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죽음이 가진 의미

아이루다 2014. 1. 12. 09:05

 

최근 우연히 일본 애니메이션 한편을 보게 되었다. 아니 실제로는 25편으로 구성된 TV 방영물 인것 같은데 아무튼 인터넷에서 이 작품을 추천하는 글을 접한 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보게 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내 개인적 평가는 보통 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아마도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들이 워낙 주제의식이 뚜렷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맞을 땐 참 재미있고 그렇지 않을 땐 오글거려서 보기가 힘들다.

 

이번에 본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소드 아트 온라인' 이다. 아직 다 보지는 못했고 대충 8편 정도 본 듯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다. 대충 이 작품에 대한 배경을 보면 가상 현실세계가 구현된 가까운 미래에 소드 아트 온라인 이란 새롭게 출시된 게임안에 갇혀버린 만명의 게이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은 누구도 이 게임에서 나갈 수 없고(로그 아웃 불가능) 게임 안에서 죽으면 실제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 자체가 죽는 다는 것이다. 만약 외부에서 강제로 사용자에게 장치를 떼어 놓는 순간 역시도 그 사람은 죽게 되며 정상적으로 게임을 종료하는 방법은 오직 게임의 최종 목표인 100층까지를 완전히 클리어 해내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 애니메이션의 가정은 흥미롭지만 개인적으로 실제 물리적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몸에 에너지를 어떻게 주입하는지가 궁금한데, 아무래도 작가 역시도 그것을 해결 못한 듯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는 게임 외부의 세계에 대해 단 한차례의 장면도 내보내지 않았다. 단지 과거의 장면만이 몇번 회상 속에서 나왔을 뿐.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애니메이션은 우숩다. 전체적인 작품을 구성하는 배경도 생각에 따라서 허접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역시도 사람들의 상상력이나 어떤 이상향을 충족시켜 주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외톨이 증후군, 동지애, 다른 이의 삶에 대한 무게, 그 어떤 일이든 의무감으로 느끼는 감정 등이 들어난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보면서 내 머리를 꽤나 띵하게 만든 생각의 단초가 두개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이 작품이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입장이다.

 

그 중에서 첫번째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모든 온라인 게임에서는 내가 조종하는 캐리터가 죽으면 어떤 방법이든 다시 살려낼 수 있다. 물론 어떤 약간의 손해를 입긴 하지만 (아마도 이건 죽음에 대한 손해를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 내어 죽음의 과정을 겪게 하지 않으려는 게임적 요소인 듯 보인다) 죽는 것이 현실과는 다르게 부활 가능한 상황으로 연결이 된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에서 죽음은 현실의 죽음과 연결이 된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그 게임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실제로 그것은 완전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있는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지인이 죽거나 혹은 전혀 모르는 이들이 눈 앞에서 사라져갈 때 마다 실제로 현실적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애니메이션에서 이 가정이 빠졌다면 아마도 이 작품은 보기 힘든 유치한 내용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가정함으로서 죽음은 두렵고 죽음은 끝이며 죽음은 복구 불가능한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지만 이 게임에서 죽음은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 있어서 이유가 된다. 그래서 믿는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때 그것은 단순한 능력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가치로 환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100층까지 클리어 해내는 게임 전체적인 목표가 존재한다. 이것은 그 게임 안에 갇혀버린 모든 게이머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이들은 그 안에서 경쟁하면서도 또한 그 안에서 서로 협력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현실처럼 선한 이도 악당도 존재하고 도둑도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과 완전히 동일하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의 절대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두번째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통해 시간을 보내게 될 때 과연 우린 무엇을 통해 우리가 살아 온 것을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이다. 질문이 좀 어려운데 예를 들어보자.

