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비오는 어느 월요일 아침

아이루다 2013. 4. 29. 09:34

 

어제 환기를 위해 거실 이중창을 모두 약간 열고 잤는데 새벽의 어둠이 가시기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가 나의 아침 잠을 깨웠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까지도 아직 감기가 제대로 낫지 못해서 오늘 출근을 포기하고 집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아침 나절의 빗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요즘은 비가 올때마다 영월집이 생각난다. 거기는 외부에 집벽 사이에 아무런 구조물이 없어서 비가 오면 그냥 바로 거실의 커다란 창에 빗물이 떨어지고 또한 빗물이 나무 데크로 떨어지는 소리까지가 선명하게 잘 들린다. 워낙 고요한 곳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유진이는 그 소리를 너무도 좋아한다. 또한 비가 내린 후 공기 중으로 퍼지는 흙내음과 바람내음을 한껏 즐긴다. 타고난 예민한 코 덕분인긴 한데 도심에서는 영 불편한 능력이라서 좀 안쓰럽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나는 워낙 코가 둔해서 도심에서는 좋지만 또 반면에 영월집의 그 좋은 냄새도 놓치고 만다. 이 얼마나 공평한 세상인가? ㅎㅎ

 

봄이 이미 온 대지에 자라고 있는 수 많은 풀들, 새 봄을 맞아 그 연한 녹색의 잎들을 내민 갈색의 가지들 마다 내리는 비는 축제 분위기가 된다. 빗방울이 맺힌 풀잎에는 영롱한 무지개 같은 빛의 산란이 나타나고 물을 가득 머뭄 흙은 그 향기를 하늘을 향해 마음껏 퍼뜨려준다. 이렇게 거대한 물의 대순환은 지구를 비옥하게 하고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운을 불러 넣어준다.

 

꿈처럼 혹은 그냥 소망과 같이 가지고 있던 시골 집짓기를 하고난 후 첫 봄은 이렇게 에쁘게 다가오고 있고 그것을 축복해주 듯 봄비는 촉촉하게 나와 집과 흙을 적셔주고 있다. 그리고 난 오늘 빗소리와 작게 깔린 잔잔한 음악속에서 이젠 좀 식어버린 커피 한잔과 함께 4월의 마지막 월요일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현실적으로 이번 주는 수요일이 휴일이라서 한주가 더 빨리 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빗소리, 음악소리, 영월의 기억, 향 좋은 커피, 이제 거의 나은 몸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나를 한껏 감성의 세계로 이끌고 있는데 여기에 또 크리슈씨의 책을 읽고나니 더욱 더 현실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느끼는 지금 이것이 그가 말하는 것이 아닐지 라는 생각도 든다. 생각을 하지 않는 세계에 살아가는 것은 너무 불가능하고 또 어처구니 없는 발상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그 모든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살아가는 것이 완전히 헛소리일까?

 

나의 머리는 늘 뭔가에 대한 집착, 걱정, 불안함 등이 어우러지면서 혼란스럽고 복잡해지며, 때론 행복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운되고 착찹해지는 그런 삶의 영원한 숙제같은 의식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실체적인지 그 자체에 대한 의문도 끝없이 이어진다. 사고는 또 다른 사고를 부르고 그 사고를 통해 연상된 수 많은 잔가지 같은 의식들은 모두 뒤엉켜져서 의미없는 복잡성만을 불러 일으킨다. 아름다운 음악이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모든 음의 조화로움속에서 나오는데 내 머리속 생각은 전혀 조화롭지 못하니 아름다운 생각이 나타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연의 조화로움을 그대로 복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만든 것들이 아닌 그냥 세상의 커다란 원칙으로 만들어진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나의 평온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냥 이것을 우기는 중이다. 정말 내가 이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 정말 비로소 나만의 평온을 누릴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침에 빗소리에 눈을 반쯤 뜨고 처음 든 생각은 지난 주말에 그곳에 심고 온 호박, 오이, 블루베리 나무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젠 제법 자란 상추들까지. 이 비가 그곳에서도 흠뻑 그 아이들의 몸을 적셔줄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 비가 내가 새롭게 친 비닐 장막을 뚫지 못하고 이번 겨울까지 지낼 장작의 마름을 지킬 수 있으리란 소망도 한다. 작은 것들이지만 내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것들이서 애정이 가고 귀하다.

 

어쩌면 우린 편하게 사는데만 익숙해져서 실제로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아이러니함이 생긴 것 같다. 내 시간, 내 정성을 쏟아 만들어 내야 그것이 평생 소중한데 그냥 우린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그것을 사면 그만이며 또 부서져도 또다른 돈을 투입하면 원래대로 복구가 된다. 끝없는 복사품이 쏟아져 나오는 대량 생산 체제의 세계에서 우린 그 어떤 것에 의미를 두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 겨우 남은 것은 아직은 그냥 생산을 못하는 인간들 뿐인데.. 먼 훗날 인간까지 생산하는 시대가 올때 인간의 존엄성, 유일성, 가치성이 무너지는 그날이 올때 우린 영생을 얻을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우리 하나 하나의 가치에 대한 소중함까지 잊지 않을까? 마치 우리가 오늘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그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돈으로만 환산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 시대에 더욱 사람들이 SNS에 빠져드는 것이 그런 가치부재의 시대라서 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분명히 가치관과 그에 따른 가치부여를 통해 혹은 가치평가를 통해 살아가는 존재인데 우리가 그 가치를 담을 그릇을 점차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줄어만 가는 가치 속에서 우린 이제 남은 소수의 가치에 매몰되고 그럼으로서 그 남은 가치가 너무도 중요하게 되어 점차로 독선적이고 맹목적인 삶의 태도를 지향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여 그 스스로를 좁고 협소하게만 몰아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 모든 것 역시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고 또한 이것을 깨고 일어설 그 순간에 그 모든 것에 대한 나 자신의 아집의 어리석음을 알아 차릴지도 모른다. 누운 상태에서 보았던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이 어느날 벌떡 일어서서 바라보는 순간 너무도 광대한 세상을 느끼며 내가 과거에 본 세상은 정말 세상의 1%도 안되는 구나 라고 느끼고 또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닳는 그 순간이 온다면..

 

세상은 분명히 편해지고 안락하지고 덜 움직이는 쪽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우린 점점 가치를 담을 그릇을 잃어버리고 던져버리고 망각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수준은 변함이 없이 지금과 같이 맞춰져 있어서 이 변화된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서성이게 될 것이다. 점점 더 우리는 외로워져 갈 것이고 왜 외로움을 잊기 위해 더 많은 변화된 문화를 향유하려 할 것이다. 당연히 세상은 그런 이들을 위해 끝없는 컨텐츠를 개발하여 내 보낼 것이며 우린 이런 것들에 대안적인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디지털 감성' 이란 용어로 포장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이 자리를 지키고 사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들지도..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50대가 가장 견고하고 아집이 심하며 독선적이며 안하무인이라고 한다. 아직은 늙은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생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나는 지금 매일 그 50대를 향해 가고 있고 내가 마지할 나의 50대는 어떨지 흥미롭기도 하다. 나 역시 그런 늙음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보다도 조금 더 여유롭고 삶의 깊이를 이해하는 현명함을 갖추게 될까? 물론 나는 후자를 꿈꾼다. 그럼 이것으로 충분할까?

 

삶이란 100년도 지속 못하는 참으로 짧은 여정이다. 내 삶에서 내가 인식하는 봄은 많아야 90회나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나는 그 중 한번의 봄을 그 어느 봄보다도 뚜렷하게 각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의 봄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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