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일인용 식탁

아이루다 2013. 10. 13. 08:05


아주 오래 전부터 아침 잠이 많은 나를 깨우는 존재는, 몇 차례 나를 깨워 이젠 약간 짜증이 묻어나는 엄마의 음성이 아니다. 어쩌면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이제는 정말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희미해진 지 오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를 깨운 건 내가 몇 달 전에 산, 꽤나 좋은 스마트 폰에서 지원하는 알람 기능이다. 이 알람 기능이 좋은 것 중 하나가 일어나기 힘들면 언제라도 단순한 화면 터치만 해도 자동으로 10분 후 다시 울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10분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나에게 허용된 시간은 겨우 이 시간이 전부이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늦게 움직였다간 하루의 시작을 지각으로 시작하고 만다. 따뜻한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자 가을이 깊어진 아침은 나 홀로 사는 이 방안에 쌀쌀함이라는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하지만 아직은 난방을 틀 시기는 아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엔 조금만 난방을 돌려도 나오는 가스비가 꽤나 부담스럽다.



다행이 나는 아침을 먹지 않기 때문에 아침을 먹기 위해 30분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거기에 더해 아침을 준비하는 그 귀찮음을 딱히 감수할 필요가 없다. 예전 학창시절에 아침마다 나를 깨워 졸린 눈으로 아침부터 밥을 먹게 했던 엄마의 부지런함이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아서 좋다.




아침 출근 시간은 늘 그렇듯 전쟁이다. 만원 버스, 만원 지하철, 차비는 천원대인 데 왜 이리 다 만원일까? 그래도 일단 출근을 하고 나면 하루의 반이 지나간 느낌이다. 특히 지각을 하지 않았다면 만점 짜리 시작인 셈이 된다. 일단 자리에 앉은 나는 컴퓨터를 켜고 온 메일을 확인하며 내가 오늘 해야 할 일과 내가 원래 하기로 마음 먹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해야 할 일을 먼저 한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늘은 해야 할 일을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내고 말 것이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점심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먹는다. 하지만 요즘은 식당에서도 다들 스마트 폰을 보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서 딱히 어색하고 별 관심 없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어서 좋다. 다들 한 손엔 스마트 폰을 다른 한 손엔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다. 회사 동료들은 언제부터인지 참 조용한 식사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오후 시간이 되면 일은 더욱 바빠진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렸다간 오늘도 9시 전에 퇴근하기가 힘들어 질 것이다. 물론 꼭 집에 9시전에 들어갈 이유는 없다. 누군가 집에서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고 일찍 가봐야 혼자 밥 해먹는 것이 고역이다. 아마도 회사 근처에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분명히 성격상 라면이나 끓여 먹고 말리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어도 버릇처럼 야근은 하기가 싫다. 아니 설령 늦게까지 있더라도 일을 다 마치고 그냥 인터넷 서핑이나 하다가 집에 가고 싶다. 다른 팀에 있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직장 동료들은 나보다 일 량이 적은 편이어서 보통 그렇게 있다가 9시쯤이나 되어야 집으로 간다. 또 그래야 회사 돈으로 저녁을 먹는 것이 눈치가 안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습성이 일반화 되어 있다.


 

저녁 식사는 보통 7시쯤이 되면 먹는다. 그리고 이땐 식당에 가서 먹는 것이 아니라 주문을 한다그래서 6시 반쯤 되면 남은 이들 중 가장 어린 친구가 종이와 펜을 들고 돌아 다니면서 각자 먹을 것을 주문하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식당이 몇 군데 되지 않기에 메뉴는 그리 다양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돌아간다. 중식, 한식, 간단한 양식. 오늘은 중식을 먹기로 했나 보다. 그리고 오늘 야근자 중에는 나름 힘 있는 부장이 있어서 그런지 탕수육 대자가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다. 이런 날은 복잡하게 먹을 것이 아니라 그냥 짜장면이나 하나 먹는 것이 좋다.



저녁 먹기는 금세 끝이 난다남자 5명에 여자 한 명으로 이루어진 오늘의 저녁 식사 팀은 간만에 주문한 탕수육 덕분에 꽤나 활기찬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같이 식사를 한 부장의 지난 주말에 다녀 온 캠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다들 집중하는 척을 해서 나름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장비 값만 천오백만 원을 투자 했다는 그 부장의 이야기에 속으로 부럽기도 하고 미쳤다는 생각도 했지만 역시나 모두의 공통된 태도는 그런 돈을 쓸 수 있는 여유로움에 대한 부러움으로 나타났다.



오늘은 오후에 아주 열심히 일을 한 결과로 저녁을 먹고 딱히 할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저녁을 먹었으니 9시까지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들어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해서 그 동안 올라 온 글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난 글도, 웃기는 글도, 가끔 정치적인 글도 있고 거기엔 많은 사람들이 욕설이나 비난을 통해 배설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내 마음에 있는 희미한 정의감을 느끼면서 그들의 의견에 동조를하기도 했다.



퇴근 시간은 출근 시간보다 조금 더 걸리는데 한 시간 이십분 정도 걸려 집에 와 씻고 나면 10시가 훌쩍 넘어 있다한 시간 정도 보다 만 미드를보다가 잠에 들면 어느새 다음날 아침이 되고 나는 지금까지 썼던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 하지만 가끔 주말이 되면 나는 더 늦게 일어나곤 하지만 그때마다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한다.


