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와의 관계는 인간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래된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 말은 오랜 진화의 과정의 결과로 우리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한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거쳐서 고대 사회를 이룩할 때 인간에겐 이미 죄와 벌에 대한 인식이 함께 하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 실증적 예를 위해서는 오래된 우리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고대의 법률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그 후 수메르 법전이 발굴되기 전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문법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안에 적힌 내용은 도둑질, 살인, 음해등을 죄로 판단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처벌을 내릴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있다. 이 법은 기원 전 1800년전쯤 고대 왕국이었던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 시대에 만들어진 법문으로 돌기둥에 세겨진 법률 책이었다. 이 법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는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문장이다.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보다 더 오래된 성문법으로 알려진 '우르남무의 법전'(수메르 법전)에서도 살인, 절도, 간통 등에 대한 신체적 처벌과 금전적 처벌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이 법률은 기원전 2100년 전쯤에 작성된 것이라고 하니 지금부터 약 4천년 전에 기록된 법률인 것이다. 그런데 법률의 단순성 말고 그 내용만으로 보면 현대 사회에서 주로 적용되는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처벌과 크게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에서도 이와 같은 법률이 있었는데 국사 시간에 배웠듯 그것은 바로 '팔조법' 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법률에서도 살인, 도둑질 등에 대한 신체적, 금전적 처벌이 기록되어 있다. 고조선의 팔조법 역시 시대적으로 기원전 천년 전쯤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고조선에 대한 유적이나 유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종교에서도 이것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고대 유대인의 선지자 중 한사람인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십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십계명도 일종의 성문법인데 거기에도 역시나 살인, 도둑질, 간음에 대한 내용이 있다. 물론 십계명은 처벌에 대한 내용이 없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내용만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면 신이 그것을 단죄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세 역시 기원전 1200년 전쯤 인물로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와 유사하다.
이런 고대의 법률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패턴을 통해 유사한 항목들을 따로 정리해보면, 과연 고대의 초기 사회 형성 시기에 우리가 모여서 살아갈 때 어떤 문제들이 자주 발생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살인이나 상해, 도둑질, 간음이나 간통, 강간 등의 성범죄에 대한 내용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근본적인 범죄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틀림이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종류의 범죄 행위는 현대 사회에 와서도 거의 모든 범죄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단지 문명이 발달한 우리 사회에서는 이것이 좀 많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을 뿐, 남의 몸에 해를 입히고, 남의 재산을 탐하고, 성폭력이나 간통 등의 성에 관련된 범죄가 우리가 저지르는 범죄들의 거의 대부분이고 좀 다르다고 해도 이것의 응용일 뿐이다.
법을 토대로 범죄를 판단하고 적절하고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직업을 사법관이라고 한다. 보통 검사나 판사로 호칭되는 이들은 사법 공무원 시험인 사시를 통해 합격한 사람이며, 이 시험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험이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배워야 할 법 자체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인데 그만큼 현대의 법은 과거의 함무라비 법전등과 비교해서 상황에 따라 복잡하고 세분화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범죄에 근간은 거의 유사하다. 우린 아직도 살인,상해,재산 갈취,도둑질,성폭력,간통 등의 죄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범죄를 양산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이 어떤 것일까?
보통 사람이라면 죄를 저지른 인간이 받는 최고의 형벌을 사형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사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는 인간이 저지른 가장 악날한 범죄라는 뜻도 된다. 따라서 우리 사회 보편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볼 때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범죄를 나열하면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악의 범죄가 된다. 그리고 당연히 여기에 타인이 목숨을 뺏는 살인은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살인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로 인정될 수 있는가? 물론 이 가정에는 어느 정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인간이 다른 인간의 목숨을 뺏는 행위는 우발적이어거나,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거나,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어떤 좋지 않은 목적이 있는 것이 맞다. 법원에서도 어떤 범죄가 우발적이었느냐, 계획적이었느냐에 따라 형 집행에 있어서 큰 차이를 두고 있으며 거기에 더해 범죄 후 그 사람의 행동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튼 어찌되었건 간에 살인, 강탈, 성폭행은 명백한 죄이고 이 행위에 대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대부분 그것을 신고를 하고 그것에 따라 경찰이나 검찰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 체포가 이루어지면 그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린다. 즉 눈에 보이는 범죄 행위는 명확히 처벌된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그저 우리 인간의 본성에 따른 행동에 대한 처벌로 인식될 수 있다. 즉 우린 원래 그런 존재이나 법 집행을 통해 단죄받기 싫다면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어떤 범죄들은 실제로 심각하고 또한 매우 악날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명시적으로 들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해 수면 아래에서만 숨겨져 있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 이런 범죄 행위는 실제로 살인이나 도둑질 만큼이나 나쁜 행동이다. 그럼 이제부터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하겠다.
