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의도대로 살아가는 삶과 의도한 대로 사는 삶

아이루다 2013. 3. 25. 11:04

 

어떤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다. 그 영화가 어떤 종류의 장르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또 어떤 내용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과연 그 영화를 보는 동안, 그리고 본 후 내 마음에 어떤 울림이 있을지의 여부이다. 이 울림은 즐거움, 슬픔, 아련함, 분노, 통쾌함 등등으로 아직 결정되지 않는 것이지만 이왕이면 눈물과 웃음이 함꼐 오는 감동적인 것이 좋으리라. 물론 상큼하게 밝은 작품도 좋고 슬쩍 미소가 걸쳐지는 드라마 같은 내용도 좋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나의 마음엔 방금 본 영화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고 그것을 같이 온 지인과 함께 대화로서 연결을 하면서 서로가 다르게 느낀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만약 매우 만족스러웠다면 인터넷을 통해 다른 이들과 또다른 교류를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여진다. 물론 어떤 이들은 같은 영화를 보고도 다른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며 감독의 의도를 거역하기도 한다. 또는 다른 이들은 감독이 전혀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 도대체 예상할 수 없는 감정 상태가 되기도 한다.

 

영화만 이런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책들, 드라마, 꾸밈이 없는 스포츠, 온라인 게임까지 우리 인간이 즐기는 거의 모든 문화적 산물들은 대부분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의도이다.

 

이것을 공식적인 의미로 연출이라고 칭하며 이 의미는 어떤 문화적 대상을 다수의 관객에게 보여줄 때 그것을 기획한 자의 명백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즉 이것을 대중의 요구와 최대한 잘 맞출수록 흥행하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출자들을 위대한 창조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는 다수의 대중이 소수의 연출자의 의지대로 흘러가버리는 현상에서 나타난다. 신문의 기사가 그 글을 쓴 기자의 시선대로 흘러가 그 글을 읽은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처럼 내가 의도하지 않는 어떤 것들이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종의 세뇌과정이 될 수도 있다.

 

이런식으로 차츰 형성되는 커다란 흐름은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논리화로 발전되고 결국 우린 그 지배논리의  보이지 않는 지배력하에서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선택을 하고 만다. 즉 자신은 분명히 주도적 사고에 의해 결정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이 실제로는 우숩지만 이 작은 문화적 의도 하나하나가 만들어 내는 최종 결론들의 총합인 것이다.

 

그래서 우린 정말로 늘 타인의 의도대로 살아가지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만약 어떤 문화적 작품을 감상할 때 그 연출의 의도가 읽히는 현상이 일어나면 어떤 마음이 들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나 자신의 변화는 바로 몰입의 부재이다. 혹시나 영화를 보는데 넓은 평야에 사자 무리가 어슬렁거리는 장면에서 카메라맨의 그림자가 찍히는 것을 보게되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사자에게 잡혀먹을 듯한 긴박함이 전달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예로 차가 물속에 쳐박혀 주인공이 숨막혀 죽기 직전의 장면에서 주변에 있는 위기 대응을 위한 잠수부들의 모습이 보이면 어떨까?

 

몰입은 어떤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필수적 상태인데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몰입을 다른 말로 하면 일종의 최면상태로 볼 수 있다. 최면술사의 의도대로 대답을 하는 대상의 뇌처럼 우린 몰입을 통해 연출자가 의도하는 대로 생각을 변화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린 연출자의 의도대로 감정적 변화를 겪고 감동을 얻어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탁월한 배우들의 연기력, 작가의 문장력, 오페라라면 노래실력, 미술이라면 그림솜씩, 음악이라면 악기를 다루는 능력 등이 부수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또 어떤 분야는 그 부수적 능력 자체가 연출의 의도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분야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경우 연출가의 의도는 매우 흐릇하게 표현되고 있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연출의 의도가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언어로 이루어진 책이나 영화 등일 것이다.

