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본질과 가치

아이루다 2013. 9. 27. 13:04

 

사람은 그 스스로 인식을 하든 못하든, 그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종류의 가치라도 추구하게 되는 특징을 가진 존재이다. 여기에서 쓰인 단어가 '가치'라고 표현되어 마치 그것이 뭔가 의미있는 것이라고 착각 할 수 있는데 이 가치라는 단어는 아주 단순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고를 때 이 가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구매라는 것 자체가 바로 가지고 있는 화폐를 제품이란 가치로 환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어떤 제품을 사야 할 때 나열되는 그 많은 경쟁 제품들 중 단 하나를 선택해야 할 스스로 만족 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만 결정 할 수 있다. 즉 디자인이 마음에 들거나, 가격이 좋거나, 친구가 추천하거나, 하다 못해 판매하는 직원이 친절해야 그 제품을 산다. 이런 과정은 그 제품의 가격이 1억이거나 천원이거나에 따라 다르지 않다. 우린 10원짜리 제품을 살 때도 이 제품이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제품인지 생각 해본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를 느끼는 기준이 다르고 대상이 다르기에 우린 이것들을 통털어서 '가치관' 이란 말로 표현하고 그것을 개개인의 특징적 요소로서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들 스스로 정의하는 인간이란 동물은, 가치관에 따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움직이고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관에는 공통적으로 인식하든 못하든 간에 그 자신의 행복에 대한 욕구가 숨겨져 있다.

 

때론 어떤 가치관들은 그 방향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얻기도 한다. 보통 그런 종류의 가치관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동, 전체를 위한 희생, 손해를 감수하고도 남을 돕는 행위 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개개인이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고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결국 이런 사람들의 행동으로 인해 다수가 작거나 큰 이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 일제 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그 목숨을 바친 분들이나 전쟁 중 전사한 분들 그리고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모두 그런 가치를 가진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우린 어려서부터 옳바른 가치관을 형성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받는 교육의 일부는 이런 가치관 형성을 위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내용엔 보통 공중도덕 지키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옳다고 믿는 일을 하기, 애국심에 대한 의식 등등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때 우리가 남들과 어떻게 잘 살아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이 주로 설명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가면서 이런 교육과 아무 상관없이 자신의 이득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로 지속적으로 변해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교육을 받은 결과로 인해 커서 성인이 된 후에도 공공의 선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이들도 소수 존재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가진 구조적인 문제나 혹은 불합리함, 부조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분노하며 그것을 없애기 위한 작은 행동들을 하기도 하고 거의 직업으로 삼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들은 작게는 주변인들과 나누는 대화부터 시작해 어떤 기사들 밑으로 자신의 생각을 인터넷 댓글로 달기도 하고 좀 더 행동한다면 집회에 참석하거나 아예 시민단체에 취직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과 달리 그 가치를 온전히 그 자신이나 가족 정도에만 두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수가 훨씬 다수라는 것은 현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 자신과 관련된 주변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집중시키고 혹시라도 공공의 영역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땐 그 자신의 이득과 손해에 관련 경우에만 그렇게 행동한다.

 

아무튼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든 이런 가치관을 포함한 다양한 기준점에 의해 인간은 그 생에서 추구하고 도달할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그 삶 자체가 결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린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추구하는 그 가치란 단어가 품은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앞서 말했듯 가치는 개인별로 추구하는 행복을 위한 방법론이다. 그런데 우린 이 가치가 공적인 영역을 향하고 있을 때 이 가치를 더욱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분명히 공적인 영역을 향한 가치추구는 어떤 식으로든 그 자신에게 손해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서 손해를 보면서 추구하는 가치추구란 뜻으로 해석이 됨으로서 그 가치가 다른 가치들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왜 착각이란 용어를 썼는지에 대해서 이해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아주 쉬운 예로 누구나 좋아하는 돈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아주 특이한 사람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부분의 모든 사람은 돈을 좋아한다. 그것은 돈이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 그 자체를 하나의 가치로 정의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즉 돈이 가치관이 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자. 돈이 무엇인가? 돈은 물론 교환 수단이다. 그 돈이 합법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믿어지는 공간에서는 그 어떤 제품과도 교환이 가능한 경제적 수단이다. 이 설명에서 수단이란 말이 두 번 반복되었다. 즉 돈은 어떻게 설명을 해도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돈은 목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다. 왜냐하면 돈을 갖게 되면 당연히 따라 올 교환 가능성을 이미 머리 속에 계산해 두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돈을 목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가치의 착각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예이다. 물론 많은 이들은 이런 착각에 대해 벗어나 있거나 인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오는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제품이나 그 어떤 다른 가치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자 이제 돈을 벌어서 해외 여행을 갔다고 치자. 유럽 14박 15일짜리 여행을 갔다. 그럼 이 여행이 가치가 되는 것인가? 유럽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그 사람의 가치가 될 수 있는가?

