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유로운 영혼

아이루다 2013. 7. 31. 15:25

 

뭐라고 그 직업을 칭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남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그냥 써서 칭하면, 방송인이라고 알려진 사유리씨라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리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기에 그분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소개를 하자면, 일단 태생은 일본이고 우리나라에 와서 미수다에 출연하면서 그 존재를 알린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 방송을 거의 보지 않았기에 실제로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어떤 존재감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반사람들과는 좀 다른 언행으로 인터넷에 여러번 이슈가 된 듯도 하다. 그후로도 꾸준히 방송활동을 하는 듯 그녀에 관한 재미난 에피소드가 가끔 눈에 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유리씨에 대해 호감이 있는 편이다. 뭐 대외적으로 알려진 에피소드들이 모두 실제로 그대로 그녀의 모습 그 자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말하는 것들을 들어보면 그나마 그계통에 있는 사람 치고는 생각이란 것을 하고 살아가는 듯 보여서 그렇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가 자신의 트윗에 원하는 남자에 대한 조건을 적어 놓은 문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엔 우리나라의 보통사람들이 원하는 직업,외모,재산 등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단 한마디로 그녀의 이상적 남자에 대한 조건을 적어 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정신이 자유로운'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 말을 임의로 해석해 아무래도 일본인이다보니 한국말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이 말을 다시 우리가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인 '자유로운 영혼'으로 해석해 보았다.

 

'자유로운 영혼' 이라.. 어떤 의미에서는 참 멋진 말이다. 이 세상에서 정말로 자유롭고 싶지 않는 이가 누구란 말인가? 자신을 언제나 옭아메고 있는 그 수많은 의무들과 상황에 맞지도 않는 각종 규정들, 나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는 주변인들의 평가.. 예전부터 자유로운 영혼은 많은 이들의 꿈이였으며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적인 세계였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영혼 혹은 사유리씨가 표현한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나는 이상하게 이런 표현을 들으면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특히 천재성을 가졌으나 끝없는 자기부정이나 여자 편력 그리고 일반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고독함까지, 결국 불행한 삶으로 결론이 난 일명 불행한 천재 예술가들.. 고흐, 모자르트 등에 대해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온전히 나만의 생각이라고 여긴다. 사람들마다 어떤 이는 체게바라를 어떤 이는 카사노바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가 떠올리는 이들이 그리 무리한 것만도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유롭다는 말이 가진 숨겨진 진실을 바라본다면 좀 더 내 의견에 동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이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자유롭다.. 이 말은 단순히 표현해서 어떤 것에 구속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정신이 자유롭다는 말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여기에서 정신이란 단어는 좀 은유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실제적으로 사람의 정신의 역할인 개개인의 생각, 사고등을 대입시켜보자. 생각이 자유롭고, 사고가 자유롭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인간은 탄생 시기엔 완전한 자유로움을 가지고 태어난다. 갓난아이에겐 화장실에 똥을 쌀 필요도 없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일할 의무도 없다. 어린 신생아는 그저 엄마가 물려주는 젖이나 혹은 소젖을 먹고 똥이 마려우면 싸고 졸리면 자면 된다. 하지만 아이는 하루하루 커가면서 점점 지켜야 할 규칙이 생기고 언젠간 똥도 화장실에 싸야하고 또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하며 결국 직장을 잡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린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좀 차분히 살펴보면 우린 자유롭게 태어나 점점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구속을 받아들임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으로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우린 자신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사람다워지는 것을 배우며 결국 한명의 독립된 개체로서 거듭나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다가 죽는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우린 자유와 구속 혹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받아들이는 수 많은 가치들과의 충돌속에서 개개인의 확고해진 신념이나 고집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신념은 분명히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가질 중요 덕목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 뜻이 어떤 가치있는 일에 대한 흔들림 없는 생각과 행동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신념은 자유의 반대의 개념이 되고 만다. 자유롭다는 말이 뜻하는 것이 뭐겠는가? 결국 어떤 것이든 규정하지 않고 정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린 단순히 자유를 통제의 반대로 여길지 모르지만 이 통제는 꼭 외부의 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것이든 내 사고의 한계점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모두 자의적 혹은 타의적 통제로 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는 순간이 바로 세뇌를 당하는 것이다. 신념을 가진 인간이나, 세뇌된 인간 모두 물러섬 없는 꿋꿋한 주장을 하는 모습은 그리 낮설지 않다.

 

나 자신이 A라는 사상을 선택하는 순간 나는 그 뒤나 옆에 쭉 나열된 B, C, D 사상을 버리는 것이 되며, 종교 역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정치, 사회, 역사, 철학 등등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는 수 많은 것들 역시 선택과 동시에 고정되며 그 고정은 바로 자유의 반대로 작동한다. 물론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런 선택은 매우 필수적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린 늘 흔들리고 고민하고 갈등하며 결국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평가 받을 수 있다.

