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영생

아이루다 2013. 10. 9. 09:00

 

꽤나 늦게 잠이 들었지만 동쪽으로 난 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은 나의 아침 단잠을 깨워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리 속에는 근 몇 개월 동안 나를 괴롭혀 오던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오늘이 지나면 이런 생각도 안 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연이어 떠올랐다.

 

오늘은 내가 나의 몸을 모두 기계장치, 아니 보통 이렇게 부르지 않고 A.B.I 라고 칭하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몸으로 바꾼 지 정확히 40년이 되는 날이다. 뭐 딱히 이날을 기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오늘 내 몸에 남은 마지막 생물학적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 이 날로 정한 것은 내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올해 66세를 맞는, 과거 인류를 기준으로 볼 땐 늙은이에 속하는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내 머리에 연결된 강력한 기계 몸은 나를 젊은이들에 비해 전혀 뒤떨어짐 없이 행동할 수 있게끔 해준다. 물론 내가 쓰고 있는 모델은 그리 최신 모델은 아닌 탓에 최고의 수준은 아니지만 나의 활동력은 실제로 내가 젊은 시절 경험했던 그것에 비해 전혀 뒤떨어짐이 없다.

 

나는 오늘로부터 정확히 40년 전 전성기를 넘어 이제 막 퇴화하기 시작한 나의 몸을  A.B.I로 바꾸는데 동의했다. 실제로 보통 요즘의 젊은이들이 평균이 20세 초반에 이런 결정을 내린다고 보면 나의 그런 결정은 그 시대에서도 늦은 편이긴 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병에 걸리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끝없는 위협을 당하기도 하지만 또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강렬한 생의 욕구와 행복감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는 결정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나의 몸을 두 번에 걸쳐 큰 업그레이드를 했고 수십 번의 수리와 부품 교체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이를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어야 했고 실제로 오늘 시술될 마지막 작업인 B.S.T.A 를 하고 나면 나의 잔고는 이제 거의 0이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마지막 시술을 받고 나면 나는 이제 완전히 죽음의 세계와 멀어진 거의 영구적인 생명을 부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B.S.T.A 는 일종의 뇌 정보 복제 기술이다. 이것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수백 년 전에 나왔지만 실제로 이 기술이 상용화 된 것은 약 100여년 전이고 A.B.I의 보급률은 그래도 전 인류의 10%를 넘어서지만 B.S.T.A은 실제로 그 시술에 들어가는 비용 및 추후 관리 비용의 문제로 인해 상위 0.01%의 사람들만 가능한 아주 값 비싼 시술이었다.

 

일단 이 시술을 받게 되면 현재 시술 받은 당사자의 뇌에 담긴 모든 정보가 아주 안전하게 보관 중인 저장 장치로 모두 복사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이 정보는 인공 뇌로 알려진 '크리픽스'에 담겨서 현재의 내 뇌가 차지한 공간에 위치하게 된다또한 생물학적 뇌에 연결된 생명유지 장치는 모두 제거가 된 후 오직 에너지 공급을 위한 라인과 인공 뇌의 결정을 전달할 인공 신경망 연결 장치만이 존재하게 된다.

 

일단 저장된 뇌 정보는 안정성을 위해 다양한 장소로 중복해서 백업이 되며 이 작업은 매일 내가 잠에 드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어떤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그 몸이 완전히 파괴되고 인공 뇌가 부서지더라도 언제든지 이 백업 정보를 이용해 그는 복구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 고가의 보험에 들어야 하긴 하지만 그 자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여기엔 매우 복잡한 철학적 질문이 뒤따라 온다. 그것은 당연히 복제된 나와 원본 나와의 관계성에 따른 질문이다. 이런 시술에 대해 매우 강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 무리 중에는 이 둘의 관계가 실제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후대를 남기고 떠나야 할 존재들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서 무한대의 삶에 대해 욕심을 낸다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그런 그들 중에도 A.B.I 까지는 받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즉 몸에 대한 치환은 용납을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생물학적 뇌를 기계 장치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아무튼 어떤 비판 논리를 펴든 실제로 문제는 바로 돈이다. 이 시술에는 정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은 B.S.T.A 기술에 대해 일종의 여우의 신포도 논리로서 비판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이 시술을 받을 수 없으니 그것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논리를 가져와서 같이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일종의 질투심을 푸는 과정이다.

 

솔직한 얘기로 나는 이 시술을 받기엔 직업적으로나 혹은 부모로부터 받은 조건이 그리 좋지 못했다. 아마도 나 역시도 그냥 일반적인 삶을 살아 갔다면 그 반대론자들처럼 이 시술에 대해 혀를 쯧쯧차면서 인간이 왜 인간인지에 대해 말하고 비난하면서 살아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우연히 기회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알고 있던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바로 나의 아내인 '안느' 이다.

 

안느 역시 나처럼 평범한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항성간 탐사 여행을 하는 거대 탐사선에 탑승하는 것이 그녀가 평생 바라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거대 탐사선에 타기 위해서 B.S.T.A 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과정이었다. 실제로 인류가 B.S.T.A 를 개발하고 발전시킨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장기적 우주 여행에 필요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기도 했다.

 

태양계를 거의 섭렵하고 달, 화성, 타이탄까지 전진 기지를 설치하고 주민을 이주시킨 인간은 이제 항상 간 여행에 도전에 나섰는데 그때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생물학적 몸을 가진 인간이었다. 물론 A.B.I 시술을 받은 사람들에게 육체적 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우리의 뇌는 그 수명이 200년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뇌에는 계속해서 생물학적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해서 결국 에너지의 비효율적 사용이 계속된 것이다.

