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 방정식

아이루다 2013. 9. 2. 12:47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뜨거움이 지나간 9월 초, 이런 날은 간단한 운동을 하고 난 후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약간 선풍기 바람이나 혹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기운이 느껴지는 한줄기의 바람을 느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어도 몸 전체에서 전해오는 나른함과 개운함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까닭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도 약간의 땀을 낼 정도의 운동을 한 몸과 샤워를 하여 그 땀이 모두 씻겨 내려간  뽀송뽀송한 피부와 운동 후 각 근육에서 느껴지는 뻐근함이 서서히 회복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뭐 이런 분석이 무슨 대수랴. 그냥 그런날은 나도 모르게 행복을 느낄 뿐이다.

 

사람의 사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행복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도 역시 더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있는 답이긴 한데 아무튼 표면적으로는 행복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할 가장 중요하고도 최종 목표가 되는 가치라는 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할 것이다. 그야말로 돈에 모든 가치 기준을 쏟은 사람이나, 그런 세상이 싫어서 기존 사회가 가진 터무니 없는 행복관을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은 바로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린 그 어떤 사고를 통해 그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최종 결론에 이르를 뿐이다.

 

남을 돕는 것도, 남을 속이는 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자신이 싫어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참고 하는 일도, 여행을 다니는 것도, 집에서 온라인 게임만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술을 먹는 것도 모두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서 약간의 틈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기 위해서보다 불행하지 않기 위해 하는 일도 꽤 된다. 행복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불행은 아니니 불행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일인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누구나 원하는 이 행복은 도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많은 이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맛있는 식사, 멋진 상대와의 데이트, 좋은 장소로의 여행, 운동을 열심히 한 후 느끼는 몸의 상쾌함, 재밌는 영화/소설, 쇼핑, 새로 산 가방 자랑하기, 친구와 대화, 누군가로부터 받은 안락함 등등 우린 이미 이 행복에 대한 노하우를 제법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해내기가 힘들다.

 

유럽 여행을 가면 행복할 것이란 것을 아는 어떤 사람은 유럽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여행 비용, 여행기간 동안의 휴가, 같이 갈 수 있는 좋고 편한 친구 심지어는 그나라의 정치 상황까지 다 고려가 되어야 비로소 원하는 여행을 갈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어떤 것을 하고 ,보고,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해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일치 되지 않는 일이 매우 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맛난 먹거리 먹기를 너무도 좋아하는 누군가는 매번 그렇게 케익이나 달콤한 팥빙수등을 먹다가는 언젠가 늘어난 체중으로 인해 큰 고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늘 그것을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뚱뚱하게 살이 쪄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 또한 그것에 소요되는 비용도 꽤나 크게 작용하고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좋아해도 매일 쉬지 않고 먹으면 질려 버려서 한 동안 그것을 먹지 못하는 일까지 생긴다는 점이다. 즉 행복은 중독성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상황이다.

 

운동의 행복은 그나마 이런류의 돈이 반드시 필요한 행복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뛰기나 걷기, 자전거 등은 물론 아예 돈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행복활동에 비해 훨씬 적은 돈이나 혹은 거의 없이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운동은 나의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굳센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의지를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데는 많은 다른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 물론 운동 후 상쾌함이나 건강함은 다른 가치들에 비해 훨씬 값진 것이긴 하지만.

 

이렇듯 행복은 하고자 하지만 하지 못하기도 하고, 너무 하다가 보면 부작용을 얻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것에 익숙해져서 행복 자체를 못느끼게 되기도 하다. 그리고 운동처럼 하고 난 후에는 행복하나 하기 전에 결심도 힘들고 하는 중에도 고통이라는 불행이 느끼지는 것들도 있다.그래서 우린 늘 행복을 원하지만 실제로 행복을 얻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좀 더 현명하게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봐서 우리 보통 사람들 대부분은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돈의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행동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에 익숙한데, 이 행동들에게는 대부분 돈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행을 가든, 먹을 것을 먹으로 가든, 영화를 보든, 책을 사서 읽든 하물며 운동조차도 결국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직장 생활을 통해 매달 받는 월급을 통해서 우린 계속 자신이 행복한 방향으로 돈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가 돈을 벌 수 없는 날을 대비해 미래의 행복을 위한 돈 모으기도 해놔야 하니 얼마나 돈이 모자르겠는가?

 

물론 세상엔 이런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매우 적은 소수의 절대적 부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라도 해서 돈만 많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할 수는 없다. 돈은 행복을 위한 강력한 도구이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행복이라는 것은 그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돈이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행복을 느끼지만 이미 돈이 충분한 사람은 돈이 있는 것에 대한 행복조차 느끼는 못하는 문제도 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명확한 방정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나눈 값이다.

