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의 조상은 사람의 감정을 사자성어로 '희로애락' 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당연히 우리 인간의 감정은 이것보다도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성격을 가졌다. 하지만 원래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영향이었겠지만 아무튼 모든 것을 네 글자의 한자로 조합하는 것을 즐겨 했으니, 아마도 우리 인간이 감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네 개만 뽑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사자성어가 바로 희로애락인데 여기에서 '화'에 해당되는 '노'가 있음을 고려해본다면 화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 매우 근본적인 감정 중 하나란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 낼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화를 자주 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화를 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기쁨과 즐거움은 보통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감정이라서 누구나 그것을 원하지만, 반대로 노함과 슬픔은 그렇지 못하다. 이것을 조금 편견 있게 표현하자면 기쁨과 즐거움은 일반적으로 가벼운 감정이고 노함과 슬픔은 진지한 감정이기도 하다.
화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또한 그만큼이나 다양한 상황에서 발현된다. 그리고 사람마다 이 화를 내는 상황이 매우 다르고 화를 내게 되는 임계지점도 크게 차이가 난다. 물론 이것은 화란 것이 우리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보통 이성적인 반응은 우리가 일반적인 수준에서 비슷하게 수렴이 되지만 반대로 감정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영역이기에 그런 큰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 간단한 예로 우리가 화를 내는 과정을 살펴보자. 그리고 그 예는 가장 많이 싸우는 연인 관계로 해보자.
남자와 여자는 전날 목요일에 주말인 금요일 저녁에 약속을 잡았다. 오래 간만에 맛있는 식사를 먹기 위해 강남의 제법 비싸지만 괜찮다고 소문이 난 이탈리안 식당을 가기로 했다. 약속 시간은 서로의 퇴근 시간을 고려해서 7시 반으로 잡았다. 그리고 금요일 7시 반에 남자는 식당 근처의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자가 다니는 회사에 어떤 문제가 생겨 여자가 30분 정도 늦고 말았다.
남자가 다니는 회사에 비해 여자가 다니는 회사는 좀 더 경직되고 퇴근 시간 역시 지키기 힘든 상황이기에 이렇게 여자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은 과거에도 몇 번 있어 왔다. 그리고 남자 역시 그런 여자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보통은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그날은 상황이 좀 꼬였는지 밖에서 여자를 기다리다가 약간 짜증이 난 상태로 식당에 도착한 그들은 이미 좌석이 만석이고 대기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분이 팍 상해 버렸다.
행복하기 위해, 즐겁기 위해 약속을 잡았는데 여자가 30분을 늦는 바람에 그 날 모든 것이 틀어져 버린 것이다. 물론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은 그 둘 모두 잘못도 있지만 실제로 예약을 했더라도 문제였을 것이다 싶었다. 결국 예약 시간에 늦어 버린 것이 아닌가?
남자는 평소에 이런 예약 같은 것에 늦게 오는 사람들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라서 아예 예약 자체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에 대해 남자의 마음 속에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오늘 늦게 와서 행복해야 할 주말 저녁을 망쳐버리는지.
그 후로 남자는 여자와 대화에 자신도 모르게 약간 틱틱대는 듯한 말투로 대했고 여자는 자신의 의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자신이 늦어서 이렇게 된 상황이니 참아 가다가 결국 커피 가게에서 차 한잔을 먹다가 남자의 계속되는 짜증 섞인 말투에 화를 내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남자 역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터트리고 결국 둘은 크게 싸우게 되었는데 남자는 늦은 여자를 비난하고 또 예전에도 몇 차례 늦었던 여자의 과거를 상기시키면서 여자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했고 여자는 여자대로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퇴근 시간의 자유로움이 없는 회사에 다니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자친구가 섭섭하고 또한 그 남자도 과거에 한 두번 늦은 적이 있었을 때 자신은 다 이해해줬다는 기억과 함께 과거의 자신의 이야기까지 꺼내는 남자가 몹시 야속했다. 그래서 결국 둘은 크게 화를 내고 그날 싸운 상태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도 채팅과 통화를 통해 끝없이 반복해서 서로의 잘못에 대해 말하고 지적하고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둘 모두 이것을 납득하지 못하고 그 후로 일주일간 냉전 기간을 거친 후 서서히 관계가 회복 되었다. 하지만 회복이 되었더라도 둘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떤 다른 계기로 기분이 나아져서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정말 그날 싸운 것이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도 들고 기억도 희미해져서 그렇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일년 후 생각해보니 왜 싸웠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연인간의 싸움 중 일어날 수 있는 매우 일반적인 예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인들은 이런 이유 등으로 참 많이 싸운다. 여기에서 남자는 여자가 약속에 늦었고 그로 인해 식당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에 대한 짜증을 냈고 여자는 어느 정도는 받아주다가 결국 여자 역시 기분이 상해 있는 상태에서 한계에 이르러 결국 서로가 화를 내는 상황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남자는 왜 예전처럼 여자가 일부로 늦은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일 때문에 늦게 온 것에 대해 그리 짜증을 냈을까? 그것은 그날 남자가 회사에서 자신 역시 일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란 점을 더하면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그날 남자가 회사에서 이미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와 기분이 나빠진 상태에서 ‘여자의 늦음’, ‘식당 못 감’이란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것이 증폭된 결과라면 과연 이 남자가 낸 화의 근본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린 우리의 감정이 매우 자주 쉽게 바뀐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실제로 큰 착각이다. 우리 감정은 급격하게 변하긴 하지만 적절하게 그 이유가 없다면 바뀌기가 매우 힘들다. 만약 감정이 쉽게 바뀐다면 누군들 기쁨과 즐거운 감정으로 언제고 바꾸고 싶어 하지 않겠나?