 

아마도 많은 이들은 가치가 된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의 삶과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하는 멋진 풍경, 이국적인 분위기 등등. 하지만 평범하게도 여기에서 누군가 행복해서 갔어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만이 유일한 정답을 말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대답에서 이 말은 너무도 당연하기에 쉽게 입에서 나오질 않는다.

 

돈은 수단이고 여행도 수단이다. 돈으로 산 멋진 최신형 스마트폰도 수단이고 카톡도 수단이다. 카톡을 통해 나눈 대화도 수단이고 그것을 통해 주고 받은 사진들도 수단이고 그 사진에 달린 풍성한 댓글들도 수단이다.그 모든 대두분의 것들은 다 수단이지만 우린 그것을 가치로 평가하는 착각을 한다. 여기에서 유일한 가치는 바로 그것을 하고 있는 그 자신의 행복이며 이 행복은 자신의 생존과 연결된다. 그것만이 유일한 본질적 가치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누가 그것을 모르냐 라고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 통장에 잔고가 늘어갈 때 그 돈을 어떻게 써서 내가 행복할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는가? 물론 가끔 사고 싶은 제품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제품을 사면 내가 왜 행복해질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린 그건 것들에서 왜 행복을 느낄까? 정말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행복이라고 믿는가?

 

우리 인간은 생각보다 정말 많이 유치하다. 우리 스스로 연기를 통해 속이고 있을 뿐. 우린 맛난 것을 먹으면 행복해 한다. 동물들도 똑같다. 단지 우린 남들과 맛난 것을 먹을 때 너무 많이 먹으면 평판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 쯤은 알기에 적당껏 눈치를 보면서 먹어야 하는 것을 아는 동물이다. 하지만 개들은 싸운다.

 

우린 개와 다를 바 없는 동물이지만 사회적 관계에서 살아가야 하고 또 그것을 계산할 정도의 머리가 있기에 늘 연기를 통해 그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숨긴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 오래 숨기다 보니 이젠 정말 연기를 하고 있는 그 자신이 자신의 본질인 줄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내가 더 잘 안정적으로 오래 살 수 있을 가능성을 느꼈을 때이다. 그래서 배부르고 잘자고 운동하고 돈 벌고 머리속에 지식을 많이 넣고 남들보다 뛰어나면 행복하다.

 

단순화 시켜서 돈을 많이 벌어서 맛난 먹거리를 즐기고 편하게 사는 것이 완벽한 행복이라면 반대로 무인도에서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최고의 불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쫄쫄 며칠을 굶은 후 재수좋게 잡은 물고기 한 마리는 어떤 경우엔 한끼에 1억을 하는 식사보다도 더 행복을 줄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반대로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우리 대부분이 이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치추구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적 현상만을 바라보게 될 때 이런 착각을 한다. 예를 들어 좋고 비싼 자동차는 원래 그 자동차의 성능이나 안정성의 기능성 우위로 인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하다는 것으로 본질적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과연 비싼 좋은 차를 단지 이런 인식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것이 심하게 왜곡된 경우엔 우린 비싼 차는 그저 그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표현해주는 하나의 증표로만 받아 들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본질과 가치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보자. 여기에서 우리의 가진 감각기관과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 해석하는 우리의 인식능력은 중요하게 작동한다. 우린 세상 모든 사물을 이해할 때 자신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자신의 뇌 속에서 해석하고 설명해내어 결국 자신만의 지식으로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것은 그 대상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아니란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린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운 자연 현상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무지개의 본질은 빛의 파장대별 분리 현상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 본질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때 굳이나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 그것이 왜 아름다울 수 있는지나 혹은 더 깊이 들어가서 빛의 본질에 대해 딱히 알고 싶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런 인식력 부족으로 인해 우린 어떤 사물이나 생각 등이 갖는 그 근원적인 본질성은 보지 못한채 그것을 우리가 가진 다섯가지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만 조합시켜 거기에 살아오는 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더해서 최종적으로 자신만의 것으로 가치화 시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본질이 우리가 인식한 가치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면을 말하고 있다.

 

즉 본질은 정말로 그 사물이나 생각들이 가진 본연의 특성이고 우리가 인식하는 가치는 우리의 뇌에서 해석된 결과란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감각기관은 얼마나 편협적일까? 우린 무한대에 가까운 정보를 가진 빛, 소리, 공기, 맛 등의 정보 중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극히 일부만을 인식하여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이 다섯가지 감각 자체에 인식되지 않는 사물의 실체적 특징은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우린 다른 감각기관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기에 이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서 앞에서 언급한 공공의 선에 관심이 많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추구를 의미있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가끔은 집회에 나가기도 하고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해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혹은 그녀는 자신이 믿는 그 가치가 매우 중요하고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정말로 민주주의 라는 것이 본질적 가치일까? 물론 민주주의는 중요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정치제도 중 하나 일 뿐이다. 단지 그것이 현재 사회에서 가장 유용하고 합리적이라고 알려진 제도이다. 과거 그리스에서 이런 민주주의가 있었다. 그들은 모여서 토론하고 회의하고 결정하고 집행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살던 어떤 다른 이들은 이런 민주주의를 매우 불합리한 제도라고 표현했다. 왜냐하면 결정에 있어서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다수결의 원칙인데, 이 다수결의 원칙만큼 웃기는 것이 어디 있는가? 반이상 옳다고 말하면 나머지는 그들의 판단이 완전히 무시된다. 즉 다수결은 원칙이 아닌 수단이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은 다수결을 통해 결정된 것이라고 하면 완전히 고정된 결론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결함이 많은 제도이다. 그래도 우리 인간이 채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얼마전 우연히 도올선생이 한 강의를 잠시 본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의 본질은 그 제도를 통해 부패를 막아내는 것이다"

