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철학의 잘못

아이루다 2014. 1. 21. 16:07

 

개인적으로 많은 철학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무슨 체계적인 인문학 공부나 혹은 철학사 공부를 해본 경험도 없다그래서 이것에 대해 접할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가끔 서점을 방문하면 그곳엔 서양 철학사, 동양 철학사 등등의 책이 나와 있으며 쉽게 읽는 철학이나 혹은 인문학 개론에 대한 신간 서적이 눈에 띈다. 나는 그곳에서 보통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보내면서 읽을만한 책을 고르곤 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대형 서점에 가장 한산한 부스가 어디일까? 내 예상으로는 바로 이 철학 책 관련된 서적이 진열된 곳이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내 경험상으로 보면 다른 장소와 다르게 이곳엔 늘 한산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그만큼 이 철학에 관한 책들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관심이 멀어져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철학 책을 잘 보지 않는 이유가 철학에 대한 사고 자체를 하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철학이 어려워서 접근하기 어려워서 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이것에 대한 대답이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관심은 있는데 어려워서 그렇다는 것이 좀 더 정답에 가깝다. 실제로 꽤나 유명한 철학자들이 적어 놓은 그들의 저서를 읽어보면 (특히 칸트!!) 이것은 단지 한글로 써져 있어서 내가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이해가 거의 불가능 할 지경이다.

 

아마도 이런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나 개인의 이해력 부족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온 경험에 의하면 적어도 대한민국 평균치 정도 되는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온전히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두가 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일단 그 책이 나와 같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점과 또 하나는 설령 그렇게 쓰였지만 그 저자의 지적 허영심이 너무 심한 경우가 될 것이다.

 

만약 그 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닌 전문적인 직종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수준이라면 내가 하는 불평은 솔직히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치 내가 한번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는 전기에 대한 대학교에서 배우는 교재를 보면서 페러데이 법칙을 원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짓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문가 수준의 이해는 아주 오래 제대로 공부를 하거나 혹은 머리가 무척 뛰어나야 빠른 시간 내에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칸트의 책이 이런 범주에 속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인데도 불구하고 이해가 힘들다면 이것은 저자의 잘못이 크다. 왜냐하면 눈 높이를 일반인 수준으로 적어서 교양 서적 정도로 설명해야 하는데, 마치 상대성 이론 설명을 적은 교양서적이라고 해서 샀더니 그 안에 그 이론의 수학적 원리를 설명해 놓은 꼴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아주 쉬운 예로 내가 최근에 들은 한 구절의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말인데 이것은 언뜻 들으면 쉽게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약간의 생각을 해야 한다. 일단 먼저 '타자' 라는 말을 잘 이해를 해야 하는데 솔직히 일반적으로 타자는 야구에서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서있는 사람을 말한다. 만약 지나가는 사람 10명을 붙잡고 '타자'가 무슨 말인지 물어보면 아마도 야구에서 말하는 타자를 말하는 사람이 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쓰인 타자는 그냥 다른 사람을 말한다. 물론 타자와 다른 사람은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보통 ''짜가 붙으면 존재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다른 존재 라는 뜻이 더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존재란 말에 인간 이외의 생명체가 들어갈 자리는 별로 없다. 그래서 이 말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풀어 써도 또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말이다. 글을 쓰는 것을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면 동일 어휘의 반복적 사용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이 부분을 내 능력껏 생각해서 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대 놓고 반복했다.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은 좀 쉽게 풀어 쓰면 '다른 이가 바라는 것을 욕망한다', '다른 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바란다' 이런 식으로 풀어 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말을 쓸까?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어떤 말에 대해서 좀 더 생각적 여운을 주고자 함일 것이다. 왜냐하면 말을 만든 이가 너무 직접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 버리면 이 글이나 말을 접한 사람들은 좀처럼 개인적 사고를 여기에 집어 넣을 수 없다. 그래서 그 말을 한 주체가 원하는 대로 완전히 끌려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따뜻한 실내' 라는 말은 '장작이 빨갛게 타오르는 벽난로가 있는 아늑한 곳' 이란 말로 대체가 가능 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표현에서 따뜻한 실내는 누구나 느끼는 느낌 일 테지만 장작이 타는 실내는 개인적 경험에 의해 그것에 대한 해석이 무척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표현을 개인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솔직히 결국 이런 표현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결국엔 철학적 외계어를 만들어 내지 않나 싶다.

