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꽤 많은 가지수의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한가지가 바로 저장 능력이다. 먹거리에 대한 미래의 상태를 예측해서 현재 내 배를 가득 채우려는 욕망을 덜 조금 만족시키면서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할 수 있는 능력을 다해 음식물을 저장해 두는 것이다. 현대 주방에 있어서 주방기구 중 가장 중요한 품목이 뭘까 생각해봐라. 뭐 사람마다 그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당연히 저장기술이 혁명으로 평가되는 냉장고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례는 아니지만 가끔 로또같은 복권에 당첨된 후 막무가내식 소비행태로 인해 파산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이런 예는 조금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로또에 당첨된 이들은 덜 행복해졌을지는 몰라도 파산까지는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로또의 예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예상치 못한 많은 돈이 생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써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하지만 로또를 사는 사람들 모두 갑자기 생길 수 있는 돈에 대한 예상을 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1등이 되면 수십억이 돈이 갑자기 생길 것이 분명하고 따라서 이를 위한 소비를 어떻게 할지 정도는 생각하면서 구입을 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그것을 얻는 과정이 공짜도 아니고 몇천원이라도 지불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실낫같은 희망이라도 해도 내가 돈이 생겼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 한다.
만약 로또에 당첨된 후 파산하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정말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가진 능력 '예측' 능력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아마도 사면서도 스스로 될리 없다고 이미 포기했을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판단된다. 돈을 버리고 있는 셈이다.
노후에 자녀들에게 모든 재산을 다 물려주고 찬밥 신세가 된 노인 부부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부모의 과대한 기대에 따른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꽤 빈번하다. 결혼 후 상대의 역할에 또는 상대의 행동이나 태도에 뭔가 꼬여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되는 부부들의 수 많은 사연들이나 어쩔수 없이 불륜을 저지르게 된 어떤 직장의 사내 불륜커플의 가정 파탄 이야기도 역시 꽤 흔한 드라마 소재이거나 혹은 술집 안주꺼리 소재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이 왜 생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인간의 어리석음은 자신의 감정, 즉 인간의 의도에 대한 의심없는 믿음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자신이 자식을 사랑하듯 자식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란 믿음, 이 믿음의 실체적 정체는 자식이 자신에게 잘하는 것이 오직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터무니 없는 오만함이다. 물론 자식이 그 순간만큼은 그 부모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훗날 부모가 재산 한푼도 없이 오직 부양의 대상이 되어버리면 처음엔 그렇지 않더라도 점차 부모의 존재가 부담스럽고 심지어 귀찮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 부모가 당신의 모든 재산을 그 자식에게 주었을 때 자식은 매우 그것을 고맙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10년만 흘러도 자식의 생활 패턴은 이미 부모가 준 유산이 포함된 소비를 하고 있을 것이니 당연히 돈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버는 것에 상과없이 늘 돈 부족하다고 느낀다)
자식의 마음이 변한 것이 자식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내가 교육을 잘못 시켜셔 자식이 저렇게 싸가지 없는 자식이 되었다고? 만약 그렇게 믿는 뒷통수 맞은 부모가 있다면 정말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그것은 부모,형제,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임을 그 많은 나이를 먹고도 모르는 그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기본 심성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이해조차도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는 지나가는 길에 팔고 있는 강아지가 예쁘다고 마구 우겨서 강아지를 사오는 아이와 같은 것이다. 잠시 보는 것은 순수하게 행복하다. 그런데 그 강아지가 똥을 싸고 신발을 물어 뜯을 때 역시 그 강아지를 계속 사랑해 줄 수 있는 아이가 과연 몇명이나 될까이다. 보통 그 몫은 엄마가 해야할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처음 강아지를 살 때 순수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아이는 순수하게 좋아했으나 시간이 지나 현실이 되니 그 강아지가 싫어지거나 귀찮아졌을 뿐이다. 그리고 보통 부모들은 한 두번 경험을 하고 나면 아이가 또다른 애완동물을 사고 싶다고 아무리 졸라도 절대 사주지 않는다.