 

행복 = 소유/욕망 인 셈이다.

 

어디선가 본 익숙한 이 방정식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여기에서 소유는 단지 돈과 같은 재물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의미한다. 지식과 경험이나 좋은 친구 등등도 여기에 속할 수 있다. 그리고 욕망은 우리가 갖고자 하는데 아직 소유화 되지 않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욕망이 크거나 소유가 줄면 행복을 줄어들고 반대로 욕망이 작거나 소유가 커지면 행복은 늘어난다.

 

이 공식에서 현대인들 대부분은 보통 소유를 늘리는 쪽으로 행복을 찾는다. 우리가 매일매일 일하고 또한 모든 관계 속에서 이득과 손해를 끝없이 계산하는 이유가 바로 이 소유에 대한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조금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며, 반대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침울해지고 불행을 느낀다. (이 부분은 인간의 뛰어난 두뇌의 작동으로 가능한 예측능력이 역할을 한 것이다. 실제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서 행복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여행을 떠날 때 전날 밤의 두근거림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나 그렇게 원하기에 소유를 늘리기 위해서는 매우 치열한 경쟁을 거치고 거기에 더해 이기기까지 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돈을 갖고자 하기에 결국 경쟁을 통해서야만 돈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 우리는 실제로 이 경쟁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이 보통은 간접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기에 그런 것이다. 수능을 볼 때도 어딘가 입학 원서를 낼 때도 우린 경쟁을 경험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누구와 경쟁을 하는지 잘 모르게 이루어진다.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들어간 새내기 1학년들은 처음 대학 모임에 가서야 그 경쟁에서 이긴 상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직장도 완전히 동일하다.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경쟁을 안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식당을 예약하는 행위조차도 하나의 경쟁이다. 그리고 이 경쟁을 통해서야만 우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렇듯 100명이면 100명 모두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면 우린 참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서 마음을 비우고 남들보다 더 갖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남들만큼이라도 갖고자 하는데 더 집중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진정한 불행이 시작된다. 이것은 1등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꼴등을 하고 싶지 않아하는 심리와 동일하다. 실제로는 꼴등보다는 나은 것을 원하는데 그것이 보통 평균값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래서 평균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즉 중상위권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런데 남들만큼 갖거나 남들보다 조금만 더 갖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내것과 남의 것을 아무런 근거없이 무작정 비교하는 행동이다. 차라리 남보다 많이 갖고자 한다면 그것을 실제로 갖든 못갖든 상관없이 그 스스로 경쟁의 무리에 뛰어들어 최선을 다해 경쟁에 임하겠지만 남들 만큼만 갖겠다는 마음은 그런 경쟁을 할 마음가짐도 없고 또한 남들보다 못하게 사는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은 스스로는 '나는 그리 욕심이 많지는 않은데 왜 이 정도도 못 갖게 되어 불행한 걸까' 라고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냉정히 생각해보면 과연 누가 우리들에게 '그 만큼' 가질 권한이 있다고 부여해줬단 말인가? 고등학교 자신과 성적이 비슷하고 친하게 지낸 동창 친구가 가졌으니까? 대학교에서 같은 과를 나와 성공한 친구가 그러니까? 남편을 잘 만나 너무도 여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친구가 그러니까?

 

이것은 마치 기독교에서 생일날 불러주는 복음성가 가사와 비슷하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란 가사는 우리 스스로가 마치 정말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물론 종교에서는 신이 있기에 그렇게 가사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은 너무도 자의적인 판단일 뿐이다. 우린 그냥 태어났고 운이 좋으면 사랑받고 살아가고 운이 없으면 어려서 부모에게 버려져서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다.

 

