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 나를 찾다

14. 행복의 정체

아이루다 2017. 6. 9. 07:03

 

 

우리는 지금까지 당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당신에게는 숨겨진 상처들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당신은 자책을 했고, 그것도 모자라 확대해석까지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리고 그 대화들을 통해서 당신이 왜 상처를 입었는지,  자책을 했는지, 왜 확대해석을 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왜 용서를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꽤나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덕분에 당신은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해서 예전보다는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 그렇다고 많은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에요. 사람이란 존재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쉽게 이해될 수 없은, 아주 복잡한 존재이죠그래서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아요.

 

그래도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의 삶 나머지 시간들은 그것들을 천천히 알아가는데 쓰면 되거든요.

 

비유를 하자면, 당신은 이제 막 글자를 배운 사람인 셈이에요. 그리고 당신 앞에는 많은 책들이 있죠. 물론 새로 익힌 글자 읽기 능력을 발휘해서 그 책을 읽느냐 마느냐는 오직 당신이 결정할 일이죠. 그럼에도 저는 읽어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조언 드리고 싶네요.

 

사실 삶의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작업이에요. 재미도 있고요.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 자신' 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진행되면 될수록 산다는 것이 조금 더 편해질 것이에요. 운이 좋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 한번 시도해 보시는 것도 좋아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랍니다. 당신은 그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준비만 하고 있으면 돼요. 당신은 그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예전처럼 무시만 하지만 않으면 돼요.

 

그리고 지금, 자신을 바라 볼 준비가 어느 정도 된 이 순간에, 우리는 이제 과거에 있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보다는, 앞으로의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이에요. 바로 당신의 최종 목표인 행복에 대한 이야기 말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가장 먼저 행복의 정체를 알아야 해요.

 

아마도 당신은 행복에 대해서 꽤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못해요. 당신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어떤 면에서는 행복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에 행복하기가 힘들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을 , 당신은 당신만의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에요. 그래서 그 덕분에 엉뚱한 것들에 당신의 부족한 돈과 시간과 노력을 쓰지 않을 것이에요.

 

행복은 참으로 다양하죠. 사람마다 서로 달라요. 그런데 어떤 행복을 추구하느냐를 더 낫냐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것이 어떤 종류의 행복이든지 상관없이 본인만 행복하면 그것이 정답이죠.

 

단지 조심해야 할 것은 있어요최소한 감당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너무 비싼 비용이 드는 행복, 너무 힘든 노력을 해야 하는 행복,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한 행복은 가능하다면 피하세요.

 

 <이 그림을 보고 공감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것은 제 입장에서 본 행복에 대한 비용이에요>

 

당신은 행복에 관해서는 짠돌이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최소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해야 해요. 그래야 같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쓰고 더 자주 행복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것을 너무 간과해요.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하는 일들 중에서 행복만큼 효율적으로 해야 할 것도 없어요. 행복을 얻기 위해서 당신은 정말로 비용을 줄여야 해요. 그러니 최소한의 돈, 시간, 노력으로 최대한 행복 하려고 노력하세요.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당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에요. , 당신은 과연 무엇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라도 행복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 그러면 행복이란 뭘까요?

 

지난 글들에서 당신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상호 연관 관계를 어느 정도 이해했어요. 그래서 무의식이 어떻게 원리로 의식을 조정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죠.

 

사실 이것을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그것에 대해서 알아봐야 당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거든요. 그럼에도 당신은 그것으로부터 한 가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에요.

 

어떤 노예가 노예라는 신분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평생 그것을 자신의 삶이라고 여기고 사는 것과, 노예라는 제도라 비인간적이고, 문제가 많으며, 사람이라면 그런 대접을 받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사는 것은 다르죠.

 

결론적으로 평생 노예로 사는 것은 마찬가지일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뭔가 다르긴 달라요.

