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아이루다 2012. 2. 15. 21:01

 

제목 그대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우린 늘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선택은 우리를 얼마나 더 행복하게 하는가에 기준을 둔다. 보통 그렇다. 하지만 오늘은 행복하면 모든것이 다 괜찮은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글을 시작해본다.

 

간단한 상황 설정극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은 어디에서 부터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는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어떤 여자가 있다. 예쁘고 사람들에게 잘 대하지만 실은 많이 계산적인 여자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잘 선별하는 능력이 있고 그래서 현재 유능한 검사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남편의 시댁은 대대로 부자여서 이 남자를 만나 살아온 후로는 돈 걱정은 거의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실제로 결혼전에 그녀는 이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남편은 전형적으로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가부장적인 기질이 있지만 처세술이 뛰어나 비록 정치 검사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권력에 줄을 잘 대어 조만간 국회의원  한자리라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여자는 남편을 썩 사랑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다정하지도 않고 권위적인 면이 강하며 확실히는 모르지만 가끔 외도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남자의 배경을 너무도 사랑한다. 사고 싶은 명품백과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낼 비싼 호텔 스위트룸도 부담없이 일년에 몇차례 가고 해외여행도 수시로 다닌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아이에게는 늘 수백만원짜리 옷이 입혀져 있다. 아빠를 닮아 좀 재수없긴 하지만 충분히 사랑스러운 아이다. 그리고 이 아이는 그녀가 남편에게 절대 떨어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험이다.

 

그녀는 남편이 경제적으로 망하지 않는 한 평생 사랑하며 살 자신도 있고 많은 유산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은 시댁에 끊임없이 잘하고 있다. 남편은 집안의 둘째인데 첫째아들의 부인 즉, 손위동서는 성격이 순해서 그녀가 그런 그녀를 가지고 노는건 일도 아닌다. 그녀는 집안의 실제적 권력자인 시어머니에게 늘 살갑게 대하고 고가의 선물을 하며 지내고 명절때는 보통 손위동서가 거의 일을 다하고 그녀는 옆에서 대충 거드는 흉내만 내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행복하다.

 

이 정도에서 혹시 이 여자의 삶에 뭔가 문제를 느꼈다면 당신은 아마도 질투심을 느꼈거나 혹은 삶의 가치성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한 사람이리라.

 

그녀의 남편은 정부 여당에 줄을 잘대어 내후년 총선에 서울 지역구 중 하나를 공천받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어차피 박봉인 검사의 일보다는 정계로 나가 좀 더 큰물에 놀고 싶어한다. 그래서 요즘 남편은 일보다는 저녁 술자리에 훨씬 많은 신경을 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여자 연예인들도 가끔 도우미로 나오는 모양이다.

남편은 행복하다. 늘 유복하게 자랐고 머리도 명성해서 사법고시도 30살이전에 붙었으며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며 아주 예쁘고 말 잘듣는 마누라도 있다. 마누라가 좀 낭비벽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돈이야 남아도니 별 상관없다. 자신의 2세만 잘키워주면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는 어떤가?

 

어느날 그 부분의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아이를 집단 따돌림 해서 아이가 자살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의 아이는 분명히 주도적으로 죽은 아이에 대해 지속적인 폭력과 정신적 스테레스를 주었는데 아이의 자살 후에 해당 사실이 학교내에 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남편의 넓은 인맥망은 이 사건에서 그들 아이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최소화 시키고 심지어는 죽은 아니가 정신병이 있다는 소견까지 끊을 수 있어서 거의 사건을 없던 일로 무마시켰다. 그리고 재수없는 학교에서 전학을 시켜 더 좋은 학교로 보냈다. 어차피 시간이 얼마 지나면 잊혀질 사건이었다.

간만에 행복에  좀 금이 갈뻔한 사건이었지만 그들의 타고난 능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내었다. 어차피 그정도의 괴로힘에 자살을 할 녀석이라면 커서도 아무일도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으리라. 혹시 아닌 분들을 위해 더 나가본다.

 

그 죽은 아이가 옆집에 사는 아이였다.

 

좀 더 강도가 세지는가?

 

그 죽은 아이가 내 아이이다.

