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폭력

선의의 폭력 - 3

아이루다 2018. 4. 13. 06:57

 

#선의의 폭력 NO.3#

"이번엔 제가 말을 할게요."

언뜻 봐서는 아가씨로도 보이는 C씨가 손을 들었다.

", 말씀하세요."

"저는 결혼한지 5년 째 되고, 시댁에서는 첫째 며느리에요."

", 그러시군요."

"오늘 주제가 선의의 폭력인데, 참 많은 생각이 나네요. 사실 저는 이 제목에 대해서 꽤나 격하게 공감하거든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5년 전에 남들처럼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 후로 예쁜 애도 낳았어요. 그리고 시댁 분들은 딱 시댁 분들이었죠.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그런 이상한 분들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처럼 느껴지는 그런 분들도 아니었어요."

", 그 정도면 좋은 거죠."

", 그래요. 제사나 명절 때 조금 마음이 답답하긴 했지만 그냥 저냥 지낼 만 했어요. 맞벌이 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했기에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그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남편에게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러니까 저한테는 시동생이고 2년 전에 결혼을 했어요. 덕분에 저에게 동서가 생긴 것이죠."

"새롭게 들어 온 동서와 문제가 있었나요?"

"아니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오히려 너무도 좋은 사람이었죠. 하지만.. 너무도 심하게 좋았어요."

".. 무슨 의미인지 좀 알겠네요."

"동서는 아마도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착한 사람일 거에요. 정말로 천사 같은 사람이었어요.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항상 웃는 얼굴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시부모님들한테도 잘했고, 저한테도 잘했어요."

"그러면 그냥 지낼 만 한 것이 아닌가요?"

"저야 그냥 지낼 만 했죠. 하지만 문제는 시부모님들이에요.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말로 착한 동서를 칭찬하는데, 저는 그것이 저를 비난하는 소리로 들리곤 했죠"

", 큰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에요. 어른들이야 뭐 원래 좀 그러니까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저 자신도 인정하는 동서였기에 조금 기분이 나빠도 넘겼어요. 그런데 지난 명절에 마음에 남는 일이 생기더군요."

"무슨 일이요?"

"다같이 밥을 먹고 치우는데 제가 설거지를 했어요. 그런데 그날 제가 몸이 별로 좋지 않아서 사실 좀 대충 했어요. 아니, 대충 하는 줄도 모르고 했어요. 그냥 몸이 힘들다는 생각만 하면서 치웠죠."

"그런데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동서가 제가 한 설거지를 다 다시 하고 있더라고요. 다 치우고 다 같이 쉬는 시간이었는데.."

", 그럼 그 착한 동서가 설거지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조용히 다시 한 것이네요."

", 그렇죠. 사실 동서 마음을 알아요.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니 본인이 그냥 한 것이겠죠. 저를 탓하거나 하는 마음도 없었을 것이에요. 좋은 마음에서 한 것이겠죠. 아마도 그냥 그대로 두고 가면 시어머니가 나중에 제 욕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정말로 고마운 일이네요."

"그래요. 고마워야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더라고요. 당시엔 정말로 제 감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도 화가 났어요.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남편에게 그냥 얘기를 했어요. 저도 제 감정이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그렇게 느낀다고 말이에요."

"남편이 뭐라고 해요?"

"저한테 속이 좁다고 뭐라고 하더군요. 질투한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에요. 그래서 한참을 울었어요."

"아마도 그날 몸도 안 좋았고, 그런 일도 있었고 해서 감정이 좀 쌓였던 모양이네요."

", 맞아요.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그랬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후로 저는 그 착한 동서의 착한 행동들이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느껴지지가 않아요. 오히려 좀 거북하다고 할까 아니면 불편하다고 할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것은 좀 문제가 있네요."

", 문제가 있죠. 그런데 이 문제를 그 누구에게도 얘기를 못해요. 사실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런데 오늘 선의의 폭력을 주제로 다른 분들이 하는 말들을 듣다가 보니 제 감정이 조금 이해가 되긴 하네요."

", 맞아요. 오늘이 바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마음이 좀 편해지네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는 동서의 착함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것인 것 같네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사람들이 착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착한 사람들 옆에 있으면 손해를 볼 가능성보다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더해서 착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들은 부탁을 해도 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기도 하고, 설령 부탁을 못 들어주는 경우엔 오히려 매우 미안해 한다. 그 일이 자신이 해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그렇다. 그리고 그러니까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착한 사람의 정의이다.

