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인지 오랜 생물의 진화 과정 중에 우연히 암/수 구분이 생겼다. 그리고 그 구분은 생명체의 발전에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하여 이후 폭발적인 진화를 이끌어 내게 된다. 그래서 진화된 고등생물은 거의 모두 암/수 구분이 있다고 보면 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그 흐름에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우린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한가지 성을 선택받아 태어나게 된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암/수의 구분의 가장 큰 이유는 유전자 뒤섞기이다. 이것은 우리의 2세가 태어날 때 무조건 내 유전자의 반밖에 전달해줄 수 없다는 점을 통해 내가 부족한 부분이나 혹은 무작위적으로 나타나게 될 유전 형질의 특이성이 우연히 표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결국 이런 형태의 유전자 뒤섞기는 진화라는 커다란 틀에서 보면 매우 현명한 결정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 글에 한참 표현해놨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근친상간의 결혼을 막는 풍습이 왜 생겼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도하지 않은 부가적인 효과가 하나 더 생겼다. 암/수 둘이 만나서 새끼를 낳았으니 이제 양육에 대한 책임이 양쪽 다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속한 고등 동물계에서는 이것에 대한 해결책을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곤 하는데, 첫번째로 암컷 혼자 키우는 형태가 있다. 이런 형태는 보통 단독생활을 하는 삶을 사는 육식동물에서 나타나곤 하며 곰, 호랑이 등과 같은 동물들이 그 예이다. 또 다른 형태는 가족을 이루는 것인데 암/수가 새끼를 낳은 후에도 계속 같이 자신들의 새끼를 돌보는 것이다. 이것은 포유류보다도 조류에서 더 훨씬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무리를 짓는 방법도 있다. 즉 여러 구성원들이 모여서 가족의 범위를 넘어선 무리를 이루는 것인데 늑대무리 같은 종류가 그런 형태이다. 뭐 또다른 예는 숫컷 한마리가 많은 암컷을 거느리고 사는 사자와 같은 형태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이정도로 분류 해둔다.
인간은 이 중에서 조류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스스로가 약하기에 늑대처럼 무리를 짓게 된 형국이다. 하지만 이 집단에 대한 충성도는 아마도 늑대보다는 좀 더 약할 것 같다. 우린 근본적으로는 무조건 자신의 가족을 최우선으로 챙기게 된다.
이런 사회가 오랜시간 유지되자 이젠 여기에서 분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한명은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하고 남은 한명은 새롭게 얻은 2세를 돌봐야 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인간의 아이는 일반 동물들에 비해 너무도 약하고 돌봐야 할 시기가 너무 길었다. 최소 10년 이상은 먹여야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은 더 길어졌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성에 따른 역할분담은 정말 필수적인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남녀가 결혼 후 자녀에 대한 양육이 필요하면 결국 보통 여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 살림을 하게 된다.
아무튼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젖을 줄 수 있는 여자가 집에 남고 남자들은 사냥을 다녔다. 지금도 여성이 고음을 내고 남자가 저음을 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자들은 집에서 강하고 짧은 경고를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발달 시켰고 남자들은 무리 사냥에서 넓게 퍼질 수 있는 저음을 발달 시켰다.
