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온지도 벌써 훌쩍 10일이 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계절에 대해 3,4,5월 봄, 6,7,8월 여름, 9,10,11월 가을, 12,1,2월 겨울이라고 대충 정해놨으니 지금이 6월 초이니 바로 여름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름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들은 무엇일까? 바다, 휴가, 모기, 더위, 에어콘, 블랙아웃(요즘은 전기 때문에 이 단어가 꽤나 유명해졌다) 등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노출' 이란 단어 역시 한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다. 물론 노출은 단어 자체보다는 밖에 나가면 늘 보는 광경이 된다. 그래서 남자들 중에는 특히 여름을 감사해 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노출' 이란 말은 일종의 속살을 남에게 보여주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속살, 즉 숨겨진 피부의 범위가 매우 개개인적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출이라는 것은 어느정도의 타협점은 있지만 그것에 대해 명확히 규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늘 노출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로가 자신의 기준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보통 노출을 말하면 여자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남자의 노출은 보통 연예인들 말고는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하니 특별한 정신세계를 가진 남자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들은 청소년들부터 해서 30,40대 아줌마까지 아주 넓은 범위로 이 노출을 하고 특히 20대 아가씨들의 노출은 정말 가끔 시내에 나갔을 때 눈 둘곳을 마땅히 찾기가 힘들 정도로 심하기도 하다.(물론 내 기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자의 노출은 그냥 그렇다. 가끔 눈이 좀 불편하기 하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노출이니 뭐 내가 신경쓸 필요도 없고 솔직히 그리 관심도 없다. 어쩌면 내가 과한 노출이라고 인식되는 여자들의 몸을 볼 땐 심하게 싼 느낌이 들어서 좀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받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란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래서 어떤 남자들이나 아이를 가진 엄마들은(노출이 힘든 나이) 젊은 여인들의 노출에 대해 좀 더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남자들 중에서는 아마도 자기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불편함이 그 이유인것 같고 여자들은 그 선정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자신의 남편의 시선이 따라가는 모습이나 혹은 아이들 교육상 뭔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어서 그럴 것이다.
뭐 이부분도 이해가 간다. 같은 단어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모두 다른데, 그 어떤것이 일반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규정될 수 있으랴. 모든 사람은 모두 각자만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하나 꼭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일명 노출을 즐기는, 즉 짧은 반바지나 나시라고 불리는 민소매 옷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말하는 노출에 대한 정당성 주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통 노출에 대해 그 당사자들(여자들)에게 그것을 말하면 거의 100% 이런 말을 한다. 이것은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고 (특히 남자) 그냥 자기 만족이라고 말한다. 다른 여자들 중에서 누군가 이렇게 입은 모습을 보니 예쁘고, 부럽기도 해서 자신도 그렇게 입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주변의 친구들도 칭찬을 해주고 그런 모습을 거울로 보면 스스로 기분도 좋아지고.. 결국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여름 패션을 꾸미는데 왜 그것을 누군가를 위해 혹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다고 착각하냐고 항변한다.
이것에 대해 약간 심리적 분석을 해보자. 물론 표면적으로는 이들의 이야기가 틀림이 없다. 분명히 그렇다. 그렇다면 한가지 가정을 해보도록 하자. 자 이제 어떤 이유로 인해 세상에 혼자 살게 되었다고 치자. 자신의 모습을 그 어느 누군가에도 보여줄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렇게 말한 당사자는 과연 어떤 삶을 선택할까?
좀 더 예를 들어보자. 이들 중에서는 자신의 몸을 쳐다보는 그리 맘에 들지 않는 아저씨들의 눈길을 매우 혐오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물론 노출증 현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보통은 그렇다. 그래서 내가 나를 위해 꾸몄는데 왜 나를 그런 음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해 불만이 많다. 그런데 여기에서 남자를 바꿔보자. 평소 자신이 너무도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 예를 들어 장동건이나 원빈 같은 잘생긴 남자가 자신을 그런 눈으로 봤다면? 역시나 혐오스러운가?
