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돈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또 얼마는 매우 좋아하고 또 얼마 정도는 어느 정도만 좋아한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좋아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 좋아하는 것은 동일하나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할까?
실제로 돈을 어느 정도만 좋아하는 사람도 돈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과 똑같이 돈이 생기면 즐겁고 행복해 한다. 여기에서 차이라면 그 돈을 위해 자신의 어떤 것을 희생해야 할 때 그것을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겠느냐는 가치관에서 차이가 난다. 즉 누군가는 1억에 자신의 영혼을 팔기도 하고 다른 이는 천억을 줘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현재 돈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느냐와 돈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가도 판단시점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목숨처럼 아끼는 사랑하는 이가 사경을 헤매이고 있을 때 수술비가 없다면 그때 돈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다. 그 돈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와 바꿀 수 있는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다.
돈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완전히 세상의 가치로부터 벗어나 인생이란 여정에서 통달한 경지에 올라 선 사람이다. 혹은 이미 충분히 많아서 주체하기 힘든 사람이라서 필요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보통은 그런 통달하기도 쉽지 않고 너무 많기도 쉽지 않으니 돈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대부분 거짓말인 것이다. 화폐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돈을 좋아한다. 우리가 그리 좋아하는 돈은 큰 죄가 없다. 하지만 돈은 늘 탐욕의 상징으로 오해를 받아 왔다. 그래서 오늘은 돈에 대한 변론을 해보고자 한다.
빈부격차가 꽤 크게 나는 우리나라 같은 나라에서는 소위 말하는 평균소득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전체 부는 커서 반으로 나누면 꽤나 높은 수치가 나오지만 역삼각형으로 심하게 상부로 왜곡된 부의 편중 현상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평균 수입보다도 못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균치는 양호하나 평균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원래는 50%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80%가 가깝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체 인구가 10명이 있는데 총 수입이 100만원이어서 계산하면 평균 수입은 10만원 이지만, 그 중 두 사람의 수입은 각각 45만원원 씩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1만원이라면 결국 평균 수입은 10만원이 맞지만 결국 10만원도 채 못되는 사람이 8명이 되는 원리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사람들은 평균에도 못가서 결국 평생을 평균에 근접하기 위해 살아가게 된다. 소위 말해서 돈을 벌려고 평생을 살지만 결국 특별한 기회가 없는 한 평균치도 도달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수 많은 언론에서는 늘 이 평균을 이야기하고 더 심한 경우는 그 상위 20%의 사람들의 수준에서 세상을 평가하고 말한다. 그것은 어차피 돈을 쓰는 주체가 바로 그들이기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기분은 더럽지만 이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칙이다.
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돈과 행복지수의 그래프 양상이 어느정도 일치한다고 한다. 단지 돈의 액수가 어느 임계지점에 다다르면 돈이 늘어도 행복은 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 지점을 보통 그 사회의 평균 소득이나 혹은 조금 더 나은 정도라고 보면 될 듯 하다. 미국의 경우 한달 수입이 400만원을 넘게 되면 이 두 그래프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돈이 있다고 행복한건 아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아무리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살아간다고 해도 비와 추위를 피할 집과 옷가지 그리고 매일 먹어야 할 밥이 필요한 존재이다. 이것조차 없으면 우린 노숙자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돈은 행복의 필수요소이다. 이것을 반박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며 또한 정말 돈이 없어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돈이 행복의 필수요소일까? 실제로 돈 그 자체는 그저 화폐일 뿐이다. 하지만 돈은 교환권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과 가치에 대해서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만능 존재이다. 그래서 돈이 중요하다. 돈은 그 자체가 행복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린 돈을 통해 교환된 그것을 우리의 행복 대상으로 삼는다. 어떤 이는 돈이 아닌 아침 일출의 멋진 광경이나 높은 산에 오른 후 보이는 구름바다의 모습에 감격하면서 이런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건 틀렸다. 그 사람이 그곳까지 가는데에는 정확하게 돈이 쓰였기 때문이다. 차로 갔다면 기름값도 필요하고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았다면 그 돈도 필요하다. 또한 등산복을 사거나 도중에 간식꺼리로 먹을 것이 필요했다면 그 역시 돈이 들었을 것이다. 만약 정말 10원도 없었다면 그는 그곳까지 수십일에 걸쳐 걸어갔어야 하고 또한 중간에 잠도 먹을것도 없어서 아마도 그 산에 오를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돈을 행복으로 교체하는 과정이다. 단지 그것을 무엇으로 어떻게 교체할 수 있느냐에 따라 많은 돈이 들기도 하고 적은 돈이 들기도 한다. 돈이 행복과 완전히 분리가 되는 순간이라면 도대체 돈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이다. 이것이 웃긴것 같아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이 현대의 행복 부재현상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TV 드라마를 보면서 행복해 한다. 물론 매달 시청료를 지불하지만 솔직히 이 비용은 그 행복을 얻는 가치에 비해 매우 소액이다. 요즘은 스마트 폰을 통한 SNS 활동이나 혹은 각종 게시판에 들어가 글을 읽음으로서 행복을 얻는다. 이것도 역시 매달 통신비나 단말기 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 역시 소액이다. 그럼 정작 자신의 수입 중 꽤나 많은 돈을 들여서 행복을 얻는 요소는 어디에 있을까?