 

착한 사람들은 쉬운 일들은 기쁜 마음으로 잘 해주고, 힘든 일들도 자신이 그것을 해줄 수 있으면 한다. 남에게 나쁜 말도 안하고, 사기를 치거나 그럴 일이 없다. 그러니 신뢰가 높다.

 

원래부터 원래 착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손해를 잘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손해까지 감수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착함이 결정된다. 혹은 이득과 손해 계산법이 서툴러서 어쩔 수 없이 의도치 않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사람들이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

 

그런데 착한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은 그 착한 사람의 가족인 경우가 그렇다. 너무나 착해서 주변에 다 퍼주는 배우자를 가진 아내나 남편은 배우자의 착함으로 인해서 매일 속이 터진다.

 

너무 착한 부모로 인해서 사방에 사기를 당하는 집안에서 자란 자식도 그렇다. 부모의 착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너무도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착함은 기본적으로 손해를 의미하며 그 손해로 인해서 이득을 볼 경우엔 별 관련 없는 사람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 손해가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가족들은 착함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 누군가의 착함으로 인해서 자신까지도 손해를 입게 되었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우가 있다그것은 바로 너무 착한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경우이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상대의 착함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좋지만, 함께 동등한 경쟁이나 혹은 같이 일을 하는 관계에 있을 때 누군가의 착함은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 비교에서 처음부터 지고 들어간다.

 

착한 사람 옆에서 같이 일을 하면 딱히 나쁘게 살지도 않았는데 나쁜 사람이 된다. 그러니 너무도 착한 사람 옆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은 그 사람으로 인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어린이 집에서 일하는 선생님들 중에서 한 명이 유난히 착하게 되면 아이들의 엄마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해진다. 거기까지는 좋다문제는 아이의 엄마들이 이제는 다른 선생님들은 왜 그 착한 선생님처럼 못해주냐고 은근슬쩍 따진다. 그리고 결코 해줘야 할 일도 아닌데 착한 선생님이 해줬다는 이유로 해달라고 한다.

 

해주기는 싫고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하게 되면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이 확장되면 직장에 문제가 생길 여지도 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서 삶이 흔들리게 된다.

 

 


#왜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까#

 

세상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도 있고 나쁜 사람들도 있다. 물론 착함과 나쁨은 기본적으로 상대적이다. 나름대로 착하다는 사람도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단체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악함에 자괴감을 겪을 수 있다. 반대로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감옥에 간 사람은 그곳에서 자신이 얼마나 선량한 사람인지를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착하거나 나쁘거나 하는 특징을 갖게 되었을까? 성격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그 이유를 알아보자.

 

착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그것은 이미 설명을 했듯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는 사람이란 의미이다. , 그 자신은 손해를 자주 보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왜 착한 사람들은 손해를 감수할까? 사실 누구도 손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왜 그럴까?

 

사실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적어도 본인은 그것이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은 없다. , 착한 사람도 자신은 이득을 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이 착해 보이는 가장 원론적인 이유는 이득과 손해에 관한 공식이 남들과 달라서 그렇다. , 착한 사람들은 이득에 대한 판단 기준점이 달라서 남들과 달리 물질적 손해를 보더라도 관계적이거나 정신적인 이득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득의 최종 목적도 역시 행복이기 때문이다. , 행복하기만 하다면 물질적 손해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돈이나 물건을 실제적인 이득이라고 여기면서 좋아하지만생각보다 돈이나 물건 그 자체보다 정신적 만족감으로 행복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 손에 쥔 돈이나 누군가 자신에게 준 어떤 물건 그 자체보다도 그런 돈을 벌 수 있었던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만족감이나 받은 선물에 담겨 있는 정성을 느낄 때 그렇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이득은 생각보다 실제적 이득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자신의 능력이 증명되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 때 이득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론이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 관계를 잘 맺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이득이라도 여기는 사람들이 결국 착한 사람들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관계의 가치가 이 세상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 그러니 착한 사람이란 결국 관계를 통한 행복이 가장 높은 순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를 잘 맺고 싶은 이유#

 

착한 사람은 이득과 손해에 있어서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물질적 손해는 보더라도 관계적 이득을 얻는 것이 더 좋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제지를 받는 경우도 많다. 왜 그렇게 퍼주냐고 말이다. 그래서 그 자신도 좀 혼란스럽다.

