을 잃은 사람들은 눈 먼 사람, 귀 먼 사람 등으로 정확하게 호칭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후각을 잃은 사람, 촉각을 잃은 사람, 미각을 잃은 사람에 대한 칭호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 감각들을 잃은 사람들이 잘 표시도 안나거니와 그리고 없다고 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어서 그렇다. 하지만 촉각은 조금 다르다.

 

인류 전체 중 비율로 보아 그리 높지 않지만 촉각을 잃은 사람은 '무통각증' 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사람의 경우 신체가 아플 경우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아프지 않으니 이것을 언뜻 생각하기엔 축복이라고 여겨질 지 모르지만 실제는 완전히 다르다. 사람은 자기의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고통으로써 알아 차려야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의 외부는 모르지만 내부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말 그래도 정말 단순한 병인 맹장염 때문에도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후각은 처음에도 말했듯 다른 감각에 비해 좀 중요도가 떨어져서 우린 감기에 심하게 걸리거나 하면 실제로 이 감각이 고장 난 상태를 경험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럴 경우 음식 맛도 잘 못 느끼는 문제는 있으나 촉각이 고장 난 것에 비하면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의 주제인 미각을 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이 글은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개인적인 흥미로움 때문에 적은 글이다. 그리고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주변에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미각 맹증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유통기한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입 속에서 음식이 상했는지 안 상했는지 잘 구분을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유통 기한이 한참 지난 우유를 먹고 굉장히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유통기한을 잘 지켜야 하는 음식의 경우엔 거의 기계처럼 확인하고 먹는 듯 하다.

 

재미 있는 사실은 이 사람은 그 자신이 미각 맹증이란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감각이 단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의 오감을 다 사용하면서 음식을 먹는다. 예쁘게 치장된 요리는 시각적으로 맛을 내고, 청량한 음료수를 따르는 소리나, 음식이 익으면서 나는 지글지글 한 소리는 청각적인 맛을 준다. 또한 후각을 통한 맡는 음식의 냄새는 더욱 더 중요하며 씹을 때 느껴지는 촉감은 일명 '식감' 으로 알려진 음식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이런 상황이니 비록 음식을 먹는 절차에서 미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나 크다고 해도 나머지 네 개의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면 자신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거기에 더해서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어떻게든 늘 먹을 것을 함께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음식 맛을 잘 모르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자주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어떤 집에 초대받아서 잘 준비된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맛있다' 라고 하면서 먹는데 혼자서 아무 말 없이 먹고 있을 순 없다. 그래서 남들의 반응을 보고는 같이 따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니 그 자신도 맛을 느끼는 줄 알고 산다.

 

이것은 다소 웃기는 상황일 뿐 심각하지 않다. 단지 나는 그 사람과 대화 중에서 얼마 전 맛있게 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속으로 좀 웃길 뿐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람은 나는 과거에도 몇 번 봤다.

 

미각 맹증에 걸린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거의 못 먹는 음식이 없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엔 매우 입이 짧은 편인데,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도대체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딘가에 가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곤란하다. 예의 상 안 먹을 수도 그렇다고 먹기도 힘들어서 보통은 그냥 최대한 씹지 않고 넘겨 버리곤 한다.

 

하지만 맹증인 사람들은 전혀 이런 불편함이 없다. 입에서 맛을 못 느끼니 무엇인들 못 넘기랴. 그리고 또한 그러다 보니 몸에 좋다는 음식이란 음식은 모두 다 먹을 수 있고 심지어 다소 혐오 식품까지도 즐기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즉 미각 맹증과 건강 집착증이 결합하면 말 그대로 진정한 못 먹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일명 먹방의 주 리포터 역할도 가능하다. 맛있다는 것은 연기만 하면 되니 미식가일 필요보다는 미각 맹증이 훨씬 도움을 준다. 특히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접하게 되는 세계 음식 탐방 같은 경우라면 정말로 이것이 필수적인 자질이다.

 

두 번째 특징은 이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은 절대 가면 거의 실망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이 어떤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다면 보통 서비스가 좋거나 아니면 식당이 깨끗하고 종업원이 친절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가격이 싸거나 음식점이 꽤나 분위기 있는 장소에 있기도 하고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즉 음식에 대한 평가가 애매하니 다른 요소들로 그 음식점에 대한 기억을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것은 첫 번째 특징의 이어진 효과인데, 어디에서나 어떤 음식이든 잘 먹을 수 있기에 보통 인간관계가 매우 좋다. 그것은 입맛이 까다로워서 자신이 언제가 가야 할 식당을 고르는 사람보다는 다른 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어떤 종류의 식당이든지 군말 없이 따라와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미각 맹증에(큰 병이 아니다. 그냥 내가 이름 붙인 것이다) 걸린 사람을 지금까지 세 명쯤 본 것 같다. 그리고 그들 모두 이와 비슷한 특징이 지녔으며 그들이 추천한 집에 갔다가 몇 차례 실망을 한 기억도 난다.