그래서 화를 내는 과정도 역시나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나타나게 된다. 남자는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강남의 금요일 지하철의 혼잡함, 여자의 지각, 식당에 이미 가득 찬 사람들 이런 요소들이 조합되어서 짜증이 났고 이것이 여자의 폭발로 인해 점화가 되어 실제로 화를 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이 짜증난 이야기를 할 땐 여자의 지각 이전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하고 원래 화가 여자로 인해서만 난 줄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자신의 화가 근본적으로 회사 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 순간 인지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냉철한 분석가라고 인정해 줘야 한다.
물론 아무리 화를 낸 시발점이 자신의 회사라고 해도 그것을 더욱 촉발시킨 여자의 지각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여자의 지각은 어느 정도 둘이 사귄 기간으로 인해 예상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 식당에 자리가 있었다면 실제로 이 사건은 그냥 약간의 짜증으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함으로써 해소되지 못하고 (보통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나아져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둘은 결국 싸우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황논리이다.
살아가다 보면 정말로 상대가 자신에게 크게 잘못을 해서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확실하게 상대의 잘못이며 만약 그 일로 인해 나에게 손해가 입혀져 법원에서 판결이 100:0 으로 상대 과실만을 인정해준다면 그것은 확실하게 상대의 잘못으로 인한 화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는 대부분의 화에서 각자가 감당할 과실은 100:0 이이 되기가 많이 힘들다. 물론 그것이 90:10, 80:20 이렇게 한쪽으로 좀 쏠리는 경향도 많지만 여기에 상황논리란 것이 고려되지 않음으로써 계산이 쉽지 않다.
어쩌면 아까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촉발시킨 여자의 지각은 여자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의 문제이거나 그녀의 상사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럼 남자는 실제로 여자의 지각에 대해서 그녀가 아닌 그녀의 회사에 화를 내고 따졌어야 옳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그럴 수 있으랴? 식당에 사람이 가득 찬 것도 완전히 상황 논리이다. 그날 따라 그랬는지 아니면 금요일 마다 늘 그러는지 모르지만 결국 그것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약속을 잡은 그 둘의 대충 정하는 성격이 그 상황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
우스운 말로 남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여자들의 말이 있다 '오빠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라고 화를 내면서 묻는 여자들의 질문. 이 질문에 대해 남자들은 좀 당황스럽지만 어찌되었건 여자가 화가 났다 싶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기분을 풀어주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것은 쓸데없는 노력이 되고 만다.
여자가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남자에게 묻는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도 잘 몰라서 그렇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스스로 말하기에 창피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보통 이런 경우라면 상대의 잘못을 명확히 따지기가 힘들어서 대 놓고 지적하지는 못하지만 기분은 나쁜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 여자 스스로도 자신이 왜 기분이 나쁜질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남자 역시 이런 부분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단지 여자처럼 묻지 않고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품은듯한 표정으로 반응 없이 앉아 있는 모습만 다를 뿐.
우리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화를 낸다. 하지만 우리가 화를 낸 이유를 남에게 설명할 땐 늘 몇 가지가 빠진다. 둘의 싸움을 제 삼자에게 이야기 할 때 자신이 유리한 점만 골라서 이야기 하듯 두 사람의 다툼에서 일어난 화 역시 그것을 서로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말할 때 당연히 자신의 유리한 입장만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 절대로 그것이 서로에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화를 유발시킨 당사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보다 더 크게 자신에게 잘못을 물어 오는 상대의 입장이 이해가 안가고 화를 낸 당사자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서로 가 계속 싸우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것은 연인 사이엔 결별, 부부 사이엔 이혼, 친구 사이엔 절교의 사유가 되기도 한다.