 

하지만 B.S.T.A 를 통해 인공 뇌로 치환을 하게 되면 우리 몸에 태어날 때 타고난 생물학적 흔적은 모두 지워지게 되고 인간의 몸은 완벽히 가슴 부근에 설치된 소형 배터리에 의해 작동하게 된다. 이 배터리는 작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서 한번 충전후 1년 가까이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충전이 그리 어렵지 않아서 우주 여행 중이라도 수시로 교체가 가능한 기술이기도 했다.

 

따라서 최소 수십 년에서 수만 년까지 걸릴 수 있는 항성간 탐사선에서 B.S.T.A 의 시술 여부는 당연히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탄소화합물로 이루어진 세포를 통해 구성된 몸이 아니라면 우린 각종 유해한 우주의 물질이나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한 필요성이나 그 한계가 명확한 수명 등으로 인한 한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 안느는 그녀가 살아 생전에 반드시 베가에 가고 싶어 했다. 거문고 자리 알파별은 이 베가성은 지구로부터 23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요즘 항성 탐사선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온 추진기를 이용하면 약 13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도달할 수 있는 항성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이 항성을 향해 출발한 탐사선이 없는 상황이었고 I.U.S.C 의 계획에 의하면 앞으로 20년 후쯤 계획이 잡혀 있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그녀가 왜 베가에 가고 싶어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그것을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작은 미소와 함께 그날 같이 바라본 밤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예쁘자나' 라고.

 


나는 그 후로 다시는 그녀에게 그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한 말해서 나는 베가고 나발이고 달조차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고 그녀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와 안느는 정말로 미친 듯이 일을 해왔다. 20시간 노동이 보장된 사회지만 나와 그녀는 최고 60시간 이상을 일을 해왔으며 그리고 그렇게 일한 40년의 시간으로 이제 두 사람 몫의 B.S.T.A 시술 비용을 마련하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몇 번의 작은 행운도 있었다. 복권 당첨도 있었고 안느의 부모님은 그 삶을 마감하면서 그녀에게 모든 재산을 남겨 주었다.

 

어쩌면 나와 안느는 타인들의 삶에 비해서 B.S.T.A 를 위한 시술 비용 마련으로 인해 거의 온전한 삶을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우린 이제 앞으로서 우리 삶의 시작이 될 것이다. 오늘 시술을 받고 난 후 베가를 향해 떠나는 탐사선에 합류해 우주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우린 지구에서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고 혹시나 무사히 지구로 귀환을 하게 되면 우린 수백 년 후의 미래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여전히 거의 무한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런 삶에 대한 동경이 그리 크지는 않다. 이것은 지난 1년간 내가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한데 항성간 여행에 대한 꿈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 온 안느와 달리 나는 딱히 명확한 목적도 없이 영생의 길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먹고 살만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영생을 살더라도 돈이 없이 망가지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영원한 삶을 얻게 되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아마도 항성간 여행은 매우 지루할 것이 분명하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린 한정된 우주 공간에 갇혀 끝없이 펼쳐지는 암흑의 공간 속을 통과해 나갈 것이다. 물론 어떤 위기도 있을 수 있고 또한 생각하지 못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연 그런 것들로 내가 살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서 이미 이 삶에 대한 무한한 연장을 보장 받은 내가 인간의 삶에서 행복을 가져다 주는 원천적인 본능인 생명 보존에 따른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B.S.T.A 시술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알려진 이 행복 부재 현상은 물론 시술을 받은 이들 중 아주 소수만 경험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나 역시 그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시술을 받은 이들은 여전히 보통의 인간처럼 먹고 마시고 싸고 자고 하는 행위를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완전히 불필요한 행위이기 때문에 이것은 그저 과거의 인간일 때 버릇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B.S.T.A 시술을 받는 순간 그 대상은 온전히 배터리로만 구동이 가능하며 그로 인해 인간 기본의 식생활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에 대해 욕구를 느끼며 그로 인해서 B.S.T.A 개발사는 이런 과거 인간의 관행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끔 불필요한 장치들을 달아 놓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많은 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 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B.S.T.A 의 역사는 이제 겨우 백 년 남짓하고 시술을 받은 이 조차도 전체 인간 중 백만 명도 되지 못한다. 물론 그들은 선택 받은 이들이고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영생을 누릴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기술에 대한 인간 경험적 판단은 유보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만약 이 시술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적어도 수백 년이나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 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영원히 흐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중에는 이를 예측하는 다양한 이론이 나와있긴 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실제로 일어날 일에 대해 정확히 맞추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영생도 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종료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나의 배터리 교체를 거부함으로써 에너지원을 중단 시키고 남아 있는 나의 모든 뇌 정보를 삭제하고 백업 분까지 모두 지우고 나면 나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짐이 가능하다. 이것이 내가 최종적으로 이 시술을 받아들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제 마지막 나의 인간의 모습을 기념하며 나눈 친구들과의 술잔이 아마도 내 뇌가 생물학적인 모습을 가졌을 때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추억이 되리라. 앞으로 몇 시간 후 나와 안느는 영생을 위한 마지막 시술을 받기 위해 떠나야 한다. 그런데 그 후로도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지 스스로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이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 한다.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는 나의 또 다른 나에게 맡긴다. 비록 그 나는 내 이름과 내 기억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가 이 글을 읽고 나머지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희망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내가 과거의 나의 전부를 기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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