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 글을 읽는 마음

아이루다 2014. 2. 3. 16:14

블로그에 글을 좀 제대로 써보자고 한지가 벌써 2년을 꽉 채우고 3년차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 글 갯수도 제법 늘어서 500개를 넘었다. 물론 이건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내용으로 보면 한 반정도나 그나마 읽을만한 내용의 글이다. 거기에서 집짓기 관련 글이나 우주관련 정보등도 제법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글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내가 오래전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내 스스로 어떤 느낌을 받기도 한다. 좀 우수운 일인데 이것은 정말 그렇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가끔 직업으로 하고 있는 프로그래밍 소스 코드에서도 겪어 본 적이 있긴 한다. 분명히 과거에 수년 전에 내 자신이 개발해 놓은 소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낯설어서 마치 다른 사람의 소스 코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경험을 할 때, 나는 가끔 의문이 든다. 정말로 저것을 내가 알고 혹은 제대로 이해하고 쓴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다. 물론 글을 쓸 때는 보통 내 자신이 생각을 하고 거기에 각종 지식과 경험을 더해서 그럴듯한 결론이나 혹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하는 생각의 단초들을 적곤 한다. 그러다보니 오늘 한 생각과 내일 한 생각이 다르고 내일 한 생각과 1년 후 생각은 제법 큰 차이가 난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인해 내 글이 낯설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직 글을 쓴지가 모두 최대 2년 정도 밖에 안되서 이런데, 아마도 10년 쯤 후에 내가 과거에 쓴 글을 읽으면 상당히 낯설듯 하다. 그리고 그 시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하는 기분도 들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 밤마다 적은 일기를 성인이 된 후 우연히 발견해서 읽을 때 느낌과 많이 비슷할 것 같다.

 

이런 느낌은 앞에서 말했듯 어떤 면에서 당연하기 때문에 그냥 작은 웃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글을 쓴 주체로서 나와 글 속에 적힌 내용을 주장하는 나 사이의 뭔가 측량하기 힘든 간극이 있어서 그렇다.

 

이 문제는 물론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것이긴 하다. 그것은 마치 배우가 어떤 배역을 연기하는 것 마냥 실제로 배역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가 그 배우를 거의 그 사람처럼 보이게 해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뛰어난 글 솜씨와 표현력은 바로 글을 쓰는 이를 마치 정말로 쓰고 있는 글의 내용처럼 살아가는 듯하게 보여 준다.

 

물론 내 글은 그만큼 세련되지도 않고 스스로 판단해도 글을 잘 쓴다는 표현을 쓰기엔 많이 부족해서 나의 경우엔 그것이 좀 덜 하지만 결국 글에서 생각하고 주장하고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내는 결론들이 모두 온전히 내 자신의 삶은 아니란 점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들어난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떤 글을 써야지 하고 주제을 정하고는 글을 쓸 때, 최종적으로 어떤 글이 나올지는 결국 글이 다 쓰여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날의 컨디션과 주제의 명확성 및 이 주제에 대해 사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 글의 품질이 좀 차이가 난다. 그래서 보통 초벌로 쓰인 글의 경우엔 앞뒤도 많이 안맞고 표현도 어색하며 반복성도 자주 눈에 띈다.

 

여기에서 차라리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제라면 단순한 나의 무식함이니 큰 문제가 아니다. 정말 큰 문제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때 그 내용이 쓸때마다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글들의 차이점은 단순히 표현만의 문제가 아닌 실제로 의미하는 내용마져도 다른 경우도 존재한다.

 

이것을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별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조금 심각한 시선을 바라 볼 경우, 자신이 생각하고는 있는 것을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면 과연 그 결론을 내 자신의 삶과 일치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머리 속에서 지식으로만 이해 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자신이 없어진다.

