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폭력

선의의 폭력 - 2

아이루다 2018. 4. 2. 07:36

 

#선의의 폭력 NO.2#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대회가 시작된 이래 계속 듣고만 있던 B씨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고는 주변을 살폈다.

", 계속 말씀해보세요."

"참 좋은 아이였어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했어요. 재주도 많아서 그림도 잘 그렸고노래도 잘했고, 심지어 운동도 잘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겠네요."

"그랬죠. 특히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다들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와 특별히 친한 관계였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나중엔 그 친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친구랑은 어떻게 해서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요?"

"우연히 같은 아파트 동에서 살았고, 그래서 부모님들끼리도 친했어요학교성적은 제가 조금 낫긴 했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서 고등학교 내내 같은 학원을 다녔고요. 그러니 친하지 않기도 힘들었죠."

"그런데 왜 본인만 특별하게 느끼고 그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잘 몰랐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한가지 반복되는 일이 하나 있었어요."

"그것이 뭔데요?"

"저와의 약속을 자주 깨거나 바꾸는 일이었죠."

", 이미 선약을 했는데 그것을 깨거나 바꿨다는 뜻인가요?"

", 맞아요. 그 친구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그랬죠그러다 보니 갑자기 미팅 약속도 잡히고, 생일 파티에 초대되기도 하고, 하여간 반 친구들의 크고 작은 행사엔 늘 연락이 왔었어요. 그래서 저랑 한 약속들이 가끔 밀리거나 아예 깨지기도 했죠."
"
그때마다 상처를 좀 받았겠네요?"

"처음엔 인기가 많은 친구니까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점점 상처가 되더라고요. 저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그 친구 말고 딱히 더 친한 친구도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을 좀 만나지 그랬어요."

"저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겠어요하지만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제 성격에 쉽지가 않았어요. 사실 그 친구도 부모님끼리 친하지 않았으면 친구가 되기 힘들었을 거에요."

"그렇군요. 그러면 어떻게 했어요?"

"자꾸 상처는 받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 잘못은 아니니 따질 수도 없는, 뭐 그런 상태였어요. 또한 그것을 무리하게 따지다가 아예 멀어질까 봐 두렵기도 했고요."

"힘든 일이었네요. 기울어진 관계가 가진 아픔이죠."

"맞아요. 힘든 일이었어요."

"그럼 그 친구는 지금도 만나요?"

"고등학교 졸업 후 거의 만나지 않았는데, 1년 전쯤 우연히 연락이 되어서 한번 봤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거의 변한 것이 없었어요. 만나는 동안 카톡 문자가 정말로 초당 하나씩은 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는 기분이 어땠어요?"

"그냥 얘는 여전하구나.. 정도를 느꼈죠. 그리고 저도 이제는 가정이 있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래서 그런지 담담하더라고요. 예전 고등학교 시절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어요."

 

 

#관계의 중요성#

 

사람에게 있어서 관계를 잘 맺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좀 더 과하게 표현하면,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의 최종 목적은 바로 관계를 잘 맺는 것이라고 할만큼 중요하다.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명예를 추구하는 것도, 남을 돕는 것도, 용기를 내는 것도, 도전을 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 최종 결론이 관계가 아니라면 어떤 일을 했든지 상관없이 행복하기가 힘들다.

 

관계가 인간 행동의 모든 목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행복의 대부분이 바로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복들은 거의 대부분 단기적이며 금세 지루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지 본인이 그 지루함을 잘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에 따라서 혼자서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특별한 관계를 맺은 한두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보통은 가족이며, 좀 특이하게 친구인 경우도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관계는 자신의 안전함을 보장해주는 가장 근원적 장치이며, 같이 어울릴 때 그 무엇보다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효율적인 장치가 된다. 그러니 과연 누가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래서 관계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게 된다. 하지만 좋은 만큼 단점도 크다. 그것은 모닥불이 따뜻하긴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데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얻지만, 반드시 그것을 얻을 수만은 없다. 그리고 그때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입게 된다. 특히 어떤 이유로 인해서 관계 자체가 기울어지게 되면 한쪽이 끝없는 상처를 입는다.

 

 

#매력의 가치#

 

그런데 관계는 왜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될까? 모두 다 같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관계에서 동등하지 못하게 될까?

 

그것은 바로 매력과 능력 때문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능력도 일종의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얼마나 실질적으로 필요한가에 따라서 약간 성격이 다르게 나타난다.

 

매력은 사람을 끄는 힘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것에 끌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매력이 누군가에겐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매력 항목들은 존재한다외모, , 몸매, 운동 능력언어 능력, 유머많은 돈, 착함지식, 똑똑함, 다정함공감 능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어떤 것들을 매력으로 느끼는 것일까? 또한 왜 사람마다 왜 그렇게 매력을 느끼는 항목이 달라지는 것일까?

 

이 질문들은 서로 다른 것을 묻지만 사실상 같은 답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생존과 생식이다.

