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살.. 특히 청소년들.

아이루다 2012. 10. 29. 10:58

 

EBS에서 했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총 5편이 다큐멘타리를 지난 주말까지 다 보았다. 내용은 예전에 보았던 다른 다큐멘터리와 유사한 내용이 있어서 조금 식상하긴 했지만 오래된 기억을 다시 되살려 주는 좋은 역할은 되었다. 특히 신용으로 만들어지는 돈에 관한 내용은 다시 보아도 어떤 의미에서 끔찍하다.

 

이 다큐의 5부는 바로 '국가가 해야 하는 것들' 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본주의는 개개인의 이득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다보니 막무가내식 이득을 추구할 수 있고 또 개개인의 능력과 운에 따라 불균형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으니 이를 위해 국가는 '복지' 라는 수단을 통해 균형을 마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복지'는 부자가 가난한 이를 위해 선심성으로 주는 혜택이 아니고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 해야하는 필수적 단계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들은 모두 복지시스템이 무척 잘되어 있다는 예를 든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태어나서 자라면서 '학벌걱정', '입시걱정', '직장걱정', '집걱정', '노후걱정', '건강걱정' 을 하고 산다. 노후와 건강은 특히 죽을때까지 한다. 하지만 만약 국가 시스템이 무료진료, 잘되어 있는 연금제도가 있다면 적어도 노후와 건강은 걱정 안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게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거나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면 우린 결국 계속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 일할 수 있을때 더 많이 복지세금을 내고 은퇴 후 좀 더 걱정없이 살 수 있는것이 그렇게 힘든 의식전환 일까?

 

뭐 이런 내용은 그냥 스쳐갈 수 있다. 그런데 다큐의 중반쯤 나를 띵하게 만드는 통계가 하나 나왔다.

 

우리나라 청소년 5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해봤고, 20명중 1명은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니 내가 길을 가면서 쳐다본 청소년이 5명이라면 그 중 하나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고 내가 지나가다 본 청소년이 20명이라면 그 중 1명은 자살을 실제로 시도했다는 통계이다....

 

자살.. 물론 어린시절 치기로 한번쯤 생각해볼만 하다고 인정해줄 수 있다. 나 역시 자살은 아니지만 내가 백혈병에 걸려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상상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 상상이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시도를 했다는 통계치.. 자살을 생각한 4명 중 1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말이다.

 

자살은 생각보다 그 성공률이 높지 않다. 학계 통계치에 의하면 자살 성공률은 10% 남짓하다. 즉 10명의 자살 시도가 있었다면 그중 1명이 자살에 성공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남/녀에 따라 또 다르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3배의 시도를 하는 반면 실제 자살 성공은 남자가 3배 높다. 이건 자살 시도 방법의 차이인데 남자들은 거의 고층 낙하, 독약복용 등의 죽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반면 여자들은 수면제 등으로 복구 가능한 방법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 통계에 청소년만 따로 낸 통계가 없어서 그들이 정확히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그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있는지 모르겠다. 출생률 적다고 그 난리를 치는 나라에서 겨우 태어나 10년을 넘게 힘들게 키워온 사회의 미래 주역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이 정도의 통계도 검색되지 않는다. 하기야 얼마전 대구교육청에서인가 청소년들이 창문에서 떨어져 죽는다고 대구시내 모든 학교의 창문을 사람이 통과 못하도록 작게 줄이라고 지시했다는데.. 솔직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자살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역시나 가장 큰 원인은 '희망없음' 일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에 이것이 극복될 것 같은 실낫같은 희망만 있어도 살아간다. 그런데 그들에겐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인생의 경험이 적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출구가 존재한다는 경험을 못해봤기에 출구를 볼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적 스트레스, 집단 따돌림, 집안 불화, 인간관계 미숙, 낮은 자존감 등등이 아마 주된 자살 사유가 될 것이다.

 

솔직한 내 마음으로 난 인간의 자살을 포함한 거의 모든 인간의 삶의 종말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특별히 나의 죽음에도 큰 관심이 없다. 또한 나의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도 그럴 것이다. 내 삶의 철학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은 그냥 너무도 자연스로운 것이며 또한 죽음이 있기에 삶이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악당이 있어야 선한자가 칭송받고 지옥이 있어야 천국이 좋다는 것을 인정 받을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청소년 자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 불합리, 물질만능주의, 돈 숭배사상, 무책임한 행복론 등의 싸구려 철학이 너무도 만연해서 그렇다. 내가 행복하면 그 어떤 행동도 스스로 용납하는 철저하게 망가진 개인주의는 정말로 우리 사회에 너무도 깊게 뿌리내려 도대체 이것을 걷어낼 방법 조차 못찾고 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이 잘되길 기도하고, 학교에 간 내 아이만 잘되길 바라며, 나만 좋으면 그 좋은 것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좀먹어 갈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배려는 멍청한 짓이고 이득추구가 최선의 현명함이 되어 버렸다.

 

노인연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수입없는 어려운 노인분들에게 한달에 10만원도 안되는 돈을 드리는 제도를 만들었더니.. 재산 가진 이들이 자신의 재산을 은닉하고 재산이 없다고 신고해서 그 10만원을 타간다. 그런 이가 다수라고 한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귀엽다.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추잡스럽긴 해도 애교 수준이다. 우린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신의 쥐꼬리만한 이득을 위해 스스로 사회 병균을 퍼뜨리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출산률이 문제이고 청소년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그렇다면 우리 개개인은 이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나는 이 사회가 이렇게 가기까지 아무런 동조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정말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하고 있고 또 태어난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강요하고 있다. 말로 하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 끝없이 드라마를 보면서, 끝없이 스마트폰 채팅을 하면서, 끝없이 명품이라는 비싼 물건을 사는 허영을 하면서, 끝없이 내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끝없이 나와 나의 가족이 잘되길 바라고 기도하면서, 끝없이 아주 작은 이득을 챙기려 노력하면서, 끝없이 남의 불행에 대해 눈을 감으면서 오늘도 우린 집에서 드라마를 보고 이동 중에 카톡과 애니팡을 하고 페북을 확인하고 트위터 글을 읽는다. 왜냐하면 그래야 남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적어져서 괜히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 생각에 내가 기분이 다운될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그냥 무도와 1박2일을 보면서 웃고 나는 명품이라고 불려진 드라마를 본다. 그리고 때때로 영화도 본다. 영화도 나의 불편함을 건드리는 김기덕 감독 작품 같은 거은 피한다. 그런것 보면 내가 불편하니까.

 

몇가지 스스로 괜찮은 행동을 하면서 나는 남들과 달라. 나는 적어도 이정도는 하고 살아 라고 여기면서 스스로는 정화시킨다. 그리고 용서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말 그대로 살인 공범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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