 

이 온라인 게임은 실제로 2년을 넘게 진행이 된다. 지금까지 본 내용으로는 그랬는데 아마도 끝날 땐 더 길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게임안에 갇힌 모든 사용자는 현실적인 세계에서도  2년을 넘긴 것일 될 것이다. 이럴 경우 게임을 제대로 클리어 하고 현실로 나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현실의 시간에 대해 게임 안에 갇힌 시간 만큼을 잃어버린 것이 된다.

 

물론 게임 안에서 수 많은 경험을 하고 그로 인해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을 가졌으며 뛰어난 스킬을 배웠을 것이다. 요리하는 법, 철을 제련해서 검을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게임 '안'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로 돌아가는 순간 그리고 게임 서버 자체가 없어지는 순간 그들이 게임 안에서 쌓은 모든 가치는 일순간 사라져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 게임에 속해있는 순간 만큼은 그것은 대단한 가치를 갖는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죽음과 연관되는 것인데 당연히 게임 속에서 죽지 않고 또한 그 안에서 삶을 살아가야 할 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요리하는 법도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렇지만 게임의 목표인 최종 단계의 깨고 실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이것은 모두 사라진다. 물론 죽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것이 단순히 온라인 게임과 현실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가 않는다.

 

현실에서도 이 문제는 동일하게 반복된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도 정확하게 죽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죽음의 순간에 우린 그 삶속에서 이룬 모든 가치를 두고 떠나야 한다. 물론 여기엔 자신이 낳은 자식이나 기타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은 이들을 통해 뭔가를 남기고 가는 듯 하지만 실제로 죽음은 이런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무자비 하게 우리의 육체를 바로 썩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그 온라인 게임처럼 게임이 멈추는 순간 모든 가치가 일순간 사라지지 않게끔 그나마 유지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두번째 느낀 점에 대한 질문이다.

 

결국 게임 안에서 의미를 갖는 모든 실체적 가치는 게임이 끝나는 순간 사라진다. 전설적인 명검도 뛰어난 고유 스킬도 대단한 요리 실력도 그 안에서 쌓은 개인적 명성까지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것들은 모두 온전히 내 자신으로부터 만들어 진 것들이 아닌 아닌 타인과의 연결, 타인들이 평가 등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멀어져버리는 순간에 그 가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조선시대 뛰어난 검객으로 이름을 날린 누군가가 시간 여행을 통해 현대로 오게 되었을 때 그는 갑자기 아무런 일을 할 줄 모르는 백수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가 원래 살던 시대에서 그는 우는 아이가 울음을 멈출만큼 위대한 검객이었으나 21세기에 온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우리는 늘 현실적인 상황에서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대다수의 가치는 우리가 속해 있는 상황에 전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것들이 가치 있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치들은 실제로는 매우 원초적인 본능에 의해 나타나는 가치들이다.

 

본능 이외에 흔히 사람들이 욕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그 모든 가치들에 대해서 과연 우리는 이런 조건부 가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까? 명품을 바라보는 시선, 좋은 차를 탐내는 남자, 통장에 쌓은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욕망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그 가치의 한계를 인식할까?

 

물론 온라인 게임속 세상과 다르게 현실 세계는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는 절대적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좀비물에 나오는 세상이나 세계적인 자연 재해가 발생해서 우리가 갑자기 원시적인 세상으로 되돌아 가버리는 상황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오직 이런 조건부 가치만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의 한계인 것인가?

 

나는 여기에서 한가지 힌트를 얻었다. 게임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게임이 끝난 후 어떤 가치를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 게임 안에서 그들 하나하나가 느낀 그 자신들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준 경험의 총합이다. 그 경험들은 그들을 자극했으며 그들을 변화시켰고 그로 인해 개별적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성장시켜주었다. 그 성장의 경험이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유일한 가치가 된다.

