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보편성의 역설

아이루다 2013. 3. 22. 09:47

 

아마 우리가 보통 어른들이라 칭해지는 분들이 젊은이들에게 해주는 많은 조언들 중에서-훗날 그 조언에 따르든지 혹은 우연히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지 몰라도- 어쨋든 상당히 만족할 만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남들처럼 살아가라' 는 말이다. 튀지말고 특별하려고 하지말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들 말씀하신다.

 

살아보니 현실적으로 이 조언은 매우 합당하고도 맞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말에 꽤 혹은 어느정도 반감을 갖게 될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다수가 선택한 것은 그만큼 다수에 의해 이미 증명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바로 내가 그것을 선택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즉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은 삶이란 이름을 가진 인생 전체에 걸친 기준은 명확치않지만 아무튼 성공적인 결과를 이끄러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이 평범한 삶에는 몇가지 단점이 있다. 그것은 어찌되었건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애 키우고 늙고 죽는 것. 이것이 평범한 삶의 원형이고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는 삶이지만 결국 이 보편성은 각자가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좁히고 다수의 힘으로 소수의 삶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렇게 사니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용하면서 소위 쏠림 현상이 일어나 많은 혼란스러움을 야기하기도 한다.

 

예를들어 7,8월이 되면 우리나라 전국 고속도로는 주말마다 차량으로 꽉꽉 막히고 좋다고 소문난 바다며 산이며 계곡은 인파로 그득그득하여 쉬러 온 것인지 사람 구경하러 온 것인지 조차 헷갈리게 하는 형편인데 이것 역시 일종의 보편성의 판단 결과이다. 여름이 되면 휴가를 가야하는 문화적 쏠림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왜 우리는 꼭 여름에 휴가를 가는 것일까?

 

아무튼 그래도 때가 되면 씨를 뿌리고 때가 되면 추수를 하는 농부처럼 우리네 인생도 때가 있고 그 때를 놓치면 뭔가가 매우 힘들다. 공부도 때가 있고 결혼도 때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고나면 나중에 하려면 참 힘들어서 보통은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 때가 있으니 당연히 남들처럼 살아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깊이가 있는 조언인지 더이상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 좋은 것에 대한 역설을 말하고자 한다. 이것은 먼저 언급한 단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보편성이 지닌 속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평범하다는 말이 지닌 가장 깊은 우리 심리적 지지대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대체 나는 왜 평범함이 왜 두려움으로 보여질까?

 

쉬운 예를 들어보자. 짙은 회색 쥐가 20마리 있고 하얗고 예쁜 하얀 쥐가 한마리 있다고 치자. 그런데 위에는 이 쥐를 노리는 매가 있다. 그렇다면 이 매의 눈엔 어떤 쥐가 눈에 띨까? 뭐 내가 매가 아니니 그냥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흰쥐가 눈에 보이기 쉽상이다. 그래서 이 흰쥐는 그날 매의 먹이가 되고 만다.

 

