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감정과 감성 사이

아이루다 2014. 2. 22. 07:58

 
개인적으로도 오래된 질문 중 하나였는데, 어제 지인과 대화 중에서 도대체 감정과 감성의 차이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뭔가 대충이라도 정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오랫동안 그것이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느껴왔기는 했지만 누군가에게 구체적으로 그것을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 했다.
 
물론 이후로 할 설명 역시도 어떤 개연성을 가진 내용은 아니다. 단지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하라고 누가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온전히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이것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관에 들러서 오랜만에 영화 한편을 봤다. 그것은 가족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였는데, 보는 도중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꽤나 진한 감동을 받은 듯 나의 눈에선 쉼 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영화관을 채운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 다음날 나는 회사에서 이 영화 애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는 다들 그 영화를 꼭 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속으로 좀 울컥해서 울뻔했다.
 
그런데 회사 사람 중 하나도 역시 그 영화를 본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그 영화에 대해서 별로 재미도 없고 감동적이지도 않은 흔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나는 속으로 좀 발끈했지만 그가 나의 상관이기 때문에 대 놓고 반박하진 못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평소부터 생각했는데 그 인간은 정말로 감성이 메말랐다.
 
바닷가에 갔다. 꽤나 오랜만에 온 바다는 하얀 포말이 부서지고,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 사장과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의 장엄함은 나를 어떤 감정으로 몰아 넣었다. 몇몇 일행과 함께 오긴 했지만 바다에 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겨울이라서 날씨가 춥긴 했지만 이 쓸쓸함과 고요함을 배경으로 하늘에 떠 다니는 갈매기의 모습은 쓸쓸했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멀리서 일행이 나에게 점심을 먹으로 가자고 한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져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왜 이렇게 나는 감정적으로 반응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밝고 행복한 표정이 나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것을 그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감정적인 것일까 궁금했다.
 
이 두 가지 이야기에서 감정과 감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감정과 감성을 바꾸어 사용했는데 혹시 이것을 인식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물론 이것은 철저하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설명이기 때문에 이것이 옳고 맞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안 해 봤다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간에게 있어서 감정은 정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흔히 희로애락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감정 상태는 실제로 우리가 그리도 자랑하는 이성보다 중요한 요소이면서, 결국 이성은 이 감정을 절제해서 그 자신에게 불필요한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해주는 보조 수단일 뿐으로 정의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 비교 대상인 감성은 어떨까? 딱 잘라서 말하면 감성은 감정의 절대적 존재감에 비해서 인간의 삶에서 꽤나 선택적인 것이라고 개괄적으로 그 존재감을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들여다 봐도 감정 자체가 본능에서 발현되는 것인 반면 감성은 개인별 기억이나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사람마다 모두 많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기본적인 특징이다.
 
흔히 감정이 메말랐다고도 하고 감성이 메말랐다는 말을 쓰는데, 이 두 표현은 모두 기본적으로는 그 의미 전달에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감정이 메마르다는 표현은 약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감정은 우리가 조절하거나 스스로 절대량을 변화시키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말 그대로 인간의 근원적 요소이기에 우리는 겨우 이성을 통해 이것을 억제할 수 있을 뿐이다. 단지 우리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무뎌진 감각기관의 문제로 인해서 좀 덜 감정적이게 되기도 한다. 또한 오랜 기간 사람들의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니 관계와 관계에서 오는 많은 문제점에 대해 좀 무뎌지기는 한다.
 
이것과는 다르게 감성은 어쩌면 우리가 딱 한 때만 가지고 있을 수 있거나 혹은 평생에 걸쳐서 전혀 가질 기회를 얻지 못하는 요소이다. 실제로 내 주변을 보건대 감성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보다는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모두 그 자신이 감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감정을 감성으로 착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풍부한 감성을 가진 이들은 결국 같은 대상에 대해서 다른 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보통 예술적 영역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머지 다수는 이들이 느낀 감성의 경험을 표현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것을 공유하려고 애쓰게 된다.
 
