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 2

[단편] 변두리 삶 #2

* * * 나는 온 몸이 밧줄로 의자에 묶인 채 어두운 공간에 갇힌 채 정신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잠들기 전에는 병원에 있었는데, 잠을 깨고 보니 이런 이상한 장소에 와 있다. 더군다나 나는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비록 밧줄에 묶여 있긴 하지만, 사지에서 감각이 확실히 전달되어 왔다. 손을 꼼지락거리고, 발을 살짝 돌리고, 고개도 돌릴 수 있었다. 눈도 뜰 수 있어서 바깥세상도 보였다. 하지만 내 머리 바로 위에 켜 있는 조명이 너무 밝아서 주변 것들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코끝으로 곰팡이 냄새와 희미한 비린내가 섞여서 났다. 피부에는 축축한 느낌이 올라왔다. 잘 모르겠지만, 어떤 창고인 듯 했다. 대충만 둘러봐도 낡고 더러운 곳이 분명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는 지금 이곳에 있는 ..

소설, 에세이 2021.03.20

[단편] 변두리 삶 #1

'직업', 생년월일부터 이름과 지금 사는 주소까지, 막 힘없이 써내려 가던 나는 직업란 앞에서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 직업을 써 내야 했던 시절과는 달랐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대였다. 그 시절엔 딱히 직업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못 썼고,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쓸 것이 너무 많아서 고민스러웠다. 입으로는 늘 건설 기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아버지는 일 년 중 기껏해야 서너 달 밖에 일을 못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여느 날처럼 일을 하던 아버지는 5층 높이의 공사장에서 추락해 척추에 큰 손상을 입었다. 몇 년간 치료와 재활을 한 끝에 겉으로는 멀쩡해 지긴 했지만, 그때부터 아버지 몸엔..

소설, 에세이 2021.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