남들과 같은 색을 가졌다는 평범하다는 것은 이렇듯 생존과도 관련이 깊다. 물론 우린 우릴 잡아먹는 매의 존재가 없기에 남들과 다르다는 것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평범함은 이미 닦아 놓은 길을 가는 방법이기에 확실히 새로운 길을 뚫는 것보다 덜 위험하여 스스로 생존에 대한 가능성을 매우 높이는 방법론이다. 그러니 어쩌면 평범함은 행복을 위한 길이기보다는 두려움을 피해가는 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이라도 사람들마다 또다른 차이가 더 있다. 어떤 이들은 이 평범함속에서 지극히 높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즉 생존에 대한 안전함만 보장되어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성향이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단순히 이것만으로는 만족을 못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때 문제가 일어난다. 이런 경우가 바로 보편성의 잘못된 적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남의 옷을 억지로 껴맞춰 입은 사람의 어색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삶을 선택했을 때 중위권이나 상위권에 있을 능력이 안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가 된다. 이건 자신의 삶을 매우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되는데 너무도 평범한 삶의 가치기준에서 한발자국도 못벗어나면서 그 기준에 맞춘 서열에서 늘 뒤쪽에 위치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비참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참으로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에 대한 판단을 쉽게 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서 다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기면서 서열을 만들어 내지만 누구도 쉽게 "아 나는 여기에서 뒤쪽 서열을 벗어나기 힘들구나" 라고 판단하지 못하고 계속되는 평범한 삶에 대한 지속적인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이런 경우 아이는 포기할지 모르지만 부모는 전혀 그렇지 않다.결국 여기에서 아이와 부모간의 커다란 갈등이 시작되고 삶의 불행이 잉태된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소위 잘나간다는 상위층에서도 충분히 발생하는데 왜냐면 상위층에서도 결국 서열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상위 10%라고 해도 거기엔 1%, 2%..의 갭이 있기 마련이고 여기에서 하위 1%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상위 1%를 바라보면서 전체의 하위 1%에 못지않은 불행함을 경험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렇듯 보편적, 평범함으로 포장된 삶은 비교중심의 사회에서는 어쩌면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시킴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것에 대한 위험함을 잘 인식하지 못한채 능동적인 삶의 자세보다는 수동적인 버티는 삶을 우리 인생의 현명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생각을 좀 정리해서 표현하자면 어른들이 말하는 평범한 삶에 대한 목표는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란 뜻이다.

 

하지만 아마도 거의 모든 이들이 이것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편이다. 따라서 우린 우리가 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해 부가적으로 필요한 기법을 쓴다. 그것은 자기연민, 자기합리화, 어떤 것들에 대한 집착 등이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부분까지 확장되면 글이 너무 길어질 수 있기에 이것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하기로 하고 이제 좀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제목에도 썼다시피 우린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보편성의 속성은 어쩌면 매우 비참하다. 즉 흰쥐가 되면 죽을 수 있기에 흰색이 아닌 회색을 띄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심지어는 흰색을 띄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염색을 해서 회색이 되는 경우도 많다. 혹은 그 흰색을 두려워하는 부모에 의해 회색 털을 뒤집어 쓰고 죽는 순간까지 그 자신이 흰색 털을 가진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흰색을 남들과 다른 의미를 지닌 삶으로 치환시켜보면 결국 우린 생존에 대한 충실한 목표성때문에 스스로 의미를 벗어 던져버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시간이 난다면 주변 사람들을 보라. 도대체 매일매일 뭘 하고 살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보라. 누군가는 TV 본 이야기를,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는 정치, 부동산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누군가는 그저 한쪽 구석에서 졸고 있고, 누군가는 우울하게 삶을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는 결혼 준비에 한창이며, 누군가는 아이가 아파서 어쩔줄 모르고, 누군가는 주말에 있을 데이트에 마냥 들떠 있다. 이 모든 것이 보편적인 삶의 방법이다. 그리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보편적으로 할 일을 하면서 그것을 정확히 인식 하고 있을까? 두렵지 않기 위해 하고 있다고 말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산다는 것이 뭘까?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란 단순한 생존만의 문제일까? 오래 사는것이 행복한 삶일까?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물론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좋은 것은 의미있게 오래사는 것일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다. 꾸준한 운동, 규칙적 식사, 잦은 건강관리만 지켜주면 된다. 하지만 의미있게 사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우 매우 어렵다. 왜냐면 회색을 벗어난 흰색을 가져야 하는, 보편성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일 수 있다. 무조건 의미있는 삶만을 원한다고 해서 실제로 삶의 의미가 한순간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남들 사는대로만 살아가는 것도 좀 그렇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 전 구간에 걸쳐서 스스로 터득해내야 하는 오직 자신만이 답을 낼 수 있는 절대 보편적일 수 없는 답을 기대하는 질문이다.

 

평생을 남이 내놓은 답만을 따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이제 어떻게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 내겠는가? 설령 낼지라도 그것은 그져 편하게 따라한 흉내에 불과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