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사이 혹은 사람과 동물이나 무생물인 어떤 물건들 사이까지도 상황에 따른 묘한 감정적 저울질이 벌어질 때가 있다. 물론 사람과 사람사이가 원인이 되어 동물이나 물건까지도 연장이 되긴 하겠지만 어쨋든간에 이 정체가 모호한 질투와 무관심의 사이에 있는 '부러움' 이란 감정을 오늘 얘기해보고자 한다.
오늘 '부러움'에 대한 글을 쓰는 제일 큰 이유는 지난 주말에 우연히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매우 부럽게 여겨지는 어떤 분의 블로그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동종업종에 종사하면서 별사진을 찍는 삶을 사는 분이였는데 가지고 있는 장비와 천문에 대한 이해가 정말 나와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정말로 부러웠다. 그리고 그로인해 나의 삶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잠시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여러가지 상념이 겹치고 연결되고 과장되고 소멸되면서 내 생각은 나의 이런 감정적 상태에 대한 긴급진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나는 나의 오래된 자격지심 혹은 열등감 하나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머리가 좋은 사람들' 에 대한 부러움과 삶 자체를 무엇을 하든간에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에 관한 오래되어 희미해지기까지한 감정이었다.
나는 원래 좀 게으른 편인데다가 몇가지 부분에 있어서 남들보다 좀 뛰어난 영역이 있는반면 어떤 분야에서는 참 잼병인 스타일이다. 실제로 내가 주로 밥벌이로 삼고 있는 컴퓨터를 이용한 프로그램 짜는 일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껏까지는 하지만 매우 앞서나간다든가 혹은 남들보다 훨씬 잘한다는 그런 능력적 특성은 없다. 심지어 요즘 들어서는 내가 업종을 잘못 선택한 듯한 느낌까지 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가 직업적으로 일을 할 시간이 앞으로 5년 이상을 더 생각하고 있지 않기에 어느정도 포기하고 살아간다.
물론 내 주변인들은 나에게 글을 꽤 잘쓴다고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내가 다시 읽을때의 그 어설픔이란.. 하지만 글쓰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 10년만 더 쓰면 기성 작가들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껏 수준으로 올라갈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나는 개인적으로 음악적 생활을 좀 즐기고 싶어서 기타나 기타 악기에 대한 배우기 도전을 해본적이 있다. 물론 기타는 고등학교시절 우연히 누나에게 배워서 그냥 어느정도는 치는데 작년에 클래식 기타를 다시 배워보려고 했다가 손가락이 너무 말을 안들어서 거의 포기 지경이다. 그리고 올해는 또다시 '오카리나'를 배우려고 하는데 소리가 너무 안난다. 이런것들이 나에게 의욕을 많이 떨어뜨린다.
노력을 덜하는 것은 맞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발전해야 사람이 희망이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하나 내가 하고픈 것은 여러가지 지식에 대한 습득이다. 그것이 천체물리학이든, 일반물리학이든, 화학, 생물학, 지리학, 역사까지 그리고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철학까지.
그런데 공부를 할땐 내가 타고난 머리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내 머리가 그리 나쁜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재소리 들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해수준이 매우 일반적인 단계에 머물러서 도대체 좀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자 하면 머리속이 아예 막혀버리고 있다.
나는 특수상대성이나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해려고 꽤 열심히 노력했지만 지금도 대충만 이해할 뿐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후로 더 훨씬 복잡한 끈이론 같은 것을 보면 외계어로만 보일 뿐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흥미있어 하는 많은 자료들은 대부분 영어권에서 나오고 있어서 영문해석이나 히어링이 잘되어야 하는데 나의 영어 실력은 대한민국 평균수준도 안된다. 그러니 난 늘 남들이 번역해놓은 자료나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다.
특히 지식쪽에서 내가 좀 더 제대로 알고자 하는 분야가 바로 광학이다. 물론 광학이라고 총칭했지만 결국 카메라, 망원경 등등 천체 사진을 찍는데 필요한 제반적이고 깊은 지식 수준을 나는 동경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빛이 왜 굴절망원경을 통하면 한점으로 모이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
이것말고도 내가 꼭 이해하고 쌓고 싶은 지식은 바로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서양철학은 거의 학문적 수준이라서 '칸트' 와 같은 사람들이 쓴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책에서 사용된 용어나 기본 개념을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워낙 말을 예도 들지않고 쓰기 때문에 그런데 그걸 쓴 사람이나 그것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들 모두 대단해보인다.
아무튼 이런저런거 따지면 나는 하고픈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또 해보고 싶은것도 꽤 된다. 단지 게으르고 돈이 부족하고 머리의 이해력이 딸려서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지지 못한 이 능력을 모두 가진 어떤 사람을 봤다면?
