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현실과 기억의 괴리감 - 부부갈등

아이루다 2013. 11. 3. 08:34

 

적어도 1년 이상을 죽네사네 하면서 사랑을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조차도 결혼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심각하냐 않냐의 차이만 있을 뿐 서로에 대한 어떤 불만들이 쌓이게 된다. 물론 이것은 단지 부부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말로 친한 친구들과도 1년 동안 같이 살게 되면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들 대부분이 어린시절 부모님과 큰 문제 없이 잘 살았던 이유는 바로 부모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모두 이해해줬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부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이고 여기엔 개인적으로만 유지되었던 집안에서의 사생활이 서로에게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린 밖에서 만날 때의 모습과 집에서 생활하는 개인적인 모습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린 밖에서 볼 때는 늘 깔끔하고 씻고 옷을 단정하게 입은 상태로 누군가를 만나게 되지만 일단 집에 있게 되면 씻지도 않고 너저분한 상태로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방구를 아무데서나 뿡뿡 끼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다.

 

보통, 사람들이 타인과 처음과 다른 어떤 불화를 경험하고 있을 때 - 이 경우가 보통은 결혼 한 부부이기 때문에 그 예를 부부로 하겠다 - 그 사람들은 대체로 상대에 대해 어떤 실망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즉 결혼 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행동이나 생활 습관등이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지면서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서 그 갈등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결국 이럴 경우 이런 말들을 하곤 한다. '결혼 후 배우자가 달라졌어요', '사람은 살아봐야 안다' 등등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이 말에 내포된 의미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사람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고 원래 내가 그 사람을 잘못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실제로 힘든 일이기에 이런 인지 실수는 늘 일어나게 되는 일들 중 하나이다.

 

만약 결혼 전 자신에게 돈을 절대 아끼지 않고 잘 쓰는 남자를 보고는 여자 입장에서 나를 정말로 사랑해서 그렇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바로 이 남자가 돈을 못 모으고 과소비가 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 그것이 내 돈이 아니라 남자의 돈일 땐 아깝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행복하게 여기다가 결혼을 하고 난 후 공동 경제 시스템으로 전환이 되었을 때 상대가 계속 그렇게 하면 열불이 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남자가 바뀐 것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상대를 잘못 해석한 것은 상대의 잘못이 아닌 그 자신의 잘못이라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적으로 누가 그렇게 해석을 하겠는가? 물론 사람을 잘못 봤다고 인정하듯 말하는 사람들도 매우 소수로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이 행동하지 않는 상대에 대해 끝없이 불만만을 갖게 될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억속의 남아 있는 상대에 대한 이미지와 지금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대의 현실 이미지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보통은 기억속의 이미지가 훨씬 낫다.

 

우리의 기억은 묘한 특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대한 미화 능력인데 어쩌면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하는 사고 패턴일 것이긴 한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아무튼 우린 과거의 기억 중에서 고통에 대한 기억은 제법 잘 잊어 버리면서 행복에 대한 기억은 필사적으로 유지시킨다.

 

흔한 예로 남자들의 경우 그 힘들었던 군대에 대한 기억은 늘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표현되곤 한다. 그래서 남자가 신나게 군대 얘기를 할 때 그만 듣고 싶다면 그럼 다시 군대 들어가 라고 말해주면 된다. 그러면 아마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재입대 하는 식은땀 나는 꿈을 이야기 할 것 같긴 하다.

 