사회가 점점 더 발전할수록 남자들은 주로 생산, 즉 먹을꺼리를 준비하는 역할에 더 충실해져가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가져온 먹을꺼리를 잘 조리해서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성향이 문명이 훨씬 더 발전한 현대 사회에 오자 이젠 좀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남자의 기본 성향은 생산에 가깝고, 여자의 기본 성향은 소비에 가깝다. 이 말은 바로 남자는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행복을 느끼고 여자는 이미 주어진 것을 잘 쓰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과거 우리가 동굴에 살던 원시인일때부터 내려온 오래된 습성임을 우린 잘 모르고 있다. 남자는 밖에 나가 무에서부터 유를 만들어 내는 사냥과 채집을 했고 여자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고기를 잘 다듬어 자신의 가족이 안전하게 먹을 먹거리와 입을 옷을 만드는 것에 집중한 결과였던 것이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뭔가를 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나 혹은 안도감에 대한 뇌가 주는 축복이다. (물론 호르몬이란 것으로 통해 이 축복을 준다) 따라서 남자는 충분한 사냥감을 확보했을 때 행복을 느끼고 여자는 이 고기를 잘 이용해 자신의 가족이 한동안 먹을거리 걱정없이 살게 된 상황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의 뇌가 우리의 몸에 행복감을 넘치게 해주는 상황으로 진화되어 온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는 지금도 그 행복감을 얻기 위해 수백만년 전 우리의 조상이 했던 짓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당연히 남자들은 자신이 과거 오래된 유전적 기억에서 빠른 다리를 가지고 남들보다 더 많은 사냥감을 얻어낼 때 희열을 문명이 발달하면서 남들보다 더 빠르고 강한 말에 대한 집착을 거쳐 요즘은 말의 대용품인 좋은 차에 끝없는 로망을 보인다. 또한 잘 만들어지 전자제품을 사서(과거 좋은 돌도끼 같은 도구의 의미) 멋지게 활용함으로서 많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작업실을 가지고 거기에서 각종 도구를 이용해 자르고 뚷고 연결해서 쓸만한 가구를 만들어내거나 혹은 자신의 취미를 위해 다양한 생산적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과해지면 과도한 차에 대한 집착이나 신제품에 대한 끝없는 갈증등을 느끼면서 스스로의 삶을 망치기도 한다.
반면에 여자는 역시나 계속 소비적인 행동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쇼핑, 맛있는 먹거리 먹기 등에 대한 많은 집착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런 행복감은 남자의 그것에 비해 매우 쉽게 얻을 수 있는데 물론 그것을 위해선 충분한 돈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자들의 관점에서 돈은 너무도 중요한 가치가 된다. 아마도 여자들 그 자신은 미래의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돈 많이 버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자을 원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의 행복한 소비생활을 위해서 그런 남자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과해지면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한 대외적 모습을 바로 명품이나 기타 값비싼 소비생활을 하고 있음을 남에게 과시함으로서 상대적인 행복감을 더 얻으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가 옳고 틀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각각 장단점이 있으니 서로 잘 보완이 되면 좋은 씨너지 효과가 난다. 남자가 아무리 생산적인 일을 해대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고 좋아해주지 않으면 이내 시들해진다. 코끼리를 잡아오든지 호랑이를 잡아오든지 누군가 그것을 환호하고 즐겁게 요리해서 자신의 앞에 놔주지 않으면 남자는 우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생산에 대한 집착이 실제로 생산적인 일과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돌볼 가족이 자신의 실제 가족이길 원한다. 자신이 사냥을 나간 사이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다른 남자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키웠다면 그 얼마나 맥빠지는 일이랴.
반면에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자신과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스스로 어찌 그것을 감당할 수 있으랴. 뭔가 좋은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하고 싶어도 재료가 없고 그 재료를 살 돈이 없다면 어찌 여자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이것을 극복하고 싶어서 실제로 자신이 사냥을 나간다고 해서 어찌 다른 남자들 수준의 획득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여자에게는 그런 역할을 해 줄 남자가 매우 많이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서 그 획득한 사냥감을 오직 자신에게만 가져다 줄 충성심도 요구하게 된다. 남자들은 원래 사냥감을 들고 오다가 다른 예쁜 여자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사냥감을 가져다 받치는 어리석은 동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부부가 어느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 남자들은 보통 전원생활을 꿈꾸곤 한다. 직장도 그만두고 매일매일 그리 할것도 많지 않다면 당연히 소일꺼리를 찾아야 하는데 남자들은 쇼핑다니고 맛난거 먹으면서 다른 남자들과 수다떨면서 사는 행복을 누리기가 좀 힘들다. 즉 남자들은 어떻게든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좋은 장소에 멋지고 좋은 집을 짓고 매일 그것을 수리하거나 앞에 텃밭을 가꾸면서 행복해 하게 되는 일이야 말로 남자들이 꿈꾸는 생활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은퇴시기 전에도 나타나는데 바로 수 많은 취미생활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이와는 다르다. 이미 도심지에서 충분한 인맥관계를 맺고 동네 아줌마나 혹은 다양한 계층의 지인들이 구성되어 있어서 바쁘기도 한데, 남편의 꿈을 위해 전원주택이랍시고 해서 시골에 가버리면 쇼핑한번 하기도 힘든 처지가 되어 버리니 도대체 왜 남자들이 왜 시골에 가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를 못한다.
