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몇차례 행복에 관한 글을 쓰긴 했고 그런 종류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내가 꽤나 명확한 행복론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어느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행복에 대해 연관된 생각을 할 때마다 나를 확신시키지 못하는 행복의 속성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돼지의 행복' 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갖는 유기체로서의 한계이며 진화의 시간을 걸쳐서 우리가 터득한 생존의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이 있다.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라"
이 말은 어느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진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 경구이다. 뭐 해석을 따로 안해도 되겠지만 말을 이어가기 위해 간단히 설명해본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안주하여 행복하게 살기 보다는 힘들어도 생각하고 고민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즉 인간만이 가진 고유 특성, 존재에 대한 각성이나 산다는 것 자체의 의미를 찾는 사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런데 여기서 하나 문제점이 나온다. 분명히 배부른 돼지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행복할 것이다. 물론 과거 어느 철학자들은 이것을 저급한 쾌락(행복) 과 고급 쾌락으로 구분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저급하고 고급한 행복이 어디있는가? 행복이란 감정 자체는 우리의 몸을 관장하는 뇌가 육체에게 주는 선물인데 말이다.
실제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배부른 돼지의 삶을 살아간다. 돼지라는 동물로 비유해서 기분이 나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매우 긍정적인 행복이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긍정적인 사람들이나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작은일에 행복해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종교를 갖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는 일도 이런 돼지의 행복 중 하나다. 그것이 실체나 진실에 상관없이 그것을 믿는 자체로 스스로 마음의 평안과 미래의 불안함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플라시보 효과인가? 나는 종교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로 이점을 꼽는다.
이런 사례가 비단 종교 뿐이랴?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고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사랑이란 감정도 역시 이런 맥락이다. 사랑을 하면 행복하다. 그리고 그 사랑을 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강렬한데 실제로 사랑이란 감정은 그져 뇌에서 자녀 양육을 위해 전달해주는 호르몬이거나 혹은 자신을 안정하고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생존 본능을 충족시켜서 얻어내는 또다른 종류의 호르몬인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의 호르몬 작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둘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빅뱅에 나오는 셀던은 말할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부분에서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아니 실제로는 나와 같은 종류이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에 대한 괴리감이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생각하고 고민하고 철학한다고 해서 행복한가? 보통은 아니다. 사람이란 동물은 생각이 없을수록 정보가 없을수록 행복하다. 모르고 살아야 행복하며 어떤 종류의 사건이든 관련없는 일이라면 잊고 모르고 살아야 한다. 괜히 머리 복잡한 일에 말려들면 마음만 어지럽고 절대로 편하지 않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다. 이 명제는 절대 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 명제 역시 참이다. 그런데 인간이 생각을 더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지 못한다. 실제로는 불행해지기 쉽상이다. 이 명제도 어느정도 참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방송인 중에 김제동이란 사람이 있다. 아마 나이는 나보다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 뛰어나지 못한 외모를 가졌지만 멋들어진 입담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토크쇼에서 그 명성을 확인시켜준 방송인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과거 몇번의 매우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말을 했다가 완전히 좌파로 몰려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그가 말하는 것을 잘 보면 '우리 다 같이 잘 살아보자'일 뿐인데 '나혼자 잘살자'나 '나와 내가 아는 이들만 잘살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를 무슨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고 있다. 소위 빨갱이론이다.
나는 그를 잘 모르기에 과거의 그와 지금의 그중 어떤때 그가 더 행복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다수의 미친 정신을 가진 적을 만들어 놓은 현재가 그에게 금전적 손해를 입히고 있는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물론 그가 그런 돈을 아까워할리는 없다고 본다. 만약 그런 인물이라면 이렇게까지 오지도 못했다.