 

철학에서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사유' 라는 말이다. 사유는 다양한 동음 이의어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사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사용법은 아마도 어떤 거의 이유로서 표현되는 경우일 것이다. 혹은 개인적 소유란 의미도 될 것이다. 하지만 철학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을 땐어떤 일에 대한 생각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나 역시도 이 사유란 단어를 좀 더 이해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사유는 이젠 좀 익숙하다.

 

하지만 철학 책을 좀 읽어 본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 한문으로 만들어진 용어들이 과연 존재하는 말인지 아니면 오타 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전문적이거나 혹은 쓰이지 않는 용어들이 많다.

 

예를 들어 '표상' 이라든가 '격률', '사변' 등은 알 것 같으면서도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단어를 풀어 쓰는 것은 불가능 할까? 그것은 나 역시 잘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쇼펜하우어씨가 쓴 책을 좋아한다. 그는 염세주의자로 유명한 사람인데 글은 참 쉽게 썼다. 그래서 그가 쓴 책엔 이런 어려운 단어들이 잘 안 나오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단어들을 나열해서 그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또한 그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해 상당히 주관적으로 명료하게 기술을 해 놓았는데 그것으로 인해 이 책을 읽을 땐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책은 아주 드물다. 보통의 철학자들이 쓴 책은 대부분 어떤 사조에 들어가서 실증주의나 관념주의, 초월주의 등의 분류화 된 후 소속이 된다. 그것을 그 철학자 본인이 그렇게 했는지 아니면 철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보니 그 책들은 시작부터 특정 편을 들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철학은 '' 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왜 사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것에 대해 다양한 질문과 답을 던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질문과 답을 보면서 그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 자신 역시도 그들과 같이 질문을 하고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쓰고 어려운 분류를 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물론 일단 철학 책 자체를 잘 접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모습도 큰 문제가 있지만 결국 그들이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은 역시나 그 두꺼운 책과 이해하기 힘든 언어의 힘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래서 그런 듯 요즘의 책들은 꽤나 쉽게 적혀 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책들은 그 자신의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요즘 나오는 철학 책들은 과거에 나온 훌륭하다고 알려졌거나 이름이 많이 알려진 철학자들의 저술들을 모아서 짜깁기를 해 놓은 것들이 많다. 그래서 솔직히 읽기는 쉬우나 읽을 내용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왜 요즘은 누군가의 인생론이 서점에 있지 않은가가 아쉽다. 어떤 객관화되고 학문적 가치가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누군가의 완전한 주관적인 시선에서의 자신의 삶을 바라 본 생각을 간접적으로나 경험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사회 유명 인사가 자신의 과거의 삶을 아주 유치찬란하고 희망적으로 적어 놓은 자서전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엔 철학이 아닌 남들에게 칭찬을 받을 여러 종류의 에피소드에 대해서 적어 놓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인격적 완성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 현상은 아마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 온 사람 자체가 무척 줄어들었고 또한 그랬다고 해도 그 삶 속에서 느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쓰고 출간을 하기 까지가 너무도 힘든 과정이어서 그럴지 모른다. 실제로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 된다.

 

거기에 더해서 요즘과 같은 다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현상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의 잘못된 추측을 기반으로 한 철학적 사고가 발 디딜 틈이 없어진 탓에 누구도 용감하게 현재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과감한 정의가 꽤나 용기 있는 행동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과거에는 4개의 기본 원소로서 세상이 이루어졌다고 우길 수 있었으나 요즘 이런 소리를 하다간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철학의 학문적 접근 보다는 개인적 경험과 오랜 생각을 통해 나온 그 자신만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잘 치장되거나 보기 좋게 편집되지 않은 채 불편하지만 직설적으로 또한 단어적으로 세련되지 않더라도 그 의도를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예와 함께 들었으면 한다.

 

철학은 살아 남았지만 철학자는 점점 줄어가는 세상으로 보인다. 이젠 철학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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