물론 시골에 사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벌레 많고 치안도 불안해보이고 병원도 멀고 대형마트도 멀고 백화점은 더더욱 먼 그곳에 가서 왜 그렇게 살아야 할지 답을 못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부부의 의견차이는 벌어지고 결국 한쪽으로 쏠리거나 혹은 심하게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중간 형태로 주말주택 같은 것을 지어서 반쯤 걸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낚아 온 물고기를 다듬는 여자들의 생각은 왜 시장에 가서 사면 다 다듬어 주고 또 가격도 훨씬 싼데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취미를 해보면 돈주고 얻는 것이 실제로 해서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싸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상추 역시 재배해서 먹는 것보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많이 이득이다. 물론 처음에 낚시를 따라가면 신기하고 재미도 있지만.. 그것은 단지 처음 몇번밖에 없다. 그래서 어쩌면 남자들은 자신의 취미를 함께하지 못하는 여자들보다 남자친구와 놀기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여자의 취미는 보통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는 단기적인 일인 반면, 낚시, 캠핑, 등산은 취미들은 심하게 되면 몇박 며칠까지 소요되는 긴 여정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별 사진찍기도 거의 남자들 위주의 취미인데 이것 역시 기본이 1박이다.
이것이 남녀의 시각 차이를 많이 들어내주는 좋은 예가 된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인간 지배의 시간이 어떤 위기로 인해 다시 원시시대로 되돌아가게 되었을 때라면 남자의 이 성향은 여자에게 매우 이로운 점이란 생각을 해야한다. 마찬가지로 남자들 역시 여자들의 소비집중적 패턴이 어떤땐 한심해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런 성향의 근본이 되는 요소가 남자가 여자와 함께 있을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만들어 내주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면 멀하는가? 같이 좋아해줄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돈을 버는 재미만 존재할 뿐이고 그것을 잘 써주는 사람이 있음으로서 님자는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여자들 역시 쓰는 행복에 대한 타고난 성향이 있더라도 힘들게 벌어오는 남자에 대한 이해를 하고 생산에 집요한 집착을 보이는 남자들의 성향이 결국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근원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남자들의 그런 성향에 대해 암묵적 허용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부분말고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성향은 남녀간의 동성에 대한 관계성을 결정하게 된다.
여자들은 쇼핑을 같이 갈 길동무가 필요하다면 남자들은 사냥을 같이할 동료가 필요하기에 관계에 있어서도 훨씬 더 집착하고 깊이를 가지려고 한다. 결국 사선에서 나를 지켜줄 동료는 내가 믿을 수 있어야 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땐 남자들의 이런 관계 집착성을 매우 불합리적이거나 가정에 충실하지 않는 태도로 여기는데 이 말은 전적으로 맞다. 그것은 바로 현재는 우리가 무리지어 사냥을 다닐 필요는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기술문명은 너무도 빨리 발전했는데 우리의 진화는 너무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에 발생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아마도 수천년간은 이런 남녀의 갈등이 존재하다가 결국 남자나 여자나 비슷해지는 성향을 갖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도 많은 남자들이 여자와 같은 행복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남녀는 그 이성적 상대가 자신과는 아주 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에게 매일 '너는 왜' 라고 묻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소비적이라고 비난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어리석음과 무심함을 비난한다. 그렇다면 이제 한번 상대를 좀 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목소리가 그런것처럼 그냥 원래 남자와 여자는 좀 다른 성향의 동물이라고 말이다.
'인간과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에 대한 추가 보고서 (0) | 2013.06.16 |
---|---|
남자에 대한 추가 보고서 (0) | 2013.06.15 |
믿음과 평가, 그 실체없는 근원 (0) | 2013.06.05 |
맞춤형 생활환경, 적응과 번성 (0) | 2013.05.28 |
버틸 수 있는만큼 버틴다 (0) | 2013.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