 

다시 자유롭다는 말로 되돌아가보자. 사상으로부터 자유롭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사회가 가진 공통 가치관으로부터도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일까? 단순화 시키면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히 혼자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더우면 다 벗고 시내를 활보하며, 먹고 싶은것이 있으면 먹고 마려우면 싸고 자고 싶으면 아무데서나 자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조차도 지키지 않는 무인도 같은 곳에서의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자유로운 정신은 그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일이다. 적어도 우리가 자유로운 정신이나 영혼을 말할 땐 이런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이 자유는 앞서 말한 사상, 생각, 사고, 관념, 상식, 편견, 선입견, 분류통계등의 인간의 정신활동에 대한 규제로부터 자유로와짐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커오면서 실제로 얻게되는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인간 분류법이다.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적인지 친구인지 구분하고 이용할만한 사람인지, 이용당할 것 같은 사람인지, 사기꾼인지, 진실한 사람인지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 구분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우린 상대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엔 방금 언급한 사상, 생각등이 매우 중요한 판단요소로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를 규제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것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바로 이런 것들이 편견으로 작동해 우리도 모르게 억압된 정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비싼 명품백을 사는 여자를 된장녀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린 자신도 모르게 모든 비싼 명품을 들고 다니는 여자를 된장녀라고 폄하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우린 나와 다른, 혹은 내가 좀 이해하기 힘든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싸그리 뭉뚱그려서 하나의 대표적 분류로 처분해버린다. 그것은 바로 상종하면 안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실제로 자유와는 완전히 반대지점에 서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분류적 사고나 정해진 자신만의 철학이 없을 경우 우리는 살아가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그것은 실제로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데 그것은 젊은 시절은 그나마 고민하고 갈등하는데 그 많은 에너지를 써도 상관없지만 늙고 추해지고 시간이 부족한 시점이 되면 그런 에너지만 갉아먹는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현실적으로 젊은 시절의 방황에서 늙은 시절의 견고함으로 변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문제는 젊은 시절의 방황을 통해 얻은 비정형적 사고방식이 점점 어떤 규칙에 의해 경험에 의해 굳어져 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집불통의 자기만의 세계를 갖은 또는 그 근거도 애매하고 이해도 안가는 논리에 자신을 완전히 함몰시켜 누구나 그렇다고 주장하면서 매우 기득권스러운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운 정신은 정말로 거의 불가능한 요구사항이다. 우린 먹고 살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경쟁을 해야한다. 경쟁을 위해서는 상대를 알아야 하고 아군을 많이 만들어야 유리하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심각한 무기가 보이지 않는 전쟁터이다. 거기에서 한가롭게 자유롭고 싶어 한다면 잘못하다가 순식간에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뒤쳐지고 만다.

 

그래서 어쩌면 자유로운 정신은 천재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닌가도 싶다. 하루 종일 놀고 단 10분의 일만 해도 혼자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일반인들보다야 먹고 사는 문제에 덜 치기 때문에 그 남은 시간을 자신의 또다른 영감을 얻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행운아이다. 그래서 자신과 교감을 나눌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남들은 상상도 못하는 행동을 하면서 그 스스로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통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가족에 대한 의무, 가정에 대한 의무, 양육에 대한 책임 심지어 남자 같은 경우 국방의 의무로 인한 군생활까지 다 포함해서 자유로운 영혼을 간직할 방법이 참 힘들어보인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그 스스로 모든 것을 다 극복해내는 아주 특이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인간이 정한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가 정한 통제의 규칙을, 삶의 규칙을, 관계의 규칙을 벗어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우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실제로 어떤 통제속의 삶으로만 수렴될 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사유리씨는 너무 눈이 높다.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은 돈이 많은 이를 찾는 것보다 수백배, 아니 수백만배 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이 현생 인류 중 단 한명이라도 정말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는지 그 조차 모르겠다. 아마도 죽은 이들 중에 찾는다면 부처나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이들이 아닐까 싶다.

 

오늘 문득 나 자신을 스스로 판단해보건데 나는 참으로 많은 규제를 스스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유를 꿈꾸지만 나는 스스로 통제된 이 감옥을 탈출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길 바라지만 또 다른 나는 나 자신을 규정에 구겨넣고,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삶에 이르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두개의 나 자신이 아무런 충돌도 없이 적절하게 어울려 내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결국 이 두개의 내 모습을 각각의 상황에 맞춰서 꺼내보이고 있을 뿐이다.

 

오늘 꽤나 깊은 생각끝에 하나의 단초를 얻긴 했다. 물론 정말 단초에 불과하지만 꺼지지 않게 잘 불어서 이것을 통해 어떤 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