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아이루다 2013. 12. 16. 11:46

 

연말에 그리 참석하고 싶지 않은 동창 모임에 대한 공지가 문자로 왔다. 매년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이 연례행사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친했던 아이들과 잘 몰랐지만 이상하게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명목 하나로 같이 만나게 되는 몇몇의 이름만 아는 아이들이 참석하곤 한다. 아마도 올해도 그 양상은 그리 다르지 않게 진행 될 것이다.

 

몇 년전 처음 동창회를 했을 땐 나름 즐거운 분위기였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동창회에 가면 즐겁긴 한데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기분이 찜찜하다. 거기에다가 이것은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인데,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이 동창회에 나가지 않고 싶다. 하지만 그럴 경우 그나마 유지되던 실낫같은 관계가 틀어져 아예 안보는 사이가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결국 그래서 올해 동창회엔 친척 중 한명을 죽이기로 결정을 했다. 즉 초상이 나서 아쉽지만 참가하지 못한다고 핑게를 댈 생각이다. 그래야 어찌 되었건 간에 내년에도 연락을 주긴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누구나 경험 가능한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즐거운 동창회를 왜 안가? 라고 반문하겠지만 이것을 다른 모임으로 바꿔보자. 참석하기 싫은 처가댁 모임, 시댁 모임, 회사 상사가 주최하는 산악등반 모임 등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꼭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싫어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 껏이라서 대충 참아가면서 버티고 어떤 사람은 그런 분위기를 거의 고문처럼 느껴서 어떻게든 비켜가려고 애를 쓴다. 술 자리가 버거운 사람도 있고, 노래방이 싫은 사람도 있고, 축구와 같은 각종 운동을 하는 모임이 싫은 사람도 있고, 산에 오르는게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사람들과 어디선가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이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개인별 취향은 참 다양한데, 우리가 사회에 속한 후 그 안에서 관계성 유지를 위한 각종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생각보다 이런 것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참지 못하면 그 모임 자체에서 빠지는 경우도 생기지만 그래도 그 모임 안에서 참고 견디면 뭔가 이득꺼리가 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싫은 것을 즐겨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모임의 특징을 만들어가면서 그 자신이 즐기는 것이 좋은데, 이럴 경우엔 그 모임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신 그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비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계속 참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미래의 이득을 은연 중 보장해주는 계산법이 중요하다.

 

그래서 보통 모임의 리더는 이런 계산법에 매우 능하거나 혹은 모임의 이득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일 경우가 많으며 아주 소수의 사람들로는 자신보다 전체 모임의 이득을 위해 희생적인 입장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엔 결국 리더는 희생만 하다가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지치고 실망을 거듭하다가 결국 모임 자체가 붕괴되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어떤 모임에서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지에 관계없이 우리 인간의 고유한 특징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은 하고픈 것을 하고 살고 싶어하는 존재이며 하기 싫은 일은 어떻게든 안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핑게를 대면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피하는 경우가 꽤나 된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자리를 가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이것으로 인해 기분나쁘지 않길 바라는 심정으로, 아니 이것을 다시 표현하면 그 상대가 나에게 실망을 해서 미래에 있을 자신에게 올 수 있는 이득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심정으로 거짓말을 꾸며대며 그 자리에 참석하고 싶지만 참석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이것은 꽤나 유효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단점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나 행동이 꽤나 쉽게 상대에게 간파되곤 한다. 하지만 그래도 눈 앞에서 '당신의 모임의 참가하고 싶지 않아서 시간이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안 가겠어' 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가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네요'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받아들이기가 쉽기 때문에 상대 역시도 핑게를 대는 그 사람의 말을 반쯤은 믿어주게 된다.