 

아무튼 우린 문화를 소비한다고 스스로 평가하겠지만 실제로는 우리 스스로가 몇몇 타인의 의도에 완전히 맞겨서 스스로의 생각 자체를 막아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물론 때로는 이것이 매우 편하다. 운동기구를 움직여서 운동하는 것보다, 운동기구 자체가 움직여 나를 움직이게 해주는 것이 아무래도 편하지 않겠나?

 

하지만 의도대로 살아가지는 삶은 결국엔 자신의 의지가 아니기때문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스스로 의지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즉 그 의도의 시초가 타인의 의지였음에도 오래 노출되면 그것을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낸 의도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으로 일종의 세뇌가 제대로 된 상태가 된다. 이것은 그리 좋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주도권을 쥔 연출자들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살아가는 일종의 꼭두각시화 되어 누군가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연출자를 잘못 만나면 정말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뺏기고 만다.

 

돈을 벌고자 하는 연출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쓰도록 연출을 한다. 유행을 창조하고, 특정 제품을 꼭 쓰돌록 유도하며, 수익을 얻을 있다고 현혹하여 사람들의 주머니를 연다. 이것은 매우 직접적으로 신문기사등을 통해 마치 정보처럼 포장되어 전달되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의도된 연출로 표현하기도 한다. 멋진 정원과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어느 한적한 전원주택의 남녀 부부와 뛰노는 아이들의 풍경이 담긴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거기엔 수 많은 벌레도 없고, 흙투성이가 되어버리는 운동화에 대한 장면도 절대 노출되지 않는다. 거기엔 그저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는 벽난로와 향기로운 한잔의 커피만이 존재한다. 연출자의 의도가 어찌되었건 간에 사람들은 저마다 의도된 방향으로 움직여 간다.

 

그래서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 내 생각을 가끔은 내 의도대로 흘러가게 해야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좀 많이 힘들다. 우리가 우리 의도대로 생각을 흘러가게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문화적 결과물에 노출되어 왔다. 즉 뭔가 하기엔 너무도 찌들어 있는 것이다. 우린 살아오면서 이미 너무도 많은 영화, 연극, 책, TV속 드라마, 쇼프로, 토크쇼, 다큐멘터리, 음악, 미술, 스포츠 등을 경험해왔다. 그래서 이젠 그것들고 부터 얻어낸 연출가의 의도를 이미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내 의도를 찾아내기가 너무 힘들다.

 

내 의도는 무엇일까? 가장 쉽게 생각하면 내 의도는 내가 연출한 작품이면 된다. 물론 그 근간에 타인의 의도가 무한대로 얽혀있겠지만 그래도 내 의도를 담은 내가 연출한 작품은 단 1%라도 내 의도가 숨겨져 있게 된다. 영화를 만들기는 너무 힘드니, 책이라도 써본다. 책조차 힘들다면 작은 텃밭이라도 가꾼다. 또 그것도 힘들다면 자전거라도 타거나 걸어본다. 그리고 그 길은 적어도 자신의 의도대로 결정된 길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보지 않고 자신이 결정한 길로 조금씩 나가보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타의지 탈출 행위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의도를 따르는 것은 물론 행복하고 쉽고 편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이렇게 살다보면.. 정말 사회가 정의한 모든 가치기준에 꼼짝도 못하고 얽눌려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사회가 건강하면 괜찮지만, 대한민국은 좀 암울하다.

 

그래서 조금 남이 만들어 놓은 의도로 부터 멀어져보자. TV, 스마트폰은 타인의 의도 입력을 위한 극대화 장치이다. 조금만 노력해서 나 자신의 의도를 만들어보자.

 

그렇게 타인의 의도와 내 의도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게 될때 우린 흔들리지 않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며 쉽게 깨지지 않을 자신만의 삶의 기준점과 행복을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힘들다. 특히 수십년간 타인의 의도에 노출되어 온 사람들이라면 정말로 힘들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스스로 깨지 못하면 그 자신이 뒤집어 쓰고 있는 타인이 만들어 놓은 껍질은 그 자신과 진정한 자신의 세계를 단절시켜 놓는 영원한 감옥처럼 작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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