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이 그 생명이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큰 분류로 나누어보면 제목처럼 소비되는 삶과 쌓여가는 삶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두가지 형태의 삶에 대해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몰라 부연 설명을 하자면 소비되는 삶이 나쁘고 쌓여가는 삶이 좋다는 뻔한 흑백논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각자 장단점은 분명히 존재하며 어떤 사람도 극단적으로 한쪽만을 철저하게 추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이런 분류 역시 동전의 양면과 같은 형태의 고려해야 할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해를 위해 소비되는 삶고 쌓여가는 삶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오늘 TV에서 매우 재미있는 쇼나 드라마를 했다. 그래서 매우 열심히 봤다고 치자. 단순한 질문으로 그럼 이건 소비되는 것일까? 쌓이는 것일까? 언뜻 생각하기엔 바보상자라고 불리우는 TV를 보면서 그냥 시간을 보넀으니 단순히 소비했다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답은 두가지 모두 다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을 소비하느냐, 쌓느냐는 오직 개인의 성향이 좌우하게 된다. 옛 성현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어떤 것으로 부터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당연히 쌓이는 삶이라고 말할 것이다. 얼마나 뿌듯한가? 하루하루 아이는 커가고 매년 달라지고 있는데 말이다.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해 아이 자체의 신체적인 변화만 봐도 세월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고 키도 크고 체중도 늘어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분명히 아이를 기준으로 보면 쌓이는 삶이다.
그렇다면 부모에게도 오직 쌓이기만 하는 것일까? 물론 아이가 큰다는 것은 일종의 보람을 느끼는 일이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반면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소비한 자신의 삶에는 무엇을 쌓고 있는것일까? 미래 사회의 주역을 키워냈다는 공공의식적인 만족감인가? 아니면 언젠가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자신을 돌봐줄 끈끈한 도우미나 혹은 자신이 죽은 후 그 시체를 처리해 줄 시체 처리반이 생겼다는 안도감일까?
영어를 배우거나 기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많은 것들을 배우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이 역시 쌓이는 행위로 간주되기 아주 쉽다. 적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은 조금이라도 커지기 마련이며 이 때문에 이런 행위를 한 주체인 사람은 좀 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추가적인 출세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쌓인 것인가?
취미생활은 어떤가? 등산이나 독서, 영화보기, 원예, 자전거타기 등등의 사람이 하는 취미는 너무도 다양하다. 취미생활에서 공통으로 소비되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즉 취미생활 자체는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취미를 소비생활로 보겠는가?
물론 쇼핑과 같은 취미는 극단적으로 돈을 소비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자전거타기, 마라톤 과 같은 취미는 시간을 쓰긴 했지만 건강을 챙기는 건강함 쌓기 취미이다. 즉 시간과 건강을 바꾼 것이다. 같은 취미의 일종이라도 독서, 영화보기는 또 다르다. 이런 정적 행동은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정신적인 만족을 가져다 주는 행동이다. 결국 모두 시간을 소비한다는 공통점 빼고는 매우 다른 소비와 쌓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예에서 보여지듯 내가 분류한 소비하는 삶과 쌓이는 삶은 분명히 모든 행동이나 사건에 있어서 양면에 존재하고 있다. 완전히 한쪽만으로 이루어진 사건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소비하거나 쌓이고 있다고 느끼는지를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두가지 형태의 삶에 대한 근본적 평가기준은 바로 '시간' 이다. 우린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이것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너무 쉬운 답인것 같지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왜냐면 우린 결국 태어남과 동시에 일초씩 미래로 나아가고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나면 늙어서 죽게 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즉 시간이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소비해서 그 댓가로 무엇을 얻어내느냐가 바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실제로 더 깊게 생각하면 이미 어떤 삶을 선택당했는지 알아보도록 해보자. 요즘 미혼으로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에서 말이다.
아침에 눈을 떠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을 가지고 화장실에 가는 A씨. 그 후 씻고 출근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출근길 지하철을 타는 동안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 간밤에 뉴스를 본다. 회사에 도착해 일을 하고 시간이 나면 짬짬히 자신이 관여하는 SNS에 접속해 소식을 확인하고 뉴스도 보고 지인과 간단한 채팅도 한다. 점심 시간엔 동료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먹기도 하고.
오후엔 바삐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약속이 있으면 모임에 참석하거나 혹은 아무런 약속이 없을 경우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기도 한다. 집에 도착하면 씻고 TV를 켜서 시청하거나 별로 볼 것이 없으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서핑에 빠져든다. 어느새 시간은 금새 흘러 잘시간이 되고 잠자리에 든다.
아마 요즘 결혼을 안한 젊은 직장인의 가장 일반적인 패턴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중간에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추가적으로 뭔가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린 무엇을 쌓고 있을까?
첫번째 우린 월급을 쌓고 있다. 이렇게 한달을 보내면 회사에서 수고했다고 월급을 주니까 말이다.
두번째 우린 주말의 휴식을 쌓고 있다. 일주일이 7일이면 5일을 일하고 2일을 쉰다. 물론 월급쟁이 입장이다.