이 정도까지 이해를 한 후 이제 다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상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영화를 보고 진한 감동을 느낀 것에 대해 당사자는 자신이 감성적이라고 표현했고 그렇지 않은 직장 상사를 보고는 감성이 메말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이것을 보면 이 사람은 그저 격렬한 감정적인 반응을 한 것일 뿐이다.
 
영화, 소설, 노래 등등 인간이 접하는 많은 문화 상품들은 대부분은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떻게 포장을 하더라도 결국 대중을 상대로 한 그 모든 작품들은 은밀하게 돈 벌기라는 최종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결국 감동, 코믹, 정의실현, 모험 등등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모두 그 목적에 최대한 충실하여 다수의 사람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작품은 최대한 보편적 인간의 감정을 자극해야 할 목적이 있다는 뜻이 된다. 즉 희로애락 등의 감정을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은밀하게 자극하는 영화가 바로 성공의 지름길이 된다. 여기에서 자극된 우리는 영화를 보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게 된다.
 
이렇듯 명확한 감정의 자극을 목표로 한 것들을 보고 그것에 공감하여 감독의 목적대로 감정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히 감정적인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가 이렇게 동일하게 움직이지 않고 어떤 이는 거부하고 어떤 이는 무시하는 것이 인간이긴 하다. 하지만 관람을 한 다수가 거의 비슷하게 느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 보편적인 감정을 잘 자극한 것이리라.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아무도 없는 겨울바다의 쓸쓸함은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대상이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별이 초롱초롱한 어느 밤, 노랗게 물든 은행 나무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가을 등등이 이와 비슷한 대상들이 된다. 도대체 아무런 말도 안하고 그저 셀 수도 없는 시간 동안 늘 그 모습으로 있어왔고 또한 계절이 변화 할 때 마다 늘 그렇게 보여주고 그날의 기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하늘의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도 없는 대상들일 뿐이다.
 
하지만 우린 이런 대상들을 보면서 그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대상에 부여하면서 자신이 받아드리고 싶은 생각으로 바꾼 후 그 해석을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눈이 내리면 행복하고 누군가는 눈이 내리면 짜증이 난다.
 
이렇듯 감성은 그 시작이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서 대상에 대한 일명 감정 이입 현상으로 통해 결국 내가 느끼고 싶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이 감정과 감성을 동시에 설명하면, 감정은 누군가의 자극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상황이라면 감성은 나로부터 만들어져서 어떤 적절한 대상에 투영되었다가 다시 되돌아 온, 받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자신이 만들어 낸 생각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누구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감각기관이 있기 때문에 감정적이긴 쉬우나 그 스스로 만들어 내야만 가능한 감성은 그리 흔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흔한 예로서 우리는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과연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낙엽을 쓸쓸하게 인식할 수 있을까? 이렇듯 우린 어느 누군가의 풍부한 감성으로 느낀 것을 표현한 글을 읽고는 그것을 마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감성인양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감정과 감성을 혼동해서 사용하고 그 자신이 감성적이라고 우기는 상황으로 연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감성이라고 느낀 그것이 바로 누군가로부터 받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즉 우린 그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글로서 말로서 알려준 감성을 교육 받고 그 동일한 대상을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해하기 힘든 미술 작품이나 시 등을 감상할 때와 많이 유사한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무슨 의미인지 모를 추상화를 보면서 전문가의 이야기나 작가의 설명을 들어서 겨우 그것을 그것에 꿰 맞추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그들의 말을 기억했다고 해서 정말로 그 작품을 공감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우리를 압도하는 장엄한 자연 풍경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우리는 이런 광경 앞에 섰을 때 말문을 잊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바라만 보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거대함이 아닌 봄이 올 때 땅에서 피어나는 아주 작은 새싹을 보고도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즉 이것은 단지 크기나 세월만이 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린 거대한 자연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를 느낄 수 있으며, 우린 새싹이 피어나는 모습에 우리가 가진 생명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느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감성적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자신의 삶의 가치 성을 부여하는 것들은 모두 외부에서 그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생각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감정과 감성을 혼동해서 쓰는 것일까? 이 대답 역시도 아주 단순하다. 감정은 우리가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을 통해 우리는 행복함과 불행함을 느낀다. 즉 인간의 원래 사는 목적인 행복이 이미 감정의 변화로 인해서 결정되어 있다.
 