 

누구나 자신의 글을 적을 때 그 내용은 무한히 자유롭다. 수 십명을 연쇄 살인한 살인자가 인류애나 자비를 원하는 책을 쓰는 것도 가능하고 성인으로 추앙받은 사람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담긴 책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만약 이런 경우에 책을 쓴 주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종류의 책을 읽게 되었다면 분명히 연쇄 살인자가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처럼 인식될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예를 든 특정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에 대한 인식과 완전히 동일하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 상당 수는 그런 종류의 글이다. 이런 책들은 단순히 말하면 책을 팔기 위해 쓰여진 글들이다) 나름 진심이 담겨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글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 되여야 한다. 글 속에서 내 자신은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인물이 될 수 있고 또한 누구나에게 삶의 멘토로서도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이것은 물론 나쁜 것은 아니다.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 타인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의 가치는 충분히 충족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보일 글을 쓴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글을 쓰고 싶었다. 어쩌면 그리고 그것이 생각속의 나와 실제적인 나의 간격을 조금이나마 좁혀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를 객관화 시켜 보는 것, 그것이 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미래의 나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사방이 막힌 듯한 느낌이 들 때 내 자신이 택할 수 있었던 몇가지 안되는 해결책 중 하나로 생각해왔기에 더욱 글의 진실함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쓴 과거의 글을 읽다보면 그 안에서 쓰고 있는 글의 내용은 실제적인 내가 없다. 그것은 내가 아닌 나의 바라고 그렇게 되길 원한 희망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나의 희망은 그 주체성은 동일하지만 이것은 현실과 환상처럼 다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희망을 적게 되면 나는 어느새 너무도 멋지고 완성된 사람이 되어 있다.

 

내 블로그 속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시골에 작은 전원주택이 있으며 별을 보기를 좋아하고 여러가지 마음 따뜻한 것들을 사랑하는 꽤나 운치 있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정말 볼품없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 자신에 대한 나의 평가는 중간 이하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나는 지금도 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참 멀어 보인다.

 

이 차이는 나를 조금 두렵게 한다. 나는 지금 내가 만들고 싶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 된다. 그것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결국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서 만들어지는 가상의 것이며 또한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내 자신이 타인의 눈을 의식해 그 주체적 생각을 잃고 결국 타인들이 보길 원하고 듣길 바라는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하면 거기에서부터 내가 처음 글을 쓰고자 했던 그 목적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과거의 글에서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글 역시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나를 객관화 시켜도 결국 나는 내 편이다. 내 자신이 나 자신들 스스로 정직하게 해석하기란 너무 과한 욕심일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제대로 밟았을 때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정말로 정직한 판단을 하고, 그 결과를 통해 내가 부족한 점과 내가 더 가져야 할 점을 알게 되리라고 믿는다.

 

어쩌면 이런 나의 모습은 인간의 공통적인 한계점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기에 나 자신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느 지점에서 적당히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벌어지는 나의 불행함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 결국 내가 부족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는 행복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은 인식하고 그 부족함을 통해 불행함을 느끼는 것이 아닌 미래에 내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으로 긍정적인 해석을 해내는 방식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명한 것이다. 우리의 좌절은 보통 현재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인식과 거기에 더해 그것을 갖기 위해서 앞으로 정말로 힘든 노력이 필요하거나 혹은 그것을 하더라도 결국 도달하기 힘들다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좌절은 좋지 않다. 좌절은 포기를 말하는 것이며 결국 멈춰섬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사실로 인해 내 자신이 조금 우울해질수는 있더라도 그것을 좌절하면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현실을 망각하고 나의 희망적인 모습을 적으면서 혹시나 내가 뭔가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싶지도 않다.

 

이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에서 내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나는 결국 말만 그럴듯한 인간이 될 뿐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혹시나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결국 내 삶은 내가 쓴 글을 향해 가야 한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나이가 먹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행스럽게 젊은 시절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나아 보이기 때문에 나는 조금의 긍정을 생각해 본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살다  (0) 2014.02.13
다단계 - 살아가는 방식의 선택  (0) 2014.02.07
어떤 이의 일기  (0) 2014.01.31
죽음이 가진 의미  (0) 2014.01.12
Memory of naru  (0) 201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