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우월한 존재에 대한 단상

아이루다 2013. 4. 26. 09:17

 

살다보면 아주 가끔 조금 특별히 우월한 존재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다. 물론 미디어를 통해서는 훨씬 그 빈도수가 많지만, 개인적인 직접적인 경험으로도 가능하다. 물론 매우 드물다.

 

먼저 우월한 존재에 대한 정의를 해야 이 이야기에 대해 이해가 쉬울테니 이것부터 정의하고 가자. 내가 지금 말하는 우월한 존재란, 남들보다 탁월하게 타고난 신체적 혹은 두뇌적 능력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그런건 아니다. 단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혹은 잘하는 일에 있어서 남들과는 다른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말한다.

 

두뇌능력을 보자면, 과거로 부터 천재라고 알려졌던 뉴튼과 같은 사람들이나 모든 방면에 능했다고 알려진 다빈치 등이 있고, 근 100년 내로 보면 아인슈타인 이나 파이만 같은 탁월한 물리학 분야의 천재들이 있었다. 보통 이런 두뇌능력자는 뭔가를 남기는 경향이 있어서 역사에 남는 반면 육체적 능력자는 일반적으로 당시대를 풍미하는데 실제로 그들이 명성이 당시대엔 지식인들보다 훨씬 강한 편이다. 미국 농구의 영웅 마이클 조던, 팝 음악의 전설인 마이클 잭슨, 축구의 신 펠레, 유럽 축구를 지배하고 있는 이 시점의 영웅 메시 등이 그렇다.

 

실제로 지금까지 예를 든 사람들은 아주 탁월한 우월함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비율이 너무 적은 경향이 있다. 나는 이들보다 한단계 더 낮은 사람까지를 이 글에 포함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피겨 스케이팅으로 세계 최고의 레벨에 오른 김연아나 외모로서 정점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는 송혜교, 원빈 같은 배우들이나 그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 각종 예술 분야에서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인물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또 나 역시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많은 성공한 벤처를 이끌고 있는 CEO들도 그렇고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무튼 전국 입시 수석 출신이나, 사시 1등 등등 소위 난다 긴다 하는 무리들 속에서도 결국 1등을 해내는 머리를 가진 사람들 역시 포함한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을 전부 모으면 전체 인구의 1%정도가 될까? 싶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나간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자기 분야에서는 현시대에 혹은 전체 시대에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남기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말 부러운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왜 이런 능력적 차이가 나타날까? 유전적? 후천적 노력? 우연한 행운?

 

내 생각은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전적 영향이다. 즉 그 일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유전자를 타고 났고, 거기에 더해 열심히 노력까지 하며 또한 그 좋은 자질과 노력이 제대로 인정 받을 환경이나 개인적 성향까지 잘 맞아 떨어진 결과가 그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잘 맞지 않는 경우를 보면, 만약 머리가 매우 좋은 어떤 이가 성격이 조급하고 포악하면 그 머리는 거의 쓸모 없어져서 그 뛰어난 능력은 그의 성격적 단점에 가려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배척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새대적 배경도 중요한데 만약 마이클 조던이 미국의 200년전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그냥 잘 뛰는 노예였을지도 모른다. 빌 게이츠나 스티빈 잡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야근 전용 개발자가 되었거나 사과장사나 하고 말았을 것이란 슬픈 우수갯 소리도 있다. 이렇듯 뭔가 다 잘 맞아 떨어질 때 개인의 능력은 극대화되고 또 그만큼의 평가를 받으며 또한 이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밑천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을 타고 난 사람들이 성공을 거두었을 때 이 성공에 대한 개인적 판단은 과연 어떨까? 내가 운좋게 좋은 능력을 태어나 이렇게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지 아니면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은 내 복이며 또 내가 성공을 거둔 것 역시 내가 열심히 산 결과라고 여길까?

 

물론 이것을 이분적으로 딱 잘라 나누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기울까? 그리 어렵지 않다. 이들보다 못한 능력을 타고난 나와 같은 일반 사람들도 그 타고난 작은 능력에 그리 감사하지 않는다. 그냥 왜 더 잘 타고나지 못했는지 그것을 한탄하거나 혹은 대충 만족하거나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도 후자의 입자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전자인 사람도 아주 적은 비율로 존재하라고 믿는다.

