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비효과

아이루다 2013. 8. 18. 08:57

 
"북경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하면 뉴욕에서 폭풍우가 친다"
 
아마도 '나비효과'란 말이 이 글에서 연관되어 만들어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아니라고 해도 결국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 글과 단어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좀 황당한 느낌을 받았었다.


내가 나비효과에 관련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소설 '쥬라기 공원' 이었다. 한때 참 많이 좋아했던 작가 '마이클 클라이튼',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인데 아무튼 이분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손 꼽히는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서 정말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보는 중 나온 CG로 만들어진 공룡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나비효과는 이 영화에서 말콤박사로 일컬어지는 인물을 통해 언급이 된다. 말콤 박사의 결론은 한 섬에서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믿어지는 공룡 생태계는 절대로 통제할 수 없는 복잡계라고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이론이 바로 '카오스 이론' 이고 그 카오스 이론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앞서 적은 북경 나비설이었다. 참고로 원래 마이클 클라이튼이란 작가가 과학적 지식이 꽤나 높은 수준이어서 자신의 작품에 이런 종류의 최신 이론들을 접목하는 경향이 그 전에도 꽤 있어왔었다.

 

그 후 유명해진 카오스 이론은 그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심지어 내 기억으로는 어느 회사에서 카오스 세탁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숩다. 그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실제로 영화 '나비효과' 가 나왔고 이 영화도 꽤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결국 나비효과란 말이 완전히 일반적인 쓰임새를 갖는 것으로 고정된 듯 보인다.
  
우리 주변엔 복잡계가 참 많다. 우리 인간 사회도 그렇고 가장 유명한 예가 바로 날씨다. 그리고 이런 복잡계의 특징은 바로 어떤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다수로 존재함으로써 예측이 너무도 힘들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날씨는 예측이 힘들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은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세분화 된 매일매일의 날씨로 들어가면 너무도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또 그래서 정확하지도 못하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그래서 수퍼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아는데 또 그만큼이나 욕을 많이 먹는 곳이기도 하다.
 
앞서 예를 들었듯 인간 사회 역시 이런 복잡계 중 하나다. 우리 인간 하나하나의 행동이 바로 우리 사회 전체에 조금씩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으며 그것으로 인해 복잡성이 크게 증가된다. 물론 나의 행동이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북경의 나비가 날개 짓으로 뉴욕의 날씨에 영향을 미친다면 나 역시 내가 오늘 화장실에 간 행동이 내가 전혀 모르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이에게 상상하기 힘든 영향을 미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어떻게 단정하겠는가?
 
우리는 가끔 과거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 연속을 짜맞춘 후 그것을 보고는 매우 놀라워하기도 한다. 심지어 링컨과 케네디의 삶을 연결시킨 후 그것을 패러럴 라이프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우연이라고 치기엔 너무도 연관되어 보이는 것이 많아서 그렇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사람들에게 아주 잘 통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쩌면 운명처럼 어떤 것들이 정해져 있다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우리의 삶에서 그 어떤 것이 예정된 대로 흘러가고 또 예측한 대로의 결과를 내 놓을까? 물론 아주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매우 일반적으로 예측대로 흘러간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본 후 물을 내리면 예상대로 잘 내려간다. 하지만 그 행동을 10년 했을 때 3650일 동안 매일 한번씩 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는 행동을 했을 때도 모두 성공할 것인가? 아마도 수학자라면 혹은 공학자, 통계학자라면 변기의 견고성과 기타 상황을 파악하거나 통계적인 자료를 조사해 그 실패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예상이 얼마나 틀릴지 사전에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떤 집은 20년간 아무 문제도 없을 수 있고 어떤 집은 단 몇 개월 동안 여러 번의 수리를 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예측 가능하다는 것과 예측이 꼭 맞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우린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번 자신도 모르게 예측을 하고 움직이고 거기에 크게 의심 없이 바라보지만 결국 우리가 예측하고 기대하는 그런 것들은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러 갈 때 지하철이 고장 나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겠는가? 물론 최근에 몇 차례 반복된 고장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난 몇 년간 그런 일을 겪지 못했다면 실제로 그럴 상황을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도 그 직장인의 머리엔 9시에 회사에 가서 중요한 회의에 참가해 발표할 자료에 대한 내용만으로 꽉 차 있을지도 모른다. 정작 자신이 결국 지하철을 못 타 그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못한 채.
 