 

그래요. 당신이 지금까지 자신이라고 여겼던 존재는 바로 당신은 의식이에요. 그런데 그 의식은 사실상 무의식의 노예에 가까운 존재에요정말로 좋게 표현해서 집사인 것이고노예에 더 가깝죠. 결코 주인에게 반항할 수 없거든요. 의식이 무의식에게 반항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불행한 쪽을 선택하는 일인데, 일반적으로 이것이 가능하겠어요?

 

,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서 아주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누가 이것을 원하겠어요? 그들조차도 어쩔 수 없으니 그런 것이죠.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조차도 결국 자신을 스스로 벌주는 것이 덜 불행하니까 그런 것일 뿐이죠.

 

의식의 주인인 무의식에 대해서 이해를 할 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점은, 바로 무의식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전혀 논리적이지도, 전혀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문제가 많아요. 무의식은 말이 안 통하는 어린아이와 같아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이뤄질 때까지 무조건 떼쓰고, 무조건 해달라고 하고, 무조건 맞는다고 우겨요.

 


하지만 슬프게도 무의식이 그런 식으로 행동해도 당신에게는 어떤 선택의 폭이 없어요.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행복을 주는 것은 오직 무의식만 가능하니까요. 대신 당신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어요.

 

그것은 바로 당신의 무의식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에요. , 노예가 주인을 자신에게 밥을 주는 고마운 주인으로만 보지 않고 사실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로써 보는 것이죠.

 

이 말은 당신이 당신의 무의식과 당신의 의식을 분리시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 노예가 주인을 같은 운명 공동체로써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다른 존재로써 인식한다는 것이에요이런 식으로 당신은 당신의 무의식을 제 삼자로 볼 수 있어야 해요.

 

물론 이 말을 처음 접하면 조금 황당한 소리에요. 어떻게 자기 자신을 제 삼자로 바라볼 수 있나요?

 

하지만 당신은 이런 행동에 대해서 이미 수 없이 많이 들어왔어요. 단지 당신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죠.

 

이 말의 의미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기를 바라본다는 말의 진짜 의미에요. 자신을 성찰한다는 말이 가진 뜻이에요. 자신의 내면을 관찰한다는 말의 의미에요.

 

어때요? 이런 말들 많이 들어봤죠? 맞아요. 내면을 본다는 것은 당신의 무의식을 본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숨겨져 있어요.

 

당신은 무의식과 의식을 분리시킴으로써 무의식을 바라볼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어둠 속에서 지시만 내리고 있던 그 무의식의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다했는데, 결국 그 정체를 알고 보니 초등학교 어린이보다도 못한 억지스러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되죠.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가 만난 에메랄드 성에 살고 있는, 알고 보면 엉터리 마법사처럼이요.

 

이런 관점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데무엇보다도 무의식의 막무가내 식 행동을 그대로 두었다간 결국 함께 망해버릴 경우가 많거든요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노예로써 있다간 실제로 잘못한 것도 없이 같이 망해버리고 말아요.

 

부부 싸움을 하다가 너무 화가 나서 집에 있는 TV 부수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너무 질투가 나서 상대를 칼로 찌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너무 우울함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신이 짜증이 난다고 해서 남들에게 끝없이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처럼 말이에요.


무의식은 오직 감정만 존재하기에 전혀 제어가 되질 않아요. 그래서 극단적이죠. 그래서 마음에 들면 강렬한 행복도 주지만, 그 반대일 때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도 줘요.

 

그리고 고통을 느꼈을 때 하는 행동들은 대부분 자기 파괴적이에요. 하지만 무의식은 그 결과에 대대해서 그저 후회라는 감정만 내보낼 뿐이죠.

 

물론 평소엔 의식이 이성을 통해 이것을 최대한 자제시키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죠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결국엔 폭발하고 말아요.

 

이때 괜히 옆에 있다간 같이 망해요. 그러니 의식을, 즉 당신을 무의식과 분리시키려고 노력해보세요.

 

여기까지만 알아도 사실 행복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이해한 것이에요. 행복은 원래 무의식이 관장하는 영역이라서, 무의식을 이해하면 행복에 대한 많은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게 되거든요.

