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절 그리고 휴대폰 같은 장치도 없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였을 때 보통 일반적인 집엔 필름 카메라가 한대 정도는 있었다. 그것은 보통 특별한 날, 놀러 가거나 혹은 졸업식, 입학식 등에서 쓰기 위해 둔 것으로, 필림으로 찍어야 했기에 보통 24장이나 좀 장 수가 큰것은 36장짜리 필름이 사용되곤 했다.
처음에 사진은 사진관에 맡기면 거의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찾아야 했지만 그 후로 기술 발달이 이루어지자 맡긴 후 거의 30분 이내로 현상을 해주는 즉석 현상점들이 꽤나 많이 생겼고 호황도 누린 듯 하다. 그리고 이 전체 과정을 기다리는 것을 지루해하는 고객을 위해 폴라노이드, 즉 즉석사진기도 나왔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현상을 하고 나면 이것을 앨범이라는 사진을 끼울 수 있게 만들어진 커다란 책에다가 꼽아 두고는 가끔 쳐다보곤 했었다. 아마도 지금은 이런 것이 거의 사라진 듯 하지만.. 그래서 거의 모든 집에 가면 오래 된 앨범이 몇 권씩 있곤 했다.
나 역시 내가 살아가면서 담아 놓은 사진 앨범이 두 권 정도 있었다. 그런데 아사를 자주 다니고 군대를 갔다오니 어디 갔는지 사라져버렸다. 어찌보면 나의 어린 시절과 20대 초까지의 시간이 모두 담겨진 사진이 사라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튼 그 후로 나는 사진을 잘 찍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로 시간이 한참 흘러 우린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이 개인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도 꽤나 괜찮은 카메라이고 찍으면 바로 바로 확인 가능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공유도 할 수 있다. 현재 내 아이폰에서 이런 사진이 천장이 넘게 담겨 있는데 가끔 용량 때문에 지우곤 한다.
스마트 폰과 10년 이상 유행처럼 보급된 디지털 카메라의 활황 덕분에 이젠 어딜가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흔하게 본다. 그래서 이젠 모두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머리 속 말고도 사진으로 남겨서 기록해 두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또한 그런 사진들은 많은 SNS에서 담겨 공유되고 칭찬되고 부러움을 얻게 되며 공통 관심사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과거의 경험하고 지나간 것들은 모두 기억이라고 표현 된다. 그 중에서도 당시 기억 중 꽤나 감성적으로 좋은 느낌을 주었던 기억을 따로 모아서 추억이라고 이름 지어 두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머리 속에 남은 그 감정의 느낌과 함께 그것을 느꼈던 시절의 모습을 빛이 정지된 모습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담아 기록해 둔다.
가끔 그것이 원래 목적을 뛰어 넘어서 기록을 남기는 것에 목적을 둔 사람들도 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그것들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저 느낌만 남을 수 있는 경험들이 꽤나 명료하게 추억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그래서 정말 많은 사진을 찍어 그것을 남기고 공유하기 위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그리고 아이가 즐겁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정지시킨다. 사람을 만난 사람들, 자연을 만난 사람들, 음식을 앞에 둔 사람들, 꽃을 즐기는 사람들, 하늘의 별의 찍는 사람들까지 모두 그렇게 시간을 정지 시키려고 한다.
크리슈씨가 말했던 기억은 과거이고 고정된 것이고 그래서 기억을 남기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린 기억을 남김으로서 행복한 한 때를 다시 추억할 수 있음으로서 그때의 기분으로 되돌아 간다. 이 두가지 상충된 관점에서 나는 어떤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물론 나는 크리슈씨 처럼 깨달은 자가 아닌 일상적인 인간이기에 나 역시 기록을 남기고 추억하는 행복에 더 익숙한데 만약 정말로 기억을 남기기 않을 수 있다면 어떤 삶이 될까?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상상하는 천국과 같은 삶이 될 가능성도 있긴 하다. 오늘 새롭게 느낀 삶의 즐거움이 내일이 되면 또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영원하게 새롭고 신기함을 접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셈이니까.
하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은 꼭 반드시 기억을 해야 한다. 그것은 경험이며 그 경험 덕분에 우린 사회 속에서 큰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경험의 기억과 감정의 기억을 따로 분리해서 내 머리 속에 남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으로 남은 기억은 그것을 조금 더 일상적인 인간의 편에 서게 만들어 주는 경향은 있다. 우리의 망각 능력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잊게 만들어 주는데 우리가 담은 정지된 영상은 그것을 끊임없이 구체화 되게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 기록을 되돌아 보면서 그 때의 기분에 잠시 잠기는 즐거움도 쏠쏠한데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가는게 나을까?
그 답을 제대로 내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요즘 들어서 더 강하게 확신이 되는 행복에 대한 나 자신의 개똥철학은.. 일반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는데 그 원함의 정도가 너무 강해서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진 행복은 역시나 얻어진 속도 만큼이나 쉽고 빠르게 과거로 사라지고 우린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행복을 찾고 새롭게 찾아진 행복은 과거의 행복을 덧씌워 잊혀져 버리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전체 과정을 익숙함 혹은 질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수 천장을 찍은 내 사진과 단 한장만 남은 내 사진에서 그 사진이 가진 가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결국 우린 더 많은 사진을 찍음으로서 모든 사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록을 하다는 것은 꽤나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기록을 한다는 것이 너무 자주 일어날 때 우린 각 기록이 갖는 가치를 전체적으로 하락 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린 그 어떤 것이든 한계치를 갖기 마련인데 그것을 충족시키는 요소가 늘어나면 날수록 각각이 지닌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더 쉽고 더 빠르게 남기는 이런 기록들은 우리를 더 빠르게 더 쉽게 행복하게 해주겠지만 결국 우리를 이런 행복에서 대한 무딘 존재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요즘 시대의 변화와는 다르게 점점 더 느리고 천천히 얻어지는 행복과 그런 삶에 대한 동경이 높아진다. 결국 내가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거나 혹은 그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나는 나만의 행복을 향해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길은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가는 고속도로가 아닌 구불구불 돌고 돌아서 절대 속도를 내기 힘든 어느 시골길의 정겨움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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