우리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발달 된 두뇌의 소유자이다. 이 예측 능력에 대해서는 과거 글에도 몇 차례 언급을 했었는데, 예측 능력이야 말로 오랜 시간 동안 쌓은 지식의 활용적인 측면에서 최고의 효과를 불러오는 것 중 하나이다. 우린 오랜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미래에 자신에게 일어날 어떤 일이나 혹은 그 자신이 의도한 어떤 일들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를 생각하고 예상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장사를 시작하는 이는 많은 돈을 들여서 가게 인테리어를 멋들어지게 꾸미는데 만약 장사가 안되면 이 투자비를 다 날릴 수 있다. 이것은 어떤 땐 자신의 인생 전체에 걸쳐 모아 온 돈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가게가 망해서 이 돈을 다 날리면 자신의 남은 삶이 상대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짐을 알지만 그래도 자신이 믿는 대로 성공할 수 있다고 초기 투자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예상처럼 그 둘 중 얼마나 성공해 낼 수 있을까? 이런 우리의 빗나간 예측의 예는 우리 인간사회에 넘쳐난다. 또 반대로 결론은 성공했지만 그 의도는 전혀 없었던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우연한 사건들은 너무도 예측 불가능해서 늘 결론적으로만 이야기되는 형편인데, 가끔은 그런 것을 마치 신의 의도인 냥 착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참 끼워 맞추기 능력이 능한 존재란 점도 알게 된다.
 
친구를 따라 오디션 장에 갔다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캐스팅되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경우나, 어떤 과학적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특이한 현상을 연구하여 원래 연구는 없어지고 이것으로 인해 과학자로서의 인생을 크게 성공한 경우나 모두 이런 우연한 사건들이 불러온 결과로 보여진다.
 
하지만 우린 오늘도 의도와 목표를 정하고 2012년에 2013년 목표를 정한다. 나라는 살림 규모를 정하고, 회사는 내년 영업 목표를 정하고, 개인은 내년까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정한다. 하지만 되돌아보라. 과연 그 어떤 것이 우리의 목표대로 달성되고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매년 증권사는 주가를 예상하고, 경제 전문가는 내년도 경제 상황을 예측해 대지만 솔직히 요즘 누가 그것을 믿는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자신이 계획해서 진행하는 것에 대해 그리 많은 의심을 하지 못한다. 가게를 새로 내는 자영업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나 회사에서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회사의 어떤 과정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나 어떤 정책을 만들어서 국가 시스템 내의 국민들에게 좋다고 여겨지는 정책을 적용하려는 공무원들이나 모두 그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는 정말로 예측 불가능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거기에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하지만 복잡계를 지배하는 나비효과는 정말로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전에 중국의 독재자 마오쩌뚱이 수확을 앞둔 벼의 쌀을 먹어대는 참새를 '나쁜 새' 라고 정의하고 중국 전역에 참새 소탕령을 내려 엄청난 숫자의 참새가 일시에 죽음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후 다음해 쌀 농사가 잘되었을까? 참새는 쌀 뿐만 아니라 벼에서 기생하는 해충도 잡아 먹는 역할을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해주는 존재가 일거에 사라진 후 벌레들은 진정한 자신의 세상을 만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엄청난 흉작이 야기되었고 이 흉작으로 인해 중국에서 약 4천만 명이 아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복잡하기로 따지면 지구 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결과이다. 그리고 지금도 인간은 이 생태계를 우리의 의지대로 조절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우린 지구계라는 거대한 닫힌 계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그렇지만 우린 이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생태계에서 오랫동안 1등의 자리를 지켜온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의 부속물이란 것을 잘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자연을 극복하려고 한다. 홍수, 태풍 등과 같은 단순한 날씨로 야기되는 재해나 화산, 지진과 같은 거대한 지각의 운동에 의해 야기되는 것들을 예측하고 피해가려고 한다. 물론 아주 미래에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수십만 년의 기술발전을 이루어낸다면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수준은 막말로 2년전 일본에 들이닥친 초대형 지진 쓰나미에 의해 지금 전세계가 방사능 공포에 시달리는 결과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이런 거대한 영역에서 말고도 개개인의 작은 영역에서도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의도대로 가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좋은 대학교, 전공, 취직, 결혼 등등 우리가 인생에 있어서 매우 크게 여기는 것들을 예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최대한 정보를 모으는데, 그 좋은 예가 결혼을 위한 대규모 중매 업체들이다. 그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인정되는 좋은 결혼 조건들을 모아 사람들의 등급을 매겨서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업체를 통해 결혼한 이들이 과연 잘살아갈 까는 또 다른 문제이다. 물론 이런 업체를 통하지 않고 연예결혼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그 둘 모두 예측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결혼식에서 하객들에게 평생 잘 살 것을 맹세하는 혼인 부부를 본다.
 