 

흔히 노블리스 오불리제 라는 용어를 쓴다. 있는 자들이 그것을 있게 해준 사회에 대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어느정도 환원 시키는 일종의 기부행위를 말하는데 요즘 그것에 대해 좀 자주 듣는다. 특히 미국의 괴물급으로 알려진 부자들의 엄청난 사회 기부액을 보면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형편이다.

 

그중에서 나한테 1%만 줘도 나는 평생 일안하고 어디 산이나 하나 사서 천문대 짓고 살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미국은 가끔 이런 거대한 기부행위를 하는 거대한 부를 이룩한 인물들이 있다. 요즘은 빌 게이츠가 제일 유명하든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찾아보면 참 드물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라고 알려진 이건희씨가 이런 자선사업을 대규모로 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고 또 혹시 한다고 해도 아마 좀 다른 목적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정말 기부를 마음속으로 생각할 만한 사람이라면 이미 그 유명한 세금 회피를 위한 증여 편법을 사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끔 또 방송에서는 연예인들 기부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김장훈과 같은 가수는 매해 수십억의 돈을 여러가지 사업에 기부를 하고 있고 광고 수익으로만 1년에 수십억을 버는 소위 탑 클래스 배우들 역시 매년 1억 이상의 돈을 기부하는 듯 보인다. 물론 김장훈씨는 좀 많이 특이하다. 어쩌면 아까 분류에서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즉 자신이 타고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이것을 통해 얻은 것을 남들과 나누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하지만 내 판단에 그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부자들은 후자에 속한다. 즉 내 능력은 그냥 내 능력인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기부를 할까?

 

여기에서 우린 참 좋은 정책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일명 윈윈 정책이다. 그래서 그 기부 행위의 전체 프로세스를 잘 살펴보기로 하자.

 

첫번째 그런 사람들이 기부를 하면 실제로 그 기부를 받는 이들이 있어서 좋다.

두번째 그 기부를 한 기사가 언론에 실리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칭친을 하고 해당 연예인에 대해 호감이 높아진다.

세번째 이런 기사를 낸 언론사는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기 때문에 추가적인 광고 수익을 낼 수 있다.

네번째 이런 과정을 통해 해당 연예인은 그 직업을 위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즉 대중의 호감을 얻어낸 결과가 된다.

다섯번째 최종적으로 이 사람을 모델로 쓴 광고주는 모델로 인한 광고 선호도가 높아져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게 된다.

여섯번째 이로 인해 이 모델의 몸값은 더 높아지고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일곱번째 이제 다시 첫번째로 되돌아 간다. 즉 많이 벌었으니 기부를 한다.

 

여기에서 단지 하나의 숨어 있는 단점이 있다면 이로 인해 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쓴 CF 비용이 상승하고 이렇게 증가한 마케팅 비용은 결국 제품의 단가를 높여서 그 제품을 사용하는 그 모든 사용자들에게 추가적인 돈을 쓰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좀 냉정하게 따지면 기부를 한 대상자의 돈은 모두 소비자 개개인이 십시일반 모아서 전달한 것이란 뜻이 된다. 그것도 많이 남아서 대부부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 일부만 실제로 기부로 이어진다.

 

이 관계에서 광대짓을 하고 있는 것은  연예인 기사에 목말라 하는 소비자들 뿐이다. 끝없이 노출되고 있는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방송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을 통해 그들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이 생태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적어도 광고에 노출된 제품에 대해 최대한 소비를 자제하는 방법 뿐이다. 하지만 뭐하러 그러겠는가? 큰 돈도 아닌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은연 중 그것에 대해 거부를 갖은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연예인에 대한 스캔들이 터지면 그렇게 사람들은 즐기면서 그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당사자에 대한 호감도를 급격히 하락시켜서 그 연예인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보다 소문을 통해 들은 그 하나의 확인되지 못한 이야로 결정지어 버린다. 그것도 단호하게.