 

이쯤에서는 거의 다 강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아이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그 가해자 놈을 봤는데 반성문과 달리 미안해 하는 기색은 전혀 없고 재수없는 일에 걸렸다는 짜증만 가득했다. 그 부모 역시 마찬가지 였다.

 

분노감 폭팔!!

 

그 부부는 남들처럼 행복을 추구했다. 그리고 타고난 환경에 의해 남들보다 쉽게 그 행복을 가졌으며 비록 아이에 관한 문제가 있었지만 법이 보장하는 적법한 절차(?)로 슬기롭게(?) 극복해내었다. 그들 부부에게 있어 그 사건은 꽤 커다란 파문이 되었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계기로 남편은 정계입문에 대한 확실한 뜻을 굳혔다. 적어도 장관자리는 해야 이런 험한꼴 안보고 살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비록 이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라고 할 것이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가고 싶은 직장을 잡아서 당신은 행복했는가? 당신은 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가서 행복했는가? 당신은 버스에 타 하나밖에 없는 자리에 앉아서 행복했는가?

당연히 행복할 것이다.

 

그럼 당신이 들어가 그 직장에서 떨어진 다른 어떤 이의 불행은 어떠한가? 대학에 떨어져 재수하는 이의 불행은 어떠한가? 다리가 아파 죽겠는데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은 어떠한가? 그 사람들의 불행에 대해 당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이렇게 반박할 것 같다.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의도한 바도 아닌데 그걸 왜 나에게 책임지라고 하는가?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어떻든 간에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불행이 분명히 수반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은 인정하는가?

인정 못하겠다면 당신은 이미 죽었을 사람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경쟁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동물인데 어떻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한 쉬운 예는 직장에서 시키는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얘기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쉼없이 자신들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로비를 하고 술을 같이 마시고 뇌물을 주거나 성접대를 하곤 하는데 그래서 계약을 따냈다면 계약을 따지 못한 다른 업체의 불행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부부는 분명 타인의 불행을 밟고 행복을 누렸다. 그것이 아이의 문제를 떠나서 만약 남자 시댁의 재산이 일제시대에 친일로 형성된 재산이라면 그 재산부터 원죄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결국 그들도 다른 이들처럼 타인의 불행을 기반으로 행복을 누린 것이고 그런 모습에 대해 당신 자신도 그 강도의 차이일 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박하실 분들은 해도 좋다)

 

나는 배부른 돼지는 되어보지 못했지만 만약 배부른 돼지가 나보다 행복하다고 해서 내가 돼지가 되고 픈 생각은 없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아는 것이 적어야 하는데 왜냐면 세상은 알수록 짜증나고 분노할 일만 많기 때문이데 정치나 경제가 그런 짝이다. 그냥 내가 행복한 일에만 전념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아야지 쌍용 자동자 노동자 파업이나 올해 농사를 망친 농부나 88만원 세대라고 알려진 알바인생 청년들 문제, 한전에서 고압 전송기 세운다고 자신이 평생 가꿔온 논을 헐값에 넘기고 자살한 어느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을 굳이 아는것이 행복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아이의 재롱과 맛난 음식을 잘하고 시부모에 잘하는 아내와 함께 이땅의 중산층으로 정규직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받는 연봉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 식구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사회의 그런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봤자 열불만 터지지 내 행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졸면서 출근하여 커피한잔과 수다를 떨다가 조금 일하고 오후엔 주식 쳐다보다가 퇴근할 땐 얼마전 산 스마트폰으로 지인들과 즐거운 카톡을 즐기고 집에와 씻고 밥먹으면서 TV를 켜고 신나게 보다가 잠이 들고 주말엔 구찮긴 하지만 가끔 멀리 여행도 가고 맛난 것도 먹으로 다니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가끔 뉴스에 자살소식이나 불행한 뉴스가 나오면 재빨리 잊어버리고 자신의 행복에 집중하며 살면 그것이 바로 진리인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 않아서 행복한 사람이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런사람이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해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픈 생각은 없다.