이 원리는 내가, 우리가 상대하는 그 모든 대상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그래서 오래된 관계일수록 기억속에 존재하는 상대에 대한 가상적 이미지가 현재 지금 당시의 이미지와는 미세한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어떨 땐 혼자 상대를 생각할 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는데 얼굴만 보면 화가 나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을 일종의 권태기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이것이 권태기이든 아니든간에 기억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존재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이 괴리감은 문제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기억속의 이미지는 좋은데 현실에서 좋지 않으면 기억이 아예 없어서 판단할 근거조차도 없을 때보다 더 악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 결과로 인해 좋았던 시절이 많았던 관계일수록 문제가 생겼을 때 훨씬 강한 반발력이 생겨버린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나름대로의 해결책으로 이것을 극복해낸다. 하지만 이때 주로 쓰는 방법이 바로 상대에 대한 어쩔수 없는 포기이다. 즉 마음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포기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것을 해결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실제로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기억속에 담겨진 상대의 이미지를 기억 속에서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나에게 다가온 상대의 멋지거나 다정하거나 예쁘거나 사랑스러운 이미지에 대한 기억을 날리라는 뜻이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성공을 하게 된다면 이제 바로 눈앞에 그때보다 늙고 추레하며 멋진 양복과 귀여운 청바지를 입은 그와 그녀가 아닌 털이 숭숭난 다리를 내 놓은 팬티인지 반바지인지 모를 옷을 입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남자와 역시나 늙고 화장도 안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먹일 요리를 하고 있는 여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일 양복을 입고 돈을 벌로 회사로 갈 것이며 여자 역시도 돈을 벌로 가거나 아니면 집에서 자신과 아이를 위해 집을 쓸고 닦고 요리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결혼 후 많은 갈등을 겪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상대의 과거 이미지를 모두 날려버리고는 마치 새롭게 사귀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부부이지만 연인에 가까운 관계로 발전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땐 이미 같이 사는 사생활까지 모두 포함된 상태의 이미지이기에 매우 단단하고 시간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 이미지로서 기억이 재생성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부간에 올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부부는 분명히 결혼 전에는 연인이었다. 당연히 서로 아끼고 사랑했기에 결혼을 했다. 설령 그런 과정이 없었던 중매결혼이나 돈이나 외모만 보고 한 결혼이라고 해도 적어도 우리가 얼굴도 보지 못하고 결혼한 과거의 우리 부모세대는 아니다. 즉 자신의 결혼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살다보니 볼것 못볼것 다보면서 결국 자신이 몰랐던 상대에 대한 지식을 쌓게 됨으로서 실망하고 싸우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우린 과거에 쌓인 상대에 대한 기억의 편린을 지우지 못한다. 그것도 긍정적인 면만 골라서. 그리고 현실의 상대를 그 과거의 기억과 계속 비교하면서 한탄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에 어찌어찌 했던 사람이 왜 저렇게 변했나 싶어서 실망한다. 그런 면에서는 연애 결혼보다 차라리 중매 결혼이 낫다고 볼 수도 있다. 사랑한 기억도 없다면 살면서 실망할 일도 없다. 단지 너무 모르고 결혼했기에 복불복의 우연성에 의해 결정되는 불안함은 있다.

 

먄약 오늘 혼자서 생각하는 상대를 떠올리면서 미소가 지어졌는데 상대를 실제로 만난 후 그 미소가 연속지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기억속의 상대의 이미지가 조작되어져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라. 이 때 눈 앞에 있는 상대가 바로 현실이지 내 머리속에 담겨진 상대는 그저 기억일 뿐이며 그것도 제대로 된 기억도 아니다.

 

우리가 만약 늘 현실적 상대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제대로 된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사람에 대한 실망은 거의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다. 특히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평생을 기억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추억에 빠지게 만들고 늙어서는 과거만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것이 단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상대를 현실에서만 인식하게 되면 늙거나 다치거나 심하게 외모가 손상되거나 치매에 걸렸을 때 어찌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늘 같이 유지할 수 있으랴. 이런 경우엔 우리의 기억속의 이미지가 매우 큰 힘을 주기도 한다.

 

최종 결론적으로 만약 현재 어떤 상대와 과거에 없었던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상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잘못 인지된 상대의 이미지를 휴지통에 버리고는 현재 상대를 직시해보면 해결책이 나온다. 그것은 물론 늘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다. 그 해결책은 바로 받아들어거나 거부하는 결정을 가능케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또한 어떤 상대와 별 갈등이 없다면 딱히 그것을 재조정 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살아가면 된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급격한 변화, 즉 병이나 사고등에 의한 급격한 변화로 인해 갈등이 있다며 그것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최대한 잡고 있어야 버틴다. 이것을 놓은 순간 우린 그 사람을 버릴 수 밖에 없다. 뭐 이것도 해결책 중 하나이니 그것을 비난하는 것도 웃기다. 도대체 얼마쯤에서 포기를 해야 할 지는 알길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