 

자신은 손해라고 여기지 않는데 주변에서 자꾸 그러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만 살 수가 없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자신은 너무 관계 종속적인 사람이라서 힘들다고 하소연 하기도 한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임에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다고 한탄한다. 착함 증후군에 빠져 있다고 스스로를 비난한다.

 

그런데 착한 사람들은 왜 그렇게 관계에 종속적으로 된 것일까? 왜 그렇게 관계가 모든 이득의 중심점이 된 것일까?

 

원인은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고 싶은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틀어졌을 때 본인이 감당해야 할 두려움이 너무 커서 그렇다.

 

여기에서 타고난 성격까지 합쳐지면 삶은 전혀 다른 형태로 분화된다.

 

착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관계를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열심히 처리해주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평가가 무척 좋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바로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반면에 착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관계를 감당하기 힘들다. 착하게 살려면, 즉 남들의 이득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인데, 게으르면 해야 한다는 마음과 하기 싫은 마음이 끝없이 충돌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매우 불안정하게 변한다. 그리고 불안정한 사람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함을 느끼게 하여서 오히려 관계 자체에 문제가 생겨 버린다.

 

관계를 잘 맺고 싶어서 관계가 망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자신이 관계에 종속적인 사람이라서 불행하게 된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관계는 집착으로 빠질 여지가 크다. 관계에서 오는 이득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을 채울 수 없으니, 채울만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 너무도 심하게 집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줄 기세를 보인다.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나눠주면 관계 자체에 큰 성공을 했을 것을 소수의 몇 사람에게 집중해서 쏟아 붇는다.

 

이때 관계에 대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 사람을 떠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다 받는다.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관계 집착이 심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주고 버림을 받는다. 그래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착한 사람들 옆에서 살아 남는 법#

 

손해와 이득에 대한 계산 공식이 달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평가를 받고 사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간섭할 수 없다.

 

단지 가족이거나 같이 일을 하는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비교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면 그때는 뭔가 대책을 세우긴 해야 한다.

 

이때 보통 그 착함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의 착함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비난하게 되는데, 이런 태도는 결코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계산 공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변하겠는가? 손해나 이득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 결정될 수는 없다.

 

그것은 그저 언제나 감정이다. 행복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쩔 수 없으니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 딱히 명확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현명하게 해결을 할 수 있다.

 

일단 가족인 경우라면 그 착한 사람이 남들에게 퍼줄 수 있는 한계를 명시적으로 정해 놓는 방법이 필요하다. 쓸 수 있는 돈의 액수를 제한하거나, 보증을 서지 못하도록 어떤 명의도 가질 수 없게 해 놓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통하는 이유는, 또한 착한 사람이라서 말을 잘 듣는다. 그러니 그 사람이 남들에게 퍼줄 수 있는 한계를 확실하게 해 두면 그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퍼주고 만다. 그러면 좋다.

 

더군다나 착한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 착함이 밖에서 마구 이용되지만 않는다면 나쁠 것이 없다. 더군다나 인덕도 얻을 수 있으니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겠는가?

 

같이 일하는 동료일 경우엔 적극적으로 그 착함을 통한 이득을 얻으면 된다. 몰래 설거지를 하는 동서에게 화가 나는 여자처럼 하지 말고 오히려 힘들면 적극적으로 설거지를 부탁하는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 착함을 이용하면 된다. 괜히 거기에서 경쟁하려고 들면 패배자가 될 뿐이다.

 

그럴 수 있으면 착한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 일인지 새삼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착한 사람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친구가 되면 그 사람의 착함으로 인한 손해를 같이 감당해야 하니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착한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결국 대책 없이 착한 사람들은 평생 이용만 당하고 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살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러니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지고 싶어한다. 행복해서 잘 해준 것인데, 이용만 당하니 그렇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사람들과 멀어지고 외로워진다. 오히려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들은 줄 것 잘 주고, 받을 것 잘 챙겨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오히려 그들을 안쓰럽게 여기고 보호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착한 사람은 반드시 그 이상의 보답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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