이와는 다르게 감성은 스스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것을 잘 만들어 내면 우린 좀 더 행복할 수 있다. 탁탁 소리를 내며 타는 모닥불은 누군 가에겐 삼겹살을 구울 수 있는 불이겠지만 누군 가에겐 단지 체온으로 느끼는 따뜻함이 아닌 마음 한 구석이 정말로 따뜻해지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체온은 촉각을 통해 느껴진 후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는 미각으로 연결되어 결국 행복해지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오직 마음 속에서만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것은 거의 그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때 우린 삼겹살의 자극과 같은 강한 행복감은 아니지만 그 발갛게 열이 오르는 숯의 모습과 같이 은은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감정은 거의 모든 행복의 근원이 된다. 그 누구도 머리로 생각해서는 행복하긴 힘들다. 정말로 오감 만족이 이루어져야 행복해진다. 그런데 감성은 미력하나마 머리에서 시작한 생각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된다. 그래서 너무도 춥고 바람이 심한 바닷가에 서서 온 몸이 덜덜 떨리는 불행함 속에서 우린 잠시나마 스스로 만들어 낸 행복감에 취해 그 바다를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오래가긴 힘들지만 말이다.
 
이렇듯 감성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꽤나 좋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길 원하고 그 덕분에 누군가 풍부한 감성으로 적어 놓은 글이나 말을 듣고는 따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것은 그저 따라 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좋은 곳에 놀러 가면 얼마나 좋은 숙소에 묵었으며 또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만 기억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은 개발 가능하다. 그것은 어렵지만 그 자신의 감정적이기만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약간의 해결책이 보인다. 그리고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 봐 버릇하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우리가 감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선택이다. 누군가는 그저 맛난 먹거리와 편한 잠자리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
 
그리고 타인에게 교육받은 감성이라고 해도 아주 오랫동안 간직하고 살아가면 어느새 자신의 것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이다. 마치 돈을 주고 산 어떤 책상이 30년 후 자신의 손때가 탈대로 탄 낡은 책상이 되었을 때 이 책상은 더 이상 처음에 돈을 주고 산 제품이 아닌 게 되듯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다. 단지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평생에 걸쳐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해서 말하면 감정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피어 오르는 불꽃이며 감성은 자기 스스로 태우는 불꽃이 된다. 그리고 이것을 매우 잘하는 이들은 타인들에게 은은한 불꽃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복잡한 환경에 둘러 쌓여서 끊임없는 많은 자극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실제로 감성을 가질 이유도 없어지고 그나마 기회 조차도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우린 언젠가 어느 시점엔 혼자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결국 그래서 자극에 둔감해지고 자극에 노출될 기회가 줄어든 사람들은 원래 가졌던 스스로 불을 피울 수 있는 능력을 까맣게 잊고서는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방황을 하게 된다. 결국 감정에 의한 행복은 타인과 너무도 밀접히 연관이 되어 있어서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스로 홀로 행복하고 싶다면 감성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힘들지만 오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글을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하나 해보자. 어느 날 문득 푹 늙어 보이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어떤 짠한 감정을 느꼈다면 이것은 감정적인 것인가 아니면 감성적인 것인가?
 
나는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답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말하고 싶은 것은 비록 앞의 글에서 열심히 두 개를 쪼개서 설명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칼로 자르듯 나뉘지는 않는 다는 말을 하고 싶다. 대부분의 것들엔 감정과 감성이 늘 공존하고 있다. 거기에서 우린 단지 감정을 느끼는데 익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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