 

여기에는 앞에서 설명했었던 모임에 참석함으로서 생겨나는 이득, 즉 사람과의 교류를 넓히고 그로인해 언젠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이득의 극대화를 노리는 포석과 반대적 입장으로 자신의 시간과 정신적 피로도를 가져오는 손해 간의 균형점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만약 손해가 더 크다면 핑게를 대고 참석을 하지 않고 이득이 더 크다고 믿는다면 어떻게든 참석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손해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이고 이득은 조금  먼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기대치란 점이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들은 당장의 손해가 더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면서 점차로 배우는 것은 이런 미래의 이득분을 쌓아놓지 못하면 언젠간 후회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결국엔 미래의 이득 방향으로 곧잘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기본적 행동양식은 비단 예를 든 모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며, 이 선택들은 바로 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해야 할 것과 하고 픈 것들 중에서 시시각각 결정을 해가는 과정인 셈이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서 하기로 결정한 일로 인해 벌어질 하지 않을 일에 대한 손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우린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만들어서 그 부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거나 하기 꺼려해서 이럴 때 정직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도 꽤나 좋은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하다.

 

그것은 거짓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사실 그대로를 상대에게 말했을 때 그 사람이 받을 상처나 혹은 실망을 느끼는 것이 마음 아파서 그런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 인간이 가진 그래도 선의를 가진 좋은 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면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이것의 문제는 바로 그 선의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애매모호한 면이다. 예를 들어 명절이 되어 고향에 가는 것이 꽤나 번거롭지만 자신의 가족이 내려오길 바라는 입장에 처한 어떤 남자가 자신보다 더 시골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우연히 명절기간 중 일직 근무를 할당 받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만약 이 남자가 어떻게든 고향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면 아마도 쉽게 일직 근무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엔 누구나 근무를 핑게로 어딘가를 고생스럽게 가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남자의 경우엔 가야 한다는 의무감과 가고 싶다는 욕구가 반반 정도였기 때문에 남들과 근무를 바꾸는 짓을 안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 해 명절엔 고향 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이 상황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일종의 좋은 의도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즉 자신이 못가게 된 것이 부모님의 입장에서 실망을 안기지 않을 적당한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즉, 이 남자의 기억엔 그것이 상황이 그래서 못 간걸로 기억할 뿐 결국엔 그 자신이 선택적으로 가지 않았다고는 기억하지 않는다.

 

부모에게도 당연히 근무가 걸려서 못가게 되었다고 말했으며 그 자신도 그렇게 믿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거짓말은 아니지만 어떤 핑게를 통해 하기 싫은 것을 안하게 되었을 때 그 자신이 그 상황을 믿게 되는 것과 연결이 된다.

 

만약 이 상황이 자신과 가족이 가고 싶어하는 해외 여행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무리를 해서라도 근무를 바꿨을 것이고 그렇게 떠났을 것이다. 즉 이 모든 상황은 결론적으로 못한 것이다. 그리고 우린 생각보다 안한것과 못한것에 대한 차이를 잘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 참석하고 싶지 않은 모임에 가지 않은 것은 안한 것이라고 믿는데 실제로는 못한 것이다. 참석해서 버텨낼 능력이 안되니 못 나간 것이며 더 쉬운 예로는 학창시절 공부이다. 우리 대부분은 공부를 안한것이 아니라 못한 경우가 된다. 하지만 가끔 성인이 된 후 그 시절 공부를 더 할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그 시절에 자신이 안해서 그랬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순간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물론 가끔 할 수 없는 일을 했다가 시간과 돈만 날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도 몇차례 반복이 되면 어느정도 자신에 대한 파악이 가능해서 굳이나 감당하지 못할 일은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유리한 상황을 위해 어떤 종류의 거짓말을 통해 피해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며 이것을 굳이 비난할 필요는 없다. 단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런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그 자신도 스스로 그 거짓말을 믿게 되는 순간이다.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참석하지 못하거나 정말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하지 못했다고 믿는 것은 우리의 기억 조작의 일종이다.

 

우린 하고 픈 일을 어떻게든 해야 만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단 하나의 가능성만 보여도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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