여기에서는 기준점이 되는 것들도 추가로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획을 추진했다면 그 의도가 생긴 계기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좋은 대학교를 가려는 것은 이후 취직을 잘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리고 취직을 잘하려는 의도는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한 의도이다. 좋은 직장을 잡은 의도는 자신이 원하는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돈은 자신의 삶을 매우 행복하게 해줄 것이란 믿음에서 출발한다.
 
결국 우리가 중요한 시작점으로 여기는 '돈' 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가장 예측하기 쉽고 또한 결과가 틀릴 가능성이 적은 것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린 늘 안정적인 결과를 위해 돈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이 돈 역시 영화처럼 인류에게 갑자기 찾아온 거대한 재난이 발생하면 땔감이나 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돈이 언제라도 땔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우린 이미 충분히 안정적이니까.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100년 정도 되는 삶을 예측하려 하지만 힘드니 보통 1년이나 10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그 의도를 정한다. 그것이 돈이 되든, 행복이 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내 예상으로 100% 확률로 1년이나 10년의 의도가 그 의도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없다. 즉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완전히 예상할 수 없다. 물론 비슷하게는 예상하는 수준까지는 가능하다.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는 그 의도가 과연 얼마나 자신의 예상과 같은 것인가 이다. 돈을 벌기 위해 10년을 일한 이가 실제로 돈을 벌은 후 원래 의도했던 돈에 대한 의도를 얼마나 제대로 충족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원래 돈을 벌 의도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였는데 돈을 벌려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고 힘들어서 결국 10년의 시간에서 행복을 지워버리고 살아 왔다면 정말로 자신의 의도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30대에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한 의도로 10년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여행을 다닌 후 40대가 된 어떤 사람이 모아둔 돈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왜 자신은 30대를 외국 여행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까 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을까?
 
어쩌면 여기에서 사람들의 좋은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돌이켜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또한 생각한다고 해서 되돌아 갈 수도 없기에.
 
우리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고, 목표를 정하고, 가는 과정을 참아내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꽤나 좋은 미덕으로 여긴다. 그리고 매일매일 아무런 계획 없이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좀 답답함도 느낀다. 그런데 우리 삶은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의도하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계획은 늘 틀어진다.
 
그래서 어떤 땐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의도와 계획이든지 그 과정만을 제대로 보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즉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의도가 아닌, 목표에 다다르는 과정 자체를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러기엔 너무 목표 중심적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자주 떠나는 여행은 과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어떤 공간을 넘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여정에서 과연 목표가 된 지점만을 위해 그곳에 가는 것인가?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간 것이 그 목적지를 가기 위한 것 그 자체 뿐인가?
 
우리는 여행 중 우리가 나눈 대화나, 우리가 우연히 먹은 음식이나, 차를 타고 달리면서 본 멋진 풍경이나, 여행 중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왜 예상하지 못할까? 실제로 이런 우연은 거의 늘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것 자체를 기대하면서 여행을 가질 못한다. 좀 심하게 비약하면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떠날 수는 없는 것인가?
 
아마도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좀 더 우연한 결과로 받아드릴 수 있다면 우린 좀 더 제대로 된 그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의도한 결과를 이루어 낸 것을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어떤 종류의 훈장을 받은 것 마냥 여기는 버릇을 없앨 수 있다면, 그리고 이것을 남들에게 자랑하는 우스운 짓거리를 안 할 수 있다면 우린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내 착각일까?
 
우리가 생각을 바꿔 내가 이룬 것들이 모두 우연의 산물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면, 내가 과정 중 얻은 이 행운들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또한 내가 최종적으로 이룬 것이 내 의도대로 되었다면 그것은 일종의 기적임을 받아드릴 수 있을까?
 
아마도 참 힘든 것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이룬 것을 그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여겨야만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에. 결국 우린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 성공한 결과를 죽는 순간 자신의 자서전에 적어 두고 그것들이 모두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음을 남겨야 만 그 마음이 흡족한 존재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존재로 밖에 남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란 점이 아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