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중인 스마트폰은 아이폰 3GS이다. 거의 만 3년을 사용해가니 요즘 이 기계가 오락가락 한다. 특히 이번 ios 6.0 업그레드 후 가끔 중간에 꺼진 후 다시 켜지지 않고 충전을 해줘야만 복구가 된다. 아무래도 작년에 사설업체에서 배터리를 한번 교체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시스템에서 배터리를 제대로 인식못하는 문제로 보인다. 그래서 요즘은 사무실에 같이 일하는 장이사가 쓰던 같은 모델 제품으로 유심을 옮긴 후 사용 중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란 별도의 제품명을 가진 새로운 기계가 들어온지가 3년이 되었다. 애플의 스티븐 잡스가 야심차게 내놓은 이 제품은 미국에서 열풍이 불고 한국까지 상륙하여 단번에 세상을 바꿔버렸다. 물론 블랙베리와 같은 제품들이 기존에 있었지만 그 어떤 제품도 요즘 아이폰만큼 혁신이란 말을 대표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튼 3년 후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80% 이상이 자신의 스마트폰만 보면서 이동하고 있다. 오늘 난 기사에는 학교가 쉬는 시간에 혹은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조용하다고 한다. 이유는 다들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뭔가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아이들은 이동전화를 통해 문자를 서로 주고 받았다. 게임도 했겠지만 아마도 그 답답한 화면때문에 그리 많이 즐기지 못했을 것이고 문자 역시 요금이 나가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카카오톡과 같은 무료 채팅 어플이 있기에 데이터 한계만 보장된다면 거의 무제한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다. 게임도 PC 게임 수준까지 발전하여 네트워크 게임까지 가능한 수준이니.. 솔직히 PC로 뭔가 할 필요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아이들을 조용하게 만들어줬다. 쉬는 시간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채팅과 게임을 하고 있으니 교실이 시끄러울 필요가 없다. 단지 몇몇 아직도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들만 조용히 한쪽 구석에서 그들이 갖지 못한 그 기계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는 모습이 보일 듯 하다.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아이들. 스마트폰을 보는 어른들.. 모두 자신이 그 순간 행복하기 때문에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도대체 누가 자신이 행복하지도 않는 일을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겠는가? 당연히 행복하니까 한다.
나는 그래도 우리나라 아이폰 1세대로서 나름 스마트폰을 빨리 접한 케이스이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를 않는다. 초반에 호기심에 많은 어플과 다양한 활용을 했지만 요즘은 메일 확인, 가끔 지인들과 연락, 날씨 확인, 뱅킹 업무 등이 주로 활용 방법이다. 따져보면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내가 필요한 실제적인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 까지 하기 위해서 나 나름대로 노력도 좀 있었다. 나 역시 지하철에 타서 부터 내릴때 까지 아이폰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기에.
언제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열풍속에서 살아감을 느끼고 내가 출퇴근 할때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걷는 모습을 보면서 웬지 이건 뭔가 이상하고 문제가 있다고 느낀 순간부터 나 역시 스마트폰의 사용을 줄이려고 노력해왔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딱히 할일이 없는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폰을 켜고 딱히 할일도 없는 일들을 한다. 인터넷 기사를 보든가.. 내 채팅 상대에게 연락을 하든가..
그러면서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스마트폰을 자주 활용해서 행복하다면 굳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그것도 역시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인데 말이다. 이건 나의 약간의 딜레마였다.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지하철에 있다면 나는 그 시간을 자거나 혹은 멍하게 있는것이 아닌가? 그러바에는 그냥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인터넷 기사를 보고 게임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오늘 누군가의 댓글을 보았다. 내가 고민하고 정확히 풀어내지 못한 말.
"일순간도 외부의 자극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사유할 줄 모르며 여유를 즐길 줄 모른다면 영화에서처럼 튜브에 들어가지 않아도 완벽한 매트릭스 안에 갇힌 꼴이지 않은가"
[스마트폰에 파묻혀 … 쉬는 시간에도 복도 조~용] 이란 기사에 즈믄가람의노래 라는 필명을 가진 분이 적은 댓글이다.
내가 왜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는지 순간 이해가 갔다. 자극. 생명체는 자극에 대한 반응은 매우 당연한 행동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극이 없으면 살아있는지 조차 헷갈릴 수 있다. 내 피부에 와 닿는 수많은 감각들.. 내 눈에, 내 귀를 자극하는 것들.. 나는 이것들을 이용해 뇌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거기에 적합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내가 읽은 그 댓글도 일종의 자극이다. 나의 시야에 들어와 한국말로 해석되어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기까지 과정을 보면 일단 글이라는 자극이 있었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고 있는 셈이니.
스마트폰은 정말 자극 덩어리이다. 쉼없이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고 또한 나 역시 누군가를 쉼없이 연락하고 있다. 이런 상호작용적인 자극은 내가 뭔가 나 만의 고유한 생각을 하는데 매우 치명적으로 방해를 하는 자극이 된다. 그것은 마치 내가 생각에 잠겼는데 누군가 나를 건들어서 상념에서 깨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것이다. 거기에 휴대가 간편하다는 치명적 매력은 우리가 그 어떤 곳에서 있어도 그 기계로 부터 단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스스로 사유할 줄 모르고 기계가 쉼없이 자극하는 그것에 대한 스스로 방어책이 없다면 우리는 눈떠서 자는 그 순간까지 기계의 자극속에 살아가는 매트릭스 속의 그 존재와 다를바 없다는 말이 많이 공감이 간다.
어떤 의미로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질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바로 기회란 놈이다. 사람은 늘 유한한 자원을 사용하는 존재이다. 특히 시간의 유한함은 우리 존재의 필연적 운명이다. 그러니 우린 이 시간을 최대한 존중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실제로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 하며 고민한다. 많은 생각이나 우울해 하지 않고 웃고 행복하게 이 시간들을 보낼까 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않고 또다른 우주에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처럼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번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지 않고 호주머니를 털어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한권 사서 읽었다면 말이다.
결론은 똑같을 수도 있다. 아니면 스마트폰 속의 게임에서 내가 이룬 점수가 나를 훨씬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책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졸리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책에서 내가 정말 오래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어느편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이건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이고 또한 그 선택에 의해 유리함/불리함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삶의 일부 시간을 보낸 것 뿐이니 말이다.
내가 남들에게 스마트폰을 그만 보고 너 자신과 대화를 해라 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또 반대로 내가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도 이것이다. 너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라 라고 말이다.
영월집에서는 스마트폰이 전혀 동작하지 못한다. 그래서 거기에서 서로에게 집중도는 100%이다. 물론 이거저거 할일도 많고 또한 대화꺼리도 꾸준하기에 딱히 스마트폰을 이용할 필요가 없지만 나는 그점이 불편하면서도 마음에 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 할 수 있는 곳. 나를 자극하는 것이 아닌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한군데는 있다는 점도 가끔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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