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흥분한 감정이 낳는 서투름

아이루다 2013. 3. 31. 10:02

 

사람은 감정적 동물이다. 아니 실제로 좀 더 명확히 말하면 감정에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우린 가끔 우리가 이성을 통해 감정을 제어한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조그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성을 통해 감정이 외부로 표출되지 않게 제어하고 있을 뿐 감정 자체를 제어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깨닳게 된다. 만약 진정 이성을 통해 감정을 완전히 제어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얻은 자일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바로 내가 말하는 감정을 제어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한데 있다. 기본적으로 우린 감정의 흐름에 따라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행복하고, 기분좋고, 문제꺼리를 없애려는 마음 등등) 그것에 대한 통제는 잠재의식과 본능에 의해 뇌를 통해 조절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주는 약품이 바로 마약이라고 부르는 물질인데 뇌의 조절기능을 무너뜨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특정 감정 상태에 빠질 수 있게 해준다. 마약을 제외하면 우린 결국 생존하기 위한 뇌의 끝없는 노력의 일환인 감정 통제를 통해(실제로는 호르몬 작용)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 하루 더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 감정 중 매우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흥분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어린시절, 어떤 재미나고 흥미로운 일을 앞두고 가벼운 흥분감에 잠을 설쳐본 적이 있는가? 솔직히 나의 기억으로 나의 어린시절엔 소풍을 앞두고 전날 약간의 흥분감에 잠을 설친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물론 좀 더 나이를 먹은 후 이성과의 첫 만남이 있던 날이나, 대학교에 들어갈 때, 매우 좋지 않는 기억이지만 군 입대날 등등뭔가 변화된 상황 때문에 잠을 설치거나 했던 기억도 추가적으로 떠오른다.

 

기분이 좋지 않는 흥분감이 있을때와 기분이 좋은 흥분감이 있을 때가 각각 다르긴 한데 오늘은 기분이 좋은 상태의 흥분감에 대한 이야기로 범위를 좁혀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이 감정적 격한 상태가 유지될 때 어떤 영향이 주변에 미치는지에 대한 나 입장에서의 신중함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흥분감은 보통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이 된다. 그래서 적당한 흥분감은 어떤 일을 할때 매우 효과적인 도우미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심하면 너무 긴장되어 실수를 연발하게 하고 너무 없으면 무기력하게 대응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운동을 직업 삼아 하는 선수들도 이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육체적 활동이외에도 추가적으로 정신적 트레이닝도 같이 한다고 들었다.

 

나의 경우에 흥분감 역시 좋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내 기억에 흥분감은 그 시간이 지난 후 되집어 봤을때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약간 흥분하거나 좀 많이 흥분한 상태에서 뭔가를 진행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많은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이런 나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일을 하더라도 평점심을 잃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하고 있으나 내가 감정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란 것은 변함없기에 가끔 나도 모르게 필요 이상의 흥분을 하기도 한다.

 

흥분을 통해 나올법한 실수는 일단 사람에게 주는 상처가 제일 문제이다. 내가 흥분하여 내 상태조차 잘 가늠을 못한다면 어떻게 타인에게 대한 배려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나의 흥분은 나 자신도, 나와 함께한 사람들에게게 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경우가 많다. 물론 어떤 경우엔 이것이 필요하다. 같이 함께할 목표가 있을 경우엔 내 흥분을 상대에게 전파해서 같이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게 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난 같이 달려가기 원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을 놓치고 마는 실수를 한다.

 

나 역시 같이 달리고 싶지 않는데 사람들의 공통된 흥분감에 휩싸인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한 기억이 꽤 되고 그로인해 그것들에 대한 기억이 매우 좋지 않게 남아 있기도 하다. 젊은 시절 술자리가 그랬고, 어딘가에 가서 특정 팀을 응원 해야할 때가 그랬다.

 

흥분을 통한 두번째로 빈번한 실수는 바로 토론중에 나타난다. 그것은 회사와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공식적인 회의실에서도 그렇지만 지인과의 가벼운 대화 중에서도 언제든 그 모습을 들어낸다. 공식장소에서 토론은 주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불필요한 공격과 방어가 주로 나타나고 지인과의 대화에서는 내 의견이 맞다는 것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감정적인 반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화를 내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흥분이 가져온 실수는 너무 빈번해서 솔직히 다 세기도 힘들 지경이다. 보통 살아가면서 생각해보면 우린 거의 하루에 한번 정도는 화를 낸다. 물론 그 경중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람과 상대하다보면 너무도 그 차이가 커서 내 의도가 잘못 전달되기도 하고 반대로 상대의 의도를 내가 잘못 해석해서 자신만의 입장에서 그것을 해석함으로서 나타나는 오해에서 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어떤 경우엔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반드기 '복기' 라는 그 사건이 지난 후 자신만의 생각 되집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경우만 가능하다. 즉 자신의 그 당시 상황을 감정적 흥분이 가라앉은 후 객관적으로 볼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는 노력이다. 보통 사람은 그것보다는 자기합리화에 매우 능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과거의 자기모습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비판이나 후회하기 보다는 합리화를 통해 잊고 그것을 일으킨 상대를 비난하는 것을 훨씬 선호하는 것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이런 흥분감을 느끼는 대상 자체가 줄고 또한 내 나름대로 노력에 의해 늘 주변을 살피고 나의 상태를 중심에 두지 않고 나와 나를 둘러싼 이들의 상태 전체를 보려고 시도해본 순간들이 겹쳐지면서 나름 괜찮아 진 면도 있지만 늘 원초적으로 가진 내 문제는 역시나 여전히 남아 있으며 어떤 상황만 되면 너무도 쉽게 튀어나와 버린다.

 

얼마전 테크노마트에 갔다가 불친절한 직원에게 약간 짜증이 나서 돌아서버린 경우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큰일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오버해서 반응했다는 후회도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고나면 내 머리속은 한동안 그런 나의 서투름에 대한 자책감이 지배를 하면서 내 기분을 많이 다운시키고 있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이 자긴 위주의 흥분감은 어떤 경우엔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다른이들에게 잘 전파되어 모두들 좋은 쪽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 자시 위주의 상황판단으로 인해 매우 이기적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상처받으며 관계 자체가 소원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여러 경로를 통해 생각해봐도 내가 감정적 들뜸 상태가 되었을 때, 즉 내 감정이 내 이성의 제어를 벗어나 외부로 표출되고 있을 때 나는 확실히 실수를 많이 한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의 판단이 너무 잘 보여서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인들에게 그리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 개인적으로도 참 별로이다. 내가 그런 타인의 모습을 봤을 때도 그리 좋지 않고 내 자신의 모습을 되집어 봤을 때도 영 별로이고 좀 후회스럽다.

 

결국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에는 감정을 숨기는 훈련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의 진지함이 깊어 져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진심으로 진지해진다면 내 감정은 아마도 무거운 무게의 바위에 눌린 것처럼 바둥거리긴 하겠지만 그 존재가 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엔 그 어떤 것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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