왕따는 청소년들과 또는 성인관계에서도 나타나는 집단 따돌림 현상이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어울리기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서 핑게를 대거나 혹은 최소환의 관계만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어떤 종류의 개인적 따돌림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수가 소수를 상대로 암묵적 합의에 의해 혹은 아주 대놓고 행해지면 이것을 왕따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특히 요즘 청소년기에 아이들에겐 성적과 함께 매우 중요한 고민꺼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왕따를 하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배력 확인을 통해 이권 챙김일 것이다. 보통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은 그럴 꼬투리를 잡힌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 꼬투리는 그 사람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집이 가난해 남루한 옷을 입거나 남들과 비교해 어눌한 외모를 가졌거나 성격이 소심해서 자신감 없는 태도로 살거나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어떤 이유로 인해 왕따가 되기 시작한 사람이 생기면 소위 그들이 세상에서 악당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그 대상을 괴롭히고 돈을 갈취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말 그대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세상이 도래한다. 이 집단 괴롭힘의 특징은 그것을 당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죽음과 같은 고통을 안겨줄 수 있지만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은 지나가는 개미를 죽이는 행동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래서 훗날 이 문제로 인해 왕따 당한 아이가 자살을 하거나 큰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 제공자인 이들은 꼭 이런 말을 한다. '그냥 장난으로 한건데..' 우리가 땅을 기어가는 개미를 돌로 막거나 침을 뱉는 행위를 하는것은 개미를 향한 장난이다. 하지만 개미는 그것으로 인해 죽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말하는 장난이란 말은 그 스스로 제대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인해 누군가를 왕따 시키거나 동조했다면 그 아이는 이미 지배력을 통한 권력의 맛을 보고 있거나 혹은 권력에 달라 붙어서 이권을 챙기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자체가 원래 그런 사회라서 아이들은 이것을 범죄로 여기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왕따를 악날한 범죄 중 첫번째로 뽑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그 범죄에 대한 양심적 가책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학창시절을 보낸 후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가해자는 과거를 거의 잊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착한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피해자는 이 상처를 거의 평생을 가져가야 한다. 물론 살아남았을 때 이야기지만.
왕따는 보통 육체적으로는 치유 가능한 상처를 입힌다. 때리긴 해도 죽을 때까지 때리진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왕따를 시킬때 당하는 당사자는 그의 정신세계 정말 치료 불가능한 굵은 상처를 입게 된다.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 모든 가치를 증명받고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들의 무리로부터 쫒겨나고 괴롭힘을 당할 때 그 사람이 받을 정신적 충격이 어느정도 될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한다. 특히나 가해자들은 그것을 인식조차 못한다.
왕따는 실제로 사람의 정신적 영역을 거의 영구히 손상시키는 치명적인 범죄 행위이지만 육체적, 금전적으로 명확한 피해가 없다고 해서 피해자가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한 그러한 죄를 지었다는 인식도, 또한 어떠한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는 범죄행위가 되어 버렸다.
두 번째로 다룰 범죄는 바로 권력 남용이다. 인간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직업을 갖고 그 활동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 이 원칙은 소위 대기업의 회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단지 월급쟁이가 아닐 뿐 그 역시 일하고 남들보나 많은 돈을 받는다는 점만 다르다. 그리고 이런 직업들 중엔 우리 사회가 그 사람의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유지시키는데 어떤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은 직업도 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들이 이런 직업 중 하나이다. 그들은 국민으로부터 선택된 법대로 정의된 정부의 역할에 따라 사회적 이득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중재 등의 과정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합의에 이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또한 개인의 이득이 사회 전체의 이득을 침범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공공의 이득을 뺏어가는 경우엔 그에 합당한 절차와 처벌을 통해 일명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즉 다 함께 잘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존재한다. 회사에서 많은 이들은 현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어떤 부서들은 뒤에서 그들을 지원해준다. 특히 여기에서 직원들의 업무를 평가하고 이를 통해 상벌을 결정하는 인사권을 가진 부서는 사회에 대한 공무원의 입장처럼 회사내의 미래의 발전을 위한 공정성을 위해 일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권한을 가진 이들을 권력이란 말로 표현한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존재는 바로 공무원들의 CEO인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투표로 뽑는다. 그래서 대통령은 그 권한을 가진게 아니라 국민들이 투표를 행사해서 권한을 잠시 쥐어 준 것이다. 우리 모두 잘 살수 있도록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 어떤 대통령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결론적으로 모두 권력을 움켜쥔 것이지 권한을 위임 받은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그렇다면 그 밑의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사법부에서 일하는 판검사들 역시도 권력자들이다. 물론 그런 권한을 줘서 그 역할을 하게 했으니 그건 당연한다. 판사들에게 왜 죄인을 처벌하냐고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만약 어떤 판사가 특정 판결이 자신의 이득과 관련된 사안이 있을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했다면? 아니면 같은 부서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친인척이 받을 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을 낮췄다면? 혹은 개인적인 복수심에 의해 특정 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준을 상식 밖으로 높였다면?
