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멸망을 주제로 한 작품들
지난 주말에 '월드워Z' 란 제목을 가진 영화를 봤다. 요즘은 게으름이 하늘을 찌르는 덕에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지가 도대체 얼마만인지 모를만큼 까마득 했다. 그래서 영화도 한번씩은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밀려드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금요일 밤 10시 40분에 개봉하는 거의 심야급 영화를 유진이와 함께 봤다.
이 영화는 일종의 좀비 바이러스로 급속히 망해가는 세상을 구하는 어떤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연은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꽤나 유명한 브래드 피트가 나왔다. 그리고 그의 부인으로 이름은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떤 미드에서 형사역으로 나온 여배우가 나와서 나름 반가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는데 역시나 헐리우드 작품 답게 스케일을 컸지만 실제로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부분은 매우 좁았다.
큰 이변은 없는 영화였다. 다른 좀비 영화물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좀비들이 무지막지하게 빠르다는 점이었는데 이것이 영화보는 내내 매우 공포심을 자극했다. 원래 좀비들은 느리고 엉성해서 그리 위협적이지 않고 단지 숫자로 인해 공포스러운 것인데 이 영화에서 좀비는 대단히 힘이 쎄고 빠르기까지해서 확실히 다른 위협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요즘 보고 있는 워킹데드 란 미드도 역시나 좀비를 중심으로 망해가는 인간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미드도 약간 특이한 요소가 있는데 기존 작품들이 좀비가 나타나면 이를 무찌르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이야기라면 이 미드는 역시 오랜 시간을 할 수 있다는 드라마의 장점을 한껏 살려서 그 무리안에서 일어나는 실제로 중요한 생존과 공포 그리고 인간의 욕망등을 어떤 의미에서는 참 현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특히 친구 사이였던 두 남자와 그 중간에 낀 한명의 여자의 갈등과 현실을 부정하고 살아가는 어떤 나이 지긋한 농장 주인등은 우리가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과연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꽤나 실질적인 답을 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월드워Z에서는 멸망을 앞 둔 세상을 향해 가정을 무척 아끼지만 그러기에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맡은 어떤 한 남자가 자신의 능력을 살려 세상을 구원하고자 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워킹데드에서는 정말 무력하고 평범한 한 남자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자 그가 가진 선의와 그가 가지 또다른 의미의 책임감 사이에서 고뇌하고 결정하고 또한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물론 워킹데드에서는 이 남자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한 여자, 딸을 잃은 엄마, 과거 한때 특수부대에서 근무해 본 듯한 망난이 형을 잃은 남자, 혼자 살아가야 하는 동양인 남자 (한국인), 피부색이 다른 흑인 그리고 이 험난함 속에서 자신의 농장에서 세상과 단절한 채 좀비로 변한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이 단지 아픈거라면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어떤 한 노인과 그의 딸에 대한 이야기까지.. 여기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은 모두 하나씩 자신만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좀비에 대한 영화가 처음으로 흥행한 것이 '레지던트 이블' 이란 작품인것도 기억하는데 틀린지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은 좀비들로 인해 죽었지만 움직이면서 살아있는 인간의 살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이 느리고 혹은 빠르고 판단능력이 부족한 이 존재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 정말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순식간에 멸망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리 인류의 공통된 두려움이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런 종류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내가 저런 상황을 맞게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 그때도 인간이 본성이나 공동체 의식에 대해 이런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처럼 손에 도끼를 들고 총을 들고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자 완전한 반 문명적 삶을 선택하고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힘든 결정인 좀비를 죽이는 것이 아닌 어쩌면 좀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 위험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행동등이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로 어둡고 두려움이 밀려오는 곳에서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이것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하는데 우리의 모든 문명이 파괴되고 질서가 무너지며 법을 수호할 기관들이 모두 사라진 후 남은 오직 생존과 폭력만이 존재하는 세상속에서 내가 얼마나 이성적일 수 있을지 나 스스로 많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물론 지금 생각에 현재의 나라면 나는 그런 세상이 오면 아마도 매우 본능적인 행동을 하게 되리란 생각을 한다.
워킹데드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 그들이 숨어 살고 있는 농장의 위치를 아는 외부인에 대한 처리를 그 그룹이 결정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때 정말로 생존과 인간의 이성이 극대화되어 충돌을 한다. 그리고 그룹 중 나이가 많은 이는 우리가 안전을 위해 이 사람을 죽이게 되면 우리는 이제 더이상 인간이 아니며 또한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의견에 반대는 하지 않으나 현실적으로 외부인을 살려서 돌려보내는 일에는 찬성하지 못한다. 즉 그 외부인을 보내주게 되면 그가 원래 자신이 알던 이들과 협력해서 이곳에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사람들은 두 눈을 감게 되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이 사람을 살려보내려고 하지만 일이 중간에 꼬이면서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 후 그 농장은 대규모 좀비의 습격을 받고 결국엔 다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가지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바로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휴머니즘이나 혹은 이성에 대한 책임감등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성 상실을 잠재적으로 매우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성 상실이 가져 올 피의 댓가를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약자인 아이와 여자는 이럴 경우 살아남기가 매우 힘든데 결국 이것은 종족의 멸종을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남자는 타고난 힘과 강한 의지로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결국엔 자신의 아이를 낳아 줄 여자의 존재가 없게 되면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멸종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문명을 건설한 후 각종 사회적 제도와 효율적인 치안의 효과로 인해 원시시대의 어렵고 힘든 생존과정을 극복하고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것은 이후 우리 인간의 기술발전이나 인구수 증가를 위해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딱히 큰 외부변수가 없다면 서서히 망해가거나 서서히 발전해갈 것이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어떤 기가막힌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급격한 멸종의 순간을 맞이하고 또 그 안에서 어떻게 운좋게 살아남아 생존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면 그때 우리가 익히고 배운 그 모든 규범과 규칙이 무너지면서 과연 언제까지 혹은 어느 극적인 순간까지 우리를 인간이게 했던 가치들을 지켜갈 수 있을까?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적자생존의 원칙 앞에서 우린 아무런 반항을 할 수 없이 최대한 생존을 하려고 하겠지만 또하나 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돈이 오는 상황에서 또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역시나 모두 우리가 가진 인간에 대한 믿음에 따라 천차만별한 차이를 보여주게 될 것은 확실하다.
가끔 생각하면 우리가 인간이라고 자부하면서 목에 힘을 주고 질서를 지키고 상식을 부르짖고 하는 것도 어쩌면 모두 그럴만 하니까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지금 이순간이 내가 절대적으로 살아남아야 해서 나를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그런 사회였다면 어쩌면 지금의 기득권이 하는 행동이 참 정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런 기득권에게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 편에 서는 사람들의 한심한 모습이겠지만 말이다.