 

, 사람들인 어떤 것에 매력을 느낀다는 말은,  매력의 대상이 생존에 유리할 것 같아서 그렇거나 혹은 자식을 잘 낳고 기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는 뜻이다.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는 건강의 상징이다그리고 더 나은 2세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남자의 큰 덩치와 여자의 잘 빠진 몸매는 각각 좀 더 명확하게 생존 능력과 출산 능력을 의미한다.

 

지식이 많은 것도, 똑똑해 보이는 것도, 말을 잘하는 것도, 유머감각이 좋은 것도 다 마찬가지다. 지식이 많으면 생존에 유리하고 실제로 더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이 높아진다. 똑똑한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말하는 것이나 유머감각이 생존과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인간관계가 생존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데 있어서 말하는 능력과 유머감각은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그 많은 종류의 생존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항목들 중에서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대상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외모, 누군가는 덩치, 누군가는 머리가 좋은 것, 누군가는 유머감각, 누군가는 착함이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고 느낀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사람들은 누구나 최대한 많은 매력을 가지고 싶어한다. 다른 말로 하면 최대한 살고 싶어한다. 그러니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매력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애쓴다.

 

문제는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타고난 것일수록 더욱 더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누구나 가질 수 없으니 희소성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예쁘거나 잘 생긴 얼굴, 큰 키, 좋은 몸매, 똑똑한 머리, 유머감각, 노래, 따뜻한 성격 등은 매력들 중에서도 특히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태생이 불공평하다따라서 관계는 처음부터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데, 관계를 잘 맺는 것은 타고난 것에 의해서 크게 좌우된다는 현실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태생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렇게 타고났으니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인 해결책#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 가장 흔하게 생겨나는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관계 독립성이다.

 

, 관계에 종속적이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 조언들은 어느 선까지는 유효하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왜냐하면 관계를 벗어난 사람들은 불행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행복할 수도 없다. 또한 자신과 달리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 볼 때마다 끝없이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성격 좋은 친구로부터 자주 상처를 받아서 그 친구와의 관계를 단절했을 때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다. 이미 다른 친구가 많은 그 친구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몇 명 없는 친구들 중에서 하나가 줄어든 것은 아주 큰 손해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변화를 해야 한다.

 

하나는 기울어진 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냥 인정해야 한다. 자존심 상하고, 열등감 느껴지고, 질투심이 느껴지더라도 그래야 한다. 일단 이것이 되어야 다른 관점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진다.

 

둘째는 자신만의 매력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타고난 매력이 훨씬 더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타고난 매력은 깊이가 없다. 이미 주어졌기 때문에 그렇다.

 

반면에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은 충분한 깊이를 가질 수 있다. 노력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매력을 가져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은 바로 관계 맺기와 관련되어 있다. ,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내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매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 어떤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외모나 성격은 이미 고정되어 있는데 말이다.

 

다행이 있다. 물론 힘들다. 그럼에도 희망이 된다. 그것은 바로 들어주는 능력이다.

 

물론 들어주는 것도 일종의 타고난 능력일 수 있다. 타고나게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후천적 노력에 의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따라 잡을 수 있다. 실행도 단순하다. 그저 말을 줄이면 되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한다. 행복한 것을 자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흥미롭게 들어달라고 하고, 자신이 잘났음을 자랑하고, 슬픔을 위로해 달라고 하고, 억울한 일을 들어주길 바란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90%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정보 교환이다. 내일 날씨가 어떻다든가 하는 대화들이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하고 싶다고 느낀다. 그래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실패한다. 상대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것으로 인해 뭔가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반쯤 깎는 연습을 해야 한다. , 말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상대의 말에 집중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사람들이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을 집중해서 진지하게 들어주고, 하고 싶은 말을 반쯤 줄이면 그 사람의 매력은 다른 모든 매력 항목을 뛰어넘는 대단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사실 타고난 매력들인 외모나 머리 좋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좋을 때만 좋다. 나쁜 일이 일어날 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대화를 잘하는 능력은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모두 유효하다. 자랑을 들어줄 때도, 억울함을 들어줄 때도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잘 들어주는 능력은 어떤 면에서 인간이 가진 모든 매력들 중에서 최고이다. 누구나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엔 공감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관계 맺기에 있어서 잘 들어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무리 탁월한 매력들을 많이 갖춘 사람이라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주변에 없으면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매력적인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외로움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관계 속에서 받는 상처들#

 

선의의 상처를 입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상처를 입히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니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제대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운 좋게 타고난 능력이 많았다면 상처를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이었을 것이다. , 친구와의 약속이 깨지는 사람이 아니라 약속을 깨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끝없이 상처를 주면서, 그 자신은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삶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결국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사실상 반쪽짜리 삶을 살아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은 어쩔 수 없다. 타고난 것들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매력이 원래 그러니까 말이다. 단지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작은 변화들을 통해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가 타인에 대한 제대로 된 공감능력을 키워줄 것이다.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인정도 그저 살기 위해서 큰 도움이 되니까 중요한 것뿐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자존심을 내려 놓고는 이제 좀 더 큰 목표를 향해 가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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