 

행복의 주체인 무의식은 초등학생보다도 못해요아주 겁이 많고, 최대한 안전한 곳에 있으려고 해요또한 반면에 끝없이 잘난 척 하고 싶어하고, 조금만 가만히 있어도 지루해서 견디질 못해요. 

 

사실 아이들과 똑같죠.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이성이 발달하지 않아서 어른에 비해서 훨씬 무의식적인 삶을 살아요. , 어른들보다 훨씬 무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죠. 그러니 당연히 그렇게 행동해요.

 

그래서 어리면 어릴수록 더욱 더 그래요. 막무가내죠. 그래서 당신은 자신의 어린 시절은 거의 기억할 수 없답니다. 의식 없이 살아온 시간이라서 그래요. 그 당시 당신이 했던 모든 경험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그냥 무의식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어요. 그러니 의식이 그때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리죠.

 

이런 철없는 무의식을 당신은 그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무의식의 그런 특징은 그저 살고자 하는 노력일 뿐이거든요. 엉뚱해서 그렇지, 목적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가끔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죠. 적군이 수색을 하는데, 어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요. 이때 아이 엄마는 최대한 아이를 울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겁을 먹은 아이는 계속 울어요. 이때 아이가 우는 것이 잘못된 일이긴 하지만, 아이는 그저 겁을 먹은 것뿐이에요. 그러니 이해할 수 있죠.

 

무의식의 이런 특징을 이해하고 나면, 행복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 지어서 이해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두려움의 단계에요. 이 단계는 행복이라기 보다는 행복의 부재, 즉 불행의 단계에요. 이때 무의식은 두려움으로 인해서 불행한 상태에요. 그래서 나쁜 감정들이 아주 자주 출몰하죠. 무의식은 두려움과 불안함에 사로 잡혀서 아주 자주 나쁜 감정들, 즉 분노, 짜증, 질투, 열등감, 서러움, 외로움, 혐오, 공포 등등 감정을 내보내요.

 


그래서 살기가 참으로 힘들어요. 이런 감정들은 감정 자체도 힘든데, 이런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를 하게 돼요. 별 일 아닌데 짜증을 내고, 큰 부탁도 아닌데 심하게 방어적으로 굴고, 필요도 없는 것을 질투하고괜한 열등감을 느껴요. 그래서 결국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말아요. 말로 상처 입히기도 하고, 실제로 물리적 폭력을 쓰기도 해요.

 

그러니 같이 지내는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져요. 이미 불행한데, 관계도 맺기 힘들어지니 얼마나 견디기 힘들겠어요. 그래서 결국 악순환이 일어나게 돼요. 어떤 면에서 불행함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기 때문에 훨씬 더 큰 문제에요.

 

그나마 나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복구될 수 있으나, 한번 틀어진 관계를 복구시키는 것은 정말로 어렵거든요. , 당신은 기분이 나쁘다가도 어떤 일로 기분이 좋아져서 금세 복구가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그게 안돼요.

 

그래서 당신은 최대한 노력해서 두려움의 단계를 벗어나야 해요. 이것이 삶의 일차 목표에요. 그리도 다행인 것은 요즘 시대엔 가장 본능적인 두려움, 즉 먹고, 자는 일은 어느 정도까지는 해결이 되어 있어요. ,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일은 드물어요. 그러니 그 나머지만 처리하면 돼요.

 

사실 이 두려움은 비실체적인 경우도 많아요. , 아주 불필요한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는 뜻이에요. 그것이 바로 무의식이 가진 문제에요.

 

바닥이 투명한 높은 다리 위를 걸을 때, 계속 두려움을 느끼죠. 분명히 단단한 바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까마득히 먼 지면의 모습이 당신의 무의식을 자극해요그런 두려움은 사실 전혀 불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느끼지 않을 수는 없죠.