어떤 이들은 영화를 보면서, 여행을 다니면서, 각종 모임에 참석함으로서 혹은 이 모든 것을 다하면서 행복을 얻는다. 그나마 이런 사람들은 활동적인 성격 탓에 돈을 행복으로 잘 바꾸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많은 귀차니즘에 빠진 의욕상실증에 걸린 이들은 시간과 돈이 있어도 정작 자신이 돈을 행복을 바꿀 대상을 찾지 못해서 그냥 TV나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죽이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거기에 더해서 사람을 만나든가 맛난 먹거리를 찾든가 하는 행위를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비용대비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리 크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람은 자신이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거기에 자신이 가진 돈을 쓰는 것에 절대 인색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데 자신이 사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그 행복을 얻는데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을 아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서 실제로는 돈이 없어서 못 쓸뿐 쓸 수만 있다면 언제든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된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어떤 것을 사거나 하는데 있어서 들어간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실제로 그 대상이 잘못된 가격 정책을 가졌다기 보다는 본인이 그것에 대해 만족을 못한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서 잘 생각해야 할 점은 만약 세상 거의 대부분의 것에 대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말 행복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며 결국 돈 하고 행복은 완전히 따로 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돈이 행복하고 일치하지 않는 가장 흔한 예가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이 심각해지면 어떤 사람은 돈 모으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돈이 안드는 행복 요소일 것이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훈련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 아주 쉬운 예로 피아노 치는 취미를 가진 어떤 사람은 가끔 그 피아노를 치면서 혹은 남들 앞에서 연주를 해줌으로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피아노 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는 오랜 시간 그것을 훈련하고 배움으로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독서도 비슷하다. 책도 어려서부터 읽어 버릇한 사람이 잘 읽고 거의 대부분의 행복을 위한 행동이 바로 이렇게 사전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물론 TV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거의 훈련이 필요없는 행동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평소에 행복을 위한 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노력하지 않고 얻는 행복감이 된다. TV는 그래서 돈도 안들고 훈련도 필요없는 행복이며 결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행복이다.
* 이 부분에 있어서 소위 선진국이라는 유럽과 우리나라가 아주 현저하게 차이를 보인다. 유럽쪽 선진국은 어린시절 교육이 각자가 어떻게 스스로 행복을 찾는지를 알려주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성인들이 정한 규칙에 의해 행복하는 법을 강요 받는다. 유럽의 아이들은 자신이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후 그것을 위해 돈을 버는 반면, 우리의 아이들은 돈을 먼저 벌고 나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이것이 우리가 그들보다 행복하지 못하게 살고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유다.
문제는 TV가 가진 그 근본적인 문제인데, 바로 사람들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서 모든 상황을 일차원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초딩스러운 어른들의 놀이, 막장 드라마, 온갖 가면을 다 뒤집어 쓴 진실이라고 우겨지는 이야기들, 황당한 상황이나 지어낸 이야기 등등.. 인간의 정서적인 부분을 심각하게 교란하는 상황이 발생해 오랫동안 TV에 노출되면 사람 자체가 중독자처럼 단순해지고 본능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한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돈 안들고 훈련도 필요없는 행복을 얻은 댓가일 것이다.
돈을 모으는데 행복한 사람은 더 심각하다. 돈을 모으는 것이 행복하기에 돈을 쓰는 일이 불행한 것인데 이 경우 그의 주변인 모두가 돈을 모으는데 행복하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못하고 돈을 써서 행복을 얻는 사람이면 여기에서 가치관 충돌이 강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경제 생활의 주체가 돈을 버는데만 집중하니 주변인들이 매우 힘들어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행복을 통장에서 찾든 TV에서 찾든 히말라야 등정에서 찾든 그것은 개개인의 몫이니 행복을 얻는 주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돈을 행복으로 바꾸는데 있어서 그 대상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스스로 알아내는 과정이다.
