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순간 누군가 절대적인 존재가 당신에게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권리 혹은 기술을 전수해줬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당신이 어느정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나 더 가정하자.
당신은 누군가 당신 판단기준에 맞춰 적어도 살아서는 안될 존재라고 판단되는 어떤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물론 처음에 가정했듯이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거나(살인 면허라고 봐야 하나?) 혹은 누군가를 아무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절대 걸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크게 보면 이 질문에 대해 답은 두가지 부류로 나뉠 것이다. 단순히 하나는 죽인다, 다른 하나는 죽이지 않는다.
우선 죽이지 않는다 쪽에 속한 사람들을 좀 더 분리해보면 어떤 분들은 아마도 사람을 죽인다는 것 자체가 싫어서 거부할 것이고 또 다른 분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 또한 살인이기 때문에 그것도 옳지 않아서 거부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죽인다 쪽에 속한 사람들은 법에 의해 그 죄가 밝혀진 범죄자만 죽이는 확정적 방법을 사용할 것이고 또다른 사람들은 지은 죄가 확실함에도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사람들이나 지은 죄에 비해 받은 형량이 매우 미흡하다고 느끼는 대상을 찾아서 죽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두번째 경우엔 매우 힘든 사전의 탐정역할를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예전에 혹시 데스노트라는 영화를 보신적이 있는가? 바로 이 영화가 이런 내용을 이용한 작품이다. 누군가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죽는 죽음을 부르는 노트.
주인공은 매우 강한 정의감을 가진 경찰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아버지를 가진 젊은 대학생이다. 그는 불타는 정의감으로 우연히 발견한 이 노트를 이용해 사회의 좀 먹는 악인들의 이름을 노트에 기록해서 처단을 하는 정의수호자로서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악을 응징하기 위해 살인이라는 악을 이용하는 것이다.
비단 이런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에만 있는것은 아니다. 도시 범죄가 매우 극성인 미국에서는 과거부터 도심에서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매우 많이 극화되었다 '수퍼맨' , '스파이더맨', '베트맨', '아이언맨' 등등 엄청난 맨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적 특성 중 하나가 바로 그들 모두 정의의 편에서 싸우고 악을 응징하며 절대 경찰이 아니란 것이다. 베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은 복면을 써서 그 존재 자체를 숨겨서 경찰에게까지 쫒기기도 한다. 특히 고담시티를 배경으로 한 베트맨의 어두운 면은 느와르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로부터 '홍길동' 과 같이 작품을 통해 법을 악용하고 기득권을 부당하게 누리는 층을 응징하는 이야기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중국 고전의 '수호전' 도 역시 이런 맥락의 작품이다.
데스노트나 혹은 각종 맨, 홍길동과 같은 이들이 행하는 정의를 수호하는 법은 바로 악의 부당한 무력을 또다른 더 강한 무력을 제압해 경찰에 넘기거나 상황에 따라 죽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보통 일반인인 경찰도 그렇긴 마찬가지다. 단지 그들은 그 영웅들같은 용기나 능력이 부족해 잘 못할 뿐이며 경찰은 공식적으로 그 임무를 맡은 직업을 가진 이이고 이런류의 영웅들은 불법적인 사법집행을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 매우 악질적인 범죄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묻지마 살인, 연쇄살인, 인육살인, 각종 질 나쁜 성범죄, 아동 성범죄 등등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기에 충분한 그런 사건들은 잠시동안 국민들의 눈과 귀를 모두 그 사건으로 끌어들이면서 체포된 범죄자에 대해 매우 강한 적개심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사형을 반드시 집행해야 하며 무슨 그런 범죄자 놈들에게 인권이 있냐고 분개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사형은 안된다고 하며 인권은 어떤한 경우에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엔 전자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매우 미묘한 문제가 나타난다. 보통 이런 류의 범죄자들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든가 짐승만도 못한 인간으로 치부되기 쉽상인데 과연 어느 정도에서 부터 우리가 인간을 인간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그 인권을 부정할 수 있을까 하는 범위의 문제이다.