물론 이런 사람들에 대해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또한 긍정적인 미래만을 원하고 또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 강가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이 지역에 홍수가 나지 않을 것이란 근거없는 믿음이 있는 것이고 도로에서 조심성없게 운전하는 사람들은 자동차 사고가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살이 너무 찌거나 혹은 운동량이 턱없이 부족해 몸이 점점 안좋아 지는 사람 역시 미래의 자신의 몸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깔려 있다. 하지만 수 많은 사례와 정보속에서 우린 이미 우리의 미래을 예측할 수 있다. 강가에 살다간 집이 떠내려 갈 수 있고 험하게 하는 운전은 언젠가 큰 사고를 불러 일으키며 몸을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하면 나는 언젠가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이나 혹은 암에 걸려 삶의 많은 부분을 잃을 수 있다는 예측 가능한 사실을 마음속에서 애써 지우며 오늘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오늘 내가 너무도 맛있는 삼겹살을 먹어서 행복했다면 미래의 나는 그 삽겹살들이 허리에 모여 비대해진 몸을 가진 각종 성인병에 걸린 존재가 되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하루하루로 봐서는 정말 작은 영향이겠지만 한달, 일년, 10년이 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다. 그런대도 우린 늘 긍정적인 결과만을 믿는다. 친구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그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면 나이 먹고 언젠가 극한의 외로움에 직면할 수 있고 게임에 빠져 오늘 내일 그렇게 몇년을 보낸 청소년은 자신의 삶이 그 게임을 인해 끝없이 퇴화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고 있다. 결혼 한 유부남이 우연히 베푼 선의의 행동은 그에게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사내의 처녀의 마음을 조금 더 움직여서 어느날 그들은 사내 불륜 커플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급할 때만 신호를 어기던 사람은 언젠가 신호를 어기지 않고 운전하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할 위험이 있으며 첫월급을 받고 그 액수에 행복해 하던 신입사원이 일년도 되지 않아 주변 친구들의 연봉 중 최 상위급을 놓고 비교한 후 나는 일하는 것에 비해 왜 이렇게 적게 받는지에 대한 불만과 함께 회사를 옮기려고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식으로 인간의 행하는 그 모든 행동들에 대한 반작용은 반드시 존재한다. 오래살면 좋으나 오래살면 외롭고 힘들 수 있다. 젊어서 많은 돈을 벌면 좋으나 그러인해 돈에 대한 가치가 무너져 후일 돈이 없는 상황이 왔을 때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 있다. 결혼을 하면 좋으나 서로에 대한 문제로 인해 이혼이라는 아픈 절차를 밟아아 할 수 있다. 자녀를 낳는 것도 좋으나 자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해 인간 말종을 만들어내고 그로인해 평생을 속을 끓이면서 살아갈 수 있다. 친한 친구나 혹은 많은 친구들의 모임을 열심히 챙기는 것은 좋으나 그로 인해 자신의 가정에 소흘해서 정작 가족의 울타리에서는 벗어나버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런 행동과 선택에 대한 반작용은 대다수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로또에 당첨된 사실이 알려지면 사돈의 팔촌가지 연락이 오고 뭔가 바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인지상정이다. 물론 내 주위가 모두 수백억대 자산가로 이루어졌다면 이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 중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그 수백억대 자산들이라도 해서 인간의 희노애락에서 벗어난 존재일 것인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덜 부족하게 산다. 그런데 사람이 부족함이 없으면 어떤 반작용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행복 기대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배가고픈건 불행한 일이지만 그로 인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행복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늘 배가 부른 사람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행복 할 수 있을까? 배는 고파지기 때문에 먹을것에 대한 행복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만큼 행복은 중독성이 강하다.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한 중독에 빠진 이들에게 나타나는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미 자극을 받았다면 동일한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실제로는 내부 호르몬 분비이다)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즉 너무 많은 것을 채우고 사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반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또 다른 도전이 필요하게 된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거나 또는 그 많은 돈을 이용해 끝없는 욕망을 채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평생 얼마까지 채워질 수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그것에 대처하는 능력은 다를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양육하고 늙고 죽는 것이 인간이다. 우린 각종 보험을 통해 나의 미래를 예측하고 상조회를 들어 자신의 죽음을 대비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하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는지조차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늘 긍정적인 미래만을 꿈꾼다. 물론 미래의 모든 불행에 대비해 현재를 불행하게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다. 그것 역시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놓고 보면 절대 작지 않거나 자신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과정에 대해 두 눈을 질끈 감고 현재만을 생각하면서 사는 모습도 꽤나 어리석은 삶의 모습이다.
자신의 미모를 위해 성형하고 화장을 하면서 살아가는 수 많은 젊은 여자들은 어느날 자신이 그 미모로부터 멀어지고 또 자신의 미모에 혹해 자신을 선택한 남자가 그 스스로 미모를 잃어갈 때 다른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눈을 놀리지 않을지 걱정하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대단한 자신감이다. 보통 여자들은 이런 경우에 꼭 자녀를 낳고 그 자녀를 통해 아이의 아빠를 쥐고 흔들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자신의 삶의 전부가 되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즉 미모가 반감된 자신에게 있어서 자식을 최대한 자신의 소유로 놓아야만 아이의 아빠가 자신에게는 멀어져도 자신의 아이에겐 집착하게 됨으로 가정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성공한다.
반대로 미모만을 보고 배우자를 얻은 남편은 후에 부부의 삶이란 것이 절대 외모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리고는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과연 그런 변화가 꼭 살아봐야만 알아지는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쓰레기 같은 드라마 몇 편만 봐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드라마를 절대 한편도 보지 않았을 것인가?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아름답고 잘 생긴 그래서 부러운 배우들의 모습만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 지금 현재 내 상황에서 옳다고 믿는 것들이 상황이 바뀜으로서 옳지 않는 것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옳다고 믿는 것들이 정녕 죽는 순간까지 옳다고 믿어지기 위해서는 평생을 노력해야 한다. 못사는 사람들이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어 복지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가 로또에 당첨되어 거액의 세금을 뗄때 그것이 아깝다고 느껴지는 것이 인간이다. 물론 그것이 아까운 것은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그것 자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단지 그런 상황이 반복될 때 조금 씩 더 마음을 넓게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충분히 했는데 또 뭘 더 요구하냐' 라고 스스로 되물어 볼 수 있고 그것을 주변에 얘기하면 백명이면 백명이 너는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그만해라 라고 말해줄 것이다. 만약 그런 말을 안해주는 친구라면 아마도 인연을 끊을지도 모른다. 그런식으로 우린 자기 합리화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간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진리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가진자는 잃고 싶지 않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결국 사람은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변화속에서 이미 충분히 예측가능한 자신의 어리석은 미래의 모습을 향해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바로 인간이 가진 음식물을 저장하는 능력과 마찬가지로 예측가능한 미래에 대한 노력인 셈이다.
현재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든 미래엔 '득'과 '실'이 존재함을 늘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세상에 절대로 '득'만 존재하는 경우란 없다. 실제로는 '실'이 일어날을 경우 그 '실'에 대한 어떤 적절한 대비책이 있으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당신이 내일 먹거리를 위해 오늘 약간의 먹거리를 저축할 머리가 있는 인간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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