 

그냥 조금만 남을 생각하고 사회의 약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사회의 기득권층에게 우리를 무시하지 않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 노력했으면 한다. 내 이득을 조금은 포기하고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공공의식을 가지며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삼성이란 그룹에 대해 개인적으로 제품을 사지 않는 반항이나 농심이나 롯데 같은 비도덕적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도록 하며 선거때가 되면 적어도 덜 나쁜 정치인에게 투표를 꼭 하고 우리나라의 쓰레기 언론인 조중동을 보지 않으며 그들이 만든 종편도 지워버리고 좀 여유가 된다면 약자를 위한 작은 성금도 내어보자.

 

당신이 배부른 돼지의 행복을 찾느냐 아니면 조금 불행지더라도 타인의 불행을 조금 덜어주는 삶을 사느냐는 전적으로 당신의 가치관에 달렸다.

 

그런데 적어도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고 행복의 가치가 최고이며 난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간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지는 말아라. 그냥 돼지가 당신보다 더 행복한 것을 알았을때  더 행복하기 위해 당신이 돼지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돼지로 비교해서 현실감이 떨어지는가? 그럼 동네 바보로 하자. 늘 해맑게 웃으며 동네를 왔다 갔다하는 행복한 바보 말이다. 아니면 어디 아프리카 부족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해보라. 행복하다고 해서 그렇게 되고 싶은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인간은 적어도 이런 면은 있어야 인간이 아니겠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크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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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자살한 아이 엄마의 일기

 

XXXX년 X월 X일

 

남편은 오늘도 술에 취해 들어왔다. 아이를 가슴에 묻은지 벌써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건만 마음속에 들어있는 커다란 무언가는 그 크기가 점차 커져만 간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후 두달이 지났지만 새로운 취업자리를 알아볼 생각도 안하고 매일 술로만 지낸다. 이제 모아두었던 돈도 거의 바닥을 들어냈다.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과연 이것이 사는 것인가?

 

XXXX년 X월 X일

 

오늘은 아이의 기일이다. 남편은 여전히 술에 취해있다. 이제 남은 돈은 한푼도 없고 시댁과 친정에 손을 벌리는 것도 더이상 힘들 것 같다. 아이에 대한 슬픔은 전혀 잊혀질 것 같지도 않은데 오늘도 남편은 그저 술에 취해 웃고 있다. 난 사는것이 아니다.

 

XXXX년 X월 X일

 

남편이 일을 저질렀다. 그 쓰레기 같은 검사부부를 살해해버렸다. 어제 일어난 일이다. 남편은 지금 긴급체포되어 경찰서에 가 있다. 신문엔 유명 검사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내 남편의 행동을 비난하고 작게나마 우리 부부의 사연을 적어줬다. 난 후련하다는 마음도 들지만 이젠 더 이상 살 자신이 없다.

 

자살한 아이 남편의 일기

 

XXXX년 X월 X일

 

오늘이라도 당장 쳐들어가 그 년놈을 죽여버리고 싶다. 아이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난 정말 암울한 대한민국의 현실속에 처절히 몸부림칠 수 밖에 없었다. 힘없는 나 같은 존재는 그 거대 권력의 힘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 만난 학교 교장은 이번 사건을 최대한 조용히 처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난 그 얼굴에 먹던 커피를 집어 던지고 나와 술을 먹었다. 지금 나에게는 술 밖에 없다.

 

XXXX년 X월 X일

 

사람이 무엇때문에 살인을 못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 아직 가진게 있어서 그랬다. 내가 세상에 미련이 있고 내가 아직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런것이다. 다 버릴것이다. 내가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사회가 국가가 죄악을 처벌하지 못하는 시스템이라면 내가 직접 할 것이다. 난 그렇게 꼭 할 것이다.

 

XXXX년 X월 X일

 

그 년놈을 죽인지 삼일이 지났다. 그 개기름 흐르던 얼굴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눈물 콧물 쏟는 모습을 보니 정말 구역질이 났다. 여자 역시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개처럼 기어댔다. 얼마나 칼로 찔렀는지 모른다. 오늘 죽은 아이가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보고 이 아빠가 너의 복수를 해줬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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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건강은 좋고 기억력은 나쁜 것에 다름 아니다 - 슈바이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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