가끔 방송인들 중 그런 분들이 있다. 김여진, 이은미, 권해효 같은 분들이 그런 분들이다. 자신의 불리함을 알고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소신을 가진 분들이다. 당연히 이런 분들이 생각하는 인간이다. 즉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가진 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먹고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적을 적게 만들고 우호적인 사람들을 할 수 있는 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특히 방송인이라면 이것은 생명이다. 그래서 많은 다수의 방송인은 절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성격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는 사람이 바로 무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사람은 매우 괜찮은 가정환경에서 컸을 가능성이 크다. 사랑받고 커서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는 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사람들이다. 특히 사랑 받는 법을 체득한 사람은 매우 큰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에 따라 팔색조처럼 변하면서 맞춰주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을 편하게 느끼고 같이 있으면 행복감을 더해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이 사람이 전형적인 '배부른 돼지' 형 인간이다. 긍정적이란 말은 결국 우리를 둘러싼 수 많은 부조리에 대해 인식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정보를 얻었다고 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져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행복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세상을 인식할 뿐이다. 즉 내가 행복하니 다른 이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행복하니 또 타인들의 행복한 모습만 보려고 한다. 영화도 소설도 만남도 모두 그렇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더 행복하다.
모르고 행복하게 살기와 알고 불행하게 살기는 매우 명확한 차이를 보이며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를 너무도 쉽게 결정하게 해준다. 당연히 모르고 행복하게 사는게 최고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르고 살다보면 보통 당하고 산다. 남을 이용해 어떻게든 더 착취하려는 소수의 나쁜놈들은 늘 존재하기에 모르는 이들을 대놓고 사기치거나 혹은 국가를 통해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 한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부는 환률조작을 통해 대기업엔 엄청난 부를 서민들에겐 물가 상승을 통한 생활비 상승을 전가 시켰다. 즉 서민들의 돈을 합법적으로 걷어서 대기업에 준 셈이다. 하지만 보통의 서민들은 이것을 뺏긴 줄 조차 모르고 오직 우리나라 GDP가 올랐느니.. 삼성이나 현대가 엄청난 수출을 한다든지 그런 기사만을 보고 대한민국이 잘살아 좋네 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 다른 면에서 알고 살면 더 행복할 수 있다. 나눔의 기쁨을 알고 지키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알며 지식과 지혜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고 사는 삶보다는 알고 사는 삶이 훨씬 좋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 모르고 행복하게 살기 vs 알고 불행하게 살기 가 모르고 당해서 불행하게 살기 vs 알고나서 다른 행복을 느끼고 살기 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 두개의 극과 극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당연히 생각에서 온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기는 보통 어린아이 시절이다. 세상 걱정없이 그져 때되면 밥먹고 적은 액수의 돈에도 매우 만족해하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세상을 알아갈수록 욕심이란 놈이 더해져 점점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최종 목표인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자신이 가진 '욕심'의 크기이며 이 욕심의 크기는 생각하지 않고서는 제어되지 않는다. 물론 성격적으로 타고난 것도 매우 크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추구하는 그 모든 것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사고가 없다면 우린 무작정 뇌가 시키는데로 끝없는 탐욕만을 추구하게 될 뿐이다.
적당한 욕심으로 모르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결국 그런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해져서 이 세상을 쓰레기화 시키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물론 안 그런 이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도 매우 흔하다.
나는 과연 세상에 모든 관심을 끊고 진정한 나만의 행복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들지만 또 그 길만이 나의 유일한 탈출구란 생각도 든다. 그래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인지 혹은 너무도 이기적인 길인지 모르겠지만 이기적이면 어떤가.. 세상에 인간이 이타적이란 말만큼 웃기는 말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지금까지 말했던 이야기들이 새겨진 것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난 오늘도 이것을 고민하고 있다.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또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족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덤으로 후회도 없었으면도 하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잉여인간 (0) | 2013.01.20 |
---|---|
명상 (0) | 2013.01.14 |
2013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0) | 2013.01.01 |
아날로그 감성 (0) | 2012.12.28 |
가슴에 남은 미안함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