하지만 우리 의식은 이것을 잘 인정하지 못한다. 특히 어떤 이권이든지 자신이 그것을 누린지 몇년만 지나도 이제 그것이 운이 좋아 얻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원래 자기의 것으로 느끼면서 그것을 절대로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득권이 만들어지는 원리이고 또한 우리 모두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기득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보통 집안의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해주는 것을 원칙적으로 '당연한 행동'으로 여긴다. 하지만 부모는 왜 자신의 아이에게 그 많은 것을 해줘야 하는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면 의무적으로 말이다. 이런 상황만 따져봐도 우리가 얼마나 세상에 대해 근거없는 요구를 하고 살아가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일반적인 경쟁에서 벗어나 아까 말한 방정식에서 이제 분모가 되는 욕망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건 매우 쉽다.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을 줄이면 행복해진다. 누구랑 경쟁할 필요도 없고 누구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 욕심을 버리면 나는 행복해진다. 물론 여기에서도 남들만큼 갖고자 하는 이정도는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주장하는 생각이 작동하여 욕망을 줄이는데 무척 어려움을 준다.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가진 것을 늘려서 행복하려면 많은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경쟁하고 싸우고 심지어 반칙조차도 서슴치 않을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피하고 싶어서 (양심은 깨끗하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자신은 반대로 욕망을 줄이는 쪽으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우를 피하려다가 사자를 만난 꼴이 된다. 차라리 욕망을 위해 살아가면 살아가면서 열심히나 살 것인데 어중간하게 욕망을 줄이다보니 '나는 이정도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본전심리가 튀어나오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빠지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다시 방정식을 통해 살펴보자. 우린 가진 것을 늘리거나 가지고 싶은 욕망을 줄여야 행복한데, 가진 것을 늘리는 것은 추가적인 능력과 운이 따라야 한다. 즉 하고 싶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불행을 해소하기 위해 갖고 싶은 욕구를 줄이는데로 방향을 튼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이제 '남들만큼' 이라는 비교의 존재가 모습을 들어내어 이 욕구를 줄이는데 한계를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비교는 철저하게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 모임, 소속한 조직 등을 기준으로 한다. 즉 잘난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남들보다 더 많은 '남들만큼'이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 '비교행복' 이라는 마약이 주입되어 버린다.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많은 성인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바로 욕심을 버리고 본질적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공자의 인, 부처의 자비, 예수의 사랑 모두 단어적으로만 다를 뿐 세계의 성인이라고 꼽히는 이들 역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본질적 가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맞다. 즉 욕망을 추구하는 삶은 어떤식으로든 우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획일화 시키며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을 위해 남에게 혹은 공공의 삶에게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내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나를 다스려야 하고 내가 품은 근거없는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정말 최소한의 것만 요구하는데 그것도 가질 수 없냐고 반문할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내 방을 하나 갖고 싶을 뿐이라고 하고,누군가는 조금 넓은 집을 갖고 싶을 뿐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나는 회사에서 조금 가까운 넓은 집을 갖고 싶을 뿐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회사에서 가까우면서 아이들 교육환경이 좋은 집을 갖고 싶을 뿐이라고 반문한다. 도대체 그럼 우린 여기에서 우리가 만족하는 순간을 결정하기가 힘들어진다.  가장 좋은 조건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더욱 더 좋은 조건에서 살아간다면 그 스스로 왜 나는 그가 어울리는 사람들만큼도 못사는 것일까 하고 불행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져야 할 것들 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실제로 내가 가져야 할 것들이 아니다. 그냥 그것은 운이 좋으면 갖기도 하고 능력이 뛰어나면 갖기도 한다. 화장품 회사를 다녀서 보통 사용하는 기초 화장품 정도는 모두 회사에서 얻어다 쓰는 것이 운인 것이지 능력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린 이런 운조차도 스스로는 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어서 어느날 회사에서 개인별로 공짜 화장품을 가져가지 못하게 했을 때 회사가 쪼잔하다고 욕을 하게 된다.

 

이런 예는 너무도 많아서 스스로 생각해보지 못하면 그 존재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우린 행복하기 위해 산다. 불행하면 우린 자살하여 이 삶을 마감해버린다. 물론 강한 정신을 가진 이들은 어떤 힘든 일이 있어서 스스로 극복하려고 하지만 이 역시 한계는 있다. 누구나 한계가 있다.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자신이 누리는 그 많은 것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빈 자리가 없다고 투덜댈것이 아니라 버스라도 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지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그 버스가 없어서 하루에 두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왔다. 물론 그 덕에 그들은 인식하지 못화겠지만 평생을 위한 건강을 얻었다는 점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무조건 감사하고 즐겁게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대상은 없더라도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온전히 내 노력과 의지에 의해서만 가진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따지면 거의 운이 맞다. 그럼 이런 것들을 가졌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돈을 줍는 것만이 행운이 아니다. 내가 학교에 합격하고 직장에 합격하고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것 모두가 행운이다. 누군가는 그 학교에 떨어지고 그 직장에서 떨어지고 또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실직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 행복 방정식은 너무 뻔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이렇게 밖에 말 할 수 밖에 없다. 더이상 행복에 대해서 추가적인 조언은 불가능하다.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해서 가진것을 채우든지, 갖고자 하는 마음을 줄여서 욕망을 줄여야 한다. 물론 행복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살아가면 된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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