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지인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그 내용은 개인적인 대화 내용이 아니고 어디선가 긁어온 대화내용이었는데 바로 신의 존재에 대한 세사람이 나눈 논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꽤나 전문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논리력이 돋보여서 기억에 남는 글이었다.
일단 나는 무신론자이다. 물론 그 글을 보내준 지인도 무신론자이다. 그리고 둘은 한참 그 대화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래봐야 무신론자 둘이 무슨 내용을 이야기 했겠는가? 당연히 주로 이야기한 내용은 신을 믿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란 이름으로 포장된 유대인의 민족신인 야훼와 그 신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알려진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비정상적 사고방식을 궁금해 하는 내용으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본 글의 논쟁처럼 '신' 이 존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아니고 내가 믿는 신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난 단지 나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여기면서도 나도 모르게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믿으려고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종교라고 분류된 거의 모든 사상을 믿지 않는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남랭호랭교 등등 우리가 접하는 종교의 가지수는 크게 많지 않아보이지만 실제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민족의 토착신앙까지 다 따지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을 그 모든 종교를 부정한다. 아니 이것은 실제로 의도한 바가 아니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게 되며 적당한 지식만 갖추게 될 때 절대로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과학의 연구를 합하면 신이 인간을 만든게 아니라 우리가 신을 만들었음이 너무도 정확하게 사고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과학을 맹신하지도 않는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과학은 매우 대단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우리의 유용한 학문 분야이긴 하지만 우리의 수준은 아직도 너무도 밑바닥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매우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고 자부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우리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 수준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린 우주의 기원을 말하고 세상의 모든 근원을 알았다고 말하지만.. 우린 기껏해야 진화가 우리에게 선물해준 다섯가지 감각을 토대로 그 모든 근거를 마련 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 다섯개의 감각이 과연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일까?
그래서 우리의 과학을 믿는 것이 조심스럽다. 물론 종교인들은 과학을 믿지 않으면 그 반대로 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진화론을 부정하면 그것이 창조론을 옹호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우수운 착각 중 하나이다. 진화론은 다윈 이래 오랜시간 연구에 의해 끝없이 공격 받고 또 끝없이 방어하고 그렇게 진보되고 발전해 온 과학계의 중요한 이론 중 하나이다. 반대로 창조론은 누가 썼을지도 모를 유대인 경전에 나온 하나의 글귀이다. 단 하나도 증명된 사실도 없는 그냥 우리 단군신화 같은 이야기이다.
진화론의 반대를 창조론으로 보면 이런 문제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진화론을 믿지 않고 우리 민족의 고대 설화인 단군조상님이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라면 진화론을 부정함은 바로 우리가 곰이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어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일부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된 것이 말이 되냐고 하는데 그럼 곰이 마늘 먹고 여자가 되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창조론는 그냥 문서화 된 유대인의 기록이다. 그 문서는 구약이란 이름으로 칭해지며 그 내용은 매우 심하게 짜집기해서 몇천년 전 중동지방에서 떠돌던 이야기가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우리의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만약 우리 민족이 고대에 매우 거대한 왕국을 세우고 큰 힘을 발휘했다면 지금쯤 세계의 중요 종교 중 하나가 바로 단군교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과학을 믿지 못한다고 해서 종교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나의 최종 판단이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한 무신론자 인가?
그것에 대해 좀 생각을 했었다. 과연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믿지 않느지를.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내가 믿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다는 것을 느꼈다. 단지 그것이 어떤 구체화된 종교나 과학논리로서 규정되지 않을 뿐, 내가 믿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거나 혹은 나는 현재 내가 믿을 것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믿고 싶어하거나 혹은 지금 현재 믿고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방금 전에 언급했듯 그것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기엔 너무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믿는 '神' 은 안 믿지만 '信' 은 믿는다. 간만에 한자를 썼는데 아무튼 앞자는 귀신신이고 뒷자는 믿을신이다. 나는 나와 관계가 된 사람들을 꽤나 절대적으로 믿는다. 물론 그 믿음이 100%까지 올라온 사람은 겨우 두명 수준이다. 그리고 90% 언저리에서 머무는 사람들이 또 하나 둘 정도 있다. 아무튼 그래도 나는 사람을 믿는다. 그렇다고 신처럼 믿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 가치를 믿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을 믿는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써본다면 실제로 관계에서는 믿음은 강아지가 최고이다. 개는 사람에 대해 절대충성을 보이는 동물인데 그것이 밥을 줘서 그런지 아니면 오래 친해져서 그런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아무튼 신의에 관해 우리가 신을 모셔야 한다면 역시 '개신'이 최고의 권위를 갖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개를 신으로 믿을 순 없을 것 같다.