보통 영화에서 보면 정의를 수호하는 주인공은 아주 적절한 판단을 해서 이런 경계지점을 관객들이 의심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것은 악당이 매우 악랄하게 묘사함으로서 해결되는 것이다. 누구나 봐도 저놈은 나쁜놈이고 주인공은 마지막에 생명은 지키고자 하지만 막판에 꼭 총을 들었다가 이미 대비하고 있는 주인공에 의해 죽음을 맞기도 하는 아주 고전적 플롯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것과는 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왜냐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죽일놈이 누군가에겐 용서할만한 죄라고 인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의견, 그리고 그것이 모인 다수의 의견이 어느정도 한계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도 그런 한계선을 기준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좀 부족해보인다. 왜냐면 판사들 조차 모두 인간이기에 사람마다 그 가치기준이 달라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판결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것을 위해 세번의 재판을 하는 삼심제도가 있지만 아무리 숫자고 높아져도 이것이 효과가 있을 뿐 최종적이지는 못하다.
아무튼 너무 넓은 범위를 다루면 가치관 충돌이 심하게 일어나니 좁혀서 인간이 인간같지 않을때 그것을 응징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많은 이들이 어쩌면 쉽게 동조할 만한 반인륜적 범죄들에 대해서. 그런데 여기에서도 인간같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정의가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보통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실제로 인간이냐 하는 기준점으로 보면 내가 인간이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은 정말로 적다. 대부분의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들은 실제로 내가 기준으로 하는 인간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나는 내가 인정하는 인간의 기준에 미달된 존재들에 대한 인권은 모두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 문제는 조금 좀 생각을 해봐야 한다. 도대체 어디에서 부터 인권이 무시되어야 맞는가에 대한 생각이다.
내가 방금 한 기준은 당연히 맞지 않다. 그것은 오직 내 기준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다른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어떨까? 나는 어느집에 들어가 도둑질한 범죄자들 보다 사람을 때린 깡패보다 더 중한 범죄를 지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기득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런데 내가 도둑놈을 보고 인권이 없다고 말하면 그보다도 못한 우리나라에서 기생하고 있는 그 소소의 기득권 세력 역시 아무런 인권이 없다는 뜻인가?
유영철이니 오원춘이니 하는 사람 같이 않은 사람들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물론 우리 보통의 기준으로 봤을때 매우 나쁜 놈들이고 살려둘 가치가 없다. 그렇지만 또 내 기준에서 보면 이들과 우리나라의 기생 기득권층과 비교하면 차라리 유영철이 낫게다 싶기도 하다. 이들은 물론 살인이라는 치명적 범죄를 저질렀지만 우리나라의 기득권은 다수의 행복을 뺏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더 치명적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 인해 많은 이들이 불행함속에서 살고 어려움속에서 살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좀 더 따져보면 처음 질문이 또다시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정의를 위해 허용되는 악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
다른 면으로 이 문제를 보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것이 이렇듯 모두 불확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정의라고 말하는 것 그것 자체가 어떤 기준인가? 누군가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정의가 있을 터인데.
하지만 우린 언제나 이런 문제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싸우고 심지어 적대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판단, 다른 정의, 다른 응징.
답이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있지만 어쩌면 이런 가치관들이 모인 사회관념이 하나의 사회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두 이기적이다. 그래서 우린 끝없이 남들과 경쟁을 통해 살아가는 운명적 존재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남의 것을 불법적으로 뺏기도 하고 합법을 가장해서 뺏기도 한다. 그것이 돈이든, 생명이든.
그리고 아무리 포장을 해도 사형은 살인이다. 허용된 살인. 그러니 우린 결국 정의를 위해 살인이라는 악을 저질르고 있는 셈이며 실제 사형 집행인이 그것을 집행 했다고 해도 우리 사회 전체가 그것에 동조했으니 우리 모두 살인을 방조한 동조자인 셈이다.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생각한다고 해서 뭔가 얻어질것 같지도 않다. 나는 사형제도는 반대하지만 사형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중적인 생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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