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레드를 기억하며

아이루다 2013. 10. 26. 08:20

 

레드를 처음 만난 건 벌써 십년 하고도 몇 년이나 더 흐른 듯 하다. 잔잔한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 속에서는 수십 년 전 미국의 한 교도소에 수감되어 살고 있는 늙어가고 있는 흑인 한 명이 보였다.

 

나중에 그의 역할이 밝혀질 무렵 그는 교도소 내에서 꽤나 잘나가는 유통업자였다. 물론 그 덕에 앤디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아무튼 나중에 나눌 그들의 꽤나 부러운 우정을 생각하면 배신감이 들지만, 레드가 앤디를 처음 보았을 땐 일명 '샌님'으로 여긴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허우대만 멀쩡하고 백인인데다가 공부만 열심히 했을 것 처럼 생긴 그의 모습이 그가 이미 오래 동안 살아온 이 감옥 속에서 잘 적응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레드는 그날 도착한 죄수들 중 가장 먼저 울게 된 신입을 맞추는 내기에서 앤디에게 건다. 물론 그 다음날 그는 담배를 잃고 말지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는 그의 음성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별로 실망하거나 혹은 기분이 상했다든가 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도로 교도소의 첫날밤 폭력은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면서 앤디가 갇히게 된 그 공간의 터무니 없는 규칙을 하들리의 잔인하고 섬뜩한 구타 장면을 통해 전달해주었다. 그 순간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그 자신이 앤디가 되어 첫날밤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다 같이 깊은 절망과 공포 속에서 첫날을 보내게 된다.

 

레드는 첫날 담배를 잃고, 그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에 있었을 때 잘 나가던 은행가였다는 앤디 의 과거사 때문인지 살짝 그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과거일 뿐. 앤디는 현재 이 교도소에서는 아내를 살해한 살인범이자 백인이며 친구 하나 없는 약하고 힘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것은 앤디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높은 담에 둘러 쌓이는 순간부터 다른 삶을 선택 해야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앤디가 야구공을 주고 받고 있던 레드에게 슬쩍 말을 건다. 어떤 물건을 구할 수 있냐고. 그리고 그것은 돌을 조각하는데 쓰는 작은 망치였는데 레드는 앤디를 신뢰할 수 없기에 몇가지 구체적인 약속을 한다리고도 모자라 그가 구하려는 물건에 대한 정체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원한다.

 

왜냐하면 망치라는 것은 꽤나 위험할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하지만 망치가 도착한 후 레드는 걱정하지 말라는 앤디의 말에 공감한다. 그것은 너무도 작아서 도대체 땅을 파거나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기엔 너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흑인이며 교육도 거의 받지 못한 레드와 그와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백인이며 고등교육을 받은 앤디는 교도소 안에서 동등해진다. 그리고 둘은 아주 조금씩 친해져 간다. 하지만 앤디에겐 그를 괴롭히는 보그스 무리가 있었다. 레드는 그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암시한다. 그래도 그는 앤디에게 경고성 조언은 해준다.

 

레드가 앤디에 대해 조금 다른 느낌을 갖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교도소 밖 어떤 장소에 지붕 칠을 하는 일을 나갔을 때 였던 것 같다. 잔인한 하들리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얻어낸, 레드와 그의 친구들에게 허가된 맥주와 아주 짧은 쉬는 시간. 아마도 자유라는 말을 영상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하지만 정작 이 일을 해낸 당사자인 앤디는 그에게 맥주를 내미는 아직은 덜 친해진 그의 새로운 동료의 손을 거절하면서 술을 끊었다고 말하면서 미소를 짓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한다.

 

내가 만약 이 영화에 베스트 3을 꼽는다면 바로 이 장면이 그 후보가 될 것이다. 햇살 따스한 어느 오후, 그들은 차가운 맥주 병을 하나씩 들고서는 쇼생크에서 가장 악날하다는 간수가 준 맥주를 마시며 자유로움을 느낀다.

 

앤디의 쇼생크 생활을 아주 오래 계속된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난다. 그도 늙고 앤디도 늙어간다. 물론 그사이 이런 저런 변화들이 있다. 일단 가장 즐거운 소식은 앤디를 괴롭히던 보그스가 그보다 더 강하고 힘 있는 폭력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져서 거의 병신이 되어 외부로 떠난다. 그리고 앤디는 쇼생크 간부들의 세금 정산을 담당하는 일명 힘있는 죄수가 되며 그 덕분에 교도소 소장인 노튼도 늘 앤디에게 자신의 불법한 자금을 세탁시켜 세금을 탈루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앤디가 받은 작은 이득은 부룩스가 경영하던 도서관을 넓히고 책을 더 많이 늘렸으며 주 정부로부터 지원 자금을 얻어낸다. 실제로 이 과정은 몇 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이쯤에서 우린 보통 앤디의 집요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가면서 앤디는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그것은 그가 가르치던 신입 토미가 알려준 자신이 저질렀다고 믿고 있는 범죄에 대한 다른 사실을 알려준 후 이것을 무시하고 그를 죽여 버리는 교도소장 노튼의 잔인한 이기주의의 모습에서 절망을 느낀다절망에 빠진 앤디에게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하는 앤디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레드에게 앤디는 크지 않고 높지도 않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한다.