 

가질 수 없는 것도 원해요. 의식이 아무리 노력해도 거의 가질 수 가능성이 없는 많은 돈이나 높은 지위를 원해요. 그리고 그것을 가진 사람을 보면 참을 수 없어요. 우리는 이것을 '질투' 라고 불러요.

 

이미 타고난 것이라 바꿀 수 없는 조차도 원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못하는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못하는 노래를 잘하고 싶다고 느끼게 해요. 우리는 이런 감정을 '열등감' 이라고 불러요.

 

슬프지만, 무의식이 그래요. 가질 수도 없고, 바꿀 수 없는 것도 포기를 못해요. 그래서 끝없이 의식을 괴롭혀요. 노력하라고 해요. 하지만 결국 당신은 괴롭기만 할 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두 번째 단계는 안정이에요. ,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난 단계죠.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괜찮아요. 편안하고 여유롭죠. 이 상태가 되면 무의식은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의식이 자신의 주도권을 뺏길까요? 절대로 아니에요

 

그래서 안정의 단계에 도달하면 잠시 동안은 그것을 즐길 수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감정이 당신을 공격해 올 것이에요.

 


우리는 그것을 지겨움 혹은 권태라고 불러요. 사실 지겨움이나 권태는 나쁜 감정들처럼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결코 좋은 감정도 아니에요. 이것은 좀 애매한 감정이에요.

 

방금 전, 저는 현재 사람들은 기본적은 두려움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당신을 포함한 현대인들은 모두 두려움보다는 지겨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겨움은 현재에 관한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무의식이 만들어 내는 감정이에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충분히 행복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하도록 뺏어가요.

 

물론 이것도 꽤나 중요하긴 해요. 오늘 잘 먹었다고 해서 내일 꼭 잘 먹을 보장은 없거든요.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 내일 식량, 모레 식량, 10년치 식량을 모아 놔야 해요.

 

문제는 천년 치 식량을 모아놔도 여전히 지루함은 생긴다는 점이에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도 여전히 지루해요. 아니, 오히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없기에 해야 할 일이 없어서 더 지겨워요. 그래서 자꾸 다른 짓을 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돈 자랑도 하고, 잘 먹고 잘사는 자랑도 해요. 하지만 지겨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충분히 먹고 살만은 한데 행복하지는 않은 것이죠. 그래서 이 단계에 오래 있다가 보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어요. 염세적일 수도 있고,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수도 있죠. 또한 심한 경우 이 지겨움에서 벗어나려고 너무 무리한 자극을 추구하기도 해요. 마약이나 도박이 바로 그런 것이죠.

 

보통 사람인 당신은 그런 자극까지는 추구하지는 않죠. 하지만 뭔가를 하긴 해야 해요. 여행을 하든,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사람을 만나든지 상관없이 무의식이 보내는 지겨움의 감정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해요.

 

그것도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일이 아니어야 해요. 만약 그렇게 보내고 나면 지겨움으로부터 시작된 감정은 마음 속에 쌓이고 말아요.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불안해지고 말죠. 그래서 뭔가를 했다면, 그것은 미래를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어야 해요. 혹은 다른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것을 해야 해요.

 

이런 것 없이 그냥 시간만 보냈다가는 나중엔 허무함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소중한 삶을 낭비한 것 같거든요. 이런 허무함을 무시한 채 계속 살아가게 되면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요. 그리고 우울해지죠.

 

그러니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하더라도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자 해요. 거기에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죠.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남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믿음과 달리,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그저 무의식이 준 지겨움이란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행위에 불과하답니다. 그리고 나서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가 있다고 믿을 뿐이죠.

 

더군다나 의미와 가치는 비교를 통해서 인정이 되는 개념이에요. , 타인과 자신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이죠. 이것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또 다른 암초에요.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중에 따로 더 설명 드릴게요.

 

세 번째 단계는 지겨움 조차도 극복한 단계에요. , 재미있고 즐거우며 행복한 단계죠. 이 단계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삶이에요. 문제는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다는 점과 도착했다고 해도 영구히 머무를 수도 없어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말이죠.