그것이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의 상태이다. 그래도 꽤 오랜시간동안의 훈련의 결과로 인해 나는 지금 '질투'라는 감정까지는 발전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정도만 해도 나는 지난 시간이 나에겐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그런 감정을 느낀 상태에서 이런 글을 차분하게 쓸 수 있음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마 10년전 나였다면.. 아마 지금 하루종일 내가 부러워 하는 이의 삶을 생각하면서 답답해하고 짜증내고 좌절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자기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또 오늘 아침에 일어나 한시간정도 생각을 했다 (운좋게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라서 아침에 누워서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처음 나의 반응은 '여우의 신포도' 였다. 즉 내가 가지지 못한 삶에 대한 부러움을 무시하는 정책이다. 마치 그 삶이 내가 보지 못하는 '문제' 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저런 삶을 사는것을 보니 뭔가 다른 문제가 있겠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시하려는 아주 하수의 정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과거에 오랫동안 이런 정책을 통해 나의 부러움과 질투를 극복해오곤 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먹힌다.
두번째 반응은 부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부러운 것이 사실이니.. 부럽지 않다고 우겨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부러움을 느낀 사이트의 주인장이 가진 장비는 솔직히 나는 거의 듣도보도 못한 수준이었고(대충 따지면 1억이 넘어 보이는 장비였다) 강원도 어딘가에 있다는 고정촬영장소가 있었으며 그결과로 찍힌 사진은 거의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탑순위에 드는 정도였다. 실제로 보니 아마추어 사진전에서 다수의 입상경력도 있었다. 거기에 각종 장비에 대한 아주 세밀한 자료들의 수준은 정말 나에겐 하늘과 땅의 차이로 느껴졌다.
여기에서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나는 나의 취미생활(별사진 찍기)를 위해 1억이란 돈을 투자할 가치를 느끼는가? 다른 하나는 나는 왜 이런 열정이 없을까?
답은 뻔하다. 나는 솔직히 그런 열정도 그리고 그것에 그런 대단한 돈을 투자할 가치도 못느낀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1억을 공짜로 준다면 모를까.. 내가 모은 돈을 그렇게 쓸 엄두는 안난다. 하지만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그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차를 사고 싶으나 돈이 없어서 늘 보기만 하는 사람의 심정과 비슷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니 그냥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갖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이에 대한 부러움은 당연한 것이니 인정하는 것으로 끝낸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부럽다는 감정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찜찜하게 남아있다.
세번째 방법은 각자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행복코드가 있으니 나는 나대로 내가 부러워 하는 누군가는 그 사람대로 행복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부러워 할 필요도 없고 또 내가 더 행복하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 많은 해결책중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이긴 하는데 큰 문제가 하나가 있다. 바로 내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삶에 대한 확신이 없다. 물론 확신을 갖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자극하고 몰아가고 또 느끼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난 움직이고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은 미숙한 것이 현실이기에 가장 좋은 해결책임에도 불구하고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방법에 있어서 천체 사진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논리로 세상을 살면 세상의 모든 일에 의미를 두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어떻게 사람이 그 어떤 것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나. 심지어 텃밭을 가꾸는 취미가 있어도 자신보다 더 부지런하게 텃밭을 가꾸고 각종 작물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이 있는 사람을 볼 때 부럽지 않겠는가?
난 결국 네번째 방법을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나의 감정적 변화와 그에 대한 생각을 아주 솔직하고 세밀하게 적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내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글을 적으면서 나는 감정적 변화를 겪고 있다. 지금 이순간 나는 점점 편해지고 있다. 그것은 상대를 질투하거나 무시하거나 존중하거나 하는 어떤 생각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런 글을 차분히 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 창 밖으로는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나는 조금은 식었지만 좀 전에는 매우 따뜻했던 커피를 마시면서 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인테리어를 위한 영월집 도면 작업을 할 예정이다. 거의 10년 만에 3DMAX를 설치해놨다. 대학교 시절에 한참 열심히 했던 3D 툴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어떤 환경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다. 머리가 좋기로 따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두뇌라고 불린 아이큐 210.. 김웅용씨가 있다. NASA 에 갔다가 결국 행복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분. 또한 장비로 따지면 아마추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허블이나 LST를 따라갈 수 있겠는가? 우주에서 늘 밤인 상태를 유지하는 망원경과 혹은 구경이 8M가 넘는 이 괴물 장비를 말이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는 모두 삶을 살아가는데 보조적인 역할만 한다. 결국 내가 느끼는 행복이란 누구나 너무도 갖고 싶어하는 감정은 실제로는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그 모든 외부적 상황을 내가 이렇게 신경쓸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하긴 힘들어서 말이 조금 꼬이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부러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그 부러움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이 좋다. 부러워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어떤 열정이나 목표가 생길 수 있는 좋은 징조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 게으른 나를 채찍질해서 천문공부도, 장비공부도 더 하도록 시킬 예정이다. 머리 이해력이 딸려서 못 얻어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 한계니 스스로 인정해줘야 한다.
아무튼 나는 어제 오늘 좋은 경험을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정말 두 눈 똑바로 드고 직시하면 그 감정으로 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적 완성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가는데 커다란 노하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껴서 또 행복해진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이다. 잠시 내가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스스로 망상에 빠지는 나락에서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우연히 발견한 내 오래된 감정의 벽이 나를 또 한단계 발전시켜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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