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 대부분의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쌍을 이루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면 음지와 양지,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등등 정확히 의미적으로 반대가 되는 것들도 있고 반듯함 - 울퉁불퉁 함, 착함 - 악함, 위 - 아래, 겉 - 속 등과 같이 어떤 상태가 개념적으로 반대로 되는 것들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보통의 것들과 다르게 시간의 방향성은 오직 한쪽으로만 흘러 그 반대가 없다. 즉 우린 적어도 지금의 발전 단계에서는 지나온 시간으로 되돌아갈 줄 모른다. 그리고 현재까지 밝혀진 물리학 법칙상으로도 불가능하다.
시간이 현재를 지나면 과거라고 불리고, 아직 현재가 되지 못한 시간을 미래라고 부른다. 즉 시간은 단순히 미래, 현재, 과거 순으로 변해간다. 오늘은 현재이지만 어제만 해도 미래였다가 내일이 되면 과거로 된다.
이 시간의 일방적 흐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은 매우 여러가지가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우리 삶에서 너무도 중요한 덕목인 '행복'에 대한 정의가 몹시 헷갈린다.
행복은 명백하게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래서 우린 살아가면서 그 수많은 순간에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선택을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린 선택이란 과정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선택은 바로 내가 얼만큼 더 행복해질 것이냐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행복은 시간의 단일방향 흐름에서 과연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 내가 행복하다는 말은 지금 행복해야 그 말이 나오는 거지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을 통해서는 그런 말이 나오지 못한다. 어제 분명히 너무도 행복했더라도 오늘 내가 불행하다면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주말에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더라도 월요일만 되면 불행해지는 직장인들의 삶이 바로 그렇다.
그런데 또다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린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불행함을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분명히 선택이다. 현재의 행복을 선택하느냐 혹은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겠느냐는 것을 말한다. 그럼 우리의 행복 기준점은 현재만은 아니란 뜻도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행복한 순간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로 되어 버린다.
물론 과거는 가끔 사진을 보듯 우리가 그것을 회상하거나 기억을 하면서 그때 느꼈던 기분을 상기시키기도 하는 역할을 해주지만 실제로 이런 것은 그저 나이 먹은 노인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상기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에 행복이 부족하여 과거의 행복한 시절을 불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진짜 행복과는 좀 차이가 난다.
시간의 흐름은 미래 -> 현재 -> 과거로 간다면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미래의 행복 -> 현재의 행복 -> 과거의 행복 으로 흘러감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미래든 현재든 어떤 행복한 순간을 가질 가능성이나 혹은 가졌다고 해서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과거로 가버려 그저 추억이나 기억에만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10일 후 떠날 가슴 설래는 유럽 여행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일이 되었다가 여행 중인 현실로 바뀐 후 또 여행에서 돌아 온 후 10일이 된다. 여행 기간이 10일이었다면 이 여행은 한 달만에 미래,현재,과거로 변해간 것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더 흐르면 점점 더 잊혀져 10년 쯤 지나면 내가 그 행복했던 여행을 했다는 사실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수준까지도 된다.
이것은 행복의 묘한 특성을 보여준다. 즉 현재 내가 얼만큼 행복할 것인가를 두고 우린 수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번 과거로 변해간다. 거기에 반대로 현재의 불행 역시 계속 과거로 변해간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한다. 과거 10년 전 사업 실패로 인해 몇 억의 빚을 진 이가 지난 10년간 온갖 힘든 역경을 다 극복하고 오늘 마지막 남은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분명히 이사람에게 지난 10년은 지옥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10년이 지난 이 순간 이젠 이 사람에게 이 과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좋지 않은 추억이며 가끔 자신이 그렇게 세상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기억만 존재한다. 대한 민국 남자들 대부분이 다녀오는 군대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 군대란 조직에 있을 땐 그리 힘들었는데 나오고 나면 어쩌면 재미있는 추억꺼리처럼 이야기 되곤 한다. 물론 그래서 다시 가라고 하면 심하게 화를 낼 것이지만.