 

당신의 삶에서 세 번째 단계에 도착한 경험은 충분히 있을 것이에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건 간에 당신도 크게 웃고, 즐거워하고, 밝았던 경험이 있어요. 최근에도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요. 당신이 지금 세 번째 단계에 있지 않다고 해서, 아예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니에요. 단지 거기에 계속 머물 수 없을 뿐이죠.

 

이렇게 세 번째 단계에 왔다가도 다시 떨어지는 이유는 바로 행복의 고유한 특징이에요. 무의식은 당신이 오랫동안 행복에 취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를 원하지 않아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어도 무의식은 여전히 그래요. 한없이 어리석지만 어쩔 수 없어요.

 

무의식은 언제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보상으로 주었던 행복을 회수해 버리고 말아요. 그리고 나가서 뭔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라고 보채죠. 어떤 면에서 이런 행복의 특징은 기술 문명이 발전할수록 점점 여유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에요

 

아무튼 당신은 가능하다면 자주 세 번째 단계에 오는 것이 좋아요. 한 번 깊이 들어오는 것보다 가능하다면 자주 오는 것이 훨씬 더 좋죠. 행복은 순간적으로 발생하고, 그것은 서서히 사라져가요. 물론 깊은 행복일수록 좀 더 버티겠지만, 결국 사라지고 말아요. 그러니 완전히 사라지기전에 또 다시 들어오려고 노력해야 해요.

 


한번 들어오고 다음 들어올 때의 간격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훨씬 나아요. 그래서 행복한 삶의 열쇠는 바로 이 세 번째 단계에 얼마나 자주 들어올 수 있느냐의 여부에요.

 

큰 행복을 한 번 경험하는 것보다 작은 행복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가능하다면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하세요. 비싼 돈을 들여서 해외 여행을 한 번 가는 것도 좋지만, 그 돈을 쪼개서 국내 여행을 여러 번 가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어요. 비싼 음식을 한 번 먹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맛있는 동네 음식점에서 여러 번 먹는 것도 더 나을 수 있어요.

 

뭔가 힘든 일을 해내서 크게 인정을 받는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생활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이것은 철없고, 말이 안 통하며, 자기 마음대로인 무의식과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하는 과정이에요. 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계속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아주 가끔 와서 맛난 것, 갖고 싶은 것 잔뜩 사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는 않아요.

 

이런 식으로 당신은 아이를 다루듯이 무의식을 다뤄야 해요.

 

그리고 당신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무의식을 이해해줘야 해요. 그 존재는 방법이 엉뚱하거나의식 입장에서 봤을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뿐,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생존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존재에요.

 

그러니 깊게 받아들이세요. 이렇게 당신이 당신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과정을 '용서' 라고 부를 수 있으며이 용서를 통해 당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번째 단계의 행복에 좀 더 자주 도달할 수 있어요.

 

행복은 기본적으로 무의식이 의식에게 시킨 일을 잘했다고 주는 보상이에요. 뭘 시켰는지도 불분명하고, 그것을 안다고 해도 왜 시켰는지 이해가 안 가기도 하지만그것은 어쩔 수 없어요. 원래 그것은 무의식의 고유한 특징이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인 후 좋게 봐 주세요.

 

그나마 무의식이 어떤 원리로 뭔가를 바라고 있는지를 아는 힌트는 하나 있긴 해요.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에 겪은 부족함이에요. , 어릴 때 배가 자주 고팠던 사람은 돈에, 부모와 떨어져 지낸 사람은 애정에, 폭력에 시달린 사람은 안전함, 강압적인 대접을 받았던 사람은 권력을 원해요.

 

다시는 그 시절에 겪은 두려움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그래서 어린 시절의 부족함은 대부분 그 사람의 평생 동안 추구하게 되는 근원적 욕구가 되죠.

 

그럼 다음 시간엔 이런 행복에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리고 아마도 당신은 생각보다 행복이 그다지 어려운 숙제가 아님을 알게 되실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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