 

"기억해요. 희망이란 좋은 것이죠. 모든 것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죠.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리고 그는 뜬금없이 '지후화네타'에 대해 말한다. 자유국가 미국을 떠나 남으로 남으로 이동해 멕시코에 있다고 알려주면서. 꼭 그곳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토미 사건 이후 나날이 수척해가는 앤디를 보면서 레드는 뭐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말도 고르지 못한 채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밧줄을 구해줬다는 헤이우드의 말을 듣고는 혹시나 앤디가 자살하지 않을까 하면서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그 예감은 그 다음날 아침 감옥 점호시간에 앤디가 수감되어 있던 쇠창살 안의 작은 방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고 있음을 너무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하지만 여기에서 앤디는 레드를 속이고 노튼을 속이고 그 외 그 영화 속 모두를 속이고 또한 바라보는 우리를 속이고 있다. 그는 노튼이 사람은 절대 거품처럼 사라질 수 없다고 외치면서 앤디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체스 돌을 커다란 사진 속의 라켈 웰치를 뚫고서는 벽 뒤로 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놀란 노튼이 정신 없이 찢어버린 그 사진 뒤로는 앤디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뚫었을지도 모를 굴이 보였다.

 

그렇게 앤디가 뜬금없는 탈옥을 하고 난 후 그의 동료들은 가끔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앤디를 그리워했는데 특히 레드에게는 앤디의 존재가 없어졌다는 것이 큰 부재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던 중 그는 수신인이 적히지도 않고 아무런 글씨도 없는 엽서 한 장을 받게 되는데 거기엔 앤디가 보낸 것이 충분히 느껴지는 사진이 찍혀 있었다.

 

그때 그는 앤디가 떠나기 전에 그에게 해줬던 두 가지를 다시 생각한다. 하나는 지후와네타이고 다른 하나는 앤디가 아내에게 청혼을 했다는 어느 마을에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이다. 평생을 가석방을 위해 교화된 척 하던 레드는 어느새 삶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게 되면서 그를 평가하러 온 정부관료에게 교화에 대한 그의 개똥철학을 늘어 놓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가석방이 된다.

 

하지만 레드는 가석방이 된 그 자신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그 전에 그보다도 더 오래 이곳에 있다가 가석방이 된 브룩스의 죽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브룩스나 레드는 그렇게 높은 담장에 쌓인 이곳에서 적응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세상은 쇼생크이고 그 높은 담장 밖의 세상이 두려운 곳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레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처음엔 저 벽을 미워하지. 그러다가 익숙해지고 나중에 의지하게 되지'

 

그래도 레드에게 두려움과 절망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겐 앤디가 남기고 간 작은 희망이 있다. 앤디가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 바로 희망이 있기에 그는 떡갈나무를 찾아 떠나 앤디가 남긴 편지를 발견한다.

 

그 후 그는 브룩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칼로 판 글씨 옆에 자신도 있었다고 적고는 미국을 떠나 멕시코를 향해 가 지후와네타에서 낡은 보트를 수선하고 있는 앤디를 만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쇼생크 탈출에 나온 장면 중 리타 헤이워스가 나온 길다라는 흑백 영화가 있다. 이미 몇 번이나 보고 또 보고 해서 장면까지 모두 외운 그 영화를 보는 레드는 그녀의 특별한 한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장면이 제일 좋아' 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가 그들이 보고 또 본 영화 '길다' 처럼 '쇼생크 탈출'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맥주를 먹는 장면을, 피가로의 결혼을 틀어주던 장면을, 돌맹이가 여배우 사진을 뚫고 통과하던 장면을, 앤디가 그 더러운 하수구를 기어가던 장면을, 노튼이 자살하던 장면을, 레드가 떡갈나무로 향하던 장면을, 레드와 앤디가 파란 태평양을 배경으로 만나던 장면을 기억하며 나는 이 장면이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흘러나오던 레드의 아니, 모건 프리먼의 그 표현하기 힘든 느낌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가 아닌 누가 그런 레드를 연기할 수 있을까.

 

싸늘한 가을 아침 레드를 기억하며.. 그리고 레드와 앤디의 세월이 만들어 준 우정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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