우리 인간이 참기 힘든 것이 무엇일까? 배고픔? 불행함? 똥마려움? 슬픔? 이별? 뭐 물론 이것들 다 참기 힘든것은 맞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정말 참기 힘든 것은 바로 '분노' 이다. 분노는 우리의 감정에 대한 모든 조절력을 상실시키고 이성적 판단이나 기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제어권을 무력화 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심한 분노를 느낄 때 그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살인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우리가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차별을 당했을 때이다. 즉 동등한 권한을 가진 그 자신이 그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특혜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우린 정말 큰 분노를 느낀다. 거기에 그 특혜가 불법적인 행위를 통한 것이고 그것이 그 권력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말이다.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던 사람이 고위 소득층들이 거의 탈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때 세금을 잘 내고 싶은 욕구가 사라져 버린다. 열심히 준비한 수능을 치룬 후 자신이 지원한 과를 그 대학 총장 자녀가 편법으로 입학을 해 자신이 불합격 된 사실을 알게 되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어떤 사회가 건강하려면 단 하나만 지키면 된다. 어떤 사람이든지 잘못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그래서 이 잘못을 입증하는 사법부만 제대로 일을 하면 공동체에 생기는 수많은 문제점이 해결 된다. 하지만 우리는 새치기 하는 것을 능력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누구나 사방팔방 인맥을 동원해 의사와 연결하여 수술 날짜를 하루라도 빨리 잡으려고 한다. 이것은 버스를 타기 위해 서 있는 줄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우린 마음껏 인맥을 통해 새치기 한다.
즉 우리는 먹고 산다는 핑게를 통해서 반칙을 통한 이득 챙김에 매우 익숙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익숙해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권력으로 바꾸어서 이젠 본격적으로 이것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현상은 사회 전체로 퍼진다. 결국 그래서 어떤 권한이라도 권력화 시켜 이용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무능하거나 유도리 없이 원리 원칙주의자로 여겨진다. 또한 주변에서는 늘 이런 작은 이득챙김에 대한 부탁이 들어오고 이것을 해주지 않으면 인정머리 없거나 자신에게 무례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당한 부탁을 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당신 두고 봐' 혹은 '당신 그 따위로 살아봐'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역시 왕따와 비슷하다. 스스로 하든 누군가의 부탁을 받든 상관없이 권한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남용해 자신이나 지인의 이득을 챙김으로서 사회 전체적인 위화감을 조성하고 공정성을 해침으로서 그것에 소외된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어 우리 전체가 불행해지는 것으로 진행되어 간다. 즉 이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전체를 불행으로 몰고 가는 것인데도 현재 이것은 당연시 되고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처벌 받지 않는다.
왕따와 권력 남용, 두 범죄 행위는 보이지 않는 곳의 범죄, 그리고 처벌 받지 않는 범죄라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사회 시스템이 발전해 나갈수록 이런 종류의 범죄는 감소하고 있다. 그와 달리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초반에 설명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기본적 범죄 행위인 살인, 도둑질, 성범죄는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그 자체가 우리의 본성이기 때문에 절대로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따나 권력 남용은 분명히 막을 수 있는 범죄이다. 이것은 실제로 범죄라기 보다는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개개인의 인식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하지만 이득 추구엔 한계가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득만을 추구하다간 결국 충돌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법을 정하고 이것을 집행하여 사회의 공평성을 유지한다. 결국 우린 이것이 유지됨으로서 사회에 소속되며 그 사회 역시 연속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너지는 세상는 결국 뒤집힌다. 과거 인간의 역사에서 보면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결국 그 모든 과거 권력이 무너지는 것은 그 근본 원리가 무너진 것의 결과일 뿐이다.
과거 많은 나라에서 일어난 수 많은 혁명들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권력자들이 타락하고 부패해서 그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기고 타인과 어울려 살기 보다는 군림하고 하나라도 더 뺏어가고자 했으니 그 사회에 쌓인 불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시대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범죄란 살인,폭행 등만을 생각한다. 폭력에서도 실제 물리적인 폭력만을 심각하게 여길 뿐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언어적 폭력에 대해서는 그 증거가 애매하고 상대적이란 이유로 인해 아직도 지켜야 할 선 조차 제대로 그어져 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인터넷엔 그런 존재들이 또 다른 인격을 만들어서 수 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활동 중이고 거기에서 타인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비난하는 행위를 전혀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살아간다.
사천년 전에도 범죄였던 그리고 사천년 후에도 범죄일 그런 것들은 결국 우리가 안고 살아가야 할 우리의 본 모습이다. 하지만 왕따나 권력 남용과 같은 것들은 우리 스스로 인식의 변화를 통해, 교육을 통해 바꾸어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전단계에서는 우리 개개인 스스로의 인식이 필요하다. 우린 오늘도 또 누구를 왕따 시키며 또 어떤 이득을 위해 원칙을 깨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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