 

이런 사람이 남자로 태어나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가 해주는 모든 음식을 다 맛있게 먹어 주기 때문에 아내는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인해 여자가 요리에 대한 욕심이 없어져서 오랫동안 살림을 해도 음식 솜씨가 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남자의 집에 놀려가면 결국 그리 맛 없는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그들은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만약 여자가 요리 솜씨나 먹을 것을 잘 만드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다면 이런 남자는 좀 안 좋다. 집에서 하는 요리는 남자가 일차적으로 평가를 해줘야 하는데 다 맛있다고 하니 정말로 맛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남자에게만 맛있는 것인지 확신이 안 선다. 그리고 또한 열성을 다해 만든 요리와 그냥 막 만든 요리를 모두 같은 강도로 맛있다고 하니 힘도 빠진다.

 

결국 주는 대로 먹는 남자의 장점은 잘된 요리와 그렇지 않는 요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단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자는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서 여자이면서 미각 맹증인 사람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성 역할로서 만약 미각 맹증이 있는 사람이 요리를 해야 한다면 이것은 조금 치명적일 수 있다. 즉 음식에 있어서 맛을 기대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말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미각에 대해서 많이 느끼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 가진 감각인데 각종 식 재료의 발달과 향신료의 개발로 인해서 더욱 심화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는 거의 없던 것인데 오랜 시간 화식과 요리의 절차를 거치면서 새롭게 발달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한 미각은 특히나 음식과 깊은 연관이 있어서 문화적인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 감각이다. 즉 우리는 내가 맛있다고 해서 너가 맛있는지를 판단 하기 힘들다. 같이 하면 큰 행복인데 다들 입맛이 다르니 아이러니 하게도 맛을 못 느끼는 사람이 까탈스럽지 않아서 사람들 사이에 같이 어울리기 좋기 때문에 오히려 인기가 있어지는 것이다.

 

이런 미각에 대한 개인별 차이 말고도 다른 네 가지 감각 역시도 마찬가지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린 가끔 길에서 정말로 열심히 코디네이션 한 듯 보이는 어떤 여자가 입은 옷이 이상하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일종의 시각 능력 중 하나인 색감 맹증 현상으로 보면 된다. 색을 대비와 어울림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일 경우 잘못된 위, 아래 옷 색을 골라서 비싼 돈을 들여서 구입한 옷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상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청각, 촉각, 후각 역시도 모두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감각기관은 우리가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가장 첫 번째 관문이라서 참으로 중요하지만 실제로 이 감각기관들은 생각보다 착각도 잘하고 그리 인류 보편적으로 표준화 된 능력도 아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같은 것을 꽤나 다르게 인식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우린 자신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몹시 높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감각기관은 정말로 외부의 다섯 가지 정보를 받아 들이는 기능만 할 뿐, 실제로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오직 뇌의 역할이다. 뇌는 신경망을 통해 전해 온 정보를 분석하고 분류하고 과거의 경험이나 배운 지식 등을 활용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해 낸다. 따라서 같은 정보가 비슷한 수준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껴지더라도 사람마다 최종 판단은 몹시 다르다.


심지어 뇌는 감각기관이 전달하지 않은 정보를 스스로 착각하여 만들어내기도 한다. 보지 않은 것을 보는 환상, 듣지 못한 것들 듣는 환청 등은 우리가 흔히 들어본 적이 있는 현상들이다.


이렇듯 자신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가장 첫 번째 관문과 그 두 번째 관문이 모두 신뢰를 할 수 없다면 우리가 받아드리고 있고 판단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 모든 것은 과연 도대체 얼마나 믿을 만 한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서 그리 생각하고 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에 대한 기억을 꽤나 정확하다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판단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에피소드 하나]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한 후 매운탕을 여러 번 도전했으나 아무리 해도 어릴 적 할머니가 해준 던 맛이 나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어느 날 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래서 몰래 할머니 요리 비법을 배우고자 부엌에서 할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할머니가 미원을 넣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늘 그리워하던 할머니의 손맛은 바로 미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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