매일 많은 돈을 들여서 명품 쇼핑을 하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큰 행복감을 준다. 문제는 그 돈이 무한정 하지 않다는 점이고 또하나 추가적이 문제는 모든 행복에는 중독성이 있다는 것이 있다. 즉 행복은 어느 정점에 다다르면 더이상 늘어나지 않고 쪼그라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행복감과 동일한 수준을 얻으려면 훨씬 많은 돈을 들이든지 아니면 다른 행복 대상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노력하지 않고도 얻는 행복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마약을 통해 쉽게 예측된다. 세상에서 마약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할 수도 있지만 그 마약은 절대로 영원할 수 없다. 우린 언젠가 그 마약을 사기위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돈이 있더라도 몸이 허약해져서 결국 언젠가는 중단해야 한다.
이런 행복 대상은 우리 인생 전체에 걸쳐서 보면 금방 소비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가지고 있는 돈을 쓸 것인가? 그것도 돈 자체가 한계가 있어서 돈자랑 하는 행복은 금새 바닥을 들어 낼 수 있는 위험이 있고 TV 만 보고 살자니 인생이 너무 한심스럽기도 하다면. 물론 TV만 보고도 자신의 인생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더이상 이야기 할 것은 없다. TV 만큼 좋은 취미가 없다. 단지 그럴 경우 같이 사는 주변인이 그 사람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갖지 않을 것이다. 게임도 비슷하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는 두뇌의 경직성과 함께 오는 육체적 노화현상이다. 너무 오래 정지된 상태로 시간을 보내면 몸이 안 좋아진다. 즉 건강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많은 사람들은 도덕적인 측면이나 혹은 인본주의적 측면에서 돈을 추구하는 삶에 대해 강한 경고를 보낸다. 특히 인문주의자들의 이야기는 많은 좋은 글로서 말로서 다른 이들에게 전달이 된다. 하지만 돈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돈은 행복과 연결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단지 돈이 어떤 행복으로 연결될지가 중요한 포인트이지 돈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생각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 역시 책을 읽어라, 여행을 해라, 남들과 어울려라, TV를 멀리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라 등등의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이것들과 돈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도 돈이요, 여행도 돈이요, 남들과 어울림도 돈이며 새로운 것을 배울 땐 돈이 든다. 우린 TV와 멀어지는 순간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간다.
삶 자체가 돈이 필요한 과정이니 돈을 벌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돈 말고 다른 가치를 찾으라는 소리가 아니고 가지고 있는 돈으로 어떤 행복과 교환을 할 것인지를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행할 뿐이고 그런 것이 너무도 많은 사람은 만원으로도 남들은 10억이 필요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10억을 버는 것이 쉽겠는가? 아니면 만원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쉽겠는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후자를 선택하겠다.
우리가 어린 시절이 행복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때는 정말 적은 돈으로 충분히 행복했기에 그 시절이 좋은 것이다. 우린 크면서 이런 행복에 중독되어서 그 행복감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인간에게 어쩌면 이런 부분이 가장 불행한 점일지도 모른다. 행복이 중독만 되지 않는다면 우린 아마도 훨씬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인생이다. 또한 어떤 행복을 위해 돈을 쓰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그것이 타인에게 큰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최대한 많이 교환 가능한 행복을 찾아 두는 것이 어떨까? 이것도 솔직히 젊었을 때나 가능한 선택이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을 해본다. 우리는 돈과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돈은 행복을 위한 아주 막강한 수단이지 행복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린 그 돈을 이용해 어떤 행복과 교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돈 자체의 죄도 아니고 돈 자체의 문제도 아니다. 돈은 많을 수록 좋으며 단지 그 돈을 버는데 있어서 얼만큼의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수단인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목적인 행복을 너무도 많이 포기해야 한다면 이건 계산을 잘해봐야 한다. 하루에 18시간을 일하고 남들보다 10배이 돈을 벌면 뭐하겠는가? 실제로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는데. 물론 일 자체가 너무도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일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역시 몸을 많이 상하게 하기에 최종적으로 건강을 잃어서 불행해질 수 있다.
돈과 행복사이에서 적당히 저울질하고 또한 그렇게 해서 자신이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자신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