 

나는 강의 중 민주주의를 우리의 본질이 아니라고 한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의 본질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라고 잠시 생각을 했었다. 내 머리 속에는 딱히 그것에 대한 대안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패의 종식' 이란 말을 듣는 순간 어느 정도 공감은 되었다. 물론 완전히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하나의 본질에 가까워 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좋은 제도이다. 그리고 제도라고 하면 방법에 대한 이야기 혹은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마치 돈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민주주의는 가치가 아닌 방식이며 도구이다. 우린 그것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 싶은 본질, 즉 부패 없는 세상이라든지 행복한 삶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이 모든 것 역시 우리 인간이 가치 있다는 본질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의 공통된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질문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는 가치가 있는 동물인가?

 

우린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해로운 동물이다. 우린 현재 45억년 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우린 우리를 존재하게 해주는 자연을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우리 종족의 번영을 위행 정말로 심각한 범죄행위를 저지르 있다. 지구의 입장에서 본 인간의 본질은 우리가 보는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 바퀴벌레는 우리가 사는 집에서 음식을 섭취하고 살아가지만 적어도 집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본질에 대해 따지면 그리 유쾌하지 않는 결론이 난다. 즉 우리가 그 어떤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본질적 문제로 인해 우리가 하는 그 모든 행동은 단순한 표면적 현상으로만 남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가치 있게 여기는 희생적인 행동이나 삶 조차도 그저 인간의 범주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 우리 종족을 벗어나는 순간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본질은 우리의 지식을 통해 해석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가치는 우리가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우리의 지식을 통해 해석해내는 만들어 낸 개개인만의 만들어진 현상이다. 하지만 우린 살아가면서 대부분 본질 보다는 자신이 평가한 가치에 의미를 둔다. 그리고 그 착각으로 인해 우린 행복할 수도 있고 자신이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그래서 그 자신의 삶이 명확해지고 가치 있어지고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것들은 언젠가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완전한 허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본질이 아닌 우리가 해석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해석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지식의 범주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기기에 그렇다. 여기에서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어떻게 해석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것인데 결국 자신이 살아 오면서 쌓은 지식을 기반으로 해석을 해 놓고는 그것을 절대적 가치로 믿는 행동을 하여 또 다른 그런 절차를 겪고 나온 타인들과의 의견 충돌에 있어서 완전한 대립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를 믿는 사람은 독재나 전체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그 반대는 또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을 비난한다. 실제로 이 정도는 그나마 나은데 어떤 이들은 공산주의를 반대한다고 하면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을 비난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대가 될 만한 시장 경제 시스템인데도 그것을 사회를 관장하는 정치 제도처럼 착각하고 절대화 시켜버리는 것이다. 웃기지만 이런 사람들이 꽤나 된다.

 

지금은 본질이 오도되고 가치가 본질화 되어서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세상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자신이 믿고 따라는 가치가 과연 본질적인 가치인지 아니면 자신의 머리속에서, 타인의 이야기와 평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흐름 속에서 아무런 의지 없이 휩쓸린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기업 광고, 남는 것 없이 판다는 장사꾼의 이야기,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다짐,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의사들의 말, 며느리를 딸 처럼 생각한다는 어떤 시어머니의 다짐,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라는 어느 사장의 설명, 오직 연기만을 생각했다는 어느 배우의 인터뷰,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던 어떤 교수.. 하지만 이런 것에 어떤 본질이 있을까? 그것들의 본질은 단 하나 뿐이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이득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이득은 그들의 행복으로 연결이 된다.

 

거기에 더해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위해 이 추운 겨울에 근무를 하고 있다는 어느 군인의 힘찬 대답소리,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다는 어느 체육 선수의 출국 인터뷰,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어떤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 자신에게 있어서 음악만이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어느 성공한 지휘자의 인터뷰, 너를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 어떤 부모의 회한에 찬 일성.. 말을 하는 당사자도 그것을 듣는 사람도 모두 같이 착각에 빠져드는 이런 가치 부여도 있다. 이것들의 본질은 자신이 가진 욕망에 대한 인식조차도 못하여 결국 다 함께 그럴듯 하고 모양새가 좋다는 착각이라는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래서 우린 이젠 본질에 대한 생각은 모두 지우고 오직 이런 가치화되고 본질화 된 수단들이 우리의 삶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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