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주로 나타나는 감정이다. 물론 하늘에서 똥을 싸고 도망치는 비둘기에게 화를 낼 수 도 있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감정인 화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관계 속에서 추구하는 이득과 손해의 입장에서 출발한다. 즉 상대의 행동이 나에게 손해가 되었다고 싶으면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화는 또 너무 자주 내게 되면 관계가 자꾸 단절되기에 우린 최대한 화를 참아야만 한다. 그리고 실제로 화를 잘 참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화를 잘 참지 못하고 너무나 자주 터트리는 사람인 경우 분노 조절 장애라는 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화가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절절한 정도로 조절된 화는 우리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감정의 찌꺼기를 날림으로서 갈등 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작용도 한다. 비 온 후 땅이 굳어진다는 것은 바로 화를 낸 후 둘 사이에서 이 갈등을 해소하고자 많은 진지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관계 자체가 매우 진지하게 굳어짐을 뜻 하는 것이다.
만약 서로가 싸운 후 이런 진지한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는 관계라면 이것은 절대로 해결된 상황도 아니면서 또한 오랜만에 찾아온 자기 성찰의 시간을 놓친 결과가 되어 버린다. 우린 화를 통해 평소의 밝음을 버리고 진지해질 수 있으며 이 시간 동안 잊고 지낸 자신의 본 모습과 우리가 놓치고 사는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자신이 화를 낸 혹은 자신에게 화를 낸 상대와의 대화 속에서 더 깊이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화는 그 자체보다 그 화를 낸 상황을 해소하면서 매우 좋은 효과를 내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진지한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서툴러하며 거기에 이런 가슴 속 깊은 대화를 누군가 나누는 것 자체를 피한다.
그리고 정 힘들면 술이라도 마시면서 술기운을 빌러 이야기 하곤 하는데 문제는 술이 들어간 상황에서의 대화는 자칫하면 그 자체가 한꺼번에 술 취해서 한 말이란 것으로 부정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맨 정신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대화를 사람들과 맨 정신으로 자주 하는 편인데 보통 사람들은 이런 대화를 매우 껄끄러워 하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화는 자신의 생각만큼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란 것이다. 그 어떤 종류의 화든 간에 그 원인에 자신의 문제는 늘 존재 한다. 비둘기가 똥을 싸고 지나갈 때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면 '에이' 한마디 하고 그냥 샤워 실에서 씻으면 된다. 그런데 그날 정장을 입고 선을 보러 가는 자리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마 총이 있다면 그 비둘기를 쏴 죽이고 싶을 것이다. 이렇듯 동일한 상대의 행동이라고 해도 내 상황에 따라 내가 화를 낼 수도 안낼 수도 있는데 이것을 판단할 땐 오직 상대의 입장이나 행동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리고 화를 내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것을 공식화 시킬 수 있는 대의적 이유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때 자신이 가진 찌질한 감정이라고 느낀 부분은 모두 감추고 상대의 잘못과 그것에 반응하는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일반적 인지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것은 이후 이 사건을 남들에게 이야기 할 때 당연히 자신의 편에 서 줄 동지들을 위한 것이기도 한다. 잘못 이야기 했다간 자신이 찌질한 놈으로 몰릴 수 있기에 당연히 그렇게 자신이 유리하게 편집을 하고, 화를 낸 이유가 절대로 자신의 시시한 질투 등이 아니라고 말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화가 불러오는 화이다. 자신의 진실을 숨기고 그것을 외부에 포장하여 내 놓음으로써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화를 내는 것이 당연 한다. 그리고 그 그릇의 차이로 인해 화를 내는 그리고 화를 참는 강도가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화를 내는 단계가 최대한 깊기를 바라기에 아주 얕은 구간서 화를 냈더라도 그것을 깊은 감정인 냥 치장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속이고 자신이 그 이야기를 하는 주변인을 속인다. 그럼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착각하게 되는 길로 간다.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면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그래야 감정이 꼬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여기에서 감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꼬아버리면 그 결과는 심하게 왜곡되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감정적 원인을 제대로 인정할 때 다음에 또 나타날 자신의 찌질함에 대해 대비할 수가 있다.
그것을 그냥 대의명분으로 만들어서 넘겨버리면 반복된 상황이 벌어질 때 자신도 모르게 과거에 했던 그 대비책으로 순식간에 넘겨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다른 이들로부터 마치 그런 사람인 냥 인정받게 되는데 이것이 스스로에 대한 기만인 것이고 자신의 감정을 숨김으로써 해소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화를 느꼈다면 정말로 다각도로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왜 화를 내게 되었는지, 그것에 대한 깊은 사고가 없다면 우린 늘 자신이 남에게 말한 이유로만 자신이 화를 내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스스로 진짜 자신의 화를 낸 이유를 제대로 파악을 할 때, 우린 힘들지만 그것을 극복 할 수 있다. 문제는 나 역시 이런 생각을 오래 해왔는데 대부분이 그것이 바로 나의 찌질함이었다는 결론이다. 이것은 받아들이기가 몹시 거북스러운 자신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보길 두려워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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