혹은 그런 상황에 자신은 일반적인 수준의 옷을 입고 있었고, 옆에 친구는 짧고 발랄한 옷차림을 하여 원빈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 온통 쏠렸다면 그때도 나는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패션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
자연계에서 암수의 짝짓기는 가장 큰 경쟁이다. 먹을 것을 놓고는 절대 싸우지 않는 포식동물들도 짝짓기 기간엔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만큼 암수가 서로의 짝을 고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들이 오직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패션을 정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인지 한심해보이긴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깨우칠 사람이라면 아마도 처음부터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마치 아이를 위해서 뭔가를 하는 부모의 마음과 비슷하다. 아이를 위해, 사랑해서 라고 말을 하지만 정적 정말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에 대한 고민은 그리 없다. 그저 자신이 아는 지식범위 내에서 남들이 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과 같다는 말이다.
노출을 하는 여인들의 심리 그 자체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은 절대 명제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자신의 이득을 근간으로 한다.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나 모두 같은 동성은 잠재적인 경쟁자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좋은 차를 사려고 하고 여자들은 남자의 시선을 끄는 외모를 갖추고자 한다. 그것이 대놓고 싸우는 동물들과는 달리 좀 더 간접적인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근원이 달라질 수는 없다.
아주 특별히 속도감을 즐기기위해 혼자 좋은 차를 타고 다는 남자가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나르시즘에 빠져 정말 자신의 외모만을 위해 모든 투자를 하는 여자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소수이다. 혹시나 정말로 이런 사람이라면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해 동의를 한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개인적인 행복감하고 직결이 된다는데 말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럴 일이 거의 없다. 우린 늘 미래에 다가올 자신의 이익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것을 잘못 계산하는 이들이 많아서 그렇지, 스스로 이익을 포기하는 방향으로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스스로 계산법에 의해 자신의 이득이 좀 더 많아질 것 같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이득하고 연결될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 만큼은 기분이 좋아진다.
잘 꾸민 외모는 충분히 이런 역할을 한다. 멋진 외모는 이성의 관심을 끌수있고 그렇다는 것은 내가 좀 더 나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이고, 이것은 바로 내 미래의 이득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만족이란 의미가 이런 뜻으로 쓰였다면 그들의 논리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들 중 몇이나 이것을 스스로 인지할까?
조금 다른 예지만 성추행 역시 비슷한 성향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성추행 주체가 누가냐에 따라 동일한 행동에 대해 다른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은 짜릿할 수 있으나 자신이 정말 싫어하는 나온 배와 벗겨진 대머리를 가진 회사내의 누군가의 접촉은 협오스럽다 못해 정말로 추행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추행을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면이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 부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남자들 역시 자신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인지 잘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내 성추행은 정말 쓰레기 같은 범죄이다.
'노출'. 누구나 할 권리가 있고 그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배려 해주면 더 좋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노출을 자기만족이니 하면서 근거도 없는 자기 합리화는 하지 말라는 말이다. 잘 꾸민 내 외모는 미래의 내 이득을 가져다 줄 일종의 투자이다. 즉 노출은 완전히 자기이득과 관련된 우리의 기본 생존방식인 것이다. 그냥 인정하면 쉽게 끝나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 노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바로 시선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느낌인 것이다. 이것도 스스로 잘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래서 다음부터 소위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을 땐 '나는 나 자신의 이득 극대화를 위해 여성스럽고 성적인 어필을 할 수 있는 복장을 갖춰서 나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모를 미래의 내 짝 후보들에게 보여주는 행위를 하는 것이니 그것에 대해 참견하지 말아라.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 수준의 남자들은 아예 후보군에 껴주지도 않을 작정이니 그런 남자들은 괜히 나 쳐다보지 말아라. 내가 너희들 눈요기 하라고 이렇게 힘들게 꾸민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수준을 알고 쳐다봐라' 라고 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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