반대로 지난 10년을 정말로 행복하게 살았던 이가 인생의 큰 위기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기 시작한 바로 그시점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에게 현재는 불행이고 이때 과거의 행복한 10년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현재의 불행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즉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할수록 현재의 불행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 사람은 실제로 불행하다. 그리고 이 사람과 달리 지난 10년을 불행하게 보내고 그 불행의 터널을 빠져나온 이와 비교해 분명히 더 행복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지면 두 사람의 대답은 완전히 과거의 반대가 된다.
우린 분명히 행복하기 위해 산다. 그런데 그 행복 자체가 기준이 매번 바뀐다. 현재의 행복이 미래의 행복을 의미하지 않고 현재의 불행이 미래의 불행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늘 현재일 뿐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누군가 이 글을 읽을 이가 쳐다 본 달력과 시계 속 시간이 바로 기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행복에 대한 기준을 꽤나 명확하게 세우고 살아간다.
거기에 더해 행복이란 녀석은 시간에 따라 몹시 빨리 변화해 간다. 배가 너무 고파서 들어간 부페식당의 처음 20분은 너무 행복했고 조금 지나면서 배가 불러 답답함을 느끼고 한 시간이 흐른 후 소화가 안되어서 마치 처음 배고픈 순간이 더 낫다는 생각마져 들지 모르게 된다. 이것은 단지 한시간 내에 이루어진 변화이다.
다이어트 중에 너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맛나게 먹고 다음 날 저울에 올라가 자신의 몸무게를 재는 순간엔 왜 내가 그 아이스크림을 먹었나 싶은 후회가 밀려든다. 물론 그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은 행복했으나 이것이 과거가 되는 순간 그 행복은 불행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재의 행복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것을 제어하고 조절해야만 행복이란 목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음을 지식적으로, 정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행복을 마구잡이로 추구하면 우린 결국 그 행복이 가져오는 불행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린 미래의 행복을 상상한다. 그런데 또 그 미래도 금새 현재로 바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로 변해 버린다.
하지만 우린 늘 미래를 심지어는 죽는 그날까지를 상상한다. 우리는 노후를 준비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족할만큼 행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일까? 우숩게도 그 순간은 바로 자신이 죽는, 생명체로서 가장 큰 불행을 당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70년을 불행하게 살다가 죽기 한달을 행복하게 살다 죽었다면 이것은 행복한 삶일까? 반대로 70년을 행복하게 살다가 남은 한달을 절망 속에서 살아 갔다면 이것은 불행한 삶일까? 만약에 우리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두가지 종류의 삶 중에서 하나 만을 선택 할 때 시작의 순간에는 많은 이들은 70년 행복과 한달의 불행을 선택 하겠지만 70년이 지난 단 한 달만을 남겨 놓은 시점에 과연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이 문제는 시간의 특성과 함께 우리가 순간순간 느끼는 그리고 우리가 늘 추구하고 살아가는 행복이란 목표에 대한 혼란스러운 숨겨진 특징을 들어내어 준다. 우린 왜 매번 과거로 변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든, 좋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 그 모든 행복에 대한 선택을 그리 중요하게 여길까? 현재 아무리 행복해도 조금만 시간만 지나도 금새 과거가 되어 버리는 것을. 그리고 반대로 현재 아무리 불행해도 금새 과거가 되어 의미 없어져 버리는 것들을 왜 그리 집착을 할까?
물론 이 질문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긴 하다. 내일 밥을 먹을 거니까 오늘 밥을 안먹는거나 어제 밥을 먹었으니 오늘 밥을 안먹겠다는 소리랑 비슷하다. 우린 늘 현재 속에서만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행복에 대한 중요한 맹점이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행복의 보편적 속성이기도 한데, 그것은 바로 '비교에 의한 행복' 이다.