 

또 하나 힘들지만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바로 타인과 맺은 깊은 관계가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게임이 끝난 후 현실 세계에서도 연결 가능한 유일한 끈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은 게임이 끝난 후에 소드 아트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서 매년 모임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매년 천천히 그 가치를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평생 사랑할 사람을 찾았거나 혹은 그런 친구를 얻었다면 이것은 남길 수 있는 어떤 가치의 작은 기회가 된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이런 가치가 될 수 있는 관계를 가족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다. 하지만 우리를 잘 들여다 보면 우린 늘 보다 더 많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능력이 되고 기회가 된다면 소수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수에 발을 담구길 원한다.

 

우리 세상은 이 세상이 끝난 후 돌아갈 현실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마도 그렇게 살아가는 듯 하다. 하지만 그 게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정말로 그 안에서 보낸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버린 시간으로 인식하고 싶지 않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저 살아났다는 것을 의미로 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 만약 40년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남길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유일한 답이 될 수 있다.

 

먹고 똥을 싸는 행위는 배가고파 굶어 죽는 상황을 모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내 자신이 음식을 얻기 위해 일을 하고 요리를 배우며 똥을 쌀 수 있는 화장실을 가진 공간을 소유하는 행위를 가치있게 또한 의미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적으로 타인에게 음식을 제공하여 호감을 얻고 화장실을 제공해서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추가적인 의미가 생겨난다.

 

우리의 몸은 이런 시간낭비가 될 수 있는 것을 위해 포만감과 배설의 욕구를 우리에게 부여해준 것이다. 우리는 결국 죽음이 있기에 생명의 연장에 대한 행복감을 맛보게 된다.

 

만약 이런 행동이 일반 게임 속 일처럼 그저 게임 요소상 하나라서 절대 먹지 않아도 그 안에서 굶어죽을 일이 없다면 이것을 위해 시간가 노력을 들이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이면서 불필요한 행위로 간주 될 것이다. 만약 인류가 어느날 기술 발달 끝에 기계로 만들어진 몸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을 때 과연 우리에게 먹고 싸는 것에 대한 가치와 그로 인한 행복이 존재할까? 물론 몸에서 호르몬을 분비시키기 위해서 뇌를 속이는 행동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것보다는 그런 호르몬 자체를 마음껏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해 낼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생각하기 싫어하고 멀리하고 싶어하면서 마치 존재 하지 않는 듯 여기는 죽음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의 실제적 가치를 환산해주고 있으며 또한 거기에 더해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것을 진지하고 진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세상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진실이라고 받아 드릴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생각하는 사고라는 것이 계속 의미를 유지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과연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정말로 이 세상이 메트릭스 속 세계이거나 혹은 소드 아트 온라인과 같은 누군가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이고 언젠가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야 한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서 보내는 그 모든 무의미한 행동들은 실제로 우리가 돌아갈 곳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속의 여주인공은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후 이런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 세계에서 하루가 지날때마다 제 현실이 점점 부서져가는 느낌이 들었던 거에요....그 사람을 만난 후.... 실세계에서 하루하루를 잃어가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다... 라고요"

 

이쯤에서 우리가 현실에서 추구한는 그 모든 물질적 가치는 결국 내 자신의 환경이 바뀌는 순간 모두 무의미한 것들이 될 수 있다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조건부 가치 추구에 대한 믿음을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나는 이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마지막 100층에서 최종 보스를 죽이기 위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그 안에서 가장 큰 가치를 가진 존재가 정말로 이 게임을 클리어 하고 싶어할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작은 세계이지만 그 안에서 가장 큰 기득권이 되어버린 그 존재는 정말로 그것을 원하게 될까?

 

그 안에 모든 이들은 빨리 그 세계를 떠나길 원하겠지만 만약 그 시간이 수십년이 흐른 후라면 정말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갈등 요소로서 이것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 이 애니메이션을 좀 더 보니 진행이 나의 생각과는 좀 다르게 진행된다. 아무튼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쓰는 언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다른 나라 언어를 접해봐야 한다. 그런데 이 원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우린 삶을 두 번 살수도 없고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볼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이리 삶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 어쩌면 단순해 보이는 애니메이션이 그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일본 사람들의 정신 세계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