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의 삶이란 것은 우주적 시간으로 봤을 땐 정말로 찰나에 불과한 시간에 불과하지만 그 자신의 삶만 두고 봤을 땐 꽤나 긴 여정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우린 그 여정 속에서 느리지만 조금씩 변해가는데, 우린 보통 신체적 모습의 변화에만 익숙한 편이지만 생각보다 머리 속에 담긴 생각들의 변화도 큰 편이다.
그래서 우린 10대 때 생각이 다르고, 20대, 30대, 40대.. 그리고 그 후 각 세월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았을 때를 회상하거나 혹은 예측을 해보면 분명히 과거의 나도 나이고 미래의 나도 나이겠지만 지금 현 시점에서의 나와는 묘한 틀어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으로 인해 어떤 경우엔 과거엔 절대 못했던 일을 지금의 나이엔 천연덕스럽게 하기도 하고, 전혀 망설임 없이 했던 일들을 지금은 조심스럽게 하거나 아예 안 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변화를 당연한 수순으로 볼 때,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또 다른 모습을 가질 것이 분명하게 예측된다. 지금보다 머리에 더 많은 흰머리가 생기고 피부도 더욱 많은 주름이 생기면 나는 아마도 지금 못하는 일을 하거나 지금 하는 일을 못할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라는 우리의 운명적 특성과 조합을 이루면서 우린 늘 우리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더 공고화 되어 간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젊은 시절에 나이를 먹은 어른들이 들려주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들어 넘기긴 힘들다.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이미 경험했고 우리가 가보지 못한 미래를 간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될 그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산다는 것은 그리 현명한 짓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린 '이 나이가 되어봐야 안다', '살아봐야 느낄 것이다' 라는 식의 말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뭔가 반발심이 생기면서도 쉽게 그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거기에 더해서 만약 젊은 시절의 치기로 그것에 대해 마구잡이 식 반항을 한다고 해봐야 결국 미래로 갔을 때 자신의 그런 젊은 시절 모습이 스스로 부끄럽기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엔 한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관습 혹은 선입견 등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과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그들과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에 대해서 불필요한 과도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현실이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나 청소년들에게 '젊어서 열심히 공부해야 미래가 평안하다' 라는 식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면 어떤 사람들을 그래도 그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겠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소위 어른들이 말해주는 안정된 삶을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의 도전은 미래의 그 자신에게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만의 소중한 가치인데 그것을 그냥 허공에 날려버리는 안타까움도 발생한다. 또한 실제로 그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결코 지혜롭거나 현명한 것들이 아닌 그저 자신의 삶에 대한 자리보전에 대한 기대로 말해졌을 경우 이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생각의 충돌, 즉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사회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한 갈등은 사람에 따라 꽤나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어서 아무런 영향이 없기도 하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배제하고 나서 보면 보통은 하고 싶지만 참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픈 일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게 될 때 그 안에 숨겨진 우리의 본질적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 그것이 어쩌면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단순한 두려움일수도 있고 혹시나 미래가 되었을 때 내가 하게 될 후회스러움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후회에 대한 두려움, 이것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하고 나면 지난 나 자신의 삶에서 반복 되었던 중요한 판단의 기점에서 결국 이것을 최종 결정지어 준 매우 강력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말을 풀어서 쓰면 나는 결국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살아 온 셈이다.
우리가 쓰는 단어 중에 회한이란 말이 있다. 굳이 풀어서 설명하면 남겨 둔 한스러움 정도로 해석이 가능한데,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가장 없었으면 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생명체로서의 끝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마음 한구석에 내가 세상을 떠나기엔 뭔가 남은 찌꺼기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온다면 누구나 '그래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었어' 라고 말하길 바랄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그런데 이 '회한' 이라는 단어와 바로 앞에서 말한 후회스러움에 대한 두려움은 두껍게 겹쳐져 있다. 우리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현재는 과거로 미래는 현실이 되어갈 때, 만약 계속해서 뭔가 찜찜하게 남겨둔 것들이나 제대로 해 놓지 못한 것들이 쌓인다면,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을 후회를 하면서 보내 될 상황이 만들어지면 이것은 바로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 때 회한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이런 경험적이거나 혹은 교육적 이유로 인해 우린 각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늘 어른들로부터 조언을 받곤 한다. 그들은 나이 먹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젊은 시절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우리는 쉽게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후회스러움을 가져다 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할 때, 내가 그것을 하고 싶은지 보다는 내가 그것을 해야 하니까 라고 믿으면서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나 그것을 할 때 그리고 하고 나서 쉽게 행복감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인생을 모두 '행복함만을 위해서 살 수는 없다' 는 또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해야 할 일을 안하고 하고픈 일을 하고자 하는 누군가를 설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과연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정의는 과연 누가 내렸는가?
공부는 때가 있다. 젊은 시절에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자신의 삶을 정말 잘 살고 떠난 이들이 모두 공부를 한 것은 아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 좀 더 평범하고 덜 고생하면서 살아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꼭 열심히 해야 할 것이 바로 공부만 있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어쩌면 공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 많은 길 중에서 안전하지만 가장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길일 수 있다.
또한 하고픈 일이 한 것이 아니기에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주체적 사고 방식을 갖기도 힘들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인식 가능하다. 뭔가 정말로 좋아서 한 일은 그 일의 성공과 실패 모두 그 자신이 선택한 결과이므로 다 받아 들일 수 있지만 누군가의 의도나 사회적 압박에 의해 한 일은 만약 그 일을 잘 안되었을 경우 그냥 이것은 내 자신이 재수 없거나 혹은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게 된다.
하는 것이 후회는 안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해야 할 일 때문에 하지 못해서 하고 싶은 일은 또 다른 후회거리를 만들어 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하고픈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의 이야기나 혹은 잘 포장된 어떤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들의 용감한 선택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용기 없음을 한탄하기도 한다.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 할 가능성이 있다면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까? (여기에서 옳을까?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정해진 답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당연히 각자가 감당할 수준까지 에서 보이지 않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여기에서 까먹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을 하지 않아서 미래에 후회하게 될까봐 지금 하고픈 일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다. 우린 적어도 지금 하고픈 것을 하지 못해서 미래에 후회하게 될 두려움을 갖는 것이 자신의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치로만 보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나 자신도 깊이 새겨들어야 말이다. 나 자신도 지나 온 삶을 되돌려보면 정말로 하고픈 일을 하고 살았다는 자신이 그리 들리 않는다. 어쩌면 그냥 남들이 그렇게 사니 그렇게 사는 것을 좋아해보려고 노력해왔던 삶의 과정이었다는 평가가 더 훨씬 정직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인해 지금 이 나이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형편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을 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살아야겠지만 아무래도 앞으로는 최대한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방향으로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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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형이 나에게 어느 날 물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나는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지만 그 형이 원하는 정답을 말해주고 싶다는 정답 증후군이 생겨서 그 답을 이렇게 했다
"돈이요"
그랬더니 그 형은 한참 말이 없었고 그리고 나의 대답에 더 이상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와 친구를 어떤 아가씨가 나오는 술집에 데리고 갔다. 물론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는 꾸어온 보릿자루 마냥 앉아 있었는데 그 형은 한참을 아가씨들과 흥겹게 얘기를 하더니 우리를 데리고 나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형은 아마도 맥주 한 병 사 마실 돈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도 그 형은 나의 질문에 아무런 대꾸를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 그 형의 행동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 형은 그 당시 젊음이 가질 수 있는 무모함을 경험시켜 주고 싶었나 보다 싶기도 하다.
그 형도 그 친구도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모두 자신이 하고픈 일을 선택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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