세번째 경력을 쌓고 있다. 이건 좀 장기적 흐름인데 결국 이런 시간들이 모여서 자신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거나 그 회사내에서 진급할 때 매우 큰 도움을 준다.
네번째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했다면 그 취미생활에 대한 전문성 획득이나 건강을 쌓았다.
다섯째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면 관계성에 대한 가치를 쌓게 된 것이다. 내가 모임에 자주 참석할수록 나는 그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 언제라도 빼지 않고 연락을 주는 명단에 들어가게 된다.
반대로 여기에서 무엇을 소비하고 있을까?
첫번째 우린 시간을 소비했다. 이것은 뭐 따질 문제도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다시 오지 않을 어느 나이대의 어느 계절의 어느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이 시간은 절대적으로 과거가 되어 버린다.
두번째는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소비했다. 내가 영어학원을 다녔건, 운동을 했건 간에 상관없이 내가 영어학원에 다녔다면 내 머리가 영어 단어하나를 더 넣을 때 나의 몸은 더 늙어지고 있다. 반대로 내가 운동을 했다면 내 머리속의 암기 영단어는 점점 줄어만 간다.
세번째는 이미 결혼을 한 친구들에 비해 가정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소비했다. 아마도 삼십대 초중반인 남녀라면 대부분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한명 정도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은 이미 가정에 대해서나 자녀에 대한 쌓음을 하고 있는 반면 본인은 오늘도 SNS의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네번째 선택적 삶에 대한 가능성을 소비했다. 우린 하루하루 시간을 보낼 때 늘 선택을 하게된다. 이 시간에 이걸할지 다른걸 할지. 그것은 일의 종류일 수도 있고 어떤 친구를 만날 것인가 일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것들은 그 사건의 결과 따라 쌓일수도 있고 소비될 수도 있는데 아무튼 결국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확실한 진리임엔 틀림이 없다.
이런저런 경우에 대해 정의하고 설명했지만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이건 아닌데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에 소비하고 쌓이는 것에 대한 정의도 다르다. 누군가는 돈 버는 시간이 가장 많이 쌓이는 시간인 반면, 다른 누군가는 돈을 쓰는 시간이 가장 많이 쌓이는 시간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우린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난다. 즉 어떻게 삶에서 주어진 시간을 소비하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그것을 생각해보기 위해 간단한 상황을 보도록 해보자.
지금 이순간 내가 지인들과 너무도 즐겁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할 때 나는 소비하고 있는 삶일까? 쌓고 있는 삶일까?
단순히 보자면 나는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관계에 있어서 적어도 관계성 쌓기에는 성공하는 셈이다. 하지만 동일한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TV 시청에서 나왔다면 쌓는건 거의 없이 단순한 시간 소비만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같은 소비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소비를 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 하루 살아가는 삶. 소비하거나 쌓을 수 있다. 거기에 이건 분리될 수도 없다. 어떤 일이든 소비와 쌓기는 존재하고 있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많이 소비해서 얼마나 많이 쌓을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에서 추가적으로 생각해볼 것이 내가 쌓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소비하는 것일 수 있고 반대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 쌓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또 하나 더 생각해야 할 점은 내 스스로 내가 쌓고 있거나 소비하는 것 자체를 인식 하지 못하는 시간들도 있다. 그것은 오직 내가 현재 행복하냐 불행하냐의 관점에서만 삶을 보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시간 보내기가 될 수있다. 그런 형태의 삶은 정말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 이야기와 같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내가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에서 단순히 소비하고만 있다는 인식이 들 때이다. 마치 정체되었거나 심지어는 퇴보되는 느낌까지 들 수 있는 경우다.
그리고 그 이면엔 분명히 게으름이 존재한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정의는 개별적으로 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삶 자체에 불만이 많다면 당연히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계획하고 어떻게 살아가며 또 그것들을 어떻게 평가하는 오직 자신만이 할 일이지만 결국 내가 그 시간들에 대해 후회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스스로 대답을 해야한다.
처음에 말했듯 소비되는 삶은 나쁜것이고 쌓이는 삶은 좋은 것이다라는 흑백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스스로 생각했을 때 소비되거나 쌓이거나 하는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실제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시간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즉 시간은 흘러가고 자신이 한살 한살 더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뭔가 그럴듯한 존재감을 전혀 만들지 못함에 대한 불안함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해질 수 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바로 작은 변화이다. 만약 소비되는 삶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면 이제 조금만 쌓아보려고 하자. 오늘 하루 시간을 건강이나 지식쌓기 등에 투자를 해보자. 그러니까 운동이나 책 읽기를 해보자는 말이다. 반대로 쌓는것에 너무 집착해서 스트레스 받아 스스로 너무 힘들다면 잠시 좀 내려놓자. 휴식을 즐기고 여유로움 속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지혜를 가져보자.
시간은 의지와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흐른다. 우린 단지 그 흐름 속에서 순간순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서 살아갈 뿐이다. 그 어떤것도 '옳다' 고 정의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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