또하나 내가 더 믿는 것이 있따. 그것은 사람의 삶의 궤적에 대해 믿는 것이다. 말이 좀 어려운데, 당연히 내가 잘 이해를 못하고 있어서 어렵게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노력해서 좀 더 풀어서 써보자면 나는 내가 경험한 모든 인간들과 다른 삶의 살아갈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물론 거기에는 과거의 이 지구에 살다간 위대한 성인들의 발자취가 있고 그 기록이 남아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기록을 모두 믿지 않는다. 문서나 기록은 분명히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적어도 완전히 거짓말을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본 삶과는 다른 길이 있을 것이란 믿음은 결국 나의 삶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종교인들이 그들의 신을 믿으면서 안락함이나 혹은 방향성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이것이 나에게 존재함을 통해 안락함과 방향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보고 삶속에서 익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속에서 경험한 너무도 다양한 인간들의 삶. 하지만 그 근본을 뜯어보면 너무도 단순한 사람의 삶이 나를 너무 지치고 답답하게 하기에 나 스스로 찾아보려는 내 삶의 조그만 다를 가능성에 대한 희미한 끈이 바로 내가 믿는 '신' 이다.
나는 여러서부터 뻔한 이야기를 싫어했다. 아마도 기대나 흥분이 되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그 경향이 내 삶의 뻔한 미래에 대해 매우 많은 실망을 가져다주었다. 심지어 사람들이 너무도 중요하게 여기는 그 많은 절차들도 지금 이순간에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뻔하다. 어제 우연히 결혼식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한 20분 정도 관찰할 기회가 생겼는데 정말 우리는 너무도 똑같은 모습을 살아가고 또 그 표정,행동 하나만 봐도 머리위로 말풍선이 생기는 듯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들이 들리지 않아도 눈으로 보인다.
내가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이 내가 의도하지 않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없다는 가정하에서라면 정말 너무도 단순하고 평범하고 또 예정된 대로 흘러가는 그 수순이 가끔 나를 많이 답답하게 한다. 물론 사람은 또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현재의 나보다 훨씬 나은 삶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음도 간과하지 않는다. 가끔은 그런 삶은 선택했다면 좀 더 쉽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조차 든다. 그냥 나는 다만 좀 다른 답을 찾고 싶을 뿐이다. 세상이 모두 내가 이해하고 내 지식범주 내에서만 돌아가면 도대체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기존의 인간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나를 잘되게 하고, 우리 가족을 잘 보살펴주는 신' 은 별로 탐탁치 않는다. 정말 인간적으로 너무 뻔한 신이지 않는가? 내가 만약 아무런 근거없이 내 가족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종류의 신을 만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상상하지 못하거나 혹은 내 자신의 현재 상태를 극복하고 또다른 정신적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설령 그것이 절대 증명할 수 없는 신과 같을지 모르겠지만 증명이란 것은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하는 것이니 그 자체가 필요가 없다.
내가 나의 종교를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이 아니면 나는 나의 신을 남에게 증명할 필요도 믿음을 가지라고 말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신을 모시고 그것을 세상으로 부터 지키고, 내 상황에 따라 바꾸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착각으로 끝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사람들의 판단기준으로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뭐 어뗘랴. 내 삶인데.
그 삶이 어떤 멍청한 짓이라고 해도 이미 수학공식처럼 답이 정해진 삶보다는 나아보인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단지 이 세상에는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좀 문제인데 그것 역시 내가 아직 남의 이야기를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도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분명히 나혼자만의 신을 가졌다. 물론 아직 덜 구체화 되어 나 역시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긴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정말로 내 마음속의 신을 구체화 시키는 날이 오면 나는 여느 종교인 못지 않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그 내 마음속의 신에게 '나와 내가족을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통해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심을 표출시키는 기도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멀고 먼 별에 가는 상상속의 세상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화속의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이고 전설처럼 내려오는 어떤 사람들의 꿈같은 삶의 몽환처럼 그런 것을 나도 모르게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지 않니한가? 내가 모르는 미래가 있고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어떤 목표가 있음이. 그리고 그것을 내 스스로 나에게 유일한 신으로 섬길 수 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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