 

그래도 내 집엔 얼마 전 구입한 일인용 식탁이 있다. 집이 좁아서 기존가정용 식탁을 놓기엔 힘들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이 일인용 식탁은 일단 의자와 식탁이 아예 붙어 있고 의자는 밑으로 연결된 레일을 통해 넣어다가 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편하다. 그리고 식탁의 넓이도 넓이와 폭이 모두 50cm 정도 밖에 안되어서 밥 한 공기, 작은 국그릇, 김치, 마실 물과 컵 정도를 놓으면 딱 맞다. 뭐딱히 더 먹을 수 있는 반찬도 없으니 이것이 나에겐 정말 딱 맞춘 식탁인 셈이다.




여기에 몇 년 째 이 집엔 손님이 한번도 온 적도 없었고 여자친구가 없는 것도 4년이 넘어가서 이젠 딱히 혼자 이렇게 보내는 주말이 그리 낯설지도 않다. 단지 때가 되면 챙겨 먹어야 하는 밥이 좀 귀찮지만 그것도 너무 귀찮으면 밖에 나가 근처 분식집에서 먹곤 한다.



그래도 주말엔 가끔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 한강변을 달리기도 하는데 크게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지루한 주말을 보내는 데는 제법 괜찮다. 더해서 한강변에 가면 흘러가는 강물을 볼 수 있어서 마음 속의 답답함이 조금 사라진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주말이 되면 가끔 친구들과 연락해서 만나기도 한다그리고 이어지는 새벽까지의 술자리는 주말을 금새 보내는데 최고의 선택이다.


 

회사를 출근하는 것은, 특히 아침에 일어나 출근까지의 과정은 정말 싫지만 지금은 솔직히 회사가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문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긴 하지만 솔직히 정말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히 학창시절의 나는 활기차고 꿈이 많은 아이였는데, 그리고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나는 참 여러 가지를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자 친구도 있었는데.. 30대 후반에 접어든 난 이제 만날 친구도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욕구도 딱히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내가 흔히 말해지는 초식남이 되어 가는 것일까? 물론 요즘도 엄마와 가끔 통화할 때 늘 그렇듯 빼먹지 않고 결혼 이야기를 하지만, 솔직히 내경제 상황으로 보아, 나이로 보아, 직장 상태로 보아, 연봉으로 보아 누구와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요즘 같아선 남자의 결혼 준비에 대한 기본적 요구 사항이 너무도심한 경향이 있어서 몇 차례 소개팅에서 약간의 짜증을 느낀 후로는 아예 여자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까지 생겨버린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뭔가 해결할 고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이 부분이 영 쉽지 않다. 이것은 마치 매일 나를 둘러싼 쇠로 만들어진 견고한 고리가 점점 길어지고 두꺼워지면서 보이지 않게 나의 삶의 선택의 폭을 옭아 죄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나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기 보다는 이미 나의 앞에 정해진 것들을 보면서 그것을 일처럼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산다는 것이 일이 되는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편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머리를 비운 채 나에게 주어진 일을 나에게 허용된 시간을 써서 해내면 그만이다. 물론 인생은 이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회사처럼 따로 월급을 주지 않아서 문제이긴 하지만,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보냈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그것은 과연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말이다. 하루 하루의 시간을 잘 보내었다고.. 그래서 오늘 그리 불행하지않는 하루를 보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태도는 무엇인가 틀어진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나에게 행복이란 목표는 너무도 멀리 느껴지는 파랑새 같다. 난 왜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일까?



토요일인 오늘 문득 부엌의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있는 일인용 식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식탁이 너무도 낯선 느낌에 잠시 혼동을 느꼈다. 분명히 구입한지 서너 달이나 지난 제품인데 왜 이순간 이 식탁이이리 생소한 느낌을 줄까? 나는 분명히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십여 차례 이곳에 앉아서 밥을 먹곤 했는데 도대체 그런 기억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는 그렇게 어느 토요일 아침에 한 시간 동안 우두커니 서서 그 식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간이 흐른 것도 한참 후에 시계를 보고 알았고, 그 순간에나는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왜일까.. 이식탁이 오늘 따라 이리 외로워 보이는 이유는. 다른 식탁처럼 네 명이 앉을 자리와 의자가 없이 단지 처음 만들어진 순간부터 오직 혼자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이 식탁이 왜 나는 그리 슬펐을까?



한참을 이유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다가 나도 모르게 거울을 바라보고는 흠칫 놀랬다. 그 순간 거울 속에 비친 내가 마치 그 식탁처럼 낯설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십년이 가까운 세월을 함께한 내 얼굴이 낯설어 보이는 이 순간, 나는 도대체 그 어떤 것에 익숙함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낯설어 졌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어떤 통계에 의하면 2030년쯤 되면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남자가 전체의 30%가 될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아마도 나 역시 이 통계에 30%에 속하는 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혼자 산다는 것은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반대로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그 선택하지 않는 삶의 장점에 대한 끝없는 부러움은 절대 멈추지 않을 테니까.

 

 

가을이 와 무딘 감성이 조금 살아났나 보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니까 말이다. 오늘은 그래서 책을 한 권 사기 위해 서점에 가볼 생각이다.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서 그 책과 함께 하고 싶다.




나는 오늘 살아가게 될까아니면 살아진 것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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