우리의 행복은 보통 절대적인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행복이 바로 비교를 통해 나타난다. 이것은 사회가 수준이 낮을 수록 심각하게 일어나는데 아무튼 자신의 행복을 느끼는 방법 중에서 자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더 좋은 것을 소유했고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으로 인해 느끼는 행복을 말한다. 실제로 이런 종류의 행복은 우리 사회의 행복관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대적 비교 역시 철저히 시간 종속적이란 점이다. 예를 들어 오늘 나는 내 친구보다 월급이 매달 100만원 더 많아서 더 좋은 음식과 더 좋은 차를 소유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내 친구가 몇 년 후 운이 좋게 어디선가 수 억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갑자기 자신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은 자산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늘 그 친구를 볼 때 마다 상대적인 경제적 행복을 누리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그나마 긴 흐름의 변화이다. 우리가 느끼는 상대적 행복은 정말 짧은 순간에 너무도 쉽게쉽게 바뀐다. 거기에 더해 예측도 불가하다. 심한 경우는 남이 불행해야만 내가 행복한 것이고 반대로 내가 불행할 때 남이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냥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불안정한 행복과 시간에 종속적인 행복을 위한 비교성의 원리를 가진 행복에 오늘도 연연해하면서 살아간다. 쉽게 말해서 목표도 없고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것에 목을 메고 삶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살아가는 형국이다.
이 역설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 깊게 생각을 해보다 보면 과연 내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이란 것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나는 분명히 현재의 행복을 위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나의 미래를 방향 짓고 살아간다. 그런데 과거 지나온 나의 행복한 순간들 역시 그 당시는 모두 그런 것들이었지만 실제로 지금은 과거가 되어서 지금은 그 당시 느꼈던 감정마저도 가물가물한 형편이다.
내가 미래에 꿈꾸는 행복들 역시 모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렇게 변해 갈 것이다. 거기다가 내가 현재 느끼는 상대적 행복에 대한 욕구는 더욱 심하게 미래의 어느날 일그러져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현재 그것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너무 오랫동안 그런 행복을 느끼는 방법에 노출되어 있어서 현재 내 스스로는 그것을 떨쳐내기가 너무 힘이 든다.
이것은 비단 나 하나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도 많은 이들이 이런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타인과 나의 삶을 비교하고 타인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을 비교하면서 우위에 서면 행복을 그렇지 못하면 불행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너무 잘못된 삶의 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맞지만 결국 우리가 그 행복한 삶으로 가는 그 순간순간을 제대로 행복하지 못하다면 결국 어떤 행복을 이루던 간에 그 행복한 순간이 지나 과거로 되버리는 순간 그 모든 것은 그저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결국 이말의 의미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현실이란 말로 연장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현재의 행복을 포기해야 미래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기에. 거기에 더해 현재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해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다보면 정말로 나중에 어떤 큰 불행이 찾아올 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행복은 매우 혼란스럽다.
전자 제품은 매년 더 좋은 성능이 더 싼 가격에 나온다. 그래서 언제 그 제품을 사든 우린 시간이 조금이라도 흐르면 바로 과거의 제품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마냥 미래에 이 제품을 사는 것이 옳을까? 물론 아니다. 우린 어느 시점엔 필요한 제품이라고 생각된다면 사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 나오는 더 좋고 더 싼 제품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데 익숙한다.
그런데 우린 우리의 행복에 대한 것은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할까? 그냥 자신이 선택했다면 그것으로 끝내고 남이 어떻게 살든 또 얼마나 더 나은 삶이 나에게 보여지든 그냥 무시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만을 바라보고 그것을 최대한 잘 즐기면서 살아가지 못할까? 우리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수록 실제로 선택을 되돌리기가 어려운데 말이다. 결혼, 돈벌이, 자녀 키우기 등은 되돌리기가 매우 힘든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행복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현재를 남의 그것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우린 정말 끝도 없는 비교 행복감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들어 버린다. 운이 없다면 그 행복마저도 없이 상대적 갖지 못함에 의한 불행으로 꽉 차 버린다.
어떤 결론을 내기엔 너무 모호한 생각이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내가 행복하려고 한다면 과정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완전히 종속적일 수 밖에 없는 이 행복을 그나마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상대적인 것도 아닌 그냥 나 혼자만의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