 

우월한 존재의 기부행위는 매우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어떤 이들은 살만하니 남한테 조금 주어서 좀 더 행복하게 살고자, 어떤 이는 자신이 믿는 신이 말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이는 또다른 분야에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어떤 이는 정말 불쌍한 이를 돕고 싶어서, 어떤 이는 이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해결책으로, 어떤 이는 남들이 다 하니까.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우월하게 태어난 것은 완전한 우연이며 그로 인해 전개된 나에 대한 수많은 일들은 우연으로 파생된 결과일 뿐이다 라고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 하다. 심지어 우리는 한민족 중에 뛰어난 운동선수 하나만 나와도 마치 우리 종족 전체가 우월한 냥 즐거워 하는데 어찌 개인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우월한 존재들의 행동에 대해 우린 꽤 자주 듣는다. 하지만 우린 어쩔수 없이 그 모든 정보를 오직 미디어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린 우월적 존재들과 언론사이에 어떤 거래가 진행되고 있는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그것은 그 세계에서 살아봐야 아는 것들이기에. 하지만 우린 늘 우리 기준에서 그것을 판단한다. 즉 선한 목적에 대해서만 보는 것이다. 요즘 개봉한 것으로 알려진 '노리개' 란 영화는 우리가 모르던 연예인 성상납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과거 이것으로 인해 자살한 한 여배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초로 한 모양이다. 우린 듣긴 하지만 실제로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인간 인지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우월한 존재의 기부 행위는 앞서 말했듯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튼 우리가 단순히 보는 그런 이유만은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그냥 우리는 우리 관점에서 그것을 볼 뿐.

 

오늘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군복을 입고 군생활을 하고있다. 물론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이지만.. 솔직히 그들이 얼마나 나라를 지키고 싶을까 싶다. 여하튼 그렇다고 쳐도 누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겠는가? 나 대신 그 자리에서 효과가 있든 없든 철책선이 연결된 그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그들에 대해. 남자들은 자신도 다녀왔거나 혹은 능력이 안되니 갔다고 생각하거나, 여자들은 원래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행위이니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아니 싫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만큼 우린 실제로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자신을 판단하는 생각보다 매우 훨씬 더 이기적이다. 우리가 그것을 잘 인정하지 못할 뿐. 우리가 보여주는 기부와 같은 종류의 이타심은 결국 또다른 이기심의 표현이다. 내가 남에게 베푸는 친절 역시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그런 자신에 대해 매우 큰 착각을 한다. 혹시나 내가 착할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여파는 타인의 그런 행위를 보고도 동일하게 착각해주는 것이다. 그도 착할 것이라고. 그리고 아까 말한 기부의 프로세스를 알아도 "그래서 뭐? 내가 무슨 손해인데? 상관없는데?" 라고 말하거나 "그래서 어쩌자는거야? 알면 뭐가 바뀌나?" 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기 파악을 못하여 결국 타인도 파악하지 못한다. 또는 반대로 남을 파악하지 못하니 나도 파악 못하는 결과가 생긴다. 그렇게 평생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은 절대로 무리한 것이 아니며 적절하고 공평하게 요구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내가 단지 좀 안타까운 점은 소위 영웅화 되어버리는 우월한 존재들을 믿는 미디어 노예들의 삶이다. 이미 충분히 정제되고 좋게만 표현되는 기사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실체에 대한 한점의 의구심도 없이 보여지는 그대로만을 믿으면서 아무런 비판이나 혹은 마치 국민 여동생 같은 칭호를 부여하여 마치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보호하는 이 평범한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과연 누가 끝없는 이득을 보고 있을까?

 

삶이란 것이 결국 자기만족이니 이것조차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결국 이로 인해 나타나는 반대급부의 단점들이 우리 사회에 깊숙히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든지 미디어 노출만 신경쓰면 되는 연예인들의 삶이나 어떤 삶을 살든지 내가 들은 정보만 괜찮으면 다 좋다고 믿어지는 전시형 인간을 양산하는 시스템화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가는 것이다. 노력하고 진심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냥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삶으로 환산되고 반대로 화려하고 꾸며지는 삶은 누구나 동경하는 삶으로 포장되어 지고 있다.

 

노동의 신성성, 삶의 가치성 등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된 퇴락한 옛 이야기로 되어 버렸고 지금은 오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에 대한 끝없는 추구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우린 이제 덕담으로도 '돈 많이 버세요' 라고 말하고 누구도 그 말에 숨은 우리의 일그러지 자화상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가치 부재의 시대. 나는 어떻게 이 세상과 함께 공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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